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7화(167/302)
167화. 그건 환상이었을까?(4)
쏘아붙여진 말에 은호의 눈썹이 밑으로 내려갔다.
“죽은 자라니…?”
니르바나는 시선을 돌려 가을을 바라보았다.
“저 인간도 마찬가지고.”
은호 역시 덩달아 가을을 보았다.
“친구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죽은 자를 보고 싶지 않나?”
니르바나가 꺼낸 말은 꽤 유혹적으로 들렸다.
“보여…?”
“죽음을 겪은 흔적이 보여. 네가 겪든, 소중한 존재를 잃은 적이 있었든 말이야.”
“그게 어떤 식으로 보여?”
은호는 자신의 몸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보인다는 걸까.
“보여. 너도 그렇고, 저 인간도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어. 크기 차이만 날 뿐이지.”
가을과 은호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보았다.
이상한 인간 쪽이 훨씬 더 컸다.
마지막으로 니르바나는 흑견을 쳐다보았다.
이쪽은 엉켜 있었다.
‘…다시 봐도 가엾은 존재야.’
동정이 어린 니르바나의 시선이 불쾌했기에 흑견은 덩달아 째려보았다.
조금 전에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기에 니르바나는 말하지 않았다.
다시 은호를 보았다.
“이쪽으로 흘러들어오는 존재들이 날 보면 다들 죽은 자를 보여달라는 말을 하는데, 너희는 못 봐. 나한테는 그런 힘도 없고. 나는 그저 죽은 자를 보고, 여기를 떠돌지 말고 가야 할 곳을 가라고 말해주는 게 다야.”
이런 일이 정말 많았는지, 니르바나는 벌써 지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하지만 그걸 물어보려고 한 건 아니었어.”
“그러면?”
“여기에 우리 말고 갇힌 인간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동료야?”
“비슷한데, 우리는 그 사람들을 찾으러 왔어. 우리처럼 휘말렸다면 너는 알지 않을까 해서.”
“잠깐만.”
니르바나는 눈을 감았다.
주변으로 퍼진 싸늘함을 따라 검은 연기가 나풀거렸다.
흑견이 퍼트리는 검은 연기와 결이 달랐다.
흑견은 부드러운 비단 같다면 니르바나는 수많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연기는 사방으로 퍼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두워 어디까지 닿았는지 몰랐다.
“…있네.”
니르바나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인간이 또 들어와 있었다.
겁에 질린 채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네. 일단, 데리고 올게.”
산 자의 세계도 아니고, 죽은 자의 세계도 아닌, 중간에 낀 공간이기에 불안정하다는 걸 알아도 자꾸 이러면 참 귀찮았다.
안식의 땅으로 가면 될 텐데, 이쪽으로 넘어오는 죽은 자들도 많아졌고.
“잠시만.”
니르바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은호는 가을을 보았다.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대요. 아무래도 연구원분 같아요. 저 친구한테 데려와 달라고 할까요? 아니면 같이 갈까요?”
“같이 가겠습니다. 아마, 상당히 겁에 질렸을 겁니다.”
“역시 생각이 통했는데요?”
은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도 모르고 이런 곳에 내던져졌다면 무서운 건 당연했다.
은호는 그대로 웃으며 니르바나를 보았다.
“같이 가자, 친구야.”
“넌 참 겁이 없네? 여기가 어딘지 알면서 그렇게 구는 건 저 존재 때문이야?”
니르바나는 앞으로 걸으며 물었다.
“멍멍이 형님이야 늘 듬직한 건 기본이지. 아마 멍멍이 형님이 없어도 널 따라갔을 거야.”
“…너, 정신을 놓은 거 아니지?”
여기는 산 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서 자신과 이곳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게 맞았다.
은호는 니르바나의 물음에 키득거렸다.
“당연히 제정신이지. 널 만나서 오히려 반가운데?”
반가움 너머로 혼자 있는 니르바나가 마음에 걸린다든지, 어떻게 살고 있냐든지. 그런 물음은 꺼내지 않았다.
니르바나는 은호의 대답에 익숙하게 밀려드는 감정을 짓눌렸다.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감정이 싹 빠진 표정을 지었다.
“친구야. 여기 있으면 무섭지 않아?”
“뭐가 무서운데?”
“음…. 너무 어둡잖아.”
“나는 죽음에서 태어났다. 어두운 게 가장 자연스러운 법이지.”
