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1화(171/302)
171화. 헛된 게 아니다(3)
이게 플럿이 계속 가지고 있던 불안함이었을까.
말을 한 뒤, 힘이 빠진 것처럼 더 축 늘어졌다.
“내가 너를 오해할까 봐, 그랬어? 그래서 계속 불안했던 거야?”
“내가 너를 실제로 나쁘게 몰아가려고 그랬으니까. 혹시 네가 그 소문을 들으면 내가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플럿은 말을 하면서 정말로 쪼그라드는 듯 보였다.
태블릿이 알려준 대로 조심성이 크기 때문일까.
“친구야. 혹시, 내가 떠난 뒤로 다른 친구들이 너한테 뭐라고 말했어?”
플럿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무슨 일이 있었어?”
또 플럿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나 혼자 무서워서 그래. 아무도 안 그러는데, 나 혼자 다른 애들이 날 싫어할까 봐, 무서워서.”
그저 막연하기에 밀려드는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플럿은 다시금 억울함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내가 안 했어. 왕을 험담할 생각도 못 했고, 그 뒤로 누구도 험담한 적 없어! 정말이야!”
은호는 놀란 플럿을 토닥거려주었다.
이 먼 곳까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와준 고마운 친구였으니까.
“알고 있어. 난 믿어.”
플럿은 은호의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곳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저 인간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다.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말한 뒤, 활력이 가득한 자신들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강이 불어나 돌아가야 할 때도.
못 보던 절벽 사이를 뛰어야 할 때도.
인간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정말로, 오길 잘했어.’
플럿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존재가 나한테 사과도 했는데, 혹시나 너도 오해할까 봐. 너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은호는 플럿의 말과 함께 팔이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정말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친구야.”
은호는 플럿을 안았다.
삐죽 나온 눈물이 보였다.
일렉트만큼은 아니지만, 플럿도 몸이 꽤 길었다.
“너도 피해자야. 애초에 네가 원해서 한 게 아니잖아?”
플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야. 더는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은호는 플럿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고마워.”
훌쩍이는 소리를 따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피식 웃었다.
“아, 친구야. 혹시 그 소문 누가 퍼트렸는지 알아?”
“…머리에 하얀 링이 달린 존재가 퍼트렸대.”
‘삐약이가 그랬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환수 중 머리 위에 하얀 링이 달린 건 윈디드뿐이었다.
‘그런데 음, 뭔가 삐약이답지 않네.’
윈디드가 그런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은호는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환수 보호 구역에서 산북 할아버지를 만나며 스네곤이라는 환수 역시 만났다.
산북 할아버지가 왕의 명령을 받고 본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새로 온 환수의 말로 오해가 생긴 상태였다.
오해는 깊지 않아 빨리 풀렸지만, 오해하게 만든 환수는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직접 보지 못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대신 그곳에서 그을림의 흔적을 보았다.
자신도 불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한 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윈디드가 이렇게 소문을 낼 줄이야.
‘…범인을 알아내는 일이 급하긴 하지. 그래도 좀, 어울리지 않아.’
왕을 험담한 그 존재 역시 약속을 깬 환수였다.
약속을 깬 이들 중에서도 꽤 지독했다.
덩달아 약속을 깨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으니까.
‘지금쯤, 삐약이는 뭐 하고 있으려나.’
은호는 윈디드를 걱정했다.
왕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먼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밥은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는데.’
* * *
“…이, 이게 뭐야?”
플럿은 은호가 연 공간을 몇 번이나 이리저리 살폈다.
어딜 봐도, 그 너머에는 자신의 집이 있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가진 힘인데…….”
은호는 말을 하다가 그만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플럿의 노력을 헛되게 날리고 싶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가볼 걸 그랬네.’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그때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가도 될지 망설여진 건 맞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집으로 갈 때는 편하게 가면 좋지 않겠어?”
혹시 몰라 다른 말을 꺼냈다.
“나는 네가 그 먼 길을 가면서 고생할까 걱정했어.”
플럿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순진한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아니어서 더 좋아.”
오히려 더 크게 웃었다.
