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6화(186/302)
186화. 바다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3)
윈디드는 웨핀을 따라 은호와 태호를 눈에 담았다.
은호야 특별한 인간이었다.
태호는 글쎄.
자신들을 좋아하는 게 보였지만, 가까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본능적인 경계심이 마음에 가득 밀려왔다.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몰랐다.
‘왕을… 이렇게 내몬 것도 인간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새삼 신기했다.
그 속에 은호가 있으면 달리 보였고, 그 속에 은호가 없으면 또다시 달리 보였다.
하지만 은호를 거치지 않는 인간은 믿을 수 없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그 자체로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걸까.
그렇기에 윈디드는 밀려드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인간을 왜 반가워하는 거야?”
은호가 오기 전에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면서. 내가 왜 알려줘야 해?”
웨핀은 윈디드를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저 커다란 날개로 인간들을 쫓아냈을 걸 생각하니 화가 났다.
“나도 인간을 알고 있어서 그래.”
웨핀은 그 말에 깜짝 놀라 물에 들어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정말? 알고 있는 인간이 있어?”
“맞아. 정말이야.”
“너희도 인간하고 사이가 나쁘지 않아? 우리하고는 더 나쁘지만 말이야. 인간은 바다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잖아.”
“그건 그렇긴 해. 하지만 널 이상하게 보려고 물은 건 아니었어.”
웨핀은 꼬리를 바다 위로 내밀어 흔들었다.
보석같이 빛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말을 꺼냈다.
“내가 먼저 소리쳐서 미안해.”
사과가 흘러나오자 윈디드는 웃었다.
“나 때문에 인간이 도망간 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다시 왔으니까, 됐어.”
“혹시, 인간 중에 누굴 찾고 있는 거야?”
“맞아.”
웨핀은 대답하며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도움을 요청해볼까?”
윈디드가 묻자 웨핀은 눈을 깜박거렸다.
“누구한테?”
“인간들한테.”
인간한테 도움을 받는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인간들이 가까워지자 의문은 싹 지워졌다.
“숨어야 해! 지금 당장!”
“괜찮아.”
“아니야! 우릴 보고 도망칠지도 몰라!”
“저기에 내 친구가 있어.”
윈디드는 바로 날개를 펼쳐서는 앞발을 흔들었다.
은호가 덩달아 손을 흔들어줬다.
“……인간이, 손을 흔들고 있어.”
웨핀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저 인간은 내 소중한 친구야.”
웨핀은 그 말에 놀라 다가왔다.
“어떻게…인간하고 친구가 된 거야?”
더 간절한 표정으로 다시금 물었다.
“날 구해준 인간을 계속 찾고 있었어. 인간을 찾으려고, 바다를 돌고 있었어.”
웨핀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떻게 만났는지는 알고 있는데, 어디에서 처음 만났는지 몰라. 너무 어릴 때거든.”
“그래서 인간을 보고 있었던 거였어?”
“맞아. 내가 찾는 인간이면 좋겠다고 매번 생각하면서 바라봤어. 저 인간 중에는 있으면 좋겠는데.”
웨핀은 아득한 눈을 하며 은호와 태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한 번…….”
윈디드의 말이 끝나기 전에 웨핀이 갑자기 움직였다.
아주 다급했다.
바다에서 모래사장까지 움직여 더 가까이 은호와 태호를 보았다.
점점 눈이 커졌다.
* * *
“형. 아무리 봐도 웨핀이 우리한테 오는 것 같지 않아요?”
은호는 태호에게 물었다.
“다가오는데?”
환수가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은호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가 있기에 모든 게 다 설명이 됐다.
진짜 어디에 있다가 이제 왔을까.
은호를 보는 태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형. 그 눈빛은 조금 부담스러워요.”
“부담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 줘. 은호 씨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아는 상식이 다 깨졌다고. 나도 그냥 포기했어.”
“그런데 형.”
“왜?”
“다른 환수들도 많잖아요. 바다에 사는 환수들이요.”
“왜 하필 웨핀이냐고?”
“맞아요.”
바다에 사는 다른 환수들도 있을 텐데.
왜 웨핀일까.
“…으음, 시기가 됐으니까?”
태호는 뭔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보통 설치 때 돕고, 나머지는 연구원들이 해. 보고 받고 그런 거지. 다른 생태계도 살펴봐야 하니까.”
“직접 뛰고 싶겠죠?”
“그런 생각, 엄청 많이 들지.”
태호는 실실 웃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무거웠다. 보안 문제도 있었고.
“형. 솔직히 말해 봐요. 웨핀이랑 뭐가 있죠?”
“맞아. 내가 처음 구한 환수야. 새끼 웨핀을 구했었지.”
