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3화(183/302)
183화. 윈디드는 바라본다 (컨셉 아트)
윈디드는 기분이 묘했다.
“…미안해.”
이번에 벌어진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티토가 자신에게 사과했다.
“널 따라갈게. 그게 맞으니까. 약속은, 존재해야 하는 거야.”
티토가 예상과 달리, 차분해졌다.
어제 난리를 치던 그 모습과 달랐다.
“왜 어제와 다른 마음을 먹었지?”
윈디드가 조금은 날이 선 채 물어보았다.
“이 인간과 대화를 나눴어.”
티토는 은호를 보며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인간이 내뿜는 빛깔을 맞으니, 마음이 신기할 정도로 평온해졌다.
“내가 널 따라가는 이유와 바로 따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줬어.”
다시 약속을 체결하러 가야 하지만, 이대로 가면 영구적인 장애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폭시가 얼마나 자신을 찾아다녔는지.
폭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씩 꺼내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티토는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폭시는 이 인간을 만나 행복했다는 걸.
―네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 많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포기하기 일러. 아직 바로잡을 수 있어.
그 말이 너무도 큰 위로가 됐다.
솔직히 자신을 원망할 줄 알았다.
저 인간을 반드시 죽일 거라는 그 감정이 자신의 기억 속에 맴돌았으니까.
“내가 벌인 죗값이 커. …내가 왕께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티토는 고개를 떨궜다.
피해가 너무 컸다.
“인간과 대화를 나눈 뒤에 나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히 생각했어.”
기억을 언급하자 윈디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커다란 존재가 날 부추겼어. 내가 약속을 깨도록. 내 증오심을 이용해, 널 물어뜯도록 유도했어.”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알고 있어?”
“나도 알고 싶어. 그 존재는 나한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
기억이 까맣게 물들었다.
커다란 존재가 자신에게 어떤 힘을 썼는지 모를 정도였다.
“내 결론은 이거야. 이건 내 잘못이고, 내가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이 목소리를 떨쳐내도록 다시 약속을 체결해야 해.”
티토는 굳은 결심을 내비쳤다.
폭시에게 더 당당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세 번의 봄이 지날 때까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폭시에게 더는 실망을 안기고 싶지도 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생겨도 널 원망하지 않아. 지금은 이 목소리를 떼어버리고 싶으니까.”
윈디드는 대답하지 않았고, 가만히 티토를 바라보았다.
생각하는 게 보였다.
“내 고민은 아직이야. 네 결심과 별개이기도 하고.”
윈디드는 병실에서 고개를 빼냈다.
“내가 결심할 때까지 기다려.”
티토에게 경고하듯 말을 꺼내며 복도를 거닐었다.
“…왜 망설이는 거지?”
티토가 은호를 보며 물었다.
“네가 걱정되니까.”
“내가 수호자의 명예에 흠집을 냈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분명히 소문을 퍼트린 건 나야.”
윈디드가 ‘불’의 힘을 가진 존재들에게 미움을 받도록 소문을 퍼트렸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소문을 늘리고, 마지막에는 왕의 수호자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얼마나 악독한가.
동정할 가치도 없었다.
“그게 삐약이거든. 그리고 왕이 널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왕을 만나봤어?”
“직접 본 적은 없어.”
“나도 본 적은 없지만, 다정하신 분이야.”
태어날 때부터 들은 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왕께서 날 돕지 않은 건, 사정이 있으셨던 거지?”
“그래서 날 대신 보내지 않았을까?”
은호는 티토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렇구나. 널 보낸 거구나.”
티토는 일렁거리는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힘겨운 듯 보였지만, 티토는 눈웃음을 지었다.
* * *
“…폭시 가족이얌?”
레비아탐이 문틀에 매달려 물었다.
티토는 지금은 곤히 자고 있었다.
“맞아. 티토야. 상처가 나을 때까지 계속 잠에 빠지기로 했어.”
폭시가 대답했다.
“폭시랑 닮았담.”
레비아탐이 웃자 폭시는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그럼, 은호랑 까망이한테 갈깜?”
“좋아!”
레비아탐의 제안에 폭시는 신이 났다.
그대로 레비아탐을 따라가다 다시 뒤를 돌아 문을 닫았다.
