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5화(165/302)
165화. 그건 환상이었을까?(2)
* * *
“…혹시, 만약에 이번 일에 환수가 개입됐다면 어떤 환수인지 예상되는 정보가 있나요?”
은호는 운전하는 가을을 바라보았다.
“정보는… 없습니다. 그래서 서은호 씨에게 제안을 한 겁니다.”
가을은 운전대에 손을 쥐었다.
이번 일에 은호가 함께하길 제안한 건 자신의 불안함 때문이었다.
늘 완벽해야 하는 이 자리가 다시금 흔들릴까 두려웠다.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가을이 무언가 불편한 표정을 짓자 은호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정보가 없어도 괜찮아요.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니까요.”
“저는 솔직히 거절하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요?”
“저는 환수가 아니니까요.”
가을의 대답에 은호는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사람은 싫어한다.
그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인정하기가 어려워 멋쩍은 물음부터 던졌다.
“제가 환수를 좀 많이 좋아해서요. 티가… 났나요?”
“났습니다. 혹시 제 말에 상처받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좀 돌려 말하는 걸 잘 못합니다.”
“아뇨. 저는 그런 사람이 더 좋아요.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거짓말을 덜 할 테니까요? 그리고… 태호 형이랑 가을 씨는 아니에요.”
가을은 뭐가 아니라고 그러는지 섣불리 물어보지 못했다.
태호가 느낀 그 벽이라면 자신도 느꼈으니까.
“절 이용한 적이 없잖아요?”
“지금도 이용하고 있잖습니까.”
“아뇨. 이건 부탁이잖아요. 무엇보다 가을 씨는 절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주 많이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애초에 서은호 씨를 붙잡은 건 우리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 붙잡고 있고요.”
은호는 더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지고 있는 힘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함이었고.
자신들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은호를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저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연구소를 너무 좋아해요.”
은호는 괜히 민망해 더 크게 웃었다.
하지만 꺼낸 말은 진심이었다.
그저 허울이 아니라 진짜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게 점점 느껴졌다.
외면하기에는 그 감정이 너무도 커졌다.
“…정말이십니까?”
때마침 신호가 빨간불이 되어 가을은 잠깐 은호를 바라보았다.
감동이 묻어났다.
그녀답지 않게 크게 드러난 감정에도 은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부드럽게 퍼진 은호의 미소를 따라 가을 역시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저도 연구소를 좋아합니다.”
가을은 다시금 앞을 본 뒤, 목소리를 낮추며 덩달아 입을 열었다.
“연구소는 박사님이 처음부터 갈고닦은 곳입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형이 잘나가서 아마 더 그랬을지도 몰라요? 더 많은 분야에 활약할 수 있는데 환수에 매달렸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환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훌륭하신 선택을 한 거죠.”
가을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드러났다.
“형한테 그렇게 말해주면 진짜 기뻐할 텐데요.”
“참 훌륭하신 분인데, 다 좋은데,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뺀질거리십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환수를 보러 가겠다고 며칠이나 도망친 적도 있고, 공직자들의 공식 회의 자리에서 환수를 욕했다고 욱한 적도 있고, 시장에 내놓으면 고스란히 환수 연구소의 개발비가 될 발명한 물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습니다.”
가을의 언성이 점점 올라갔고,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형도 사람이긴 하네요.”
“맞습니다. 그러니 저는 서은호 씨만 믿겠습니다.”
은호가 환수를 데려온 뒤, 태호의 방랑벽이 고쳐졌으니까.
그것만으로 아주 컸다.
가을은 파란불이 된 신호를 보며 차를 움직였다.
* * *
은호는 묘하게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이상한데?’
이내 가을을 바라보았다.
“여기입니다. 이곳에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위치 추적이 안 될 리가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되질 않습니다. 꼭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네요.”
가을은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다 묘하게 날이 선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표현을 못 하겠지만, 아주 꺼려져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저부터 내릴게요.”
은호는 차에서 내렸다.
아직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도시 속이라는 건 분명했다.
