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4화(174/302)
174화.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낸다(2)
존댓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카락은 살벌한 눈을 갈아 끼운 것처럼 조금은 누그러진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숨을 짧게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
의문이 묻어났지만, 날개에 달린 갈퀴는 앞으로 내민 상태였다.
얼굴 뒤쪽으로 화려하게 펼쳐진 깃털은 옆으로 퍼졌고, 날이 선 발톱은 땅에 깊게 파묻혔다.
다시금 눈동자가 살벌해지려고 하자 은호는 입을 열었다.
“찾고 있는 아이는 혹시 여기가… 없어?”
은호는 손을 톡톡 쳤다.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금세 카락의 눈빛이 변했다.
날개를 내리며 다급히 뛰어왔다.
“그 아이를 봤나?”
“봤어.”
카락은 대답을 들으며 냄새를 맡았다.
이곳에 있었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피 냄새가 어렴풋이 났다.
“…피 냄새가 나는데?”
카락이 더 다가왔고, 은호는 환수의 한쪽 눈이 살짝 흐린 걸 발견했다.
‘눈이… 불편한가?’
은호는 입이 간지러웠다.
“혹시, 너의 아이야?”
“내 아이야.”
단호한 말에 이를 부정할 순 없었다.
“그 아이를 어떻게 했지?”
카락이 갈퀴를 은호에게 들이밀자 일렉트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저리 가. 더 오기만 해.”
파직. 파직.
일렉트가 전기를 내뿜으며 위협했고, 카락 역시 들려오는 소리에 전기를 뿜어냈다.
“다가오면?”
“잠깐만.”
은호가 다급히 말을 꺼냈고, 카락은 그를 보았다.
여전히 경계심이 깊었다.
“너희 무리 중 세 친구가 네 아이를 괴롭히더라.”
“…라란 무리다.”
카락은 바로 반응했다.
그 무리의 대장이 라란이라는 소리였다.
“자주 그랬어?”
“자주 그랬냐고?”
카락은 부리를 꽉 다물었다.
밀려오는 감정으로 목에 힘이 가득 들어가는 게 보였다.
자주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대로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 친구들한테 다쳤어.”
“…많이 다쳤어? 얼마나 다친 거야?”
카락은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표정으로 은호에게 다가갔다.
숨을 헐떡이며 절망에 휩싸였다.
바로 몸을 낮춰 땅을 보았다.
피가 떨어진 흔적을 찾는 모양이었다.
“잠깐만, 진정해!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은호는 카락을 진정시켰다.
“상태는 괜찮아. 혹시 몰라 치료해줬어. 약도 발라줬고.”
그제야 카락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
은호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마워.”
“아니야.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그냥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은호가 미간을 찌푸리자 카락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그냥 안 보내면?”
“너와 네가 속한 무리의 대장을 만나서 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해야지.”
은호가 알고 있는 무리의 대장들은 무리를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당장 디어네만 하더라도 그랬다.
하얀 털을 지닌 디어네의 대장인 라흐다도, 검은 털을 지닌 대장인 네리온도.
죄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면? 그래도 말할 거야? 말해 봤자, 더 강한 보복만 와도 그럴 거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괜히 끼어들지 말라는 거야! 다 헛수고니까!”
카락은 소리를 지른 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안해. 흥분했어.”
“친구야. 방금 그 말, 무슨 소리야?”
“여기는 그래.”
가슴을 거세게 때리는 소리 같아 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우리 몫을 해내야 해.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지. 나와 내 아이의 몫을 내가 해내야 해.”
혼자서 2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니.
그건 부당했다.
“하지만 네가 말해버린다면, 우리는 쫓겨나겠지? 이 무리에서 우리를 싫어하는 존재뿐이니까.”
“대체 왜…?”
“내 아이는, 갈퀴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부모인 내가, 감당해야 해.”
카락은 몹시 지쳐 보였다.
“친구야. 너도… 아프잖아.”
“어쨌든, 고마워. 내 아이를, 치료해준 거 말이야.”
“잠시만.”
은호는 이대로 카락을 보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친구야. 이건 부당한 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를 받아주는 무리는 여기뿐이야.”
명확한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을 너머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할까.
은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카락을 붙잡았다.
“이건 안 돼. 차라리 나하고 가. 널 보호해줄 수 있는 곳을 알아.”
“내가 널 어떻게 믿고!”
카락이 은호의 손을 쳤다.
손아귀에 화끈거림이 밀려왔다.
피가 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렉트가 깜짝 놀랐다.
