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6화(176/302)
176화.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낸다(4)
“나, 날 왜 찾아온 거지?”
대장이 말을 더듬으며 몸을 뒤로 움직였다.
도망을 치는 것 같기에 은호는 더 다가갔다.
그의 목에 일렉트가 감겨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진짜로 우리 말을 하잖아?’
대장은 속으로 기겁했다.
라란과 나머지 둘이 꺼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로 말하는 인간이 오고 말았다.
자신들이 있는 이 절벽은 산지 중에서도 꽤 높은 곳에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절벽 꼭대기 밑에 있는 동굴 속이었다.
자신의 집이고, 허락받아야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밖에 지키고 있는 경비들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닌가.
“여기 오면서 다들 절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봤어.”
은호가 입을 열었다.
절벽에 깔린 그림자를 따라 흑견이 벽을 타 움직였다.
벽을 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주 매끄러웠다.
“대장이니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혼자만 너무 편한 거 아니야?”
은호는 절벽에 매달린 카락들을 본 순간,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분명 절벽 벽면에 작은 동굴이 여러 개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장이란 자는 이토록 편안하게 누워 있는데.
아무리 카락이 절벽에서 사는 환수라고 해도 동굴로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대장이라고!”
대장이 발끈했다.
이런 오만한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깃털이 바짝 올라가 몸이 뚱뚱해졌다.
“아니, 너는 대장을 할 자격이 없어.”
은호는 저 소리에 직감했다.
카락들이 동굴로 들어가지 못한 건 모두 다 대장의 명령 때문이라는 걸.
“널 처음 본 나도 알겠는데, 다른 친구들은 오죽할까 싶네.”
은호는 비웃음을 그렸다.
무능하고, 멍청한 대장은 적보다 더 위험했다.
보통 이런 대장일 경우, 고집은 물론 본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꺼져라, 인간!”
대장이 소리치자 일렉트는 단춧구멍 같은 눈을 반 정도 감았다.
“너부터 조용히 해.”
제일 시끄러운 건 대장이었다.
“은호. 진짜 대장 맞아?”
일렉트는 의심이 들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대장은 그렇지 않았다.
“맞대.”
“이러니 여기가 이 모양이다. 잘 기억하거라.”
흑견이 말하자 일렉트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저러지 말아야지.
은호는 대장에게 더 다가가다 멈췄다.
잊어버릴 뻔했다.
대장에게 가기 전에 나눠야 할 말이 있는 환수가 있었다.
“너.”
은호의 시선이 라란에게 향했다.
그는 웃지 않았다.
“그 친구를 짓밟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끝을 보고 싶었어?”
“…네가.”
라란은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옆에서 찌르듯 쏘아진 시선도 벅차 죽겠는데, 인간의 눈빛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자꾸만 심장이 요동치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깃털마저 힘을 잃은 것처럼 늘어졌지만, 라란은 그저 소리쳤다.
“네가 무슨 상관인데? 인간 주제에!”
“그러면 너는? 네가 그 친구와 무슨 관계길래, 인생까지 간섭하는 건데? 너도 남이잖아.”
서로 시틴에게 남이었다.
진짜 가족은 시틴의 엄마뿐이었고.
“고작 남인 너는 그 친구에게 그 무엇도 강요할 수 없어. 하물며 괴롭히는 것조차 할 수 없다고.”
은호는 라란을 쏘아보았다.
어떤 마음으로 시틴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몰라도 부디 깨닫길 바랐다.
“너도 똑같이 당할 각오는 하고, 간섭한 게 맞겠지?”
타인에게 지랄하면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고.
“너는 그 친구의 상황을 이용해 힘과 권력으로 짓눌렀어.”
“지금 너도 하고 있잖아. 너도, 나를 짓누르고 있잖아? 똑같다고! 너도 똑같아!”
라란은 뒤로 물러서다 벽까지 내몰렸다.
“친구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 너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자신은 라란을 건드리지 않았다.
손가락도 닿지 않았다.
“다 이러더라. 괴롭힐 때는 그렇게 즐거워하면서 정작 본인이 당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꼬리를 말더라고. 사실 나는 아직도 그게 이해가 안 돼.”
시틴이 당한 일은 아무것도 재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몇 마디에 무너지다니.
