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0화(170/302)
170화. 헛된 게 아니다(2)
되게 낯이 익었다.
은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반가움을 드러냈다.
족제비를 닮은 저 환수는, 크라슨이라는 종인 레베카가 부식의 힘으로 숲을 파괴했을 때 만난 친구였다.
비록 레베카에게 협박당해 여론전으로 자신을 모함하려고 했지만, 이내 반성하고 사과해주지 않았는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그 숲과 여기는 굉장히 멀었다.
자신이야 공간을 이동하는 힘으로 금방 간다고 하지만, 저 환수는 아니었다.
그 먼 거리를 왜 이동해 온 걸까.
“아, 일단 밥 먹자. 배고프지?”
은호는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야. 오면서 밥 먹어서, 안 먹어도 돼.”
환수는 고개를 가로저은 채 뒤로 움직였다.
머뭇거림이 가득했다.
저번 일로 여전히 미안한 걸까.
꼬르륵.
때마침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환수는 다급히 배를 감쌌다.
붉은빛을 띠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친구가 나를 보러 먼 길을 왔으니까, 배는 내가 채워줘야지. 안 그래?”
“조금 전부터 인간을 바라봤다.”
뒤에서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볼이 가득할 정도로 고기를 왕창 씹고 있었다.
“진짜?”
“고기가 다 떨어졌다. 인간은 오늘 다치지도 않았다.”
고기를 본인이 구울 필요가 없다.
딱 선을 긋는 태도에 은호는 기가 찼지만, 환수에게 손을 뻗었다.
“갓 구운 고기가 진짜 맛있는 거 알아? 달군 불과 고기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흐르는 ‘치이익’ 소리부터 환상적이잖아?”
“…나는 그저 너한테 말을 전달해주려고 왔어.”
꿀꺽.
환수는 말과 달리 마른침을 삼켰다.
“말도 배가 불러야 전하는 거지. 물부터 먹을래?”
대답이 들려오기 전, 은호는 바로 일어나 물이 담긴 그릇을 가지고 왔다.
환수는 은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더니 물을 마셨다.
혓바닥이 날름거리다 이내 빨라졌다.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몰라도 아예 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고개를 든 환수의 눈이 맑아졌다.
한눈에 봐도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 상태라는 걸 알았다.
“아, 혹시 다 같이 있는 걸 좋아해? 아니면 혼자 있는 걸 좋아해?”
환수도 내향과 외향이 존재했다.
레비아탐은 중간이었고, 폭시는 언제나 다른 환수들의 중심에 있었다.
폭시가 다른 환수들에게 건네는 말은 자신이 들어도 귀를 간질일 만큼 다정했다.
은호는 폭시를 찾다가 폴짝 뛰어오는 폭시를 안았다.
“나 여기 있지!”
폭시가 뒷발을 흔들었다.
은호의 품에 안긴 폭시는 환수를 보았다.
“안녕!”
“…안녕.”
“이제 왔어? 혹시, 냄새 맡고 온 거야?”
“…인간을 만나러 왔어.”
머뭇거리며 꺼낸 말에 폭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은호한테 뭘 하러 왔길래 초조해하는 거야?”
폭시는 환수 주변에 나풀거리는 불안함과 마주했다.
생각보다 더 큰 불안함이었다.
“인간을 만나면 어떤 말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어려워.”
환수는 쭈뼛거렸다.
“아! 그런 거라면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도 돼.”
폭시는 눈웃음을 지었다.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인간. 나는 말이야…….”
환수는 말을 꺼내다 말고 앞발을 만지작거렸다.
“친구야. 괜찮다면 밥 먹으면서 이야기할까? 나도 아직 먹지 못했어.”
고기를 굽느라고 팔이 작살나는 걸 느꼈다.
보람찼지만, 아직도 팔이 다 후들거릴 정도였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구워본 적이 없었다.
은호는 팔을 만지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걸으려던 차, 시선이 쏠렸다.
커다랗게 만든 불판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환수들이 은호를 봤기 때문이었다.
다들 귀가 쫑긋 선 상태였다.
“은호는 아직도 못 먹었어? 내 거 줄게.”
“나도. 아직 남았어!”
저마다 아직 따끈따끈한 고기를 권하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다들 지금 침이 흐르는 거 알고 있어? 침은 닦고 말해야지.”
은호가 입을 톡톡 치자 환수들은 놀라며 앞발로 입가를 닦았다.
기존에 먹던 것과 맛이 달랐다.
먹을수록 혀에 살살 녹았다.
