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5화(175/302)
175화.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낸다(3)
그 희망을 본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넌 해낼 거야.”
낯선 말이 은호의 입에서 또 흘러나왔고.
“반드시.”
이를 확고히 다지는 말이 이어지자 카락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처음 봤다.
그것도 인간이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
“널 보면 알 수 있지. 넌 해낼 거야.”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내 말이, 웃기지 않아?”
애초에 대장이 그런 제안을 꺼낸 건 불가능을 봤기 때문이었다.
갈퀴가 없는 자신이 어떻게 저 높은 절벽을 오를까.
―오르기만 하면 돼. 절벽을 올라 내 동굴로 와. 네가 우리 무리의 일원인 것만 증명하면 된다고.
대장은 그렇게 자신을 비웃었다.
그곳에 있던 이들도 자신을 조롱했다.
“뭐가 웃기다는 거야?”
은호가 오히려 의문을 담아 물었다.
웃긴 건 하나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먹인 이곳의 대장이 야비할 뿐이었다.
어떤 장비도 바다를 건너라.
이것과 무슨 차이일까.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은호는 방에 치료제가 많았던 이유를 떠올리며 뒷말을 이었다.
“실제로 절벽을 오르고 있잖아?”
맞아서 생긴 상처도 있겠지만, 절벽을 오르느라 생긴 상처도 꽤 많을 테지.
“…오르고 있어. 계속, 계속 오르고 있어.”
카락은 절벽을 바라보았다.
아득하지만,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저런 눈을 하는데, 어떻게 해낼 수 없다는 말이 나올까.
“그런데 네가 떠나면 떠나는 거지, 왜 쫓아온다는 거야?”
일렉트가 물었다.
인간의 손에 붙잡혀 컸기에 무리에 제대로 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호는 싫은 건 강요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전기로 유혹한 적은 많았지만, 결국, 그곳에 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자신에게 주었다.
저 카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무리를 떠난 존재는 없어.”
카락은 잠깐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약속 때문에 죽이는 건 안 되니까. 그럼, 직접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엄마 카락과 똑같이 지친 기색이 얼굴에 짙게 나타났다.
‘……그거구나.’
은호는 이 무리가 저들에게 무얼 바라고 데려왔는지를 알았다.
‘혼자서 2인분의 몫을 해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알아서 죽으라는 거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 값싸게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무리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화합을 이루는 데 쓸 생각인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데리고 있는 게 이득이니까.
갈퀴가 없이 태어난 카락과 저 친구를 보호해야 하는 엄마 카락.
무리에 쫓겨 전전하는 그들의 간절함을 이용하다니.
참, ‘인간’ 같았다.
은호는 밀려오는 감정에 젖어갔다.
이것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일지도 몰랐다.
“친구야.”
은호는 카락을 불렀다.
‘친구는 아닌데. 오늘 처음 봤는데…….’
카락은 뭐라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말이었으니까.
“…왜?”
“내가 도와주는 건 안 돼?”
“안 돼. 어떤 도움도 있으면 안 된다고 했어.”
“어떤 식의 도움이라도? 구체적인 예시라도 있어?”
“무리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 아, 다른 종족의 존재들도.”
“그래? 그 속에 인간은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네? 아마 너희 대장은 포함시킬 거고.”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정확하다고는 말은 못 하겠어.”
“나는 종족이라는 테투리 안에 포함이 되지 않은 이들을 깨울 수 있어.”
식물.
이들을 종족이라는 말에 포함하지 않았다.
자연이 알아서 움직이겠다는데 뭐라고 할까.
“친구야. 애초에 이건 너보고 실패하라고 만든 조건이야. 너도 알고 있지?”
“알고 있어.”
“상대가 치졸하게 나왔다고, 똑같이 치졸해지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알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머리로는 알아도 똑같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생각보다 꽤 컸다.
“그런데 친구야.”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꽤나 사악해 보였다.
“…못된 미소야.”
일렉트가 앞발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물어볼 거라서. 물어보는 건 규칙 위반이 아니잖아?”
“……물어본다니? 누구한테?”
은호는 그 물음에 땅을 가리켰다.
이어 그 손가락은 절벽을 향했다.
“절벽이 좀 허전해 보이잖아? 수풀로 채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려고. 친구들아. 혹시, 듣고 있어?”
은호는 쪼그려 앉아 땅을 두드렸다.
