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8화(178/302)
178화. 폭시의 친구
“…형. 나왔어요!”
은호가 당당히 문을 열자 태호는 그를 반겼다.
“왔어, 은호 씨?”
“무슨 일이에요? 되게 급한 거라고 그래서 애들 밥만 주고 왔어요.”
“그럴 줄 알고, 빵을 준비했지. 이거 먹으면서 해.”
태호는 옆에 둔 봉지를 가져와서는 소파 앞 테이블에 깔았다.
뭘 좋아할지 몰라 종류별로 사 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음료수도 마찬가지였다.
은호는 피자빵이랑 비슷하게 생긴 빵부터 손을 내밀었다.
태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얼른 빵 하나를 까 한입 베어 문 뒤, 커피를 들이마셨다.
“역시 아침에는 커피가 들어가야 한다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이게 안 들어가면 죽지.”
“맞아요. 생명을 유지해주는 기분이잖아?”
“은호 씨는 커피에 우유가 들어가는 게 좋아? 아니면 그냥이 좋아?”
“위염이 도졌다 싶으면 우유를 넣고, 아니면 그냥 먹는 거죠.”
“아, 원래 그렇게 막 굴렀네? 그래서 말이야 은호 씨.”
“네?”
태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은호 역시 시선을 내렸다.
“그 손, 왜 그래?”
“…….”
은호는 괜히 커피를 마셨다.
혹시 몰라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손이 당당하게 빵을 들고 있었다.
빵 하나에 이렇게 될 줄이야.
“…형. 아주 심각한 일이라고 안 했어요?”
“심각한데, 이것도 심각하네. 아윤 씨한테 가봤어? 많이 다친 거야?”
“형. 진짜 괜찮아요. 카락과 대화하다가 살짝 긁혔어요.”
제발 아윤에게 말하지 말라는 간절함까지 내보였다.
“카락이라면 갈퀴가 진짜 날카롭잖아!”
태호의 언성이 올라가자 은호는 휴대전화를 당장 켰다.
라비가 래빈과 함께 뒹굴고 노는 동영상을 보냈다.
“이걸로 마무리 짓죠.”
태호는 의심하며 동영상을 보더니, 이내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형. 내 사진첩에 진짜 많은 거 알죠?”
은호는 휴대전화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무수히 많은 환수들의 모습이 쭈르륵 흘러나왔다.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중 은호는 흑견이 목욕하고 홀딱 젖은 사진을 보냈다.
“이거 진짜 희귀한 거 알죠? 나도 이거 찍다가, 잔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몰라요. 진짜 싫어해요. 이거 위험한 거라고요.”
“어쩔 수 없네. 정말, 이번만이야.”
“고마워요, 형.”
은호는 굳건한 얼굴로 빵을 살짝 흔들었다.
태호 역시 휴대전화를 든 채로 덩달아 흔들었다.
암묵적 합의가 흐르던 차, 흑견이 나타났다.
“그거, 내가 찍힌 사진인가?”
흑견이 태호의 휴대전화를 보려고 하자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머, 멍멍이 형님도 먹을래?”
은호는 빵을 내밀었다.
미심쩍은 눈도 잠시, 흑견이 입을 벌리자 은호는 빵을 넣어주었다.
몇 번 씹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은호와 태호가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거봐요.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맞네. 진짜네.
크흠.
태호는 헛기침을 한 뒤, 본론을 꺼냈다.
“은호 씨.”
“네, 형.”
그 어느 때보다 은호의 집중력이 좋았다.
“하이프와 얽힌 정화자 사건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죠.”
“환수 관리국에서 우리 쪽으로 영상 하나를 줬어.”
“영상이요? 그때,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숨긴 거예요?”
“숨기려고 숨긴 게 아니라, 이게 뭔지 확인한 뒤에 은호 씨에게 알려주려고 했어. 위험할 수도 있잖아?”
때론,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위험해지는 순간이 올 수 있었다.
은호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직 은호가 국가의 보호를 받을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죠. 일반인이 알면 안 되는 정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은호 씨. 저번에 은호 씨를 국가 특별 보호 인물로 지정해두자고 말했던 거 기억해?”
“기억해요.”
―은호 씨를 국가의 특별 보호 인물로 지정해두는 거야. 바로 나처럼. 이런 경우는 어떤 일이 터져도 정부가 나서서 도와줄 거야.
“혹시, 고민해봤어?”
“내가 접근하기에 버거운 정도의 정보예요?”
“그럴 수도 있어.”