시틴이 이곳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친구야. 나는 네가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어. 두 번 다시는 다른 애들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하고. 이건, 부탁이 아니라 진심으로 경고하는 거야.”
은호의 얼굴에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나른함 역시 지워진 그 얼굴에는 차가운 겨울이 몰려왔다.
“이해했어?”
은호가 묻자 라란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얼굴마저 새하얗게 질리자 일렉트는 은호를 보았다.
깜짝 놀라 흑견의 머리에 매달렸다.
“…멍멍이 형님. 은호가 달라졌어! 은호가 은호가 아니야.”
일렉트의 꼬리가 흑견의 얼굴을 치자 눈이 가늘어졌다.
“비키거라.”
“은호가 달라졌다니까?”
“저 모습 역시 인간이다.”
흑견이 덤덤히 대답하자 일렉트는 차분히 땅으로 내려왔다.
“맞아. 다 은호야.”
일렉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당당하게 은호에게 날아갔다.
“인간. 그 이상은 인간이 할 필요가 없다.”
흑견이 쳐다보자 라란의 발밑에 나타난 어둠이 당장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크흑.”
라란이 비명을 터트렸다.
“그렇게 공포로 상대를 지배하길 좋아하니,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흑견은 공포가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대로 라란을 그림자로 끌어 잡아당겼다.
몸이 빠르게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자, 잠깐! 잠…….”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라란이 그림자 속으로 끌려갔다.
두 카락의 비명이 터졌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사라졌어.”
그림자 속이 어떤지 알기에 은호는 흑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본다면 아주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정말 까만 세상이었으니까.
은호는 흑견이 벌인 일을 그대로 이용하고자 대장을 보았다.
두 카락처럼 경악하고 있었다.
“이 경고는 너도 마찬가지야.”
대장은 지금 벌어진 그 어떤 일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너는 대장이야. 이곳 무리의 대장이란 소리야. 왜, 시틴을 보호하지 않았어?”
“…받아줬잖아! 쓸모도 없는 걸 무리에 받아준 것만으로도 된 거잖아!”
“네 무리잖아.”
“그래. 내 무리지, 네 무리가 아니라고!”
대장이 목청을 높였지만, 단 한 번도 시틴을 놓아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주 교묘했다.
“시틴이 말하더라. 절벽을 오른다면 시틴이 원하는 걸 다 이뤄준다면서?”
“기억이…….”
파직.
일렉트가 전기를 뿜자 대장은 가소롭게 쳐다보았다.
쿠르르르릉.
갑자기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에 대장은 미소를 지워서는 뒷말을 이었다.
“…나. 기억이 난다고.”
“그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할 거야.”
은호가 약속을 확고히 하려고 하자 대장이 끼어들었다.
“시틴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종족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고 명확히 말했어. 너도 인간이라는 종족이잖아?”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비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너랑 여기서 볼 거야. 이걸로 충분하지?”
“…충분해.”
대답을 들은 뒤, 은호는 웃으며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그대로 앉았다.
“시틴이 성공하면 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시틴을 그 누구보다 부정한 건 대장이었다.
시틴의 성공과 함께 그 누구보다 신뢰를 잃을 존재는 누구겠는가.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 * *
시틴은 웅크리고 있다, 옆에 자라난 식물이 흔들리자 그대로 일어났다.
신호가 떨어졌다.
―식물이 흔들리면 올라와.
‘벌써?’
은호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시틴은 깜짝 놀랐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시틴은 은호를 믿으며 바로 절벽으로 뛰어갔다.
후우.
절벽을 앞에 두고 날개를 움직이고, 다리를 풀었다.
기회는 딱 한 번이었다.
시작한다는 신호는 절벽 앞에서 전기를 힘껏 내뿜는 일이었다.
시틴은 절벽을 보았다.
아득했다.
저기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지 마. 나는 반드시 오를 테니까.’
시틴은 다시금 숨을 내쉬었다.
전기가 잘 보이도록 한 걸음 뒤로 움직였다.
“그만해, 시틴!”
전기를 뿜기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시틴은 엄마를 보았다.
“더는 그만해, 제발.”
애절하게 말했지만, 시틴은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뭘 그만하라는 거야?”
“다 알고 있어. 네가, 대장이랑 어떤 약속을 했는지 안다고.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엄마.”
