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7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79화(179/302)
179화. 폭시의 친구(2)
“무슨 일 있어?”
폭시가 은호에게 더 다가왔다.
자신이 ‘불’을 언급할 때부터 은호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걸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래. 괜찮아.”
“혹시… 내 친구와 관련된 일이야?”
그 물음에 은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폭시를 속이는 건 어려웠다.
애초에 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줄게.”
“내가 무서울까 봐, 그래?”
눈을 동그랗게 떠서 바라보자 은호는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좀 더 확실해지면 그때, 알려줄게.”
불의 능력을 가진 환수가 환수 관리 보호 구역에 의도적으로 오해를 일으켰다.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환수 보호 구역에 있는 환수들의 숫자는 상당했다.
그곳에 왕과 관련된 오해가 번져간다면 이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스네곤한테 물어보고 와야 하나.’
폭시의 친구가 불을 쓸 줄은 몰랐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스네곤하고 산북 할아버지가 있던 그곳은 환수 보호 구역 중 가장 위험한 존재가 머무는 C 구역이었다.
그곳으로 왔다면 일단, 다른 걸 다 떠나서 상당한 존재였다.
‘어느 쪽을 먼저 가봐야 하는 거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인간.”
흑견이 그림자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응?”
“가고자 한 곳으로 가거라. 거기가 먼저다.”
은호가 갈팡질팡하는 이유를 알기에 흑견은 그 고민을 끊어버렸다.
일단, 가장 유력한 곳을 뒤져보는 게 맞았다.
그들의 냄새를 기억하는 존재는 지금으로서는 폭시뿐이었으니까.
“그래. 그러자. 여러 곳을 가야 하니까.”
우선 가야 하는 곳은 여섯 곳이나 되는 중심 아지트였다.
만약에 그곳에서 흔적이 발견되면 환수 관리국으로 가야 했다.
지금 환수 관리국에서 다른 환수 밀렵꾼의 아지트뿐만 아니라, 가을이 해킹한 정보를 토대로 환수를 산 사람들까지 털고 있었다.
하나씩 구출하고 있기에 그곳이 거의 최종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도 없다면 마지막 방법은 하나였다.
폭시에게 친구의 외형을 듣고, 어떤 환수인지 추정해 해당 환수를 사간 이들을 모조리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하는 거야. 폭시와 약속했으니까.’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환수 밀렵꾼을 쳐부수는 게 우선이 되었다.
쳐부쉈고, 이제는 폭시의 친구를 찾을 때였다.
폭시가 이만큼 기다렸으면 충분했다.
“가자, 폭시야.”
은호는 공간을 열었다.
폭시를 위해 여섯 곳을 모조리 돌아보고 오는 길이었으니까.
* * *
“…여기도 나!”
땅에 코를 박다시피 한 폭시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냄새가 났다.
여기도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주 또렷해!”
은호는 폭시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여섯 곳 모두 냄새가 나는 걸 확인했다.
이 아지트에 폭시의 친구들이 왔다는 건 분명했다.
‘…다행이네.’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은호. 나,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어.”
폭시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다.
다만, 긴장하고 있었다.
“어떤 게 궁금해?”
“그럼, 친구들은 계속 여기에 갇혀 있었다는 거야?”
“아니. 아주 많이 움직였을 거야. 그래서 지쳐있을 거고.”
은호는 두리뭉실하게 말을 꺼냈다.
잔인한 말이지만, 환수 밀렵꾼에게 있어 환수는 상품이었다.
기본적인 상품이 아닌, 만지기만 해도 처벌을 받는 까다로운 상품이기도 했다.
골목 가게도 아니고, 상당한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이곳에서 교환과 환불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는 당연했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걸 보면 해당 환수를 산 사람들이 교환이나 환불을 한 게 아닐까.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이었다.
폭시의 모든 친구가 이 과정을 겪진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다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모든 친구의 냄새가 안 나. 여기에 티토 냄새도 안 나. 은호. 아직 더 가봐야 할 곳이 남았어?”
폭시의 불안한 표정을 보며 은호는 시선을 움직였다.
분명히 지혜가 다 부서트렸다고 하는데, 초능력으로 복구를 한 건지 몰라도 건물 형체가 남아 있었다.
안은 싹 비워져 잔재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지트는 여기가 마지막이야.”
“그럼, 다른 친구랑 티토는… 죽은 걸까?”
폭시가 묻자 은호는 안심할 수 있게 환히 웃었다.
“아지트는 여기가 마지막이지만, 아직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더 남았어. 지금부터 친구들이 가득 모인 곳으로 갈 거야.”
여기는 확인차 온 것뿐이었다.
