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7화(187/302)
187화. 바다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4)
웨핀은 태호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언가를 묻는 듯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인간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때, 자신이 너무 어려 함부로 힘을 썼다고.
아니, 그 전에 혹시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 그것부터 묻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더 많았다.
웨핀은 태호에게 다가갔다.
“날,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나한테 뭘 물은 거야?”
웨핀이 물었고, 대답은 은호에게 흘러나왔다.
“네가 어떻게 형을 기억했는지, 알고 싶대.”
말이 들렸다.
짜릿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웨핀은 휘둥그레진 눈 그대로 태호를 보았다.
정말이냐고 묻는 것 같기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구해줬잖아!”
“형이 구해줬대요.”
“나무에 깔린 날 인간이 구해줬어. 내가 너무 무서워서 널 공격했는데도 날 구해줬어.”
웨핀은 아주, 아주 오래 간직했던 그 말을 꺼냈다.
새끼에서 성체가 됐음에도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새끼 때, 그저 길을 걷다가 쓰러지는 나무를 어떻게 바로 눈치챌까.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그 공포만 선명했다.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네가 나타난 거야.”
웨핀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저 우연이었어.”
태호는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십여 년이나 흘렀다.
“네가 날 구해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심지어 날, 기억하고 있잖아?”
웨핀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없이 바랐던 순간이 찾아올 줄이야.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눈물부터 흘렀다.
“…미안해, 인간. 정말, 미안해.”
웨핀은 가슴에 콱 박혀 있던 죄책감을 꺼냈다.
“네가 날 해치려는 줄 알았어. 그때, 많이… 다쳤어?”
“아니야. 나는 괜찮아. 봐, 멀쩡하잖아.”
태호는 그대로 위로 뛰고, 주먹도 휘둘러 보고 어색하게 발도 올렸다가 내렸다.
이제는 그때, 웨핀의 행동이 보호 본능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렸다.
가장 본능이 강할 때였다.
그저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은호는 은호라서 특별한 게 아니었어?’
환수는 인간에게 본능적 두려움 혹은 불쾌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왜 모를까.
지금은 은호의 개입이 최소화된 상황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제야 웨핀의 눈이 살며시 포개졌다.
태호는 반가움과 동시에 일어나는 이 낯선 느낌 묘했다.
환수란 생물은 이토록 헌신적이었던가.
“내가 널 나무에서 구해준 뒤에도 무섭지 않았어? 내가 쫓아갔잖아.”
“아니. 날, 바다까지 보호해줬잖아? 내가 바다로 간 뒤에도 넌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고.”
아름답게 물든 웨핀의 기억에 태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없이 인간을 거부했던 모습과 너무도 다른 상황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어떻게 자신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럼, 연구소에서 있다 떠난 환수들도 자신을 그렇게 기억할까.
태호는 계속 의문을 느꼈다.
“날 구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를 다시 만나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일렁거리는 웨핀의 눈동자를 보자 태호는 진심을 느꼈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잖아. 아니, 애초에 내가 널 잊어버렸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넌 날 기억 했어.”
“만약에 날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도 계속 기다릴 생각이었어?”
“당연하지. 계속 널 기다렸을 거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태호는 답답함을 드러냈다.
환수와 말이 통하지 않기에 늘 환수의 겉부분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은호를 만난 뒤에도 그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은호와 얽힌 환수는 거의 다 사람에 관한 의심이 낮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은호와 얽히지 않은 환수와 소통한 건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랐다.
은호는 태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전해주었다.
“네가 날 도와줬으니까. 내 목숨을 구해줬잖아?”
웨핀이 대답했고, 그 말을 전해 들은 태호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나가다 생긴 행운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일이잖아. 계속, 날 기다릴 정도의 일은 아니지 않아?”
그게 뭐라고.
그냥 뒤를 따라간 게 뭐라고.
환수가 가진 본능은.
인간에게 느끼는 그 낯섦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무언가 상식이 박살이 나는 기분이었다.
“너한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아니야. 우연이었든 너의 친절에 나는 목숨을 구했고, 수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 그러니 말하는 게 맞아. 고맙다고.”
웨핀은 태호가 무슨 말을 하든 웃었다.
저 목소리에 걱정만 느껴졌다.
“날, 기다리다가 큰일이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 육지 주변에 맴돌다가 환수 밀렵꾼하고 정화자 새끼들한테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태호는 점점 화가 올라왔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그랬다고 생각하니까 조바심이 밀려왔다.
경계심을 억지로 누른 게 아니겠는가.
환수란,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착해빠진 생물이었다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형.”