태호는 조금 더 멀리 보았다.
정화자들이 환수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
어차피 죽이려고 한 건 똑같지만, 과정이라는 게 생겨버렸다.
그 과정 역시 환수를 지워버리기 위한 방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일단, 은호 씨 말대로 그곳에서 어떤 실험이 벌어졌어. 그 실험에 지금 보여줄 영상이 사용됐고.”
“대체 무슨 영상이길래 그래요?”
“사람의 언어가 아니야. 환수들이 그 영상에 과할 정도로 반응했어.”
은호는 태호가 흘린 말과 자신을 부른 이유를 보며 한 가지를 생각했다.
“…환수의 언어인가 보네요?”
“그렇게 생각해. 환수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바로 은호 씨뿐이고.”
“그리고 왕이 얽혀 있을 가능성도 높아서 그런 거죠?”
“…맞아. 왕과 관련된 내용은 대부분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니까.”
“내가 형한테 말하는 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태호는 은호의 추론을 보며 그 역시 왕과 관련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무엇도 물어볼 수 없었다.
“일단, 이번 정보가 어떤 건지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몰라서 물어본 거야.”
“할게요.”
은호는 이전과 달리 흔쾌히 대답했다.
“특별 보호를 받을게요.”
“…정말?”
“네. 환수를 지키려면 나도 더 특별한 위치가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특별 권한, 그런 것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마워. 진짜 고마워.”
“아, 그 전에 다시 물어보는데, 정부에서 날 귀찮게 하는 일은 없죠?”
“이전에는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쳐낼 수 있어.”
은호 덕에 환수 연구소의 힘도 강해졌다.
환수 연구소의 힘은 곧 보호하고 있는 환수의 수였다.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에 더는 자신의 이름 하나로 기대는 일은 없었다.
환수가 보호종이 된 이유는 환경 보호를 막는 특유의 힘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을 테니, 당연했다.
그 누구보다 계산기를 잘 두드리는 곳이니 은호의 영향력 역시 알 테지.
“그리고 이번에 은호 씨 덕에 하나율도 잡았잖아? 환수 관리국에서도 은호 씨를 도와줄 거야. 아무리 정부라도 이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어.”
“그렇죠. 내가 좀 유능했죠?”
은호가 씩 웃었다.
살짝 얄미웠지만, 사실이었다.
“이제 들려줘요. 무슨 말인지 들어볼게요.”
“잠깐만.”
태호는 다시 책상으로 향했다.
해당 영상을 재생시켰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그저 목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은호와 흑견의 표정이 굳어졌다.
표정을 살피던 태호마저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게 그 정도라고?’
“형. 이제 멈춰도 돼요.”
“무슨 말이길래 그래?”
“…모르겠는데요?”
“어…? 몰라?”
“혹시, 멍멍이 형님은 들었어?”
“이상한 소리다. 단어조차 확인할 수 없다.”
흑견 역시 모르는 걸 보니, 은호는 확신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목소리처럼 들리는데, 되게 기괴해요.”
“기괴해?”
“네. 꼭 노래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기괴해요. 솔직히 이걸 계속 듣는다면 나도 발작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거지?”
“적어도 지금은요.”
그 대답에 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진짜 이상한 말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직 모르니 혹시 그 파일, 나한테 줄 수 있어요?”
“잠시만. 딱 이틀 뒤에 흔적도 없이 삭제되게끔 바꾸고 줄게.”
“알았어요.”
은호는 다시 빵을 집었다.
“형.”
“왜?”
“이제 환수 밀렵꾼 아지트 말이에요. 대충 마무리가 됐잖아요?”
“그랬지?”
“폭시 친구를 찾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해?”
태호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이 많은데, 폭시를 데리고 갈 수도 없잖아요.”
“폭시의 친구는 어떻게 생겼는데? 알면 내가 알아볼게.”
“폭시가 말을 안 해줘요.”
“은호 씨한테도?”
“맞아요.”
“은호 씨한테도 하지 못한다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폭시가 품은 두려움이 상상 이상인데?”
“폭시 혼자 오랫동안 친구를 찾고 다녔으니까요. 헛된 희망을 품을까 봐 말을 안 해주는 것 같아요.”
만약에 비슷한 환수가 나타났다고 쳐도, 친구가 아니라면 얼마나 실망할까.
“그래서 직접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가도 될까요?”
“그것도 물어볼게. 잠시만 기다려줘. 아, 먹고 있어.”
태호는 은호에게 밥을 권하며 전화를 이어 나갔다.