친구의 냄새를 아는 폭시라면 여러 냄새가 섞인 와중에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폭시에게는 쿠션이 필요한 상태였다.
3년간 찾아 헤맸던 친구를 만나는 일이었기에, 막연한 희망을 버릴 필요가 있었다.
모두 다 살아있을 순 없을 테니까.
“많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 많이 있으면 좋겠어.”
폭시의 목소리는 슬펐기에 은호는 폭시의 등을 토닥거렸다.
지금 폭시가 느끼는 저 감정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테니까.
* * *
폭시의 표정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여섯 곳을 다 확인해봤다.
확인하면 할수록 가슴에 품고 있던 희망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걸 느꼈다.
저번에 은호가 유예림이라는 인간을 잡았던 그곳에서 맡았던 냄새가 여기는 없었다.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티토도 없었다.
‘…저기도 없으면 어떡해.’
폭시는 문을 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고 싶은데, 가기 싫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 친구들이 살아 있다고 믿었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니.
도망치고 싶었다.
“많이 힘들지?”
은호가 묻자 폭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은호. 내가 찾지 않는 게 좋았을까?”
“아니.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을 거야.”
“은호. 나 지금 저 앞으로 가고 싶지 않아.”
“그럼, 여기서 잠깐만 쉴까?”
은호는 무릎을 굽혀 폭시와 시선을 비슷하게 맞추고자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아플 수밖에 없을 거야.”
“저기 안을 바로 살폈으면 분명히 더 슬펐을 거야.”
모든 친구가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세 번의 봄이 지날 때까지 꾹 참은 게 아니겠는가.
“…친구가 누구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폭시는 은호에게 안겼다.
머리를 품에 박았다.
“그런데, 아니었어. 그냥 슬퍼. 내… 믿음이 나를 괴롭게 해. 내 믿음은 잘못된 거야.”
“폭시야. 이건, 잘못된 믿음이 아니야. 모두가 그렇게 믿는걸?”
“친구들이 날… 원망하면 어떡해. 나 혼자만 도망쳤다고, 비난하면 어떡해.”
“그건 오히려 내가 화가 나는데? 폭시는 늘 최선을 다했어. 지난 3년간, 너의 인생은 네 게 아니었는데?”
어린 폭시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친구를 기억하고,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했다.
그 이상 무얼 할 수 있었을까.
“폭시야. 너무 힘들면 도망쳐도 돼.”
“…도망쳐도 된다고? 왜?”
“폭시는 아직 아이니까. 나는 어른이야. 어른은 아이를 보호하는 존재고.”
아이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 위해서 어른이 있는 거였다.
폭시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 옆으로 눈물이 흘렀다.
훌쩍.
폭시의 눈동자에 은호의 미소가 가득 담겼다.
눈을 깜박거려도, 은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폭시는 다시금 은호의 품으로 얼굴을 파고들었다.
옷자락을 잡은 앞발에 힘이 들어갔다.
“…안아줘, 은호. 그럼, 용기가 날 거야.”
은호는 자신이 성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만 깨웠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폭시는 은호의 품에 안겼다.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포근했다.
은호가 문 앞에 섰다.
“열게, 폭시야.”
“…응.”
폭시는 주저하다 대답했다.
보기 싫다고, 무섭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은호가 지혜에게 받은 카드 키로 문을 열었다.
안쪽에 문이 또 있었다.
다른 키를 써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안이 보이는 문이었다.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그 공간에서 환수들이 있었다.
낯선 소리가 들리자 수풀 속으로 숨어버렸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도 공격 의지도 잃었고, 겁에 질린 모습이 은호의 눈에 닿았다.
은호는 마지막 문마저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숨어 있던 환수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 인간이 들어오자마자 밀려오는 냄새는 달랐다.
“…안녕, 친구들아.”
은호는 잠깐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이런 만남은 언제나 가슴이 쥐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너희를 만나러 왔어.”
목소리가 잠깐 떨렸지만, 은호는 웃었다.
내내 어두운 곳에 있다가 처음으로 빛을 본 것처럼 환수들의 시선이 은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오는 환수도 있었다.
앞발에 임시 번호가 적힌 태그가 감겨 있었다.
“잘 버텼어.”
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들, 상품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윤기가 흐를 정도로 잘 관리되었지만, 눈이 죽어버렸다.
삶의 의지가 보이질 않았다.
“…또 가야 해?”
아무렇지도 않게 은호에게 물었다.
“또, 그곳으로… 가야 해?”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환수의 눈동자에 절망이 드리웠다.
기억 속, 가장 끔찍한 곳일지도 몰랐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이제 못 보는 거야?”