은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후 9시 25분.
‘이상하네. 왜 이렇게 적막한 기분이지?’
도시에서 9시라면 이제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밤이라는 걸 알아도 유독 더 어두웠고, 가게에 불도 켜져 있음에도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인간.”
은호는 갑자기 들려오는 흑견의 목소리에 놀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여기는 도시였다.
“갑자기 왜…….”
은호는 말을 멈추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멍멍이 형님.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가게는 현재 영업 중이었다.
저 너머 아파트에도 불이 들어왔다.
이런 상태인데 아무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꼭 다른 세상으로 걸어온 느낌이었다.
“인간. 지금부터 한 걸음도 내디디지 마라.”
흑견이 모습을 드러내자 은호는 다급히 가을에게 말했다.
“가을 씨. 잠깐만 멈춰봐요.”
“…네?”
“뭔가 이상한가 봐요.”
가을은 내리려다 말고 흑견의 등장에 그만뒀다.
무슨 일이 생긴 건 틀림없었다.
“환수입니까?”
가을의 물음에도, 은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잘 모르겠네요.”
초능력자와 환수.
이 차이는 종이 한 장과도 같을 테니까.
흑견은 주변으로 어둠을 일으켰고,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자신의 힘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동시에 싸늘함이 밀려왔다.
‘…이 힘은 뭐지?’
흑견은 묘한 느낌에 주변을 바라보았다.
앞발을 내밀어보았다.
이곳 주변에 아주 넓게 퍼진 힘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힘 자체가 가진 공격성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둠에게 매달려 같이 놀자는 이상한 힘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톡톡.
흑견이 이래저래 바라볼 때, 은호는 손가락을 두드리는 힘에 고개를 내렸다.
위그드라실이 손을 흔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팔을 뻗어 은호의 손을 가리켰다.
“손?”
은호의 물음에 위그드라실은 반짝반짝하다는 걸 표현하려는지 손바닥을 흔들었다.
“아, 그 힘을 써보라는 거야?”
은호가 묻자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 아무도 없으니까.’
주변을 한 번 살펴본 뒤에 은호가 교감의 힘을 퍼트렸다.
그 순간, 흑견은 주변에 깃든 알 수 없는 힘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왜 사라졌지?’
은호가 가진 힘은 식물을 성장시키는 힘이었다. 즉, 생명을 촉진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저 힘에 놀라 도망쳤고, 비슷한 성질을 지닌 자신의 어둠을 좋아했다. 이런 힘을 뭐라고 해야겠는가.
‘…죽음이다.’
이곳에 죽음과 관련된 힘이 깔려 있었다.
애초에 이런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 힘에 휩쓸리지 않은 건 인간 때문인가?’
흑견이 은호를 보았고, 그는 흑견의 시선에 괜히 주변을 바라보다 발자국 같은 걸 발견했다.
발자국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흐릿한 연기처럼 남아 있었다.
“멍멍이 형님, 발자국이 여기 원래 있었어?”
“없었다.”
“그렇지? 위그드라실! 우리가 해냈는데?”
은호가 손가락을 내밀자 위그드라실은 팔을 뻗었다.
착.
작은 소리가 났다.
“가을 씨한테 이제 차에서 내려도 된다고 말해도 되겠지?”
“인간.”
“응?”
“그 힘, 계속 유지할 수 있나?”
“유지야 쭉 할 수 있지.”
은호는 두 손에 맺힌 빛을 보여주었다.
손을 흔들자 반짝거리며 빛깔이 흐트러졌다.
“보이지? 이렇게 해도 사라지지 않아.”
“그러면 내려도 된다. 인간 옆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한 상황이다.”
“멍멍이 형님. 이번 일, 환수가 그런 거지?”
“그럴지도 모른다.”
애매한 대답이 흘러왔다.
“멍멍이 형님도 잘 모르겠어?”
“맞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럼 더더욱 환수겠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존재의 힘은 도시 전체를 삼킬 만큼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정도로 넓다고?”