카락의 엄마에게 손을 베였기에 피가 이미 뿌려진 상태였다.
은호의 말을 따라 바로 근처에서 싹이 트고 식물이 자라났다.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자라났다.
며칠 전, 플럿의 고향으로 가서 식물들이 건네는 꽃을 받았다.
꽃이 녹아 만들어진 물을 먹었다.
아름다운 나무도 보고, 자신의 속에 있는 그릇에 있던 싹도 자라났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식물들이 보내는 이미지가 또렷해지고, 위그드라실을 주었던 그 나무처럼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노력.
했어.
많이.
띄엄띄엄 들리는 그 소리에 은호는 웃었다.
“저 친구를 칭찬하고 싶은 거야?”
옆에 자라난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줄래?”
식물이 칭찬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유명한 모양이었다.
식물이 은호의 팔에 매달렸다.
도와달라는 감정이 전해졌다.
―은호. 이건 고마움이야. 이 숲의 마음이기도 해. 고마움은 은호에게 힘이 될 거야.
그때, 위그드라실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쪽 숲은 자신을 받아들였다고.
해당 일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쪽 숲의 식물들은 그렇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무심한 쪽에 가까웠다.
“…너, 뭐 하는 거야?”
카락이 물었지만, 은호는 웃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절벽 쪽을 가리켰다.
그쪽에 있던 식물들의 시선을 빌려 쓴 것처럼 절벽이 코앞에 보였다.
이게 성장이었다.
이토록 지시의 범위가 넓어졌으니까.
“잘 봐, 친구야.”
은호는 카락에게 알린 뒤, 식물에게 지시를 내렸다.
“절벽이 좀 허전하지 않아?”
절벽 끝에 피어 있던 넝쿨이 고개를 들었다.
위로, 위로 올라왔다.
“딱 저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은호의 지시를 따라 식물이 성장을 멈췄다.
절벽 밑을 넝쿨이 채웠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카락은 눈을 의심했다.
절벽은 위쪽에 있었다.
새하얗던 절벽 밑이 수풀로 채워졌다.
카락은 바로 동굴의 벽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그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친구는 오늘, 반드시 해낼 거야.”
은호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카락은 시선을 내렸다.
“숲이 널 보고 있었어.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고 있더라.”
“숲이… 날 봤다고?”
“널 도와주고 싶어 했어. 이건 숲의 의지고, 나는 그저 숲이 움직일 수 있게 빌려줬을 뿐이야.”
숲이 움직일 수 있게 뭘 빌려줬다는 건가.
카락은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숲이 널 도와준 거야. 이건, 규칙을 위반한 게 아니잖아?”
하지만 이어 꺼낸 그 말에 어쩐지 웃음이 났다.
아주 호쾌했다.
“널 괴롭히는 이곳에서 벗어나. 그래도 돼.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
분명히 가볍게 꺼낸 말 같았는데, 마음에 와닿으니 달랐다.
눈가가 시렸다.
카락은 부리에 힘을 주었다.
처음 보는 인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왜 이런 말을 해주는 걸까.
“그리고 나는, 가만히 있질 못하겠네.”
은호는 손이 근질거렸다.
과연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게 눈앞에 친구만 그럴까.
‘절대로 그렇지 않지.’
저들이 죽은 뒤 대체할 이들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
“안 돼, 은호. 그러면 또 병원 가.”
일렉트가 단호히 말하자 은호는 머쓱했다.
“삐죽아. 이런 일로 병원은 안 가.”
“거짓말하지 말거라, 인간.”
동굴 속에서 흑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걸어오며 은호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그 손, 병원 가야 할 상처가 아닌가?”
“멍멍이 형님. …지금 아윤 씨 만나면 나, 죽어.”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은호는 손을 내밀었다.
카락이 치료해준 손은 벌써 아프지 않았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 뭘 하려는 건가?”
“만나려고.”
은호는 절벽 위를 가리켰다.
“…대장을? 대장을 만난다고?”
카락이 기겁하며 물었다.
“맞아. 만나야지.”
“뭘 하려고?”
“무조건 허튼짓하려고 할 거야. 너희를 보내기 싫을 테니까. 너의 조건이 깨지지 않게 확실히 약속을 받아내야지.”
무리를 떠나지 못하게 막은 건 이곳의 대장이었다.
떠나게 할 마음이 있었다면 카락에게 이런 제안을 꺼낼 이유도 없었다.
