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1화(181/302)
181화. 폭시의 친구(4)
폭시는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불꽃을 날리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은호 역시 안경을 써 맹금류의 눈을 통해 ‘티토’라고 말한 그 환수를 보았다.
여우를 닮아 있었지만, 좀 더 이질적으로 생겼다.
얼굴의 절반 정도가 나뉜 것처럼 색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얼굴 위쪽은 검은색으로 뒤덮여 귀까지 이어졌고, 아래쪽은 몸통과 발목 부분까지 하얀 털이 이어졌다.
발목 아래는 다시 검은색으로 뒤덮였으며, 꼬리 역시 검게 물들었는데, 끝은 붉었고, 불꽃처럼 타올랐다.
조끼를 입은 듯 찬란한 불꽃이 몸 주변에 타올랐다.
은호는 바로 태블릿을 보았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아타.》
《.》
《밝고 활기찬 환수입니다. 몸에 붙은 불꽃은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종의 환수와도 깊은 친밀감을 유지합니다. 다만, 진짜로 마음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드뭅니다.》
《몸에 붙은 불꽃은 평소 따뜻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고, 고열 역시 뿜어낼 수 있습니다. 속에 불이 생성되는 주머니가 있어 뜨거운 불을 토해냅니다. 불의 크기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밝고, 활기차다고?’
방금 읽었지만, 의심될 정도였다.
어딜 봐서 활기찬가.
멀리서도 티토의 두 눈동자에 어린 건 분노인 게 보이는데.
은호는 폭시를 보았다.
자신도 알아챘는데, 폭시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폭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을 부르르 떨기에 은호가 손을 뻗었다.
“그만해, 티토!”
새어 나온 건 폭시의 외침이었다.
불꽃이 잠깐 멈췄다.
윈디드는 그 순간을 노려 하늘에서 빛을 강하게 쐈다.
지이잉!
티토는 폭시를 쳐다보다 말고 네 발로 재빨리 피했다.
빛이 바닥을 꿰뚫었고, 티토는 바로 반대편으로 달렸다.
“도망은 허락하지 않는다.”
흑견이 어둠을 일으켜 티토의 도주를 막았다.
티토는 급히 몸을 돌렸다.
“어쩌라고?”
그대로 흑견을 보며 가슴팍을 부풀렸다.
입을 벌리자 거대한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은호가 토템을 두 개를 꺼내 내려왔다.
바닥에 꽂자 물이 폭포수처럼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흑견은 쏟아지는 물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치이이이익.
물과 불이 부딪치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친구야. 숲에서 불장난은 안 돼.”
은호는 가방에서 피를 뽑는 기계를 꺼내 손등을 찔렀다.
피를 가득 뽑았다.
땅으로 떨어지는 피를 보며 폭시는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지 마, 티토! 하지 마! 왜 갑자기 공격하는 거야!”
반응이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폭시는 달렸다.
“폭시야!”
은호의 부름에도 폭시는 달려 티토에게 향했다.
수풀 사이를 껑충 뛰고, 나아갔다.
그 끝에 정말로 티토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날카로운 발톱이 눈앞에 보였다.
“너도 날 방해한다면, 죽어.”
정말 이대로 눈을 찔러버릴 것만 같았다.
폭시가 눈을 깜박거리기 전, 윈디드가 아래로 내려왔다.
맹렬한 속도와 함께 묵직해진 무게 그대로 티토를 앞발로 쥐었다.
저항할 수 없는 무게에 티토의 몸이 무너졌다.
“더러운 왕의 졸병!”
티토가 내지르는 말은 하나같이 이상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티토, 왜 그래?”
폭시는 그제야 겁에 질린 채 물었다.
온몸이 증오라는 감정으로 가득 차, 티토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이질 않았다.
“나야, 나.”
폭시는 일그러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폭시 주변으로 푸르른 나비가 흩날렸다.
그 감정을 누르고자 했다.
“왜 날 기억 못 해…?”
폭시는 티토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다 탄 숯 더미에서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를 기억했다.
무언가를 감싼 흔적이 보였다.
그 사이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도.
부모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푸르른 털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살려면 다른 무리를 전전해야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은 얼른 성체가 되길 요구했다.
어른이 되어야 했다.
더 완벽한 어른으로.
그러나 그럴수록 뭔가 이상해졌다.
자신이 가진 힘을 무서워하는 무리에 쫓겨났고, 또, 또, 수없이 쫓겨났다.
뭘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 건지 몰랐다.
그러다가 티토를 만났다.
―막내야!
티토가 부른 그 말은 이름이 되었고, 슈리트들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행복했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속에서 진짜 자신을 찾는 기분이었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납치하기 전까지는.
폭시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푸르러야 할 나비가 검게 물들어갔다.
사각.
사각사각.
이상한 소리가 폭시의 귓가에 울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윈디드의 링에서 뭉쳤던 빛이 티토에게 쏘아졌다.
파르르.
티토가 몸을 떨었다.
“하, 하지 마!”
“…작은 친구.”
윈디드가 빛으로 티토를 억누르며 폭시를 불렀다.