그때를 떠올리는지 행복함이 담긴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좀 은호 씨처럼 앞뒤 안 가릴 때가 있었거든.”
“아니, 형. 내가 언제 앞뒤 안 가린다고…….”
은호는 말을 하다 말고 바로 흑견을 보았다.
이럴 때가 되면 흑견이 꼭 끼어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얌전했다.
온 신경이 윈디드에게 쏠린 것만 같았다.
‘아니,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싫길래 그러는 거야?’
은호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흑견이 멈췄다.
덩달아 몸이 앞으로 쏠렸다.
“다 왔다.”
흑견은 멀찌감치 떨어진 채 멈췄다.
“왜 그래? 앞에 뭔가 있어?”
태호가 물었다.
아직 웨핀하고 거리가 꽤 멀었다.
“아뇨. 멍멍이 형님이 더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윈디드에게.
흑견은 불편함을 담아 은호를 시선 안에 담았다.
“사실이잖아, 멍멍이 형님.”
은호는 대놓고 흑견을 놀렸다.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며 은호는 만족스러워했다.
내리기 전에 슬쩍 손을 뻗었다.
태호 앞에 앉아 있던 레비아탐의 볼을 찔렀다.
감각이 들자마자 레비아탐이 고개를 돌렸지만, 은호는 이미 땅으로 내려간 뒤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레비아탐을 보며 은호는 키득거렸다.
이 맛이었다.
“다 봤다, 은호.”
라비가 흑견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은호가 찔렀다!”
“은호가 찌르는 거 맞았짐?”
레비아탐이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렸다.
그대로 은호에게 가려다 멈췄다.
발에 닿는 감각에 눈이 커졌다.
생각조차 다 잊어버릴 만큼 부드러웠다.
“와아아아암!”
“신기하지, 레비아탐?”
“응! 완전 신기햄!”
폭시가 모래를 향해 뛰어내리며 몇 바퀴나 빙그르르 굴렀다.
웃음이 마구마구 튀어나왔다.
좌우로 몸을 털자 모래가 흩날렸다.
레비아탐과 라비가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잠깐만, 은호 씨. 진짜 뛰어내려도 되는 거야?”
태호가 물었다.
뛰어내리기에는 꽤 높았다.
“멍멍이 형님. 잠깐만 몸 좀 낮춰줄래?”
흑견이 어둠으로 태호를 들었다.
그를 내려놓으려던 차, 흑견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 끝에 웨핀이 있었다.
갑자기 뿔 쪽에 까만 구슬이 생기나 싶더니 자신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주변에 있는 모래를 다 빨아들이자 몸집마저 커졌다.
“하!”
흑견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가뜩이나 기분도 더러웠는데.
태호를 놔둔 뒤, 흑견은 발톱을 세웠다.
“…멍멍이 형님?”
그대로 달려가 블랙홀 같은 힘을 향해 발톱으로 그어버렸다.
어둠이 그 뒤를 이어 잔상처럼 길게 나타났다.
서걱.
웨핀의 힘이 잘려버리며 흡수했던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흑견은 모래를 어둠으로 짓누른 채 웨핀를 노려보았다.
“잠깐만, 친구!”
윈디드가 다급히 달려들어서는 흑견을 밀쳤다.
“뭐 하는 짓인가?”
하지만 흑견은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어둠으로 윈디드의 몸을 밀었다.
윈디드는 링에 맺힌 빛을 터트렸다.
어둠이 살짝 힘을 잃는 사이, 윈디드는 웨핀 앞에 똑바로 섰다.
“진정해, 친구. 오해가 생겨서 그래.”
“날, 공격했다.”
샛노란 눈동자에 날이 섰다.
얼마나 짜증이 섞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저 존재가 인간인 ‘태호’를 기다리고 있었대. 방금 네가 태호를 들었을 때, 공격했다고 착각한 모양이야.”
“뭐?”
“그게 아니라면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 널 왜 건드리겠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흑견은 걸음을 옮겨 윈디드 뒤에 있는 웨핀을 보았다.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웨핀의 몸이 바짝 굳었지만, 눈빛만은 꺾이질 않았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눈이었다.
이 감정을 몰랐다면 분명히 달려들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알게 되었고, 묘한 기분이 휩싸였다.
흑견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를 이길 힘도 없으면서 왜 겁대가리 없이 덤비는 건지.’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달리는 소리가 났다.
보나 마나 발소리는 은호였다.
은호는 흑견의 앞발을 붙잡아서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형을, 허억, 헉.”
“숨이나 쉬거라.”
흑견은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은호를 보며 혀를 찼다.
은호는 숨을 몰아쉬다 진정이 됐을 때쯤에 고개를 올렸다.
