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2화(162/302)
162화. 안아줬다(2)
“…너 진짜 뭐야.”
하이프의 물음에 은호는 몸을 뒤로 빼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거야 인간이지.”
은호는 자신이 뭘 잘못했나 잠깐 생각했다.
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나긴 했다.
“넌, 내가 밉지도 않아?”
하이프는 일그러진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잠깐 하이프를 빤히 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악이 빠진 기분이었다.
“밉지. 폭시도 공격하고, 약속도 어기도,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했고. 너 쫓는다고 등줄기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거동이 좀 가능하다 싶을 때쯤, 하이프를 찾았다.
상태가 어떤지, 치료는 받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하이프는 계속 자신에게서 도망쳤다.
“내가 너 쫓다가 형한테도 혼나고, 가을 씨한테도 혼나고, 아윤 씨에게도 혼나도, 국장님한테까지 혼이 났다고. 아니, 더 많네. 지금도 봐봐.”
은호는 자신의 뒤에 붙어 있는 흑견을 가리켰다.
아주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다.
“또 있다?”
은호는 더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윈디드를 가리켰다.
그토록 괜찮다고 했는데, 윈디드는 쭈뼛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잔뜩 움츠려졌지만, 입이 간지러워 보였다.
“다 잔소리하기 직전이라니까? 이런 상황인데 넌 나만 보면 도망가니, 왜 안 밉겠어?”
“내가 네 얼굴을… 어떻게 봐.”
하이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봐야지. 내 얼굴 안 보고 살 거야?”
“…나는 너 미워했어. 엄청 미워했다고.”
“지금 안 미우면 됐지. 나도 아주 조금만 미워할 거니까, 너도 그렇게 해도 돼.”
“대체 왜 날 구한 거야?”
“그거야 약속을 안 지키길래, 얄미워서 구했지.”
―…미안해. 역시 안 되겠어.
하이프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설마 했다.
설마 뛰어내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뛰어내렸다고? 너는 인간이야! 뛰어내리면 죽는다고!”
하이프가 말도 안 되는 사실에 발끈했다.
“내가 얼마나 끈질긴지 알았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또 그 숲에 들어갈래?”
“…혼자 눈이 돌아간 주제에.”
“뭐…?”
“확실히 눈이 돌아갔다. 얼굴에 뒤집어쓴 걸 벗겼으면 더 잘 보였을지도 모른다.”
흑견이 하이프 편을 들자 은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콜록.
작게 기침하자 흑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앞으로 다칠 거면 다리나 다치거라. 눈 뜨자마자 그렇게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폐 손상이 있다고 했다.
걸으면서도 몇 번이나 기침했는지, 숨이 차 헉헉거리는 모습을 얼마나 봤는지 몰랐다.
“너무하다, 멍멍이 형님.”
“애초에 너무하면 그렇게 다치질 말았어야지.”
흑견이 앞발을 뻗자, 뒤에서 쭈뼛거리고 있던 윈디드가 다급히 날아와 흑견을 붙잡았다.
몇 바퀴나 굴렀는지 몰랐다.
“그만둬, 친구!”
“이거, 놔라.”
흑견이 앞으로 가려고 하고, 윈디드가 필사적으로 흑견을 뒤로 당겼다.
“말썽꾸러기는 지금 아프잖아! 그러면 안 돼, 친구!”
“그냥 얼굴만 누를 거다!”
“그것도 안 돼! 친구가 누르면 말썽꾸러기의 목뼈가 부러질 거라고!”
“부러지지 않게 누를 거다!”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 말이 통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레비아탐을 포함한 다른 존재들이 다 잠이 든 걸 확인한 뒤에 치사하게 나온 건 인간이었다.
―…안 잤어? 산책 안 가나?
그때, 자신에게 딱 걸리니 은호가 머쓱해하며 웃었다.
“그러다가 부러지면? 말썽꾸러기는 인간이니까,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흑견이 몸에 힘을 풀었다.
놀란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은호의 머리를 짓눌렀던가.
흑견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자 은호는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그 정도로는 안 부러져. 그러면 진짜 종이지, 종이.”
“인간은… 종이야. 내가 많이 봤어.”
저 멀리서 단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 뒤에서 빼꼼 내밀어서는 옆으로 뉘어진 귀를 팔랑 팔랑거렸다.
어쩐지 우는 것 같기에 은호는 눈을 찌푸려 바라보았다.
“단아야, 지금 울어?”
“아, 안 울어.”
훌쩍.
주변이 조용했기에 코를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울어도 돼.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어?”
“…나는, 나도, 은호한테 가고 싶은데, 나 때문에 은호가 더 잘까 봐, 가보질 못했어.”
“지금 오거라.”
흑견이 단아를 불렀다.
“…정말? 가도 돼? 저 존재는 나 때문에 잠이 들지도 몰라.”
단아는 훌쩍이며 하이프를 보았다.
흑견하고 윈디드는 몰라도 저 존재는 잠이 들지도 몰랐다.
“안 자. 오고 싶으면 오든지.”
하이프가 대답하자 단아의 짧은 꼬리가 흔들렸다.