“내가 왜 약속을 어긴 존재를 데려가는 줄 알아?”
폭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다.
“다시 약속을 체결하기 위해서야. 이건 왕을 위한 일이기 전에, 너희를 위해 필요한 일이야. 우리의 지성은 야성을 억누르기에 존재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폭시에게 다가갔던 은호는 윈디드가 꺼낸 말에 의문을 가졌다.
야성이라니.
“우릴 봐, 말썽꾸러기. 생김새가 동물과 유사하다는 거 알고 있잖아?”
그 말을 윈디드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니까.
“하지만 우리는 동물과 달라. 우리는 위대한 ‘아스테라’족이야. 이런 우리가 동물과 다른 건 지성이 높기 때문이야. 그리고 수없이 우리를 파괴하려는 야성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윈디드는 앞발에 힘을 주었다.
야성, 동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었다.
“잘 기억해 봐. 약속을 어긴 존재가 어땠는지.”
레베카도, 하이프도 극단적으로 변했다.
특히, 레베카를 보면 약속이 깨진 후와 약속을 다시 체결한 후가 너무도 달랐고.
“포악해졌잖아. 난폭해졌잖아? 그게 야성이야. 지금 봐. 약속이 얼마나 오래 깨졌는지 몰라도 작은 친구를 알아보지 못해. 그렇게 소중했다며?”
빛에 섞인 마비의 힘에도 티토는 이를 저항하고 있었다.
이게 제대로 된 상태일까.
본능에 사로잡혀 버렸다.
“작은 친구. 뭐가 무리를 위한 건지, 생각해야 해.”
이게 폭시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었다.
사실, 이 모든 건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당연한 걸 흔드는 소리이고, 본능을 의심하게 하고, 두려움을 이끌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폭시는 윈디드를 보았다.
간절함만이 가득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폭시는 그제야 윈디드에게 사과했다.
엄청난 일을 떠안고 있을 줄 몰랐다.
자신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날 도와줄래, 작은 친구?”
그제야 윈디드가 웃었다.
“응!”
폭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토를 원래대로 돌리려면 깨진 약속을 다시 체결해야 했다.
그걸 확실히 알았다.
사각사각.
귓가에 울리던 그 소리를 무시하며 폭시는 앞발에 힘을 주었다.
나비가 붉게 몸을 바꾸었다.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였다.
“티토!”
이름을 부르는 일이었다.
이름은 그 존재의 본질이었다.
“티토…!”
폭시는 다시금 티토를 불렀다.
제발 정신 차리길.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붉어진 나비가 거세게 타올랐다.
환한 불꽃을 내보이며 티토의 주변에 잔불처럼 떨어졌다.
앞발을 꿈틀거리더니, 티토는 흐리멍덩한 눈을 굴려 폭시를 보았다.
“…막내야.”
그리고 그 이름을 내뱉었다.
“나야! 티토, 나야!”
폭시가 티토에게 다시 다가갔다.
“…어떻게.”
티토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이내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여전히 폭시가 눈에 보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너, 죽었잖아?”
“안 죽었어. 나 안 죽었어, 티토.”
얼굴을 만지는 폭시의 손길에 티토는 눈물을 흘렸다.
“네가… 죽었다고 했어.”
“…누가 그랬어? 누가 내가 죽었다고 그랬어?”
“커다란 존재가.”
티토는 눈을 찌푸렸다.
누구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폭시와 헤어졌던 그 오두막에서 탈출해 다시 찾았을 때, 그 말을 들었다.
“아기… 여우를 닮은, 존재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고 했어.”
폭시가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시체를 보여줬다.
흙 사이로 푸르른 털이 보이자 더는 마주할 수 없었다.
“네가… 죽었는데. 내가 봤는데.”
“티토. 나는 이렇게 살아 있어.”
“…아니야.”
“티토, 나는 살아 있어.”
“거짓말!”
티토는 격렬하게 저항하다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호가 보였다.
인간이었다.
그 순간,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 때문이었다.
인간 때문에 그들과 손을 잡은 왕은 자신들을 외면했다.
왕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은 건 모두 인간 때문이었다.
‘막내가 죽은 것도…….’
화르르륵!
티토의 품에서 불꽃이 거대하게 자라났다.
윈디드의 앞발마저 녹아버릴 정도의 뜨거움이었다.
불이 튀었다.
수풀에서 꽃으로, 꽃에서 나무로.
불이 점점 번졌다.
매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갔다.
“다, 너 때문이야!”
증오.
티토는 오직 그 감정만 담았다.
감정이 불꽃으로 재현되듯, 티토가 달리며 나아가는 그곳에 전부 불이 타올랐다.
인간에게 붙잡힌 무리를 구해도.
구하고 또 구해도.
죽은 막내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가슴이 아팠다.
인간에게 머리를 세게 맞은 막내의 마지막만 떠올랐다.
피가 튀었다.
피가 떨어졌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피 맛이 목구멍에 치밀어 올랐다.
숨을 쉬어도, 온 세상은 피 맛밖에 나지 않았다.
“막내를!”