시틴은 엄마를 진지하게 불렀다.
“인간이, 나보고 해낼 수 있다고 말했어. 엄마도… 말해주지 않은 소리를 했어.”
“내가 말했다가, 네가 죽어버리면! 갈퀴도 없는 네가 저 위에서 떨어져 죽어버리면!”
카락은 절규했다.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지로 내몰겠는가.
“나는 너 없이… 못 살아. 정말이야.”
카락은 부리를 꽉 다문 채 다가와 시틴을 안았다.
“…미안해. 널, 이렇게 만든 건 나야. 그냥 차라리 날 대놓고 원망해. 그렇게 해도 되니까, 제발, 그만둬.”
“엄마.”
“시틴아. 내가 널 상처받게 했어. 나만 생각한 거야. 내가, 너무 힘들어서. …널, 외면한 거야.”
카락은 울었다.
인간이 꺼낸 말을 계속 생각했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두고두고 남을 상처가 될 수 있어.
너무도 깊은 상처를 시틴의 마음에 남겼다.
자신도 힘드니까, 시틴도 참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틀렸다.
누가 말해줘서야 비로소 알게 될 줄이야.
“엄마.”
“……시틴아, 제발.”
“마지막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 날 믿어줘요. 몸이 불편한 가엾은 자식이 아니라, 엄마 자식으로 믿어줘요.”
시틴은 더는 참지 않았다.
“나랑 같이, 무리에서 나가요. 나도 엄마가 힘든 거 더는 못 봐요.”
늘 참았던 그 마음이 터지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만 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엄마를 원망했지만,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내몬 이 무리가 잘못된 거니까.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아봐요.”
시틴이 웃었다.
말을 잃은 카락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떨어졌다.
자식을 믿지 못했다.
어쩌면 단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두려웠다.
한 번 놓으면 될 텐데, 이게 추락일까 봐,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락은 눈을 떴다.
언제 이렇게 성장했는지 몰라도, 아주 의젓해졌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믿는 일이었다.
“…그러자. 행복해지자.”
엄마가 웃자 시틴은 엄마를 안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숲이 날 도와줄 거예요.”
시틴은 엄마를 위로한 뒤, 뒤로 물러섰다.
전기를 격렬하게 내뿜었다.
덩달아 깃털이 위로 올라갔다.
위쪽에서 알겠다고 전기를 내뿜자 시틴은 피어난 넝쿨을 쥐었다.
“해내고 올게요.”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시틴은 그대로 넝쿨을 타고 절벽을 올랐다.
여기서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위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올라갔다.
넝쿨은 날개로 쥘 수 있기에 훨씬 수월했다.
넝쿨이 조금 전보다 더 자랐는지 몰라도, 꽤 오랫동안 붙잡고 올라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시틴은 멈췄다.
넝쿨이 끝이 났다.
아쉬움부터 밀려왔다.
이제 진짜라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오기도 했다.
‘될까…?’
갈퀴가 없으면 날개로 튀어나온 바위를 붙잡아야 했다.
연거푸 실패했다.
자신의 날개는 튀어나온 바위를 잡고 유지할 만큼 단단하지 않았고, 다리로만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자신은 올랐다.
다 오르지 못할 뿐이었지.
‘가자. 나는 올라갈 수 있어!’
은호의 도움을 받아 시작점부터 달랐다.
시틴은 용기를 냈다.
날개로 튀어나오는 바위를 붙잡아 다리로 벽을 파고든 채 머리를 날개 쪽으로 숙여 중심을 잡았다.
그렇게 하나씩 올라갔다.
고개를 숙였기에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아래가 보였지만, 보지 않았다.
얼마나 올라왔는지도 보지 않았다.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점점 생각이 멈췄다.
심장이 뛰는 소리 역시 빨라졌다.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다.
어떻게 올라가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저 올라갔다.
귓가를 때리는 심장 소리가 커질 때쯤, 머리가 휘청거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높이라는 생각이 들자, 날개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그대로 몸이 뒤로 움직이던 그때, 절벽 틈으로 단단한 가지가 튀어나왔다.
시틴은 가지를 붙잡았다.
“…하. 하아.”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몰라도 위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짝짝짝.
은호가 손뼉을 쳤다.
그제야 시틴은 실감했다.
자신이 올라왔다는 걸.