은호가 놀라자 가을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가을 씨. 혹시 무서운 거 좋아하세요?”
“아뇨, 질색합니다.”
딱 자른 말에 은호는 장난기를 드러냈다.
“지금 나오면 공포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여기 있겠습니다.”
“멍멍이 형님이 나오는 게 좋다고 하는데요?”
은호의 말에 가을은 잠깐 의심이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장난일까, 진심일까.
“정말이에요. 연구원분과 연락이 안 되는 이유가 이곳에 넓게 펴진 힘 때문이래요.”
“그게 어떤 힘입니까? 박사님께 물어보겠습니다.”
가을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태호에게 연락했지만, 통화가 가는 소리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름이 일어났다.
“……연락이 안 됩니다.”
“네?”
은호는 그 말에 휴대전화를 보다 말고 멈칫거렸다.
오후 9시 25분.
시간이 조금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이래저래 행동하고 말도 해서 최소 5분은 지났어야 하는데.
꼭 뭔가에 홀린 느낌이었다.
“가을 씨. 일단, 내리실래요?”
가을은 그 말에 숨을 한 번 참은 뒤, 자리에서 내렸다.
“지금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긴 하네요. 시간도 안 움직이고요.”
“…환각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긴, 그럴 수 있죠.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움직이죠.”
은호는 손가락으로 발자국을 가리켰다.
가을은 발자국을 보며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환수의 발자국입니까? 사람이라기에는 모양이 좀 이상합니다.”
“그걸 알아봐야죠.”
은호는 신이 난 얼굴로 앞으로 걸어갔다.
“…안 무서우십니까?”
“무섭긴요. 오히려 더 설레는데요? …아, 물론, 이 사태도 빨리 해결해야 하고요.”
은호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버린 거리를 가리켰다.
낭만이 있었다.
* * *
발자국을 따라가는 동안 은호 혼자 쫑알거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을은 다시금 은호의 말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버렸다.
휴대전화로 전등을 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주변이 어두워서 그럴까.
어쩌면 자신이 무섭지 않도록 일부러 더 많이 말을 하는 걸지도 몰랐다.
“은호 씨.”
“네?”
“혹시 박사님의 숨겨진 동생입니까?”
태호도 저렇게 말이 많다고 생각하니 문득 묻고 싶었다.
“제가요? 정말요?”
은호가 기뻐하자 가을은 불만이 담긴 시선을 했다.
이게 아닌데.
이내 다른 말을 꺼냈다.
“환수가 나타나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겁니다.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른 것뿐이니까요. 가을 씨가 환수를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 엄청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스스스스.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호는 말과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은호는 혹시 몰라 피를 뽑는 기계로 손등을 찔렀다.
가을의 눈이 커졌고, 은호는 그녀의 표정 변화를 모르는 상태로 가방에서 씨앗을 꺼냈다.
씨앗에 피를 떨어트리고, 바닥에 놓으니 금세 나무가 자라났다.
나무는 여러 팔을 뻗으며 빛을 품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빛이 하나씩 늘어나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러났다.
흑견 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보였고, 가을은 마른침을 삼켰다.
“…환수입니다.”
갑작스러운 빛에 해당 환수는 고개를 돌렸다.
흑견이 찬란한 어둠 같은 느낌이라면 저 환수는 그야말로 어둠 그 자체였다.
호랑이를 닮은 환수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날을 세운 까만 눈동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고, 머리 위에 양쪽으로 손을 뻗은 듯 굵은 뿔이 달려 있었다.
그 뿔 위에는 금빛으로 된 그믐달이 떠 있었지만, 빛나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버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빛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을 가득 찌푸린 채 목소리를 냈다.
“…여길 어떻게 찾아왔지?”
앞발을 내밀며 눈동자를 굴렸다.
조용했고, 동시에 싸한 느낌이 번져나갔다.
하지만 은호는 손에 깃든 힘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 빛으로 찾아왔어.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 친구야.”
환한 은호의 말에 환수는 눈을 더욱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