“정말 가도 돼, 은호?”
“눈치 보지 말고 계속 인간하고 붙어 있거라. 재워버려라. 계속 재우거라!”
1단계, 2단계, 3단계 화를 보는 듯 흑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번 일은 은호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기에 흑견을 달랬다.
“멍멍이 형님. 내가 잘못했으니까, 화 좀 가라앉혀.”
은호가 일어나려고 하자 흑견이 윈디드를 떨어트리고는 바로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일어나지 말거라.”
앞발로 은호의 머리를 눌렀고, ‘뚝’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적이 일어났다.
흑견의 입이 벌어졌고, 윈디드가 뛰어왔으며 하이프는 놀란 눈으로 은호를 봤고, 단아가 그대로 굳었다.
이 침묵에 놀란 건 오히려 은호였다.
정말로 자신을 종잇장으로 볼 줄이야.
“아니, 아니. 이걸로 안 부러진다니까?”
장난을 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은호가 두 손을 흔들자 어디선가 웃음이 튀어나왔다.
놀라 쳐다보자 하이프가 웃고 있었다.
하이프는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시선마저 쏠리자 그냥 아무렇게나 말을 꺼냈다.
“…기가 차서 그랬어.”
“그래도 좋은데?”
“또 뭐가?”
“네가 웃었으니까.”
은호가 따뜻하게 바라보자 하이프는 놀라며 고개를 내렸다.
어딜 봐도, 뭘 겪어도 참 이상한 인간이었다.
괜히 망토처럼 일어난 푸른 불꽃에 얼굴을 묻었다.
“…넌 진짜 이상해. 어딜 봐도 이상해.”
“살다 보면 나 같은 인간도 만나고 그러는 거지.”
“나는… 약속을 어겼는데?”
그 소리에 단아가 깜짝 놀라 다급히 말했다.
“나, 나는 절대로 말하지 않아! 이미 꿈속에서 많은 걸 봤는걸. 더 많은 걸 봤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말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너만 약속을 어긴 게 아니야.”
은호는 하이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을 하자 은호가 말했다.
“나는 약속을 어긴 존재를 또 봤어.”
“…또 있다고? 정말로?”
“저기 삐약이 보이지?”
은호는 윈디드를 가리켰다.
“…삐약이?”
하이프가 눈을 좁혔다.
그건 새끼 새에게 꺼내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윈디드는 아무리 봐도 새끼가 아니었다.
“넌 삐약이가 뭔지 몰라?”
하이프의 말에 은호는 크게 웃었다.
“별명이야. 너희들 이름이 특별한 걸 알고 있으니까. 불러도 되는 이름이 있고, 아닌 이름이 있더라고. 물론, 삐약이한테 허락받았어.”
은호가 윈디드를 향해 손을 뻗자 윈디드는 냉큼 달려왔다.
호랑이 꼬리를 닮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 친구가 널 데려갈 거야.”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하이프가 귀를 내렸다.
올 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가슴이 조금은 떨렸다.
“…어디로?”
“너희의 왕에게로.”
“왕…?”
하이프가 눈을 크게 떴다.
왕이라니.
“내가 아는 그… 왕?”
“그래. 너의 탄생을 축복한 우리의 왕께 가는 거야.”
윈디드가 조곤조곤 말했다.
“왜 이제 와서…….”
하이프는 조여오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왕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토록 왕을 저주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왕은 자신들에게 특별했다.
처음 세상에 태어났음을 맞이하는 이가 부모가 아니라 왕의 목소리였다.
보지 않았어도 그리웠고,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런 왕을 저주하는 게 쉬웠겠는가.
“왜 이제야 나를 찾는 건데?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잖아.”
하이프는 바닥에 자라난 풀을 가득 쥐었다.
“…인간이 우리의 숲에 들어올 때, 아니, 남편이 납치당했던 순간이라도. 하다못해 이곳… 연구소에서 사라질 때라도, 찾아왔으면 좋잖아.”
“잠깐만, 친구야. 지금… 연구소에서 사라졌다니?”
은호는 손을 뻗다 말고 하이프에게 물었다.
연구소에서 환수가 사라졌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남편을 찾으러 인간의 생각을 읽었어. 인간은 납치된 환수를 구출하면 이쪽으로 보낸다고 그랬는데, 남편은 없었어. …사라졌어.”
하이프는 그때를 떠올리며 꼬리를 잡았다.
딸랑.
꼬리를 따라 방울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따라 하이프가 눈동자를 움직였다.
누군가를 보며 천천히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곳에서 내 남편을 빼돌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
은호는 그제야 하이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 설렁설렁 걸어오고 있던 태호가 걸음을 멈췄다.
“이곳의 주인이 저 인간이지?”
하이프는 태호를 보고 있었다.
“……하이프가 지금 나, 노려보는 거지? 아무래도 내가 방해했나 본데?”
태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은호를 보았다.
혹시나 해 은호의 병실로 갔는데, 역시나 레비아탐, 폭시, 라비, 일렉트만 서로 엉켜 자고 있었다.
너무 귀여운 모습에 멀리서 동영상을 켠 뒤, 다시 가 찍었다.