얼마나 남았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틴은 가지에 매달려 날개를 뻗었다.
올라왔을 때와 똑같이, 튀어나온 바위를 잡고 다리를 벽에 박아 고정시킨 뒤, 그렇게 올랐다.
오르면 오를수록 희열이 솟구쳤다.
용기가 자라났다.
속도 역시 빨라졌다.
동굴 앞에 박은 통나무를 보자 어떤 생각도 없이 붙잡았다.
동굴 안이 보였다.
은호가 보였다.
그냥 앞으로 기다시피 걸어갔다.
그대로 바닥을 보고 몸을 뉘었다.
허억. 헉.
시틴의 배가 크게 요동쳤다.
천장이 다르게 보이자, 시틴은 물었다.
“……나, 해낸 거야?”
“맞아. 친구가 해냈어. 친구의 힘으로 해낸 거야.”
은호가 웃자 시틴 역시 활짝 웃었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아니! 이건 아니야!”
대장이 소리쳤다.
은호를 노려보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힘을 썼잖아!”
“날 보고 있었잖아? 내가 언제 뭘 했는데?”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갑자기 저 가지는 어디에서 난 거야? 넝쿨은? 저기에 없다고!”
“왜 말이 안 돼? 숲이 시틴을 도울 수도 있는 건데?”
“……숲이?”
대장은 동굴 아래를 보았다.
화난 것처럼 숲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놀라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 뭐든 들어준다고 했죠?”
시틴은 거의 감기는 눈으로 대장에게 물었다.
대장은 은호의 눈치를 보았다.
“…그래.”
“여길, 떠날 거예요. 붙잡지 말고, 추적하지도… 말아요. 그게 내가 원하는 거예요.”
“시틴아. 한 번만 생각해봐. 다른 조건이 있을 수 있…….”
“아뇨! 이곳은 내게 있어, 상처 그 자체에요! 당신은 날 외면했고, 나는, 수없이 참고 있어야 했으니까!”
시틴은 상체를 일으켜 소리쳤다.
악물어야만 했던 감정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 무리의 화합을 위해 손가락질 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함부로 취급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요!”
대장을 노려보고, 들끓었던 마음 역시 털어놓았다.
꽉 막힌 감정이 풀어지며 시틴은 더 확고히 주장했다.
“엄마하고, 떠날 겁니다. 지금 당장.”
“아니! 너는 이곳을 떠날 수…….”
대장의 몸에서 피어오른 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장의 눈이 빠르게 커졌다.
“돼.”
일렉트가 꼬리로 대장의 얼굴을 세차게 내리쳤다.
찰싹!
이어 일렉트는 전기를 쏘았다.
콰지지지직.
맹렬한 빛과 소리를 따라 대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 * *
시틴은 눈을 떴다.
낯선 곳이었다.
동굴 밖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어둠이 밀려온 일이 기억났다.
“아, 일어났어?”
은호가 웃었다.
“여기… 어디야?”
“환수 연구소라고 하는데, 치료도 할 겸 데려왔어. 너희 어머니, 눈 한쪽이 잘 안 보이잖아?”
“……맞아.”
시틴은 이 상황이 여전히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올랐어. 내가 도운 건 진짜 마지막뿐이야.”
“……정말?”
“정말이야.”
시틴은 그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치료받고, 그 후에 떠나는 건 어때?”
“나, 나온 거야?”
“나왔지. 내가 데려왔어.”
“이제… 자유인 거야?”
“맞아. 네가 쟁취한 자유, 절대 놓으면 안 돼.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지.”
“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시틴은 솟구치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날개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네가 해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은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처럼 인간은 똑같은 말을 꺼냈다.
“……고마워.”
시틴은 먹먹한 소리를 냈다.
자신을 믿어준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은호의 얼굴을 본 순간 용기가 났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올랐다.
“…고마워.”
시틴은 오열하며 다시금 은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니야. 포기하지 않은 건 친구였어. 나는 그 마음을 응원했을 뿐이야.”
절망으로 찬 상황에도 시틴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이 결과를 이끌었을 뿐이니까.
“잘했어. 네가 해낸 거야.”
승리를 찬사 하는 듯한 말에 시틴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도, 마음도 더는 아프지 않았다.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은 건, 앞으로 달라질 거라는 강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