“아니, 은호 씨. 이게… 말이 되냐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데. 고맙다는 그 말이 뭐길래 목숨까지 걸어버리는 거야?”
“…그렇더라고요. 고맙다는 그 말을 하려고 아주 먼 곳까지 달려오더라고요.”
은호는 플럿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버려요.”
태호는 그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은호 씨가 환수들한테 그러는 거였어?”
옆에서 보면 정말이지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굴렸다.
왜 본인을 생각하지 않는지, 화가 날 정도였는데, 환수들은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예요.”
“…무섭지 않아?”
마치 세계가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도와줬다는 이유 하나로 날 좋아해 주고, 계속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서울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동시에 두려웠다.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 변할지 몰랐다.
늘 그런 불안정함 속에 있기에 환수가 주는 완벽함은 도리어 낯선 게 되었다.
지금도 자신은 계속 웨핀이 왜 저렇게 하는지,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전혀요. 오히려 여기가 가장 편안한걸요.”
태호는 그 대답으로 은호의 상태를 알아버렸다.
그대로 은호를 안았다.
“……형?”
은호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몰랐다.
태호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사람에게 당했으면, 맹목적인 믿음을 주는 환수가 편할까.
‘…네가 이렇게 할 정도로 사람이 널, 망가트린 거야.’
“형, 왜 그래요? 지금 저 친구가 당황해하고 있어요.”
“고마워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때, 은호가 건넨 그 말은 자신을 신뢰한다는 말이었다.
은호가 정말 모든 용기 쥐어짜 꺼낸 말이었다.
그것도 몰랐다니.
“에이, 고마운 건 저 친구인데요. 그 말도 저 친구한테 해야죠.”
태호는 뒤로 물러섰다.
은호가 웃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태호는 숨을 천천히 내쉬고는 웨핀을 보았다.
“갑자기 화를 내서 미안해. 네가, 걱정돼서 그랬어.”
정말 고마웠다.
몰랐던 감정을 알게 해줬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줬으니까.
“솔직히 날, 기억할 줄은 몰랐어. 네가 날 찾아와서 정말 고맙기도 해. 그러나 사람은 경계해야 해.”
“너는 아니야.”
웨핀은 예외를 뒀다.
“나도 예외를 두지 마. 사람은 잔인해. 육지 근처로 이유 없이 오면 안 돼.”
태호는 웨핀을 다그쳤다.
“아니. 나는 네가 뭐라고 해도, 널 예외로 둘 거야.”
“날 계속… 만나러 올 거라고?”
“응. 너와 더 많은 말을 나누고 싶어. 내가 본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왜…?”
“너는 내게 있어 다정한 첫 온기니까.”
웨핀은 육지로 기어 왔다.
태호가 놀라 가까이 다가갔지만, 웨핀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바다를 보여줄까? 저 인간한테도 보여줄게.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줬으니까.”
“내가… 좋은 거야?”
“맞아. 나는 네가 좋아.”
웨핀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태호를 보았다.
태호는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밀었다.
웨핀이 그의 손아귀에 살며시 기댔다.
따뜻했다.
태호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 또 올 수 없는 기회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은호 없이 닿을 수 없는 세계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태호 역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널 만난 뒤로 나는 너희를 위해 일하고 있어. 내 시작은 바로 너야.”
웨핀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오래 걸렸지만, 우린 만났어. 그렇지, 인간?”
“맞아. 혹시 그때, 네가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기억해.”
웨핀은 태호를 보며 말을 했다.
“또 만나자. 그렇게 말했어.”
그때, 머릿속에 맴돌던 바로 그 말이었다.
‘…또 만나자였구나.’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나더라니.
“다음에도 너를 만나러 오고 싶어. 허락해줄래?”
웨핀이 지느러미를 내밀었고, 태호는 망설였다.
이렇게 인연을 이어가도 될까.
“형.”
은호가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 누구보다 많은 환수를 봤겠지만, 정서적인 교감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태호가 어려워하는 게 아닐까.
은호는 그가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 인연은 태호가 더 많은 환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태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두렵긴 무슨. 은호 씨는 내가 누구인지 잊었어?”
자신이 웨핀을 만나 환수 연구소의 소장이 된 것처럼 후회보다, 앞으로의 인연을 생각하기로 했다.
“설태호라고 해. 다음에 만나면 내 이름을 불러줘.”
태호는 웨핀의 지느러미를 잡았다.
* * *
풍덩!
폭시가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다.
곧 깜짝 놀라며 은호에게 달려왔다.
“…짜!”
“정말이더냐?”
