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3화(163/302)
163화. 라비는 은호가 궁금해졌다(컨셉 아트)
라비는 눈앞에 인간을 빤히 보았다.
어떤 힘인지 몰라도, 힘이 있는 인간이었다.
털이 반사적으로 곤두서는 게 아주 강했다.
‘…이길 수 없어.’
라비는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만 났다.
‘그래서 레비아탐도, 폭시도, 일렉트도 보이지 않는 거야!’
은호의 병실은 언제나 북적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해당 아파트에 환수 밀렵꾼들이 있었고, 그놈들은 간부라 불리는 이들이었…….”
지혜는 말을 하다 말고 라비의 시선에 입꼬리가 잠깐 떨렸다.
저렇게 귀엽게 생긴 환수가 바라보니,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꽉 찰 정도였다.
“흑묘성이 왜 저를 빤히 보고 있습니까?”
“왜 그래, 사고뭉치?”
은호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에 웅크려 있던 라비의 코를 건드렸다.
라비가 얼굴을 좌우로 움직인 뒤에 강하게 물었다.
“은호는 저 인간을 이길 수 있더냐?”
“…어?”
“은호는 저 인간을 이길 수 있지 않더냐?”
“갑자기?”
“은호는 강한 거 알고 있다!”
라비는 은호에게 매달려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지혜를 더욱더 빤히 보았다.
은호가 라비를 들어서는 굳은 다짐한 얼굴을 마주했다.
“갑자기 사고뭉치가 왜 그런 말을 할까?”
“저 인간 주변에 나오는 힘 때문이다.”
대답은 지혜 옆쪽에 넓은 장소를 다 차지한 흑견에게서 들려왔다.
“힘? 어떤 힘을 말하는 거야?”
은호는 그 말에 지혜를 보았다.
그녀는 살짝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마 제 주변에 흐르는 힘 때문일 겁니다.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거죠. 환수의 세계는 사람들보다 힘으로 지배되는 세계잖습니까.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익숙합니다.”
지혜는 말과 달리 아쉬움이 담긴 시선으로 라비를 보았다.
아직 새끼라 그 본능이 더 큰 모양이었다.
“…저한테는 안 그러는데요?”
“은호는 싸우는 상대가 아니다.”
라비는 은호에게 대답하고는 팔에 매달렸다.
킁킁.
은호한테는 늘 좋은 냄새만 났다.
꽃 냄새 같았고, 바람 냄새 같았고, 나무 냄새 같고, 또 숲 냄새 같았다.
‘아! 비 냄새도 난다!’
라비는 맡을수록 달라지는 냄새에 신이 나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괜찮다고?”
“그렇다! 은호는 싸우는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은호는 왜 맡을 때마다 냄새가 바뀌더냐?”
“그건 잘 모르겠…….”
은호는 말을 멈추고는 지혜를 보았다.
바쁜 지혜가 시간을 빼내고 이렇게 와주었는데.
아직 태호도 듣지 못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했다.
“사고뭉치. 나중에 다 대답해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줄래?”
“알겠느니라. 나는 얌전히 기다릴 수 있다.”
은호가 라비를 내리자 라비는 얼른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라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혜를 보았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습니다. 저는, 이 힘 때문에 좀처럼 가까이할 수가 없으니까요.”
은호는 바로 뒤로 있는 흑견을 가리켰다.
“멍멍이 형님은 얌전한데요?”
“내가 저 꼬맹이와 같다고 생각하나?”
흑견이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라비가 곁눈질로 흑견을 보았다.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하자 시선을 절로 내렸다.
“내가 봤을 땐 똑같은데.”
은호의 대답에 라비는 키득거렸다.
은호가 똑같다고 하니, 라비는 다시 시선을 돌려 흑견을 보았다.
불만이 가득 담긴 흑견의 표정을 보자 신기하게도 조금 전보다 무섭지 않았다.
‘은호는 신기하다.’
라비는 은호에게 궁금한 게 점점 더 많이 생겨났다.
“흑견은 강한 환수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죄이기도 하죠.”
인간이 직접 나서 멸종까지 시킨 유일한 환수이기도 했다.
몇 번이나, 계속 잘못을 고해야 하는 환수이기도 했다.
흑견을 보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지혜는 그 감정을 삼키며 조금 전 보고를 이어갔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서은호 씨가 쓰러지고 난 뒤, 해당 아파트에 거주 중인 모든 환수 밀렵꾼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가 간부였습니다.”