“안 돼, 멍멍이 형님. 삐죽아.”
은호는 오히려 그들을 말리며 카락을 보았다.
카락의 목까지 어둠이 드리웠다가 내려왔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몰라도 카락은 소리쳤다.
“넌 인간이야! 내 아이를 치료해준 것과 별개라고!”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몰라도 악에 찬 소리라는 걸 알았다.
무리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 역시 무리의 동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저들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곳일 뿐이었다.
배려는커녕, 더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은호.”
일렉트의 눈이 커졌다.
피 냄새가 점점 피어오르자 화가 났다.
“네 아이가 저항도 하지 못했어.”
은호는 상처를 숨긴 채 말을 꺼냈다.
조금 전 카락의 아이는 맞기만 했다.
전기의 힘을 가진 것 같은데,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기에, 참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두고두고 남을 상처가 될 수 있어.”
은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때론 다 놓으면 해결되는 일도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건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게 마지막 희망일까 봐.
“…네가 뭔데 우리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카락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네 선택은 최선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네 아이가 저항하는 걸 포기했다. 그저 두들겨 맞고, 침묵하기를 선택했다. 이게 올바른 선택인가?”
흑견이 짜증을 담아 묻자 카락은 눈을 꽉 감았다.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해!”
수풀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목에 반창고를 단 카락이었다.
“엄마도 그만 해요. 그냥… 내가 참으면 되는 일이니까.”
카락은 은호를 보았다.
날이 선 말투와 눈빛은 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내가 보낼 테니까, 가요.”
카락은 엄마 카락을 보냈다.
자식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엄마 카락은 그대로 숲으로 떠났다.
카락은 날개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몇 초간 정적이 일어났다.
긴 숨이 흘러나왔다.
“……당황스럽긴 했는데, 그래도 속은 시원했어.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처음이거든.”
카락은 날개를 내리며 은호를 보았다.
은호는 일렉트를 쓰다듬은 뒤, 흑견을 톡톡 건드렸다.
지금 좀 흥분했다.
“친구야. 우선, 끼어들어서 미안해. 너희 어머니께도 미안하다고 전해줄래?”
“내가 미안해해야지. 따라와.”
“응?”
“엄마 때문에 다쳤잖아. 피 냄새가 나.”
은호는 그 말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상처를 숨겨봤자, 속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은호는 나빠.”
일렉트는 날을 세우며 은호를 보았다.
“하지만 삐죽아. 이건 내가 실수한 거야. 선을 넘었으니까.”
“아니. 그거 말고. 왜 아프다고 안 해? 왜 숨겨?”
은호는 일렉트의 말에 시선을 내렸다.
손바닥에 베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피가 꽤 많았다.
“…너무 놀랄까 봐.”
“멍청한 인간.”
밀려오는 짜증이 얼마나 큰지 흑견은 이빨을 내보였다.
지금 놀란 건 은호였다.
은호의 손이 베이자마자 목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지금도 그랬다.
살의가 들끓었다.
“내가 사는 곳에 치료제가 많아. 상처 부위 잘 잡고 있어.”
카락의 말에 은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치료제가 많다는 건, 그만큼 다쳤다는 소리일 테니까.
얼마나 익숙하면 저럴까.
지금은 이렇게라도 마음을 열어줘서 고마웠다.
* * *
《카락.》
《.》
《절벽에서 무리를 이뤄 살아갑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갈퀴와 벽을 짚기 위한 날카로운 발톱은 절벽을 타기 위해 진화한 흔적입니다. 절벽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기에 갈퀴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주로 절벽에 매달려 있기에 몸을 보호하고자 전기를 내뿜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전기는 몸 반경으로 최대 1M 정도 퍼트릴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갈퀴로 상대방을 데리고 와 전기를 내뿜는 방향으로 공격합니다. 갈퀴는 두꺼운 바위도 가볍게 깨부술 만큼 단단합니다. 스쳐도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태블릿을 통해 정보를 살피던 은호는 흑견을 살폈다.
“…멍멍이 형님. 화 많이 났어?”
흑견은 대답 대신 은호를 지그시 볼 뿐이었다.
카락에게 상처 치유를 위해 손을 내민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났어! 나도 화가 났어!”
일렉트 역시 흑견의 곁에서 꼬리로 바닥을 쳤다.
탁탁!
은호가 전기가 담긴 토템을 꺼내자 일렉트의 꼬리 끝이 흔들렸다.
“이건 내가 한 거 아니야.”