멀리서 바라보던 라비가 바다로 달려갔다.
앞발을 길게 내밀며 살짝 축이려던 차 파도가 몰려왔다.
“…푸하!”
얼굴로 바닷물이 튀었다.
“짜느니라! 정말 짜느니라!”
퉤퉤퉤.
은호 말이 사실이었다니.
“정말로 짬?”
레비아탐은 파도가 밀려갔을 때를 노려 움직였다.
앞발로 바다를 찍고는 뒤로 물러나 맛을 보았다.
“짬! 진짜 짬!”
레비아탐은 꼬리를 바짝 올리며 깜짝 놀랐다.
“물인데, 왜 짠 거야?”
“이 몸은 아느니라.”
폭시의 물음에 라비가 우쭐거렸다.
“왜 짠 거얌?”
폭시와 레비아탐의 시선이 쏠리자 라비는 당당하게 말했다.
“물고기들의 눈물이니라!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은 모두 울보이기 때문이니라!”
“…어떻게 알았어?”
웨핀이 태호를 데려오다가 깜짝 놀랐다.
“나는 모르는 게 없다!”
라비가 당당히 말하자 웨핀은 신기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은 정말 다 울보였다.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지?”
“나야, 작은 친구.”
윈디드가 앞발을 들었다.
웨핀은 윈디드를 잠깐 보았다. 아주 컸다. 날개도 보였다.
“괜찮겠어? 날개가 젖을 텐데?”
“괜찮아. 금방 마르거든.”
“그래, 좋아. 그럼, 다음에는 누구야?”
웨핀의 물음에 윈디드는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있는 흑견을 향해 앞발을 슬쩍 올렸다.
캬악.
흑견이 날을 세웠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멍멍이 형님 대신 들어갈게.”
은호가 손을 뻗었다.
꼬맹이들은 아무래도 겁을 먹은 눈치였다.
아직 바다가 낯설기에 안까지 들어가는 건 더 큰 두려움을 안길 수 있었다.
“알겠어. 그럼, 날 꽉 잡아.”
웨핀을 말을 듣고, 윈디드는 몸통을 잡았다.
그대로 바다로 퐁당 들어갔고, 폭시와 레비아탐, 그리고 라비는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바닷속은 어땠어요, 형?”
“…잠시만. 내가, 멀미를 하나 봐. 배를 탔을 땐 괜찮았는데.”
태호는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모래사장 위로 쓰러졌다.
덜덜 떨었다.
가을이 걸어와 수건을 덮었다.
“가을 씨는 어때요?”
“전 젖는 건 딱 질색입니다. 물놀이 즐기고 오십시오. 이 초겨울에 말입니다.”
가을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
은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을 나무들로 가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가운데 불도 피워서 온기가 제법 유지되고 있었다.
“가을 씨.”
“말씀하십시오.”
“특별히 발견한 건 없죠?”
“은호 씨.”
“네?”
“제 업무는 끝났습니다. 은호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은 앞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꼬맹이들을 향했다.
“놀러 왔으면 노는 게 맞고요.”
“맞네요. 여기 와서 그런 이야기는 진짜 눈치 없었네요.”
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흑견은 그를 보았다.
“저기 앞까지만 갈래, 멍멍이 형님?”
“알겠다.”
귀찮지만, 흑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가는 게 뭐라고.
“…고마워, 은호 씨.”
태호가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은호는 씩 웃었다.
“뭘요.”
태호는 은호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이네.’
“행복하셨습니까?”
가을이 물었다.
“가을 씨도 바닷속 구경해볼래? 나오면 추운데, 안은 괜찮아.”
“싫습니다.”
“웨핀이 날 기억했대.”
“은호 씨한테 들었습니다.”
“이게 참, 신기하더라. 그거 알아, 가을 씨?”
“모릅니다.”
“나, 회의감이 왔어.”
“…박사님이요? 환수에 미친 박사님이요?”
가을은 그제야 태호를 걱정스레 보았다.
“그런데 오늘 웨핀을 만나고 나니 죽기 전까지 소장 노릇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어.”
환수란 생물은 정말이지 바보 같고, 다정했다.
죽을 때까지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하십시오. 제 퇴직은 박사님이 그만두실 때까지니까요.”
태호는 크게 웃었다.
“말이 통하니까, 다르더라.”
“다르겠죠.”
“…너무 고마웠어.”
웨핀도, 은호도.
모두.
태호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서서 보고.
앉아서 보고.
지금 누워서 보고 있지만, 바다는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아름답네.”
태호는 길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가을 역시 잔잔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