죽음을 붙잡아둘 단 하나의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은호는 몸을 낮췄다.
“아니. 볼 수 있어. 이제는 볼 수 있어.”
“……내보내 줘.”
환수는 퍼석거리는 말을 꺼냈다.
“…제발, 내보내 줘.”
공격당할 수도 있음에도 다가와 은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이곳에 우리는 없었다.
천장에서 따뜻한 햇볕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저 마음을 감쌀 수 없는 모양이었다.
폭시의 귀가 뒤로 접혔다.
폭시는 앞발로 눈을 비빈 뒤, 웃었다.
“볼 수 있어! 곧 볼 수 있어!”
힘차게 말하며 땅으로 내려왔다.
폭시에게서 퍼진 푸른 나비가 팔랑거리며 이곳을 날아다녔다.
불안과 우울과 슬픔을 지워나갔다.
“……막내야?”
부스럭거리던 수풀 사이로 미어캣을 닮은 환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폭시의 눈이 커졌다.
뒷걸음질 치다 은호의 품에 들어왔다.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몸을 덜덜 떨었다.
“…너, 살아 있었어?”
익숙한 목소리에 폭시의 귀가 꿈틀거렸다.
심장이 쿵쾅 뛰었다.
혼자만 도망갔다고. 혼자만 행복하게 있었다고.
수없이 쏟아질 비난이 무서워졌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폭시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떠 멍하니 앞을 보았다.
밀려오는 건 따뜻한 온기였다.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어! 애들아! 막내가 살아 있었어!”
“뭐?”
그 소리에 숨어 있던 미어캣을 닮은 다른 환수들이 튀어나왔다.
“막내야!”
“막내가 살아 있었어?”
점점 더.
더 많이, 폭시에게 달려들어 힘껏 안아주었다.
“죽은 줄 알았잖아! 왜 우리 집으로 안 왔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막내가 살아 있다잖아! 그걸로 되는 거잖아!”
“그래, 이 바보야! 우리 막내가 살아 있다는데… 으흑.”
환수 중 누군가 울음이 터졌다.
폭시는 그 소리에 입가가 떨렸다.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나… 도망쳤잖아.”
무서웠다.
“나, 너희 버리고, 달아났잖아.”
이게 가짜고, 사실은 꿈이고, 다시 눈을 뜨면 사납게 노려볼 것만 같았다.
“왜 날… 안아주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 무슨 소리야? 우리가 널 도망치게 했는데.”
폭시는 낯선 말에 시선을 내렸다.
“…날, 도망치게 했다고?”
“그래! 붙잡혔을 때, 기억 안 나? 네가 우리 모두를 구하려고 했어. 인간하고 싸우다가 머리를 맞았잖아.”
“피가 났어. 꽤 많이 났어. 이대로 죽을까 봐, 우리가 널 탈출 시켰어.”
“달리라고, 계속 달리라고 말했잖아.”
폭시가 꺼낸 말과 다른 소리에 은호는 폭시를 보았다.
머리를 맞은 탓인지, 죄책감인지 몰라도 기억에 혼동이 온 모양이었다.
“아니래, 폭시야.”
은호는 폭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네가 친구들을 버리고 떠난 게 아니래.”
오랫동안 폭시를 괴롭혔던 죄책감이었다.
뚝.
폭시가 울었다.
자신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했지만, 여전히 미안했다.
“그래도 나는… 떠났잖아.”
“우리는 막내 네가 살길 바랐어.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었어.”
마음을 토닥거리는 말에 그제야 친구들을 보고자 고개를 올렸다.
그리웠던 얼굴이 보이자 마음을 꾹 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그저 하나의 말만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다.
앞발을 뻗고, 그들을 안아주었다.
“……너희를 계속 찾아다녔어! 정말, 오래 찾아다녔어!”
세 번의 봄이 지났지만, 이제야 진짜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폭시는 그립고, 그리운 무리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 * *
폭시와 ‘슈리트’라고 하는 환수들이 재회를 풀었다.
어떻게 이렇게 모이게 된 건지, 얼마나 인간 주변을 떠돌았는지.
탈출했다가 어떻게 붙잡혔는지.
“…티토야.”
첫째 슈리트의 말에 폭시가 귀를 쫑긋 세웠다.
“티토를 봤어? 어디 있어?”
“여기 오기 전에 우리를 구해준 게 티토인데? 그 뒤는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리를 구해주다가 인간한테 다쳤는데.”
“티토가… 다쳤어? 어디서 마지막으로 봤어?”
폭시가 조급함을 담아 물었다.
살아 있다는 소리였다.
티토가 살아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