일렉트가 억울함을 담아 흑견을 보았다.
“안다. 달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갑자기 나온 흑견의 칭찬에 일렉트는 혼란스러웠다.
은호가 다쳐서 화가 나는데, 기뻤다.
흑견이 칭찬하다니.
“…하.”
흑견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인간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는 건 어려웠다.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게 쉬웠으면 고민도 하지 않았다.’
흑견은 고개를 숙인 채 더 사납게 은호를 보았다.
어떤 경계도 없이.
조금의 의심도 없이.
상대방이 그렇게 날을 세웠는데.
어떻게 멍청하게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멍멍이 형님? 시선이 너무 아픈데?”
은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눈빛만 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멍청한 인간!”
흑견은 어둠을 일으켜 은호의 볼을 꾸우욱 눌렀다.
“…사이가 좋네.”
카락이 말을 꺼내자 은호는 볼을 찔리면서도 싱긋 웃었다.
“내 가족이야.”
은호가 꺼낸 그 소리에 흑견과 일렉트의 눈빛이 금세 순해졌다.
크흠.
흑견이 고개를 돌렸고, 일렉트가 땅으로 스르르 기어가 은호의 옆에 기댔다.
“…진짜?”
일렉트가 단춧구멍 같은 눈을 깜박거렸다.
“당연하지!”
“나… 싫어하지 않아?”
일렉트가 불안한 눈으로 보았다.
“나는… 제어도 못 해. 전기만 보면 막 달려들어. 오늘도 그랬어. 하지 말아야 했는데, 해버렸어. 사고도 쳤어. 계속 그렇게 해.”
일렉트의 고백에 카락은 일렉트를 보았다.
“에이, 그걸로 왜 널 싫어해? 삐죽아. 몇 번을 말하지만, 난 널 좋아해. 사고뭉치2 라고 해도 괜찮아. 네가 건전지를 잃어버려도 좋아. 너라서 좋은 거야.”
은호가 웃었고, 일렉트는 밀려오는 따스한 손길에 배시시 웃었다.
밀려오던 걱정이 싹 씻겼다.
은호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일렉트는 불안했다.
늘 자기 자신이 불안해, 모든 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괜찮았다.
“있잖아. 너도, 문제가 있어?”
카락은 머뭇거리다가 일렉트에게 물었다.
“있어.”
“혹시, 무리가 있어? 저들 말고.”
“몰라. 나는, 인간한테 붙잡혀서 자랐어.”
“…혼자, 도망친 거야?”
카락이 마른침을 삼키자 일렉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이 도망쳤고, 그 뒤는 몰라. 잘 살아 있을 거야.”
일렉트는 카락을 빤히 보며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내 무리는, 은호야.”
그 말에 은호는 치밀어오르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일렉트를 쓰다듬었다.
“그럼, 동족을 본 적 있어?”
계속된 질문에 일렉트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너 왜 자꾸 물어?”
“……닮아서.”
카락의 무거운 대답에 일렉트는 잠깐 생각했다.
모습이 닮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건 정말 달랐으니까.
처한 환경이 닮았다는 말이겠지.
일렉트는 기분이 나빴지만, 입을 열었다.
“난 동족이랑 달라. 나보고 멍청이라고 했어. 뭐가 멍청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보고도 멍청이라고 한 거야?”
“맞아.”
“갈퀴가 없어서?”
일렉트가 묻자 카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도 안 되는 머저리라고 했어.”
“…때리고 싶은데, 참는 거지?”
은호가 묻자 카락은 그의 손을 나뭇잎으로 감싸며 날개를 내렸다.
“잠깐만. 따라와 줄래?”
카락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밖으로 나왔다.
덩달아 은호와 일렉트가 따라갔다.
흑견은 가라는 듯이 앞발을 휘적거렸다.
귀찮은 모양이었다.
“저기 보여?”
카락은 높게 치솟은 산을 가리켰다.
그곳에 절벽이 있었다.
“저기에 다들 살아.”
“저기에?”
은호가 깜짝 놀랐다.
산 높이도 높은데, 절벽도 그냥 일자로 될 정도로 가팔랐다.
태블릿의 정보대로 갈퀴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장이 그랬어. 저기를 오르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너희 무리 대장이?”
“맞아. 이대로 떠나면 추적당할 거야. 대장은 가차 없는 존재니까.”
잔인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 다 알면서 방조했다.
“나는 저기에 올라서, 엄마와 이곳을 나갈 거야.”
카락은 아주 큰 희망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