“그럼, 하나율이 덫으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이용 중이던 그 6곳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 진행 중이겠죠? 한 번에 털기엔 너무 넓긴 해요.”
“아닙니다. 지금 체포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요? 갑자기요?”
“오기 전 있었던 볼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지혜는 손가락을 들어 다 마신 일회용 커피잔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커피잔이 짓눌리자 라비가 은호를 꼭 쥐었다.
“건물을 하나씩 짓눌러줬습니다.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요.”
“하, 한 번에요?”
“한 번에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혜의 대답에 은호는 서율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율이 슬쩍 손가락만 내밀어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저 손가락에도 보였다.
은호는 숨을 들이마시며 지혜를 향해 웃었다.
애써 웃는 게 보여 지혜는 해명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서율아. 너도 서은호 씨가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되잖아?”
“당연하죠!”
서율의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국장님께서 친히 건물을 짓눌렀지만, 안에 든 자료는 무사합니다. 목숨을 걸고 자료를 빼내 오는 전담팀이 따로 있습니다!”
“전담팀이 있어요?”
은호의 물음에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론입니다. 이번 임무를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제가 공격의 주축이 된 건 맞지만, 거리를 조절에 공격을 증폭시켜주는 힘과 시야가 되어주는 힘 등 수많은 대원이 합심해 해낸 일입니다.”
지혜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환수 관리국은 이만큼 강하다는 걸 떳떳하게 말해도 될 정도가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솔직히 피곤하긴 합니다. 제 표정이 조금 어둡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아니에요. 솔직히 이렇게… 달려와 전달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서은호 씨가 하나율을 잡게 해줬으니까요.”
“…그때, 제가 괜히 방해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이프를 도와주겠다는 생각 하나로 지혜와 협업했다.
하지만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서은호 씨.”
“네.”
“다음에도 같이 가시죠.”
“정말요?”
역시 국장이라는 자리를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태호도 그렇고 지혜도 마음이 참 넓었다.
“…눈이 돌아가시니, 말릴 사람도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에 서율이 웃자 은호가 그를 쳐다보았다.
서율은 입술을 다문 채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나서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서은호 씨와 함께 나선 일은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지혜는 웃었지만, 은호는 웃지 못했다.
“소장님께서 왜 제게 그렇게 서은호 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겠습니다.”
“아니, 국장님. 뭔가… 오해가 생긴 게 아닐까 싶은데요?”
“아뇨. 오해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저번에 입은 부상을 보면 꽤 심해 보였는데, 괜찮은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기침을 몇 번 했는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다, 국장님 덕이죠.”
은호의 말에 지혜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빠른 쾌차 바라겠습니다.”
“너무 붙잡아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여기 오니까, 정말 좋습니다. 환수가, 정말 많네요.”
지혜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올 때, 환수들이 자신을 피했지만, 은호 곁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열심히 뛰어노는 게 보였다.
서로 다른 종임에도 어울리는 데 문제가 없었다.
힘으로 위계를 나눈다는 상식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모습을 눈에다 담은 것만으로도 지혜는 충분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들 행복해 보입니다. 그래도 많은 게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잘하고 계세요.”
툭 치고 들어 온 은호의 말에 지혜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요.”
은호가 따스하게 웃자 지혜는 밀려오는 감정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였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환수 관리국이 바뀌었음에도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암담했을지 몰랐다.
국장이라는 이 자리에 선 이상, 늘 굳건해야 했다.
티를 내서도 안 되고, 티를 낼 여지를 줘서도 안 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불안이란, 언제나 파도처럼 밀려왔다.
은호는 자신의 그 파도를 봤을까.
고개를 올린 지혜는 환하게 웃었다.
그대로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서율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은호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라비의 반짝거리는 시선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은호는 어떻게 모두한테 미소를 짓게 만들 수 있더냐?”
“응?”
“은호를 보면 다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게 계속 신기했느니라!”
라비는 물어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에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나한테 웃어주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은호는 엄청나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데?”
은호는 키득거렸다.
오늘따라 라비의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꼬리가 가만히 있질 못했다.
은호는 슬쩍 흑견을 보자 길게 하품하고 있었다.
아예 들을 생각이 없는지, 귀가 머리에 붙어 있었다.
‘치사하긴.’