은호는 빵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 소리, 진짜 거꾸로 돌린 거 아니야?’
뭔가 찝찝했다.
* * *
“…폭시야.”
숲으로 들어간 은호가 조용히 불렀다.
다른 환수와 뒹굴며 놀고 있던 폭시가 다급히 일어났다.
“은호!”
반가움이 담긴 폭시의 말을 뒤로 다른 환수들도 은호를 향해 다가갔다.
우르르 오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안녕, 애들아. 안녕, 안녕.”
한 마리씩,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전부 다 쓰다듬어주었다.
어떻게 된 건지, 환수들의 맑은 눈망울을 볼 때마다, 손바닥에 닿은 털의 부드러움을 느낄 때마다 행복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은호는 환수들과 작은 대화를 나눈 뒤, 물었다.
“잠깐 폭시를 데리고 가도 되겠어? 폭시한테 엄청 중요한 이야기가 있거든.”
아쉬움이 환수들의 얼굴에 박혔다.
하지만 나온 말은 달랐다.
“그렇다면 당연히 데리고 가야지.”
“나중에 놀자.”
“맞아. 나중에 놀아.”
“응! 나중에 놀자. 재미있게 놀고 있어.”
폭시가 앞발을 흔든 뒤, 은호의 어깨로 폴짝 뛰었다.
꼬리가 붕붕 흔들렸다.
“엄청 중요한 일이 뭐야? 어디 놀러 가는 거야? 까망이가 엄청 좋아할 거야!”
폭시는 기대를 담아 물었다.
은호는 일단 다른 환수들하고 거리를 벌렸다.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폭시를 내렸다.
그 앞에 앉아 말을 꺼냈다.
“폭시야.”
“응.”
“방금 내가 태호 형한테 허락을 맡고 온 참이야.”
“허락이라니? 우리 어디 가?”
“너의 친구 찾으러. 그동안 참느라 힘들었지?”
“…….”
폭시는 말을 잃었다.
입을 꾹 다물다 앞발을 꾹꾹 누르듯 움직였다.
“무서워?”
“…응.”
“안 갔으면 좋겠어?”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야!”
폭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데 무서워.”
“이해해. 너무 갑작스러웠지? 그럼, 나중에 출발할까?”
“나중에 가면… 흔적이 사라지잖아.”
“그게 아니면, 음, 폭시 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준다면 내가 찾아볼게.”
“…은호.”
“응?”
“나는 내 무리 친구들을 찾고 싶어. 그때, 그렇게 은호한테 말했어.”
“맞아. 그렇게 말했어.”
“그 친구들도 엄청 중요한데, 더, 간절히 찾고 싶은 친구가 있어.”
폭시는 말을 끝낸 뒤, 은호의 눈치를 봤다.
이것 때문에 그간 끙끙 앓은 거였다니.
“그럴 수 있는데? 무리에 같이 있었다고 모두 다 공평하게 마음이 가는 건 아니야. 특히 더 소중한 친구가 있을 수 있지.”
은호의 대답에 폭시는 그제야 웃으며 그에게 안겼다.
“나는, 은호가 나보고 이상하다고 말할까 봐, 무서웠어. 그건… 차별 같잖아.”
“폭시야. 이건 차별이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네가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이해해. 하이프를 저지할 때, 내가 네 힘을 썼잖아?”
감정이 눈으로 보였다.
누가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가 보이는데, 수없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그 영향으로 폭시는 ‘모두 다 좋아해야 한다’라는 사실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해해.”
묵직하게 다가온 말에 폭시는 눈을 크게 떴다.
모두 다 진실이었다.
“…내가 가장 가장 찾고 싶은 친구는 ‘티토’야.”
폭시는 먼저 말을 꺼냈다.
“티토는 불을 써.”
“…불?”
뭔가 살짝 신경 쓰였다.
플럿을 만난 뒤로 더 그랬다.
―…불을 쓰는 존재가 왕을 험담하고 다닌다고. 그거, 나 아니야.
왜 하필 불일까.
왜.
“응! 불을 써. 그리고 몸 주변에 불도 나와. 그런데 만져도 안 아파. 나랑 뭔가 닮았어.”
폭시가 친구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너랑 닮았어?”
“맞아! 딱 보면 알아. 우린 진짜 친했어. 내가 가진 이 힘에도 무서워하지 않았어.”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래?”
“은호.”
은호를 부르는 목소리의 목소리가 살짝 달라졌다.
“응?”
“그런데 왜 초조해해?”
폭시의 눈동자가 깜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