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4화(184/302)
184화. 바다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은호는 마른세수하며 눈을 떴다.
‘…어렵다.’
정화자들이 환수에게 보여줬다고 하는 그 영상을 거꾸로 돌리면 새로운 말이 나왔다.
―왕은 너희를 버렸다.
짧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한 소리였다.
붙잡힌 환수들에게 절망적인 선고나 다름없었다.
‘왕과 관련된 말은 형도 조심하는데, 내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순 없지.’
일단 국가 특별 보호 인물이 되는 게 먼저라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돌아온 연락은 없었다.
요새 태호도 유독 바빴다.
그렇다고 윈디드에게 말을 하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티토 일로 윈디드도 괴로운 상태였다.
더 떠안아도 되는 상태인지 걱정스러웠고.
그렇게 요 며칠 고민만 이어지니 커다란 짐을 떠안고 있는 기분마저 느꼈다.
‘이런 깊은 고민은 진짜 오랜만이네.’
혼자서 프로젝트 전체를 떠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중압감마저 존재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왕을 잃으면 끝이야, 말썽꾸러기.
환수의 왕은 하나.
왕이 죽으면 끝난다니.
‘정화자.’
환수 밀렵꾼들의 가장 큰 세력인 SA는 무너졌고, 나머지 세력도 소탕 중이었다.
‘…정화자 새끼들.’
어쩌면 제일 까다롭고, 답이 없는 집단이 남는 건 당연했다.
‘뭐라도 잡혀야 하는데.’
탁.
문을 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잡고 스르르 모습을 드러낸 라비가 방긋 웃었다.
“은호! 일어났더냐?”
“사고뭉치…? 왜 벌써 깼어?”
은호는 책상에 놔둔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다.
오전 7시 21분.
오늘 좀 일찍 깼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일렀다.
“이 몸은 바다를 보고 싶다!”
땅으로 내려온 라비가 우다다 뛰어왔다.
“쉬잇.”
은호가 목소리를 낮추자, 라비가 그대로 멈췄다.
라비가 발가락 끝으로 걸어와 침대로 올라왔다.
은호가 이불을 걷자 폭시가 앞발로 귀를 막은 채 자고 있었다.
“…폭시, 자고 있더냐?”
“맞아.”
“레비아탐도 자고 있다. 보고 오는 길이다.”
라비가 밝은 얼굴로 당당히 말했다.
그 말이 아니었는데.
은호는 자신에게 조용히 다가오는 라비를 안았다.
“갑자기 왜 바다에 가고 싶어?”
“래빈하고 아크가 자랑했다. 나도 자랑하고 싶다.”
“…아크도?”
래빈은 그렇다고 치는데, 아크까지 그럴 줄이야.
“응. 아크도 그랬다.”
―아주 넓지.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다고 말했어.”
“그거야, 둥그니까.”
은호는 넌지시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상상력을 사실로 가로막는 건 못된 짓이었다.
“뭐가 둥글더냐? 바다는 둥글더냐?”
라비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봤다.
바다는 둥글고,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게 아닐까.
“뭘 상상하든, 그거 아니야, 사고뭉치.”
“아니더냐.”
라비는 살짝 실망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고뭉치. 바다는 진짜 커.”
“나도 그렇게 들었다.”
“거기 물이야. 라비가 제일 싫어하는 물. 게다가 짜.”
라비의 한쪽 귀가 꿈틀거렸다.
“물은 짜지 않다. 물은, 달다!”
“아니야. 바다는 진짜 짜. 그리고 물은 달지 않아.”
라비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당당히 웃었다.
“은호가 나를 놀리는 거 알고 있다. 나는 이제 그런 말에 속지 않는다. 나는 다 컸느니라!”
라비는 가슴팍에 공기를 넣으며 으쓱거렸다.
저렇게 행동하니 은호는 장난기가 가득 올라왔다.
“지금 놀리는 거 아니야. 사고뭉치가 갔다가 ‘바다 싫어’하고 집으로 올까 봐, 미리 말하는 거야.”
라비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진짜 바다가 짠 걸까.
“…바다가 왜 짜더냐?”
“궁금해?”
“궁금하다! 지금 당장 듣고 싶다.”
라비는 은호에게 매달려 간절히 바라보았다.
“바다에도 바다 생물이 있는 거 알아?”
“안다! 생선이다! 냇가에서 봤다.”
에헴.
라비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생선들이 바다에는 더 많이 살아.”
“정말이더냐?”
라비는 입맛을 다셨다.
신기함보단 얼마나 맛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은호는 소리를 죽인 채 키득거렸다.
한창 잘 먹을 때가 아닌가.