한참 찍은 뒤에야 은호가 사라졌다는 걸 떠올리고는 뻔한 동선을 따라왔는데, 역시나 흑견과 윈디드가 보였다.
‘…그런데 하이프까지 있을 줄이야.’
윈디드의 몸에 가려져서 몰랐다.
태호는 노골적인 하이프의 시선에 설마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형.”
은호의 묵직한 부름에 태호는 그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알았다.
“…역시, 그 하이프의 가족이었구나.”
태호는 자신에 쏠린 여러 시선에 얼굴이 따가웠지만, 걸어왔다.
“알고… 있었어요?”
“아니. 솔직히 긴가민가하기만 했지. 그런데 이제 확실하네. 저번에 너한테 말한 거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넉 달 전에 하이프가 자발적으로 사진에 찍혔다고 했잖아?”
―그건 아무도 몰라. 한 넉 달 전? 은호 씨를 만나기 전이지. 그때, 환수 연구소로 갑자기 걸어왔으니까.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몰라도 가만히 있었어. 내가 사진 하나를 찍으니까, 그대로 가더라고. 진짜 묘한 경험이었어.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은호는 천천히 태호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하이프였네.”
태호는 하이프 앞에 앉았다.
울고 있던 하이프가 바로 저 하이프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은호는 사정을 알고 싶어 물었다.
“이지혜 국장이 오기 전에 환수 관리국하고 마찰도 있었고, 가을 씨도 아직 적응 중일 때 벌어진 일이었어. …환수 밀렵꾼의 출입을 허락하고 말았거든.”
태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릎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내 무거웠던 그 마음을 이제야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어떤 변명도 소용없다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제야 사과해서 미안합니다. 그 일은 내 실수로 벌어진 일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태호는 하이프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이프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태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았다.
사과하고 있었다.
인간이 사과해주었다.
“그때, 저 인간에게 나를… 기억하라고, 그렇게 찾아갔어.”
하이프는 멍한 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실수든 뭐든 이곳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지키지도 못할 거였다면 왜 데려갔냐고 원망하려고 했는데, …하지 못했어.”
하이프는 천천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가 내려갔고, 푸른 불꽃이 얼굴까지 올라왔다.
“저 인간은… 나를 너무도 반갑게 보고 있었어.”
저렇게 자신을 좋아하는 인간이 일부러 그랬다는 생각을 조금도 할 수 없었다.
“…나, 사실은 그 인간한테 사과받고 싶었어. 가짜라도 좋으니까, 미안했다고,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어.”
―어쩌라는 거니? 걸어두기에 적합해서 걸어뒀을 뿐인데.
그 인간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꿨다는 걸 알았다.
갈기갈기 찢긴 이 마음은 은호가 다시 하나씩 모아주었지만, 영원히 아물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알았다.
“나한테 사과해줘서.”
그런데 드디어 들었다.
비록 다른 언어라도 그 진심마저 느껴졌다.
하이프는 손을 내리고 태호를 보았다.
미안함이 담긴 그 눈을 보자 하이프는 비로소 진심으로 웃었다.
“……정말 고마워.”
그 인간이 아니더라도, 인간에게 사과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은호는 하이프를 다시금 안아주었다.
나율이 아니더라도 이 사과가 하이프의 다친 마음을 토닥거려줬으면 했다.
밀려오는 온기에 하이프는 손을 뻗어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잘됐다. 그렇지?”
은호의 물음에 하이프는 은호의 품에 얼굴을 기댔다.
―…살아.
은호가 꺼냈던 그 말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살아.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하이프는 더는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마워, 은호.”
은호가 붙잡아줬기에, 살라고 말해줬기에 이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날 구해준 건 너야.”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담았다.
인간에게 상처받았지만, 인간이 자신을 구해줬다.
온몸을 던져서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했다.
“나의 왕도 영원히 너야.”
약속이 깨졌기에, 자신에게 새 생명을 준 은호였기에 이 말은 당연했다.
“…그러니까, 살아볼게.”
하이프는 은호에게 다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밀려오는 은호의 기쁨에 하이프는 덩달아 환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은호를 말리기 위해 정신을 건드렸을 때, 우연히 보고 말았다.
그와 어울리지 않은 휘몰아치는 차디찬 겨울을.
‘…상처받은 너의 마음 역시 어서 낫기를.’
하이프는 처음으로 인간을 위해 빌어보았다.
* * *
햇살이 무덤 위로 내리쬈다.
어여쁜 꽃과 나무가 무덤을 쓸쓸하지 않게 해주었다.
저 꽃도, 나무도, 모두 은호가 준 것이었다.
하이프는 무덤 위에 남편이 줬던 방울을 내려놓았다.
한참이나 무덤을 바라보았다.
일렁거리는 눈이 이내 감겼다.
“다음에는 더 활짝 웃으며 올게.”
하이프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은호에게 배운 행동이었다.
“약속해.”
하이프는 그대로 뒤를 돌아 윈디드에게 걸어갔다.
가볍고, 홀가분한 걸음걸이가 이어졌다.
딸랑. 딸랑.
방울이 부드럽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