“계속 먹고 있어. 나는 따로 구우면 돼. 고기는 많아.”
자신이 가진 카드의 주인은 태호였다.
―환수들이 먹겠다는데, 당연히 좋은 걸로 사야지! 배가 터질 때까지 시켜! 아니다, 내가 고기를 따로 배달해줄까? 내가 아는 곳이 많으니까.
고마움에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겠다고 말해줬다.
은호는 가방에서 고기가 담긴 팩을 꺼냈고, 불을 피우기 전에 환수가 물었다.
“혹시, 불… 필요해?”
“딱 필요하던 참이야.”
은호가 웃자 환수가 불판 쪽으로 달려갔다.
꼬리를 흔들며 앞발로 숯을 잡자 갑자기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 형상이 꼭 환수의 모습을 작게 줄인 것만 같았다.
불꽃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듯하다 이내 위로 높이 타올랐다.
“…신기하다.”
은호는 환수가 사용하는 불꽃을 보며 감탄했다.
어떤 힘이길래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잠깐 만져도 될까, 친구야?”
“괜찮아.”
은호는 손가락으로 환수의 볼을 살짝 찔렀다.
콕.
낯선 거라 생각했던 은호의 손길에 환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플럿.》
《.》
《조심성이 많고, 경계심도 높은 편입니다. 주로 작은 굴속이나 나무 속에서 생활하며 잠이 많습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특유의 예민함 덕에 굉장히 잘 숨습니다.》
《본인의 외형을 닮은, 상당히 특이한 불을 내뿜습니다. 불꽃이 되기 전, 불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적이나 사냥감의 눈을 현혹합니다. 불 자체의 위력은 약하지만, 표적으로 찍은 대상으로 향하는 유도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도 불꽃 같은 느낌인가?’
은호는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힘이 겹치는 환수는 보지 못했다.
폭시와 하이프가 정신 계열의 힘을 가졌지만, 다르지 않았는가.
“고마워.”
은호는 플럿에게 인사하고는 불판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팩을 덮은 비닐을 벗기고, 옆에 놓인 집게를 주웠다.
딱딱.
집게를 힘차게 부딪쳤다.
‘자, 구워보실까?’
불판 위로 고기가 올라가자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들렸다.
치이이익.
* * *
플럿의 눈동자가 빛이 났다.
앞발에 쥔 고기를 뜯어 먹으며 냠냠 씹자 행복이 넘쳐흘렀다.
입안 가득 들어간 고기 때문에 볼마저 부풀어 올랐다.
“이것도 먹어 봐.”
은호는 갓 구운 고기를 플럿에게 더 넘겨주었다.
“멍멍이 형님도 먹고.”
플럿에게 준 것보다 더 큰 고기를 넘겼다.
흑견의 꼬리가 크게 흔들렸다.
역시 고기는 다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숯을 태우는 불꽃은 여전히 활활 빛나고 있었지만, 다른 환수는 다 먹고 ‘안녕’이나 ‘고마워’하고 인사하며 숲으로 돌아간 뒤였다.
은호는 자신의 주변으로 모인 레비아탐과 라비, 폭시를 이어 바라보았다.
열심히 놀았는지 몰라도 라비는 벌써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통통한 배가 숨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제 괜찮다면 말해줄래? 나는 들을 준비가 됐어. 다른 친구들도 이제 다 가서 괜찮지 않을까 해.”
은호의 물음에 플럿은 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네가 숲을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줬잖아?”
“혹시, 문제가 생긴 거야?”
놀라며 묻는 인간의 표정에 플럿은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네가 간 그 뒤로, 반성했어. 나도 그렇고, 우리도 다.”
“그 일로 반성할 필요는 없었는데.”
“아니야! 우리는 너를… 그렇게 차갑게 내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너한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플럿은 울먹였다.
아무리 그 존재가 무서워도 그렇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버렸다.
저 인간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숲을 돌려주고, 집을 되찾아줬다.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고, 오늘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물도 주고, 맛있는 밥마저 내어주며 따뜻하게 바라봐주기까지 했다.
“나는 괜찮아. 네가 찾아와줘서 이제 기쁜 일로 뒤덮였는데?”
은호가 웃자 플럿은 턱을 멈췄다.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으면, 다 먹고 물어볼 걸 그랬다. 밥 먹는데, 괜히 말했어.”
플럿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너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빌고 있어.”
꿀꺽.
플럿은 다급히 입 안에 있는 음식을 삼켰다.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냄새를 쫓고, 물으면서 여기까지 왔어.”
“그 먼 거리를…?”