은호가 가진 걱정을 떨쳐버릴 만큼 환했다.
“그럼, 갈까?”
은호가 묻자 플럿은 끝이 붉은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전지를 안은 채 자신의 목을 휘감은 일렉트를 보며 웃다 은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설렘과 호기심을 담은 라비가 어서 가자고 뒷발을 동동 굴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설렘에 기뻐 웃고 있는 폭시 역시 눈에 들어왔다.
은호가 팔을 들자 레비아탐이 달려와 꼬리로 매달렸다.
“응!”
박자가 맞지 않았지만, 모두 다 힘차게 말했다.
가장 먼저 흑견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다 하품했다.
“와도 된다.”
은호는 긴장감 없는 저 모습을 보자 장난기가 올라왔다.
손가락이 다 꿈틀거렸다.
“닫으려고 했는가?”
은호가 뭘 하기도 전에 흑견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은호의 머뭇거림에 흑견이 고개를 내밀었다.
코로 은호의 얼굴을 찔렀다.
“다 보인다, 인간.”
“내 눈에도 보였어, 은호.”
폭시가 키득거리며 공간 너머로 움직였다.
‘표정 숨기는 건 꽤 자신 있었는데.’
사회생활을 할 때 다졌던 특기가 다 사라지는 기분에 은호는 오히려 더 좋았다.
조금씩 원래의 자신을 되찾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은호, 은호! 빨리 와야 하느니라!”
라비가 재촉했다.
은호는 미소를 지은 채 공간을 넘어섰다.
* * *
싱그러운 냄새가 가장 먼저 은호를 반겼다.
자신이 봤던 그때보다 더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그 일이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는데.
은호는 몇 걸음 걷다가 귓가를 속삭이는 소리에 잠깐 멈췄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왜 그램?”
레비아탐이 고개를 올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들렴. 다들, 이쪽으로 오고 있엄.”
“발소리가 들리는 거야?”
“응. 그런데 은호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짐?”
레비아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호 냄새 때문이겠지.”
일렉트의 대답에 레비아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남. 은호 냄새 때문이구남!”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레비아탐은 꼬리 힘을 이용해 은호의 어깨로 올라왔다.
킁킁.
언제 맡아도 좋은 냄새가 났다.
레비아탐을 보던 일렉트도 은호의 냄새를 맡았다.
“풀 냄새가 남.”
“전기 냄새지.”
레비아탐과 일렉트는 서로를 보자 키득거렸다.
은호는 다시 걸었고, 귓가에서 자꾸 울리는 소리에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뭐라고 하는 거지?’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전파가 울리는 소리 같아졌다.
앞장서던 플럿이 갑자기 멈췄다.
“왜 그래?”
플럿 뒤에 있던 폭시 역시 멈추며 물었다.
“…숲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
“숲이?”
폭시가 앞을 바라보았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만히 보자 이상하게도 숲이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
폭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 속도가 현저히 빨라지는 걸 느꼈다.
나무들이 가지를 뻗고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은호였다.
일렉트와 레비아탐이 바람을 맞으며 은호에게 매달리다 눈을 크게 떴다.
뻗어온 나뭇가지가 하나씩 포개어지며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은호가 내뿜던 빛과 닮아 있었다.
나뭇가지는 손 모양을 이뤘고, 두 손을 꽉 움켜쥐는 듯한 모습을 했다.
어느새 위그드라실은 은호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머리 위에 놓인 새싹 역시 빛이 옮은 듯 반짝거렸다.
나뭇가지를 향해 힘껏 뛰어서는 발을 동동거리던 위그드라실은 그대로 자리 앉았다.
나뭇가지들이 뭉쳐 이뤄진 손을 펼치자 그 사이로 빛에 감싼 꽃이 피어났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 빛이 주변을 비추자마자 수많은 꽃이 피어났으니까.
“…나한테 주는 거야?”
은호가 묻자 꽃을 품은 손은 더 뻗어왔다.
이걸 왜 주는 걸까.
의문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은호가 꽃을 쥐자, 알 수 없는 언어가 위그드라실에게서 흘러나왔다.