“바다가 짠 건 바로 그 생물들 때문이야.”
“…어? 잘 모르겠느니라.”
“라비도 울지?”
“아, 안 우느니라. 나는 우는 거 모른다!”
“그럼, 눈물이 짜다는 건 알잖아?”
“그건 안다.”
“바다가 냇가랑 호수랑 달리 짠 이유는 다들 울보라서 그래.”
“정말이더냐? 다들 울보였다니! 나는 울보가 아니니라.”
키득키득.
동화책에 빠진 아이처럼 라비의 표정이 살아 있었다.
“바다가 실제로 짠지, 아닌지 확인하러 갈까?”
“좋느니라!”
라비가 껑충껑충 뛰었다.
몸에 촘촘히 박힌 별이 크게 맴돌았다.
“…바다?”
폭시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미안, 너무 시끄러웠지?”
은호가 쓰다듬자 폭시는 하품하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애교가 가득한 얼굴과 달리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앞발과 뒷발이 길게 펴지며 파닥거렸다.
“잘 잤더냐?”
라비가 폭시에게 안겼다.
“까망이가 이렇게 빨리 깨는 거 처음 봤어. 늦장꾸러기잖아.”
폭시가 앞발로 라비의 코를 건드렸다.
라비가 얼굴을 좌우로 흔들다 방긋 웃었다.
“바다에 가기로 했다! 바다!”
라비는 폭시를 안고 몸을 크게 흔들다 갑자기 일어났다.
“레비아탐하고, 삐약이한테도 알려주고 오겠느니라!”
기쁨은 나눠야 했다.
라비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뒷모습을 보며 은호랑 폭시랑 웃었다.
“폭시는 바다를 본 적 있어?”
“없어. 은호는 있어?”
“있어. 아주 오래전에.”
그리움을 드러내며 웃자 폭시는 은호를 보다 앞발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은호는 그저 웃었다.
마치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은호.”
“응?”
“속마음을 말하는 게 무서워?”
폭시는 물었다.
자신이 가장 알고 있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맞아. 네가 걱정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은호는 손가락으로 폭시의 코를 건드렸다.
이런 걸 아이가 고민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폭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은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열고, 밖을 보았다.
“날씨가 좋네.”
고민이 잠깐 사라진 이 기분도 좋았다.
“딱 놀러 가기 좋은 날이야.”
* * *
‘…보자아.’
은호는 휴대전화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한적한 바다.
이를 검색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뭘 보는 건가? 밥 먹고 하거라.”
흑견이 말하자 은호는 밥을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러게. 뭘 보는 거야? 아까 들어보니까, 까망이가 바다라고 말하면서 되게 신나 하던데?”
질문을 한 뒤, 윈디드는 앞발로 고기 뭉치를 쥐어 뜯어먹었다.
“바다 가느니라!”
그릇에 고개를 박고 생선을 먹기 바빴던 라비가 얼굴을 들며 방긋 웃었다.
은호는 잠깐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낄낄 웃었다.
“사고뭉치는 얼굴로 밥을 먹네?”
“밥은 입으로 먹느니라. 은호는 바보니라.”
그 말에 나무껍질을 앞발로 쥐어 베어먹던 레비아탐이 라비를 보았다.
웃음이 터졌다.
얼굴 여기저기에 생선이 묻어 있었다.
“까망이 얼굴에 생선이 가득 묻었엄.”
“정말이더냐?”
라비가 깜짝 놀라며 앞발로 얼굴을 만지려고 하자, 은호는 다가가 얼굴을 닦았다.
얼굴을 닦기 싫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폭시와 시선을 마주쳤다.
장난기가 흘러나왔다.
“폭시도 얼굴로 먹느니라!”
“…나도?”
폭시가 고개를 들자 레비아탐과 은호가 웃었다.
“폭시 얼굴에 꿀이 묻었엄!”
“그러게 폭시야. 너도 얼굴로 먹었네?”
은호는 폭시의 얼굴도 닦아줬다.
폭시는 그냥 고기를 먹는 것보다 꿀을 발라주는 걸 좋아했다.
윈디드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진짜 가족 같았으니까.
“갑자기 바다는 왜 가는가?”
흑견이 귀찮다는 얼굴로 물었다.
“사고뭉치가 가고 싶대. 래빈하고 아크가 자랑했나 봐.”
“닭대가리가 입을 잘못 놀린 거다.”
흑견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왜 입을 놀려서 귀찮게 하는지.
가만히 안 두겠다는 표정을 보자 은호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멍멍이 형님은 바다를 싫어해?”
“바다는 그저 아주 큰 물일 뿐이다.”
“그게 특별한 거잖아. 끝이 보이지 않는 점이 더 매력적이지 않아?”