“잘자, 티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비아탐을 따라갔다.
몇 걸음 갔을까.
“미안해, 레비아탐.”
갑자기 꺼낸 폭시의 사과에 레비아탐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왜 사과햄?”
“나 때문에 은호가 다쳤으니까. 네가 제일 슬퍼한 거 알아.”
레비아탐은 폭시에게 다가가 은호가 그랬던 것처럼 앞발을 들어 폭시의 뺨을 쥐었다.
“너한테 가족이 있지만, 나의 가족은 너얌.”
“나도 그래, 레비아탐. 넌 내 가족이야!”
“많이 울었엄?”
“…울었어. 눈물이 자꾸만 나더라.”
“내가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담.”
“나는 레비아탐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아!”
레비아탐은 그 말에 이빨이 보일 정도로 기뻐했다.
“사실 쭉, …물어보고 싶었어.”
“어떤 검?”
레비아탐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가 감정을 읽는 게 무섭지 않아?”
“나는 폭시를 무서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엄!”
진실이었다.
환한 빛이 폭시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갈깜?”
“응!”
폭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비아탐의 뒤를 따랐다.
“오늘은 술래잡기할까?”
“좋암! 까망이도 엄청 좋아할 거얌!”
레비아탐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을 라비를 떠올리며 새어 나온 웃음을 막지 못했다.
라비는 잠꾸러기였고, 자신들의 막내였다.
* * *
몸을 웅크린 윈디드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그래서야. 삐약이가 본인을 생각하지 않는 만큼 나는 널 생각하려고. 그래서 널 말리는 거야.
은호의 말도.
―이 기다림은 길지 않다. 멍청한 선택하지 마라.
흑견의 말도.
이게 참 낯설다 싶었다.
‘이런 기분에 빠지면 안 되는데.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을 텐데.’
윈디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왕의 수호자로서 태어나, 평생 왕의 수호자로서 살아갔다.
이건 자신의 사명이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 왕의 수호자가 아닌 진짜 자신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참 낯설었다.
“삐약아.”
은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부터 이미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병실에 안 있고, 왜 자꾸 돌아다녀. 진짜 말썽꾸러기네. 잔소리가 부족한가 봐?”
윈디드가 웃었다.
“잔소리는 충분하지. 귀에서 피가 나는 줄 알았다니까?”
“날 찾아왔어?”
“겸사겸사. 내 병실로 폭시랑 레비아탐이 왔어. 사고뭉치랑 병실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신난 채 나가는데, 이걸 어떻게 그냥 볼 수 있겠어? 뭐 하나 지켜봐야지.”
“뒤를 봐봐, 말썽꾸러기. 지금 널 한 대 때리고 싶다는 표정이라고.”
“알지. 그런데 걸어 다니는데 멀쩡한 상처라 괜찮아. 진통제만 먹으면 되는 거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인가?”
흑견이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데 진짜잖아. 그리고 멍멍이 형님이 먼저…….”
어둠이 은호의 입을 막았다.
흑견이 먼저 윈디드의 이름을 꺼냈다.
―…병아리는 대체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지.
싫다고 하지만,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흑견에게 있어 윈디드는 악우가 아닐까.
은호는 키득거리며 윈디드 옆에 앉았다.
“많이 혼란스러워?”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어.”
그 대답에 은호가 웃었다.
“아마 이번 일로 많은 게 변할 거야. 너도,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커다란 존재라고 했어. 범인은 ‘우리’였어. 이게 제일 힘이 빠지는 사실이긴 해.”
윈디드의 미소가 씁쓸해 보였다.
아마도 왕이 가장 슬플지도 몰랐다.
“너희의 왕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모르겠어. 그분은 모든 걸 알려주지 않으셔. 매일 외로워 보였어. 정말 많이.”
왕은 빛 그 자체인 분이었다.
존재만으로 찬란한 빛인데,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말썽꾸러기 덕분에 정말 밝아지셨어.”
“…나?”
“맞아. 말썽꾸러기 말이야.”
“내… 이야기를 많이 했어?”
“내가 먼저 한 게 아니라 왕께서 물어보셨어. 아주, 수줍게 말이야.”
윈디드가 크게 웃었다.
다시금 떠올려도 웃겼다.
유독 은호에게만 약했다.
