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6화(166/302)
166화. 그건 환상이었을까?(3)
은호가 손마저 흔들자 흑견이 앞으로 걸어와 해당 환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조금 전부터 계속 느끼던 싸한 느낌은 저 환수에게서 흘러나오는 게 맞았다.
찌푸려진 환수의 눈 사이로 당황함이 보였다.
환수는 눈동자를 움직이며 은호뿐만 아니라 가을 역시 마주했다.
가을은 입을 살짝 벌린 채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환수를 눈에 담았다.
밤보다 더 어두운, 어둠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가을은 다른 그 어떤 환수보다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에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몰라도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떻게 찾아왔는지 몰라도 나에게 오지 마.”
호랑이를 닮은 환수는 딱 잘라 말했고, 흑견 역시 동의하며 말을 꺼냈다.
“저 존재 말대로 가까이하지 마라. 주변에 흐르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흑견은 그 힘이 자신에게만 달라붙도록 의도적으로 어둠을 흘리던 상태였다.
지금은 은호가 퍼트리는 힘 때문에 주변으로 오지 않는 모양이지만, 저 힘이 달려든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은호는 안경을 껴 맹금류의 눈을 발동했다.
우선 저 환수가 누구인지부터 알고자 했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발견된 환수지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임시 이름 ‘니르바나’를 불러옵니다.》
‘발견됐는데, 기록이 안 됐다고?’
은호는 힐끔 니르바나라는 이름을 가진 환수를 바라보았다.
《.》
《수많은 죽음에서 탄생한 존재입니다. 죽음과 가까운 존재이기에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해도 전혀 다른 공간 속에 있기에 볼 수도 없고, 눈치채지도 못합니다. 만약에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그곳이 다른 공간 속이라는 걸 인지하셔야 합니다.》
《니르바나 주변에 죽음과 관련된 힘이 흐릅니다. 이 힘으로 진정 죽음으로 향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이들을 인도합니다. *존재하는 세계가 다릅니다. 니르바나를 보게 된다면 나가는 길을 알려달라 부탁하십시오.*》
‘……어?’
은호는 마지막 글자를 읽고는 그대로 멈췄다.
니르바나를 만난 순간, 자신들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왔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곳은 죽음과 삶의 경계 같은 곳일까.
아니, 애초에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또 내 힘이 어그러진 모양이지? 나가는 길을 알려줄게.”
니르바나가 건조함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대수롭지 않은 저 모습에 은호는 이런 일이 꽤 많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괜찮아요, 가을 씨?”
은호는 바로 가을을 살폈다.
지금 가장 당황스러울 사람은 가을이었다.
가을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은호는 니르바나에게 물었다.
“힘이 어그러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는 원래 나를 봐서도 안 되고, 이곳으로 올 수도 없어.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니까. 그런데 가끔 이럴 때가 있어. 내 힘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거지.”
니르바나의 설명을 들은 은호는 이 낯섦이 신기했다.
한 마디로 니르바나는 원래라면 볼 수도 없는, 엄청 대단한 환수가 아닌가.
니르바나는 은호의 눈빛에 미간을 꿈틀거렸다.
늘 두려움으로 자신을 보던 다른 인간의 눈과 달랐다.
왜 저렇게 호기심에 찬 감정으로 보는지 몰랐다.
“그럼, 친구야. 혹시 왕도 네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어?”
“물론이지. 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았고, 내가 살아갈 수 있게 이곳으로 안내한 분이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할 법하나, 니르바나는 무덤덤한 표정을 했다.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대답하자 은호는 입이 간지러웠다.
이것도 물어봐도 되나 싶던 차, 니르바나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시선을 내렸다.
무언가를 쥐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앞발 사이로 튀어나온 건 시들어버린 꽃이었다.
“친구가 들고 있는 꽃이 시든 것 같은데. 혹시 우리 때문이야?”
“아니. 처음부터 죽었던 거야. 내가 만지는 무엇이든 죽어가니까. 그러니 오지 말라고 한 거야.”
이렇게 말하면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니르바나가 저쪽으로 가라고 앞발을 들려던 차 물음이 또 들려왔다.
“그 꽃, 누구한테 주려고 한 거야?”