“이번에 은호는 아팠느니라.”
라비의 말에 은호는 찔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흑견이 귀를 쫑긋 세우자 은호는 다급히 흑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대답이 만족스러웠을까 살펴보던 차, 밀려드는 라비의 물음은 꽤 무거워 은호는 라비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픈 게 싫다. 은호는 아픈 걸 아는데도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더냐?”
은호가 이렇게 다친 건 처음 보기에 라비는 뭔가 가슴이 답답했다.
폭시하고, 레비아탐하고, 일렉트는 그 대답을 아는 것 같은데, 뭔가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도 알고 싶었다.
은호는 꽤 많이 들은 질문에 늘 하던 말을 꺼내려다 말고 라비가 시무룩 하자 도리어 물었다.
“왜 이렇게 시무룩해, 사고뭉치?”
“나는 은호가 착한 걸 알고 있느니라.”
라비는 꼬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에 새겨진 별이 둥글게 움직였다.
“그런데 은호는 너무 많이, 많이 우리만 신경 쓰느니라.”
라비는 말하면서도 이게 맞나 다시 생각했다.
뭔가 어려웠다.
자신이 꺼내는 말 중에 제일 어려웠다.
솔직히 이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은호는 은호보다 우리가 더 소중하더냐?”
라비는 물어본 뒤, 슬쩍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여전히 다정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나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아?”
“맞느니라!”
“그래서 속상했어?”
“응! 속상했다!”
라비는 그제야 속이 시원한 표정을 했다.
자신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그건 미안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은호는 라비의 볼에 손을 올렸다.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게 마음이 쓰였다.
“…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은호는 라비의 앞발을 조심스레 쥐었다.
라비는 은호의 손길을 따라 가슴에 앞발을 올렸다.
두근두근.
그 소리를 따라 라비의 귀가 꿈틀거렸다.
“너희는 내 심장이야.”
“나는 심장이 아니다! 나는 라비다!”
라비가 깜짝 놀라며 앞발을 보았다.
은호가 키득키득 웃으며 라비를 안았다.
“너희가 내 전부라는 거지.”
은호가 꺼내는 말에 라비는 덩달아 배시시 웃었다.
뭔지 몰라도 은호에게 자신이 아주 소중하다는 건 확실히 느꼈다.
“알았다! 은호는 이 몸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은호가 대답하자 라비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나도 은호가 좋다!”
라비는 은호를 안아주었다.
“은호는 밥도 맛있게 준다! 잠도 재워준다! 혼내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나는 은호가 좋다!”
라비가 내뱉는 말에 은호는 눈을 아주 살짝 찌푸렸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덩달아 안았다.
“그러면 은호는 뭘 좋아하더냐?”
“너희를 좋아하지.”
히히힛.
라비가 크게 웃자 작은 이빨이 다 보였다.
“그러면 또 뭘 좋아하더냐?”
“너희랑 함께 노닥거리는 거? 고기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느니라! 은호랑 나는 좋아하는 게 같다!”
“그리고 청소랑 책을 읽는…….”
은호가 말을 잇기 전에 라비가 다급히 일어났다.
은호의 놀란 눈이 라비를 채 따라가기 전에 빨리 병실 밖으로 달렸다.
“이, 이 몸은 가겠다!”
라비는 문틀에 앞발만 보여줬다.
젤리 같은 말랑한 발바닥이 흔들렸다.
“……?”
은호는 라비가 도망치듯 사라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도 멍했다.
“…이거 사고뭉치가 청소 때문에 그런 거지? 청소 때문에 도망친 거 맞지?”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등을 돌리고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는 흑견의 모습에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렸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기어코 침대에서 내려왔다.
발소리에 맞춰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에이, 라비는 아이잖아? 멍멍이 형님은 어른이고.”
은호는 흑견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하지만 흑견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이 질투쟁이를 어쩌면 좋을까.
“멍멍이 형님. 내가 멍멍이 형님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잖아?”
흑견의 꼬리가 아주 살짝 흔들렸다.
“아니, 이 정도가 됐으면 알아줘야지. 내 마음의 첫 번째는 늘 멍멍이 형님이야.”
은호가 옆에 기대며 말하자 흑견의 꼬리가 크게 흔들렸다.
여전히 고개를 돌린 상태였지만, 은호는 흑견이 기뻐한다는 걸 알았기에 키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