“응! 내가 대표로 왔어. 내가 하겠다고 했어. 잘못했으니까. 너무, 미안하니까. 난 그때 정말 비겁…….”
“넌 용감해.”
은호가 강하게 말했다.
플럿은 분홍빛을 띤 코를 벌름거렸다.
“잘못을 마주하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인데, 넌 그걸 해냈잖아?”
플럿은 은호가 흘린 미소에 입을 벌렸다.
가슴을 두드리는 것처럼 환했다.
금방이라도 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오면서 신기했어. 대부분 너를 알고 있었어.”
“나를… 안다고?”
“너는 지금 숲의 인간이라고 불리고 있고, 혹시 너를 만나게 되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는 부탁도 엄청 많이 받았어.”
플럿은 말을 하며 더 많이 기뻐했다.
“……숲의 인간?”
어색한 호칭에 은호가 살짝 기겁하자 흑견이 웃었다.
은호가 쳐다봐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잘 지었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불러주겠다, 숲의 인간.”
“너무 잘 어울린담.”
레비아탐이 앞발을 모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숲’이라는 단어만 봐도 은호였고, 은호는 인간이었다.
모든 게 은호를 위한 말이었다.
“…농담이지, 레비아탐?”
“농담 아니얌. 은호한테 진짜 잘 어울렴. 은호는 숲의 인간이얌!”
들려오는 대답에 은호는 폭시를 보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벌써 장난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꼬리마저 아주 높아졌다.
은호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저렇게 즐거워하니 장난을 치고 싶었다.
“나한테도 물어봐 줘. 나도.”
장난을 장전하고 있던 폭시가 은호의 외면에 달려왔다.
“장난칠 게 눈에 훤히 보였는데?”
“하지만 은호한테 진짜 잘 어울린단 말이야. 은호가 숲이 아니면 누가 숲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플럿은 폭시의 말에 동조했다.
죽어버린 숲이 다시 살아났을 때, 밀려드는 환희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 친구야. 오늘은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같이 가자. 나는 지름길을 알아.”
“지름길? 내가 엄청 빠른 지름길로 왔는데?”
“내일 보면 깜짝 놀랄걸?”
은호는 플럿이 깜짝 놀라며 지을 표정을 상상하다 웃었다.
공간 이동이라는 게 언제 봐도 참 무시무시한 힘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 내일 일렉트도 데리고 가잠.”
레비아탐이 웃자 이빨이 보였다.
“내일은 일렉트의 기분이 좋으면 좋겠네. 그렇지?”
“응!”
은호의 물음에 레비아탐은 힘껏 대답했다.
오늘은 은호가 일렉트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오늘은 안 되겠어. 일렉트가 꼬리 끝이 날카로우면 보통 기분이 안 좋더라고. 일렉트는 지금 아주 긴 싸움 중이니까, 오늘은 모르는 척하자.
일렉트를 데리러 은호랑 같이 연구소에 가다 말고 그가 꺼낸 말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해서 자신도 가끔 까먹곤 했다.
레비아탐은 은호의 품에 기댔다.
은호는 참 섬세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진짜 누가 은호를 미워한 걸까.
‘은호가 나를 모르는 척했으면, 나는 아직도 도망치고 있었을 텐데.’
그때, 은호에게 거짓말도 하고, 다치게도 했고, 입도 다물었다.
미워할 이유는 수없이 많았음에도 은호는 그러지 않았다.
속마음을 읽은 걸까.
은호의 손길이 머리맡에 느껴졌다.
레비아탐이 포근한 그 느낌에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많이 먹어, 친구야.”
은호는 플럿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 *
플럿은 눈을 떴다.
눈동자를 굴렸다.
언제 잠이 든 것도 모를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편하게 잠이 들었다.
“잘 잤어, 친구야?”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손길에 플럿은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뒷다리를 파르르 떨다가 플럿은 뒤늦게 귀를 간질였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호가 보고 있었다.
“피곤했던 모양이야. 코도 골았는데, 기억해? 아, 잠시만 기다려 봐. 밥 가지고 올게.”
플럿은 귀를 꿈틀거리다 은호의 손을 붙잡았다.
“…미안해.”
“더는 그러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은호는 플럿의 볼을 콕 찔렀다.
그럼에도 불안함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있잖아, 은호.”
“응?”
“여기 오면서, 어떤 소문을 들었어.”
“소문?”
“…불을 쓰는 존재가 왕을 험담하고 다닌다고. 그거, 나 아니야.”
플럿이 꺼내는 말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