“모두한테. 대부분 꽃을 좋아하더라고.”
니르바나의 대답에 은호는 조금 전 보았던 정보를 떠올렸다.
―이 힘으로 진정 죽음으로 향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이들을 인도합니다.
“그럼, 더 예쁜 꽃을 주면 더 많이 좋아하지 않을까?”
은호가 웃으며 묻자 니르바나는 몸을 돌리려다 말고 귀를 의심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무덤덤한 눈빛에 잠깐 의아함이라는 감정이 비쳤다.
“여기 보여?”
은호는 자신이 키운, 빛을 품은 꽃을 가리켰다.
그제야 니르바나는 꽃을 눈으로 담았다.
반짝거리는 게 그저 저 인간이 내는 빛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한 거야?”
니르바나는 감정을 내보였다.
여기는 다른 공간이었다.
저들이 머무는 ‘현실’이라는 공간과 달랐다.
어둡고, 어두운 이 공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죽어버린 꽃을 붙잡고 돌아다니며 죽은 자들을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는 일뿐이었다.
“이건, 내가 키운 꽃이야.”
은호는 나무에게 손을 뻗자 가지가 뻗어와 금세 자라난 꽃을 그의 손바닥에 떨어트렸다.
한 송이를 가을에게 넘겼다.
“가을 씨, 빛을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가을은 꽃을 쥐었다.
꽃이 정말로 따뜻해 날뛰는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마저 느꼈다.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다.
환수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여러 환수를 보았지만, 이번 환수는 달랐다.
‘어떤 환수인지, 물어봐야 하나.’
적어도 은호는 저 환수가 어떤 환수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친구 주변에 죽음과 관련된 힘이 흘러서 다른 공간 속에서 사는데, 아무래도 그 힘의 영향으로 우리가 이쪽으로 온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연구원들 역시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자신들 역시 저 환수의 힘으로 이곳으로 왔으니 연락이 끊어진 다른 연구원들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맞아요. 꽤 가능성이 큰 편이죠.”
가을의 주장에 은호 역시 동의했다.
갑자기 연결이 끊어진 것도 모자라 가을이 가진 힘으로도 추적에 실패했다면 이곳에 삼켜졌을 가능성이 몹시 컸다.
은호는 일단 꽃을 주려 니르바나에게 가려다 말고 멈췄다.
옆이 따가워 고개를 돌리니 흑견이 빤히 보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런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럼, 이건 멍멍이 형님이 전해줄래?”
은호가 손을 뻗자 흑견은 어둠으로 꽃을 집어서는 니르바나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그래.”
니르바나는 어둠이 내미는 꽃을 보며 앞발을 뻗다 주저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데, 묘한 기대감이 휩쓸었다.
잠깐, 니르바나의 시선이 흑견에게 닿았다.
“내가 네 힘에 닿아도 되겠어?”
“이미 닿고 있다는 걸 모르는가?”
흑견은 주변을 둘러싼 어둠을 움직이자, 니르바나의 몸을 스치고 흑견에게 몰렸다.
니르바나는 갑자기 밝아진 자신의 주변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몸에 흐르는 이 힘 때문에 자신의 주변은 늘 어두웠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 어둠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넌 내 힘에 영향이 없어?”
니르바나는 흑견에게 묻다 말고 이내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 시선을 바꾸자 흑견의 샛노란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이거나 받거라.”
그 이상 입을 놀리지 말라는 듯 니르바나에게 다가온 어둠은 꽤 난폭했다.
니르바나 역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멍멍이 형님?”
은호는 기묘한 분위기에 입을 열었다.
니르바나가 왜 갑자기 흑견의 그림자 쪽으로 시선을 돌린 건지 몰랐고, 흑견은 왜 그 시선에 화를 내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다.”
은호는 대답을 들으며 흑견을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은호는 더는 묻지 않고 꽃을 가리켰다.
“친구야. 그 꽃은 어떤가 쥐어봐.”
니르바나는 저 인간의 기대에 떠밀리듯 꽃을 쥐었다.
어차피 시들 텐데.
기대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꽃이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그리고 여전히 빛이 났다.
“…….”
니르바나는 다시금 꽃을 살며시 쥐었다.