대장은 카락에게 탈출 의지를 확인한 게 분명했다.
그 바람을 이용해, 오히려 희망을 꺾어버릴 셈이겠지.
앞으로 절대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무리의 규칙을 존중해. 그런데 너희를 보호하지 않으면서도 나가지 못하게 막는 건 선을 넘었어.”
무리의 대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대장을 끌어내리겠지만, 이건 자신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 이상은 개입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친구야. 나는 너와 네 부모님을 보호할 테니까.”
은호가 주먹을 내밀자 일렉트가 앞발을 내밀었다.
이게 아니었지만, 은호는 키득거렸다.
“…인간.”
“응?”
“그냥 가면 되는 일이었잖아. 모르는 척 가던 길을 재촉하면 되는 거였잖아.”
“그렇지. 그런데 외면할 수 없더라.”
은호는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몇 번을 고민한 문제였다.
도움이 필요한 환수를 보고도 지나치는 건 할 수 없다고 결론마저 내렸다.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할 기회는 지금뿐인데, 너는 그 말을 할 수 없잖아.”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의 몫까지 일하는데, 어떤 자식이 본인의 감정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저 말하는 걸 포기할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야. 그냥, 너만 갉아 먹히는 거야. 점점 더 네가 멍청하고, 바보같이 느껴지잖아?”
카락은 은호의 물음에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게 돼. 그걸 아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는 건 그 말속에 숨은 감정으로 알 수 있었다.
카락은 은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 건지.
“친구야. 더는 무엇도 포기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은호가 카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다시 말해 봐.”
라란의 보고에 대장은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공격했어요!”
“엄청 큰 존재도 있어요!”
라란을 이어 다른 카락도 목소리를 냈다.
“인간이… 나타났다고?”
대장은 갈퀴로 바닥을 긁었다.
스으으으.
묘한 소리가 울렸다.
갈퀴가 순식간에 올라가더니 라란을 향했다.
“그 말, 사실이야?”
“사, 사실입니다! 정말이에요!”
“인간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어?”
대장이 물었다.
“우리 말을 했어요!”
라란의 오른쪽에 있던 카락이 말했다.
“엄청 유창해요.”
왼쪽에 있던 카락이 뒷말을 이었다.
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을 하는 인간이라니.
‘애초에 왜 여길 와?’
대장은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인간을 공격하면, 더 많은 인간이 올 텐데.’
노리는 건 자신들일까.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나?’
힘이 있는 인간은 이곳 정도는 가뿐히 올라올 수 있었다.
‘몇 놈만 주면, 되려나?’
대장이 깊은 고민에 빠질 때쯤, 라란이 말을 꺼냈다.
“그 녀석이, 데려왔습니다.”
라란이 입꼬리를 올렸다.
재수 없는 그 꼴을 드디어 보지 않을 방법을 찾았으니까.
“…뭐라고?”
“시틴, 그 녀석이 인간을 데려왔습니다. 그렇지?”
라란이 뒤를 돌아보자 두 카락들은 잠깐 침묵했다.
아무리 그래도 시틴이 인간을 데려온 건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나타난, 이상하게 긴 존재를 데리러 왔을 뿐이었다.
라란의 시선이 날카로워지자 두 카락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틴이 싫지만, 하지 않은 일까지 거짓말하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인간이 얽힌 일이었다.
아주 중요한 문제였고.
“라란…. 그건 아니잖아.”
“맞아. 그건 아니야.”
“너희 둘은 착하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은호는 뒤에서 두 카락을 안아주었다.
“괴롭힌 건 잘못했지만, 최소한 선은 지킨 건 잘한 거야.”
갑작스럽게 안긴 두 카락은 놀란 것도 잠시, 밀려드는 향기로운 냄새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어떻게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할까.
“안녕, 또 보네?”
은호는 두 카락을 쓰다듬으며 그 사이로 걸어나와 라란을 보았다.
“너는, 진짜 못됐구나. 여기서 거짓말이라니.”
은호는 라란을 조금은 싸늘하게 보았다.
시틴을 어떻게든 묻으려는 노력마저 엿보였다.
왜 이렇게 시틴을 싫어하는지 몰라도 이는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은호 뒤로 흑견이 등장했다.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싸늘함이 동굴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안녕.”
은호는 무리의 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널 찾아왔어.”
당당한 은호의 눈빛에 대장은 몸을 뒤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