【예뻐.】
하지만 신기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치 위그드라실이 웃는 것만 같았다.
“예뻐?”
당황스러웠지만, 은호는 어쩐지 웃음이 났다.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 이건 고마움이야. 이 숲의 마음이기도 해. 고마움은 은호에게 힘이 될 거야.】
이 꽃 때문에 들리는 걸까.
【은호. 이 숲은 은호를 받아들였어.】
밀려오는 떨림에 은호는 시선을 내렸다.
빛을 품은 꽃은 물처럼 녹아 흘러내리지도 않고, 손아귀에 고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이 조용해졌고, 꼭 혼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은호는 물을 마셨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은호는 눈을 감았고, 천천히 뜨자 아름다운 나무와 마주했다.
사방이 어두운 와중에 흩날리는 꽃은 보라색과 분홍색을 섞은 색을 닮아 있었다.
‘…그 나무다.’
라비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힘을 썼을 때 봤던 그 나무와 똑같았다.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던 은호는 속이 불타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 싹이 핀 그릇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싹은 저 나무와 공명하듯 울렸다.
둥. 둥.
북소리가 귓가에 들리며 싹이 자라났다.
더 굵은 뿌리를 두고, 가지를 뻗었다.
저 싹의 성장이 고스란히 자신의 성장으로 느껴졌다.
은호는 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았다.
아름다운 나무의 가지가 흔들렸다.
‘너는 대체…….’
“인간. 인간!”
은호가 나무로 손을 뻗으려는 차, 흑견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려왔다.
그제야 은호는 진짜 감았던 눈을 떴다.
‘…어?’
은호는 멍한 눈을 했다.
시선의 높이가 달라졌다.
바닥이 만져지자 은호는 자신이 주저앉았다는 걸 알았다.
“은홈. 정신 차려!”
레비아탐이 은호를 흔들었고, 일렉트가 앞발로 그의 볼을 찔렀다.
“은호? 나 알아보겠어?”
시야 안으로 일렉트의 얼굴이 들어왔다.
“뭘 했길래 갑자기 쓰러지는가?”
흑견이 물었다.
나뭇가지가 뭉쳐 은호에게 뭘 줬다는 건 알았다.
빛에 휩싸인 무언가였다.
은호가 그 무언가를 입가에 가져가는 순간, 갑자기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지만, 가슴이 철렁거렸다.
“맞아. 갑자기 쓰러졌어.”
폭시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꽃이 물로 변했고, 그 물을 마셨는데?”
은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다였다.
시선을 내려 위그드라실을 찾았다.
손등 위로 올라와 팔에 매달렸다.
잎사귀가 하나 더 생겨났다.
더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조금 전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못 본 건가? 나만 봤나?’
걱정이 담긴 시선에 은호는 잠깐 생각하다 변명거리를 꺼냈다.
“현기증이 왔나 봐.”
“어제 고기를 많이 구운 탓이다. 타거라.”
흑견이 몸을 낮췄다.
“아니야, 괜찮아.”
은호는 대답하다 플럿을 찾았다.
이곳에 오지 못하고 멀리 머물러 있었다.
하이프 일로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한 윈디드가 생각이 났다.
“친구야. 괜찮으니까, 안내해줘.”
“나한테 고기 구워준다고 이렇게 된 거야?”
플럿의 물음에 은호는 웃음이 터졌다.
“아니야. 요새 잠을 조금 못 자서 그래.”
“왜…? 나 때문에 그래?”
“아니. 꿈을 많이 꾸는 편이야.”
어떤 꿈을 꿨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코코가 공간 이동을 한 대가로 꿈을 꾼다고 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은호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 때쯤, 흑견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온다.”
덩달아 귀를 세운 플럿은 앞으로 뛰어갔다.
방금 작은 소란 때문인지 몰라도 더 많은 존재가 뛰어오고 있었다.
“애들아! 은호가 왔어!”
플럿은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그대로 멈춰 앞발을 흔들었다.
다가오던 환수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은호, 여기부터야!”
플럿은 뒤따라온 은호에게 알렸다.
이곳부터였다.