“그러면 다른 고민은 없어?”
앞으로 가던 니르바나는 멈춰 서는 뒤를 돌았다.
니르바나가 지나간 자리에 연기가 뭉쳐진 발자국이 남았다.
“그게 왜 궁금하지?”
“귀찮았어?”
“넌… 특이해.”
작은 웃음이 니르바나의 입가에 흘러나왔다.
그러다 이내 깜짝 놀랐다.
웃다니.
“여긴 좋은 공간이 아니야. 왜 나갈 생각부터 하지 않는 거지?”
현실을 배경에 두지만, 일단, 너무도 어두웠다.
불이 켜져 있어도, 그 불의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지금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죽은 자들이 아까부터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지. 보일 리가 없지.’
저들을 볼 수 있는 건 온전히 자신의 힘이었다.
“나는 네가 궁금하니까.”
니르바나는 흘러오는 말에 침묵했다.
또 발가락 사이로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그 감정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계속 걸어갔다.
이렇게 안내한 적이 많은데, 유독 기분이 묘했다.
똑같은 인간의 발소리인데 뭐가 다를까.
저 인간의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걸지도 몰랐다.
니르바나는 가다 말고 귀를 꿈틀거렸다.
…아, 빛이다.
흐릿하지만, 그 소리가 들렸다.
니르바나는 놀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죽은 자들이 자신을 보지 않았다.
어딘가를 향하는 시선은 오직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곳에 조금 전에 피어났던 빛을 품은 꽃이 번져갔다.
“어두운 것보다 밝은 게 좋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저 인간은 그저 웃었다.
빛나는 꽃이 핀 나무 주변으로 죽은 자들이 몰려들었다.
형체도 잃었고, 말도 잃은 자들이었다.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조차 잊어버려 가만히 있던 그들이 처음으로 웃었다.
“친구야? 혹시 너무 눈이 부셨어?”
니르바나는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토록 설득하고, 수없이 말을 꺼내야 했던 그들이 나무를 끌어안은 채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꽃잎이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니르바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홀렸다.
고마워.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니르바나는 귀마저 꿈틀거렸다.
저들이 있었기에 이곳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죽은 자는 언제나 머물러 있었으니까.
물론, 말도 더럽게 듣지도 않았다.
가라고, 가라고 그렇게 소리쳐도 들어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찬란한 마지막을 보게 될 줄이야.
‘저들에게 필요했던 건.’
니르바나는 이어지는 고맙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부드럽게 웃었다.
‘…다 시든 꽃이 아니라, 따뜻한 빛이었나?’
속이 후련하면서도 참, 슬픈 건 무슨 마음인지 몰랐다.
“…아니.”
니르바나는 천천히 은호를 시선에 담았다.
저 인간은 알까.
지금 본인이 뭘 했는지.
“빛이 참 아름답네.”
다시 등을 돌려 걸어갔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 * *
“…실장님!”
가을을 보자마자 세 사람이 바로 목청을 높였다.
‘실장님?’
은호는 뒤따라가다 목덜미를 간질였다.
맨날 ‘가을 씨’라고 불러서 되게 낯선 직책이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가을은 그들을 보자마자 일단 다독거렸다.
연락이 끊어진 세 명이 맞았다.
그들의 울음이 섞인 소리가 이어졌다. 일을 하러 가다가 말고 이게 웬 날벼락인지 몰랐다.
“찾으려고 했던 인간들 맞아?”
니르바나가 물었다.
환수를 보자마자 연구원들은 기겁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흑견이다.”
저 환수는 몰라도 흑견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흑견이 이곳에 있을까.
이게 흑견의 짓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맞대. 안내해줘서 고마워.”
은호가 니르바나와 대화하자 연구원들은 마지못해 물었다.
“…저 사람, 누구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 머리카락도 눈에 들어왔다.
딱 보자마자 기억이 남을 정도로 인상이 깊으며 되게 화사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시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입마저 벌어졌다.
“…아!”
은호는 뒤늦게 깜짝 놀랐다.
현실과 다른 공간 속에 있다고 판단도 흐려졌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했다.
“저 어떡해요, 가을 씨?”
열심히 지켰는데, 이런 곳에서 들킬 줄이야.
은호가 묻자 가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입막음을 어떻게 할지도 생각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딱 자른 저 말에 연구원들은 가을을 더 두려워했다.