“…저 친구, 형을 기다린 거야?”
조금 전 태호가 그랬다.
―맞아. 내가 처음 구한 환수야. 새끼 웨핀을 구했었지.
“맞아. 기다렸대.”
은호는 윈디드의 말을 듣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웨핀이 보였다.
지느러미에 벌의 날개가 달린 것처럼 투명했고,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게 아름다웠다.
날카롭게 솟은 뿔은 또 얼마나 용맹한가.
특히 눈동자가 가장 시선이 갔다.
보석을 박았다는 생각 이외에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
은호는 거리를 유지하며 웃었다.
웨핀이 그대로 굳었다.
“형을 보러 왔어?”
“…….”
웨핀은 입조차 벙긋하지 못했다.
“널 도와줄지도 몰라, 작은 친구.”
윈디드의 목소리를 들어서야 웨핀은 그대로 정신을 차렸다.
몸이 말라가는 걸 느꼈다.
다급히 바다로 몸을 움직였다.
“밀어줄까?”
은호가 물었지만, 웨핀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물로 몸을 한참이나 적신 뒤에 웨핀은 고개를 내밀었다.
은호가 보였다.
방긋 웃고 있었다.
낯설었다.
“……내가 왜 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야? 힘을 썼어?”
“맞아. 내가 가진 힘이야.”
웨핀은 앞으로 나왔다.
그러다 태호를 보고는 갑자기 바다로 들어갔다.
“…나, 나 때문이야? 뒤로 갈까?”
환수들이 인간에게 날을 세우는 건 당연했다.
“아니에요, 형. 오늘은 형이 주인공인걸요?”
“주인공이라니?”
태호는 이게 또 무슨 장난인가 싶어 은호를 빤히 보았다.
“형. 아까 형이 말했잖아요. 새끼 웨핀을 구했다고요.”
“아, 그거? 한참 지난 일인데. 날 기억도 하지 못할…….”
태호는 말을 멈췄다.
은호와 함께 한 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쯤 되면 바로 느낌이 왔다.
“그, 그, 환수라고?”
“네. 형을 기다렸대요.”
“내가 새끼 때 구해줬던, 웨핀? 그 웨핀이라고?”
“네. 그 친구가 맞아요. 지금 형 때문에 부끄러워서 숨은 거예요.”
은호가 웃으며 건넨 그 말에 태호는 어떤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먹먹함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주책없이 순식간에 눈가마저 붉어졌다.
“…잠시만, 진짜 잠시만.”
태호는 밀려드는 감정을 바로 억누를 수 없었다.
몇 주 전, 하이프 사건이 터졌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하이프에게 아주 큰 일이 일어났다.
남편을 잃었고, 그 여파로 레드독이라는 단체마저 만들어 모든 인간에게 증오를 드러냈다.
은호의 도움으로 하이프에게 사과했고, 하이프가 자신을 용서해줬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회의감이 가슴에 깊게 박혔다.
‘…이대로 괜찮은 건지. 고민했는데.’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제안을 거절하고, 환수를 위해 환수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이미 환수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으니.
“정말 너야?”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웨핀이 새끼 때, 육지에 산다는 것도.
저 존재가 웨핀이었다는 것도.
태호는 바다를 보았다.
출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구해줬든 그 새끼 웨핀이야?”
뭘 했는지 몰라도 그때, 웨핀은 나무 밑에 깔려 있었다.
손바닥만큼 작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끼루룩!
그냥 도와달라는 줄 알았다.
가까이 가니, 블랙홀 같은 힘을 썼고, 그 속으로 자신의 팔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겁이 났고, 무서웠다.
그대로 도망치려고 했는데, 도망칠 수 없었다.
눈물이 섞인 눈을 보자 그냥 알았다.
자신만큼이나 웨핀이 무서워한다는 걸.
그 감정을 알게 되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어떻게 그 힘이 나왔는지 몰라도, 통나무를 혼자 밀었다.
웨핀은 무사히 나왔고, 그대로 도망가듯 움직였지만, 너무 느렸다.
문득 든 호기심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웨핀은 기고, 또 기어 바다로 향했다.
태호는 웨핀이 도망친 그 바다를 떠올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잖아?”
자신은 그 여파로 팔이 부러졌지만, 웨핀이 마지막에 건넨 ‘끼루룩’ 소리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 찾아보고, 환수를 향한 이 나라의 보호 절차가 얼마나 처참한지 알게 되고, 그렇게 자신은 어느새 환수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바다에서 고개를 내민 웨핀과 시선이 마주치자 태호는 밀려드는 떨림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시작이 되었던 환수를 만날 줄이야.
“……어떻게 날, 기억해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