은호가 자신의 숲을 돌려준 바로 그곳이.
플럿의 두 눈이 방긋 감겼다.
“네가 돌려준 우리의 숲이야!”
발소리가 거세졌고, 환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처럼 우르르 모여있었지만, 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넘실거렸다.
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그곳에 멈춰 섰다.
“…우리가 미안해!”
“나도 미안해. 그때, 너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
사과부터 흘러나왔다.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모든 인간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너는 아니야!”
“맞아! 너는 아니야! 너는 정말로 좋은 인간이야!”
인간은 숲을 되돌려주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랬다. 분명 실망하고 화가 났을 텐데도 이렇게 와주었다.
인간의 시선은 저번과 똑같이 따뜻했다.
은호는 한 걸음 걸어오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밤에는 잠을 못 자겠어.”
은호가 던진 말에 환수들은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너희한테 영광스러운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좋은 인간이라고 말해줬다.
이보다 더 큰 말이 어디 있을까.
“친구들아. 정말 고마워.”
저들이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보니, 생각하나가 밀려왔다.
자신의 행동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걸.
“우리가… 너를, 안아줘도 될까?”
플럿은 은호를 보며 물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안아주기로 했다.
은호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양팔을 벌렸다.
“당연하지!”
이걸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환수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밀려드는 힘에 못 이겨 땅으로 누웠지만, 은호는 웃었다.
너무 따뜻했다.
“인간. 우리 집에 올래?”
“아니야. 우리 집부터지! 우리 집이 제일 가까워.”
“우리 집이 제일, 제일 가깝다고.”
환수들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은호가 빨리 말렸다.
“친구들아. 다 들릴 테니까, 싸우지 마.”
“정말?”
“그 말 정말이야?”
“정말이야. 약속해.”
은호의 대답에 환수들은 안심하며 그를 안아주었다.
* * *
타닥.
모닥불이 튀기는 소리와 함께 은호는 별을 눈에 담았다.
가운에 아주 큰 모닥불을 두고 이 숲에 사는 대부분의 환수가 모여있었다.
꽤 위험할 법하지만, 흑견이 있기에 다들 안심하며 잠에 빠졌다.
은호는 새근새근 울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딜 봐도 귀여운 환수들이 가득했다.
“왜 안 자는가?”
흑견이 물었다.
평소와 달리 소곤거렸다.
“좋아서.”
이런 기분을 언제 느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를 금방 잊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기억해줬어.”
“인간이 한 일은 잊어버릴 수준이 아니었다.”
“멍멍이 형님.”
“말하거라.”
“사람은… 잊어버리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생기면 자르고, 잊어버려. 몇 개월, 1년 그렇게 긴 시간을 부딪쳐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행동해.”
흑견은 입을 다물었다.
“겨우 한 번이었어.”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냄새를 쫓고, 물으면서 여기까지 왔어.
“나한테 사과하려고 플럿이 그 먼 거리를 찾아와줬어.”
기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로 울 것만 같았다.
“어렸던 날 등쳐먹은 놈들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은호는 손바닥을 펼쳤다.
흉터로 얼룩졌다.
개같이 일한 대가는 이런 흉터뿐이었다.
“저 친구들은 겨우 한 번으로… 이렇게까지 미안해하고, 날 안아줬어.”
은호는 웃었다.
모든 아픔이 씻겨가는 기분이라 정말 행복했다.
“이러니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오는 게 당연하잖아?”
흑견은 앞발을 뻗었다.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러면 잠이 올 거다. 인간이 해주지 않았는가.”
“멍멍이 형님.”
“말하거라.”
“꿈은 아니겠지?”
“아니다. 머리를 눌러야 아닌 걸 알겠는가?”
“멍멍이 형님. 오지랖이라고 해도 나는 역시 그냥 지나치는 건 못하겠어.”
“당연한 일이다. 쓸데없는 고민이었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제 알겠나, 인간?”
“그러게 말이야.”
은호는 키득거리며 다시금 하늘을 보았다.
환수들이 자꾸만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데 어떻게 놓을까.
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참 기분 좋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