“…잘 모르겠다.”
흑견은 아주 잠깐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럼, 이번에 가면 또 다르지 않을까?”
“가서 말하겠다.”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윈디드에게 물었다.
“삐약이는 바다 좋아해?”
“너무 좋지.”
윈디드는 날개를 파닥이다 흑견이 째려보자 그만뒀다.
하지만 방긋 웃는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바다라면 환장하지! 하늘 위에서 보면 얼마나 예쁜데.”
“나! 나를 태워주거라!”
라비가 앞발을 흔들었다.
“나돔! 나도 볼램!”
“나도! 위에서 바다 보고 싶어!”
레비아탐과 폭시마저 앞발을 높이 들어 흔들자 윈디드는 덩달아 신이 났다.
“다 태워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작은 친구들!”
저렇게 밝게 웃으니 은호는 기뻤다.
티토 일 이후 윈디드는 그림자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회복하기 어려운 일이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초조함에 집어삼켜지는 것 역시 맞았다.
하지만 초조해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아직 모든 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나도 태워주라, 삐약아.”
은호는 웃으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당연하지! 그럼, 친구도 어때?”
윈디드의 제안에 흑견은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네가 날 태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지.”
“덩치는 내가 더 크다.”
“아니지, 친구. 날개를 활짝 펴면 내가 더 크지.”
“그래서 나를 태우겠다는 건가?”
코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자신을 태우다니.
“가능하다니까. 나와봐, 진짜 태워줄게.”
“불가능하다면?”
누가 봐도 도발인 말에 은호는 주먹을 쥔 채 어깨 위로 올려 둥글게 흔들었다.
‘아무나 이겨라.’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윈디드가 흑견을 태울 수 있다니.
상상조차 해본 일이 아니었다.
“뭘 바라는 거야, 친구?”
“그 친구라는 소리, 앞으로 쭉 집어치우거라.”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형님이라 부르거라.”
흑견이 우쭐거리며 웃었다.
“그럼, 나도 있어야겠지?”
윈디드는 덩달아 웃었다.
“걸거라.”
“평생, 아니다, 오늘 온종일 내 옆에 붙어 있어. 잠도 같이 자고.”
흑견이 제일 기겁하는 일이었기에 당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싫어하는데, 진짜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좋다. 당장 나오거라.”
흑견은 윈디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윈디드의 표정이 밝아졌다.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호는 손을 들었다.
“잠깐만.”
흑견과 윈디드가 은호를 보았다.
“밥은 다 먹고 가야지. 이렇게 가면 꼬맹이들이 다 배운다고.”
은호는 꼬맹이들을 가리켰다.
벌써 밀려오는 흥미로움에 젖어 기대마저 하고 있었다.
“보이지?”
뭐든 어릴 때, 잘 다져놔야 했다.
식습관도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도 밥을 먹고 난 뒤에 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었다.
* * *
가장 한적한 바다는 집과 좀 멀었다.
하지만 도시와 멀었기에 윈디드와 흑견으로 나뉘어 이동하게 됐다.
“…에취!”
은호가 재채기하고, 그의 외투 안에 있던 레비아탐도 덩달아 재채기했다.
두껍게 입어도 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은호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라비와 폭시는 윈디드의 등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따뜻하게 입히긴 했는데, 재채기하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곧 도착이다.”
흑견이 말했다.
바다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와아아암!”
숲을 지나자 모래사장이 드러났다.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르른 물결에 레비아탐은 당장 튀어 나갈 듯 반응했다.
“이게 바다얌…?”
레비아탐은 얼른 은호에게 물었다.
“맞아, 바다야.”
“엄청, 엄청, 컴!”
호수가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은호가 잔잔히 웃고 있자 레비아탐은 더 기분이 좋았다.
흑견이 모래사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내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은호는 눈을 찌푸리다 말고 깜짝 놀랐다.
사람이 오고 있었다.
되게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이쪽으로 뛰어오자 은호는 흑견의 등에서 내렸다.
“태호담!”
레비아탐이 반응했다.
정말로 태호였다.
“형이 왜 여기 있어요?”
은호가 소리쳤다.
빠르게 달려온 태호는 당장 은호의 어깨를 쥐었다.
숨을 크게 내쉰 뒤, 겨우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네?”
“이맘때쯤, 바다에 웨핀들이 올 때란 말이야. 난 연구차 온 거야. 그럼, 은호 씨는 왜 왔어?”
씩씩거린 채 태호가 설마 하며 빤히 쳐다보았다.
절대로 그 말이 나오지 않길 빌어보면서.
“당연히, 놀러 왔죠.”
은호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