“왕께서는 나오지 못하셔.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기가 곤란한 상황이야.”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아?”
은호는 궁금증을 건드렸다.
“지금, 왕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떠안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목숨이라니?”
그대로 자리에 앉으려던 흑견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말 그대로야, 친구. 왕께서 우리의 목숨을 쥐고 있어. 우리를 살리는 중이라고.”
두리뭉실했지만, 윈디드는 최선을 다해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왕을 노리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왕을 잃으면 끝이야, 말썽꾸러기.”
하지만 너희는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원망이라기보다는 걱정에 가까웠다.
딱 하나가 있는데, 이걸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은호는 윈디드가 어떤 마음으로 저 말을 꺼내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중한 딱 하나를 잃어버릴까, 조바심이 드는 그 기분이라면 알고 있었다.
“삐약아.”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었다.
“나는 너희들의 임시 보호소야. 다른 인간들이 너희를 포기해도 나는 절대로 놓지 않아.”
은호는 윈디드가 내보인 신뢰에 똑같이 신뢰를 내보였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 미안했다.
“그러니까,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선으로.
목소리로.
은호는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윈디드는 웃음이 났다.
고개를 살짝 내려 은호에게 기댔다.
“말썽꾸러기. 이렇게 말해버리면, 진짜 정착하고 싶잖아.”
“정착할래?”
“안 된다!”
흑견이 격렬하게 부정했다.
“너무하네, 친구.”
윈디드는 가볍게 웃다가 하늘을 보았다.
딱 날아다니기 좋을 만큼 밝았다.
“사명이라는 게, 생각보다 버거운 날이 있어. 그게 오늘인가보다, 하고 있었어.”
윈디드는 시선을 옮겨 은호를 보았다.
사실 사명이라면 그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단어로는, 자연의 대리자였다.
단 한 명뿐이었다.
“말썽꾸러기는 힘들지 않아?”
“나…?”
윈디드의 깃털을 만지작거리다 은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말썽꾸러기가 가진 힘은 특별하니까.”
“나는 너무 좋은데? 이런 힘이 있어서 진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은호는 손을 뻗어 흑견 역시 쓰다듬었다.
“너희를 만났잖아?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이고, 최고의 순간이야!”
은호는 양팔을 벌린 채 윈디드도, 흑견도 안았다.
흑견은 고개가 기울어져 귀가 윈디드에게 닿을까, 머리에 바짝 붙였다.
“이 친구 진짜 너무하네.”
윈디드는 날개를 펼쳐 흑견마저 안았다.
“악!”
흑견은 비명을 지으며 다급히 그림자로 파고들었다.
은호와 윈디드의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흑견은 저 멀리서 윈디드를 불쾌하게 보고 있었다.
“아, 삐약아.”
윈디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티토하고 말을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거 약속이 깨지는 이유가 공통으로 보이지 않았어?”
윈디드는 얼굴을 떼 은호를 보았다.
표정이 살짝 무거워졌다.
“…왕을 향한 원망이지.”
“맞아. 그 원망이 약속을 깨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닐까?”
“좀 두리뭉실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그 커다란 존재는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하면 약속을 깰 수 있는지 말이야.”
“확실히 그래. 그 존재는 알고 있는 거야.”
“티토를 데려가면 왕께서는 알지도 몰라.”
은호가 확실함을 담아 말하자 윈디드는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왕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잖아.”
“널 보면서 확신하는 거지. 삐약이가 존경하는 분이잖아?”
“…말썽꾸러기.”
“응?”
“네가 나의 바람이야.”
윈디드는 웃음기를 뺀 채 은호를 바라보았다.
바람을 따라가는 윈디드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 * *
은호는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거 어떡하나.’
태호한테 받은 영상이 있었다.
정화자들이 이걸 환수들에게 지속해서 보여줬다고 했다.
그때 자신이 태호한테 뭔가 노래를 역재생해서 튼 것 같다고 말한 적 있었다.
‘내 생각이 틀리길 바랐는데.’
은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영상을 역재생하면 이렇게 들렸다.
「왕은 너희를 버렸다.」
손을 내린 은호의 눈빛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싸늘해졌다.
정화자들이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누군가 환수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 걸까.
아니면 하이프처럼 왕을 원망하는 환수일까.
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