“방금 본 것들은 비밀로 해야 합니다.”
가을은 연구원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판단이 흐려진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을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입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들의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설령 은호와 관련된 정보가 새어 나가도 다 지워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이곳을 나가면 해결하겠습니다.”
든든한 저 말에 은호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이걸 까먹었는지.
“가을 씨, 먼저 갈래요?”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이 친구한테 해줄 일이 있어서요. 뒤따라갈게요.”
은호는 니르바나를 가리켰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해줄 게 더 있었다.
“친구야. 일단, 길 좀 안내해줄래?”
니르바나는 그 말에 익숙하게 앞발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따라가면 돼. 그냥 쭉 가. 주변 볼 필요도 없어. 그러면 이곳을 빠져나갈 테니까.”
“저쪽으로 쭉 가면 된대요.”
은호 역시 앞으로 손을 뻗으며 가을에게 알려줬다.
“그럼, 서은호 씨. 저 환수에게 이 말만 전해주시겠습니까?”
언제 또 저 환수를 볼 수 있을지 몰랐다.
“말씀하세요.”
“길을 안내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서워서 해서 미안합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몰라도, 앞으로 많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평온한 하루가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깍듯한 인사였다.
은호가 입을 다문 채 바라만 보자 가을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전에는 환수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으니까요. 더 큰 오해로 돌아올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이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서은호 씨 덕에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은호는 가을의 말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환수도, 사람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법이었다.
니르바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있을까 생각하며 가을의 말을 전해주었다.
“…라고 말을 전해달랐어.”
니르바나가 가을을 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참 묘한 경험이네.’
니르바나는 입가를 살짝 핥았다.
저곳으로 가면 저들은 어차피 자신을 잊을 테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할 텐데, 이런 인사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 많이 웃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소리를 건넸다.
이곳으로 오게 되는 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할까.
죽은 자든, 저들처럼 휩쓸렸든 양쪽 다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저들을 향한 보답이었다.
은호는 니르바나가 꺼낸 말에 잠깐 머뭇거렸다.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 많이 웃으래요.”
가을은 그 말에 무엇도 묻지도 않은 채 웃으며 숨을 삼켰다.
니르바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호에게 말했다.
“먼저 가겠습니다.”
“곧 뒤따라갈게요.”
은호의 말을 들으며 가을은 연구원들을 데리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가을이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은호는 니르바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친구는 어떤 꽃을 좋아해?”
태연하게 꺼낸 질문에 니르바나는 그제야 이게 인간이 말한 해줄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물어봤자 너는 날 기억하지 못해.”
“…그게 무슨 말이야?”
은호가 놀랐다.
그 표정에 니르바나는 가을이 향했던 곳으로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던히 노력하려는 저 모습이 안타까워 꺼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준 꽃은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니르바나는 앞을 가리켰다.
“이제 너도 가면 돼.”
덤덤한 저 표정에 은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기억이 지워질 걸 알기에 모든 질문에 답을 했다는 점도.
기억을 잃을 걸 알면서도 길을 잃은 자신들을 직접 안내했다는 점도.
죄다 이상했다.
“…얼마나 이랬어?”
은호가 묻자 니르바나는 침묵하다 말을 꺼냈다.
“글쎄.”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왕이 너를 기억하고 있어?”
“기억해. 이곳에 날 찾아오는 유일한 분이니까.”
“왜 왕만 너를 기억하는 건데?”
“…인간.”
니르바나는 숨을 내쉬며 은호를 불렀다.
그만하라는 소리였다.
이건 대답하는 것조차 괴로울까.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저곳으로 간다면 기억이 지워질 게 뻔했다.
단아 때도 그러지 않았는가.
꿈속에서 나왔을 때, 자신은 기억을 잃었다.
‘왕은… 왕이기 때문에 되는 걸까.’
특별한 능력이 있을까.
왕만 할 수 있다는 건, 머리로는 알아도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흑견은 얼굴을 일그러트린 은호를 보았다.
무얼 하고 싶은지 몰라도 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보거라.”
등을 떠미는 말에 은호는 위로 든 손을 내렸다.
자신에게도 힘이 하나 있었다.
억지로 공간을 열어보았다.
끼이이익.
평소와 달리 녹이 슨 문을 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은호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로 열린 그 너머로 봄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널 잊지 않을 수도 있잖아?”
은호는 니르바나를 강렬하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