여전히 따뜻했고, 눈부신 빛을 유지했다.
‘……꽃이, 시들지 않았어?’
몇 번이나 봐도, 쥐고 있어도 꽃은 시들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당연한 사실을 도둑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니르바나는 밀려오는 의문을 더는 막지 못했다.
만져도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인간이라니.
“잘했어, 친구야!”
은호는 나무를 보며 칭찬했다.
이런 힘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위그드라실이 도중에 개입했어도 너무 기특했다.
은호가 손바닥을 펼치자 나무는 가지를 뻗었다.
착.
마주치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어느새 어깨 위로 기어오른 위그드라실이 당당하게 두 팔을 위로 뻗었다.
은호는 위그드라실을 쓰다듬으며 니르바나를 보았다.
어딜 봐도 충격에 휩싸인 얼굴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도 그런데, 저 친구는 오죽할까.
“친구야. 내가 씨앗을 많이 가지고 있어. 더 다양한 꽃이 있으면 네가 말한 그들도 좋아하겠지?”
니르바나가 원해서든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든 죽음을 인도하는데, 시든 꽃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이고, 꽃이 니르바나가 가진 힘의 영향도 받지 않는 모양이니 활짝 핀 꽃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너는, 인간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니르바나는 한 걸음 다가왔고, 은호는 눈동자를 굴리다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설명을 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도 지금 되게 신기해하던 참이야.”
“그럼, 어떻게 내 힘을 억누를 수가 있지?”
다시금 은호에게 묻는 니르바나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간절함이 깃들었다.
그것도 꽤 오래 묵은 간절함이었다.
은호는 최근에도 그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꿈지기 단아가 늘 짓는 표정에 가까웠다.
단아 주변에 잠을 재우는 힘이 흘렀다.
원치 않게 새어 나오는 힘이었고, 해당 종이 가진 특성이었다.
니르바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호는 본의 아니게 니르바나가 아주 깊게 눌러둔 기대감을 깨워버린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미안해.”
은호는 니르바나에게 사과했다.
자신이 아무리 드루이드라고 해도 종의 특성을 바꿀 힘은 없었다.
“…아니야.”
갑자기 꺼낸 은호의 사과가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니르바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작스러웠던 건 나였어.”
니르바나는 다시 무덤덤한 감정을 얼굴에 덮었다.
가끔 솟구치는 불안함과 격한 감정에 저항하는 건 이미 다 타협을 본 일이었다.
자신은 이곳을 나갈 수 없고, 나가서도 안 되며, 바라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방금 말은 신경 쓰지 마. 나한테 시들지 않는 꽃이 너무 신기해서 물어본 거니까.”
그저 발가락으로 잔잔한 파도가 밀려온 정도였다.
이곳으로 처음 자신을 데려온 건 왕이었다.
‘…아니, 두 번째지.’
원래 있던 세계가 바뀌었으니까.
―이번에도 넓은 세계를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죽음을 뒤덮고 태어났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힘을 벗겨내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저 인간이 자신의 힘을 억눌렀기에 기대가 생겼다.
“어쩌면 나와 상극이라서 그럴지도 몰라. 나는 무엇이든 자라게 할 수 있으니까.”
은호가 말했다.
니르바나가 죽음이라면 자신은 생명에 가까운 힘이었다.
불과 물 같은 느낌이기도 해서 억눌렀다는 느낌을 받은 게 아닐까.
“그럴 수 있지.”
니르바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은호는 니르바나를 보았다.
종의 특성은 바꿀 수 없어도 저 힘을 조금이나 억누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니르바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왕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은호는 가방에서 토템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토템은 자연의 힘을 흡수하고 방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건, 애초에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멈췄다.
니르바나의 마음을 이 이상 흔들 수는 없었으니까.
우선 이곳에 온 이유인 사라진 연구원부터 해결해야 했다.
“친구야.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부탁이라는 소리에 니르바나의 한쪽 귀가 꿈틀거렸다.
갑자기 은호를 지그시 보았다.
싸늘한 느낌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니르바가 무슨 힘을 쓰는지 몰라도 눈동자가 변했다.
아주 깊은 구덩이가 된 것처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갈망해도 넌, 죽은 자를 볼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