그리움을.
“내 동생을!”
애절함을.
“돌려내…!”
모두 한 불꽃에 담았다.
모든 걸 태워서라도.
자신을 죽여서라도, 돌아왔으면 하는 한 존재를 떠올렸다.
촤르르륵.
사슬이 은호의 손목에 감겼다.
티토의 눈이 커졌다.
아름다운 노란 나비들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동시에 포악한 어둠이 티토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로 다가왔고, 눈마저 멀어버릴 정도로 강대한 빛이 쏟아졌다.
은호는 손을 뻗었다.
빛과 어둠이 멈췄다.
흑견의 눈이 커졌고, 윈디드는 허공에서 멍하니 보았다.
은호는 웃으며 그대로 티토를 안았다.
소리가 죽어갔다.
이곳을 감싸던 모든 감정이 평온해졌다.
숲 전체를 태울 만큼 잔혹하게 타올랐던 불꽃마저 가라앉았다.
“너의 동생은 살아 있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마음을 끌어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 있어?”
그제야 말이 닿았다.
“살아 있어. 널, 간절히 보고 있어.”
“정말…?”
“정말이야.”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소리에 티토의 눈이 천천히 감기다 말고 이내 축 늘어졌다.
은호는 의식을 놓아버린 티토를 보며 웃었다.
“……미쳤는가!”
흑견이 언성을 올리며 다가왔다.
“맞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불이라고!”
윈디드 역시 화를 냈다.
지금 앞발이 쓰라릴 정도로 강한 불꽃이었다.
힘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은호는 그 불꽃에 녹아내릴 수 있었다.
은호는 토템을 꺼냈다.
그곳에는 ‘불’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안 다쳐야지.”
자신이 다치면 속상할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은호가 씩 웃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준비했다.
티토가 자신을 쳐다볼 때, 바닥에 토템을 두었으니까.
하지만 흑견과 윈디드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콜록, 콜록.”
은호는 매캐한 연기에 기침했다.
폭시가 다가오다 말고 멈칫거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거 아니야, 폭시야.”
은호가 폭시를 보며 웃자 폭시 주변에 노란 나비가 날아왔다.
“…식물 친구들아.”
은호의 부름에 식물들이 자라났다.
“코코 씨. 물 토템 좀 다 던져줄래요?”
티토가 생각보다 커서 가방을 뒤질 손이 없었다.
가방 너머로 토템이 나왔다.
심심할 때마다 열심히 만들고, 손바닥이 탈 정도로 성장도 시킨 토템이었다.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이건 반드시 막아야 했다.
은호는 눈을 감았다.
식물들이 빠르게 이미지를 전해줬다.
구출하지 못하고 불길에 갇힌 동물과 환수들이 보였다.
그 위치를 가리켰다.
“가자.”
은호의 말이 떨어지자 식물들이 떨어진 물 토템을 쥐었다.
“친구들을 구하러.”
은호가 웃었고, 식물들이 움직였다.
토템의 사용과 함께 물이 쏟아졌다.
사방에서 맹렬한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식물들이 흙을 이용해 불로 내던졌다.
불길은 빠르게 멎어갔고, 은호는 식물들에게 빠르게 정보를 받았다.
대피하지 못한 환수들 쪽으로 식물들을 움직였다.
그들의 몸을 조심스레 감싸고, 자신들 쪽으로 데려왔다.
왼쪽, 오른쪽, 어떤 방향이든 상관없었다.
매캐한 연기가 은호를 덮쳐와 기침했지만, 멈추질 않았다.
하나라도 더.
불을 진압하고, 환수를 구출하고, 그리고 은호는 잿더미로 남은 땅 위로 피를 옮겼다.
“자라라.”
이곳이 죽지 않게 싹을 틔웠다.
새카맣게 익어버린 그곳에서 푸르른 싹들이 자라나며 여름의 녹음을 드러냈다.
숲이 언제 불길에 휩싸였냐는 듯 빠르게 회복했다.
은호가 구한 환수들이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새어 나올 뻔한 눈물마저 쏙 들어갈 정도였다.
“……숲이 돌아왔어.”
은호가 뒤를 돌았다.
숨 한번 짧게 내쉰 뒤 웃었다.
“맞아. 숲은 이제 괜찮아. 너희는 괜찮아? 많이 놀랐지?”
코피가 흘러내리자 윈디드가 앞발로 은호를 움켜쥐었다.
놀랐지만, 은호는 티토를 더 안았다.
“……?”
그대로 윈디드는 하늘을 날았다.
“먼저 갈게.”
흑견이 불만을 담아 바라봤지만, 말리진 않았다.
저게 더 빠를 수 있었으니까.
“…왜 그래, 삐약아?”
은호는 물으며 아래를 보았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위에서 보니까, 숲이 돌아온 게 더 선명히 보였으니까.
푸르른 빛깔로 채워진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왔다.
“이거 보여주려고 그런 거야?”
“아니.”
윈디드는 잠깐 은호를 위로 던져서는 그대로 돌아 그를 등에다가 태웠다.
“병원 갈 거야,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