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8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89화(189/302)
189화. 바닷속 이야기(2)
점점 벌어지는 환수의 입속에 드러난 이빨에 무서울 법도 하지만, 은호는 그저 바라보았다.
무섭지 않았다.
“네가 바다의 수호자야?”
은호가 묻자 도리어 물러선 건 바다코끼리의 앞니를 가진, 곰치를 닮은 환수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인간…인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인간이었다.
인간은 다 저렇게 생겼으니까.
다시 환수가 다가왔다.
“네가 우리 말을 하니, 잘 됐다. 여길, 떠나라. 이건 내 배려라는 걸 잊지 말고.”
협박이 섞인 말이었다.
“친구야. 이건 배려가 아니야. 일방적인 말이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게 누구지?”
환수가 다가왔고, 산호초가 하나둘씩 더 크게 자라더니, 은호를 감쌌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과 별개로 노려보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내가 배신한 거 아니야, 친구들아. 나는 너희가 아는 그 존재하고 달라.”
은호는 산호초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정말, 내가…….”
은호는 갑자기 튀어나온 빛에 아래를 보았다.
위그드라실이 분하다는 듯 손을 빙글빙글 돌렸다.
“위그드라실…?”
은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위그드라실이 여기에 있는지, 바다에 있어도 괜찮은지, 잠깐 머리가 정지됐다.
위그드라실은 은호를 보더니 가슴을 두드렸다.
난 괜찮아.
곧 시선을 돌려 산호초들을 보았다.
무어라 말을 하듯 손을 흔들었다.
산호초들이 급히 쪼그라들었다.
갑자기 시선이 사라졌고, 산호초들이 환수를 향해 더 날을 세웠다.
짜잔.
위그드라실이 당당하게 은호를 보았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중에 보자.
딱 그 눈빛에 위그드라실의 머리 위 싹이 힘을 잃어 비실거렸다.
당장 은호에게 매달렸다.
억울해.
그렇게 말하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힘이 있는 인간이 아닌데? 이건 뭐지?”
눈으로 직접 보아도 믿기 어려운 일이 펼쳐졌다.
환수는 눈동자를 자꾸만 움직였다.
갑자기 산호초가 자란 것도 모자라 저 인간을 보호하다니.
‘……설마.’
환수의 눈이 커졌다.
위그드라실은 이내 무언가를 보며 깜짝 놀랐다.
헤엄쳐 은호의 손바닥에 앉았다.
많이 아프냐는 듯 손으로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괜찮아. 몰래 온 거랑 별개로 걱정해줘서 고마워.”
위그드라실은 은호의 손바닥 끝으로 걸어가 산호초를 바라보았다.
산호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그드라실은 그 작은 손으로 환수를 가리켰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공겨어억!
딱 그런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산호초들이 환수를 향해 일제히 몸을 뻗었다.
잎이 하나 더 났다고 그런지, 아주 능숙해졌다.
“친구야. 나는 그냥 놀러 왔을 뿐이야. 우리 그냥 서로 모르는 척할래?”
은호는 원만한 합의를 바랐다.
바다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바다로 들어온 건 자신이었다.
저 환수가 특별한 위치에 있는 만큼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 대처하고 싶었다.
“인간, 자연의 대리자였나?”
환수는 조금 전과 다른 눈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 이야기가 나오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갑자기?’
지금 산호초들에게 붙잡힌 건 저 환수였다.
어떤 걱정도 하지 않는 눈이었다.
휘이이익!
휘파람을 닮은 소리가 환수의 입에서 퍼졌다.
초음파처럼 귀를 때리자 은호는 비틀거렸다.
산호초들이 은호를 붙잡았다.
“널 공격한 게 아니다. 갑자기 쓰러지지 마라. 왜 이것도 못 버티는 거지?”
환수가 내는 말에 은호는 황당했다.
이게 공격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부른 소리일까.
주변 모래가 갑자기 요동을 치더니, 은호를 감쌌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몰라 은호의 얼굴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움직이는 모래 사이로 블랙홀 같은 힘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순식간에 은호를 감싼 모래를 빨아들이며 은호와 환수 사이에서 멈췄다.
그대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엄청난 압력에 물살이 요란해지고, 은호는 앞이 보이질 않았다.
“서은호를 괴롭히지 마!”
웨핀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물러서라.”
“그럴 수 없어. 인간이 잘못한 건 없다고. 그냥 보내줘!”
“보낼 수 없다.”
환수가 딱 잘라 말하자 웨핀은 덩달아 인상을 썼다.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웨핀은 꼬리를 바짝 올리며 당장이라도 돌진할 것처럼 굴었다.
드드드드득.
주변에 깔린 모래가 요란할 정도로 움직였다.
묵직하게 깔린 모래가 웨핀의 힘을 향해 칼을 휘두르듯 내려왔다.
콰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물살이 세차게 일어나며 웨핀의 힘이 깔끔하게 절단됐다.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환수의 물음이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웨핀의 고개가 움직였다.
바로 앞에 있던 환수와 똑같은 종이 존재했다.
“바다의 수호자들이다.”
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렸다.
주변에 흐르는 모래가 점점 더 많아지자 웨핀은 몸이 움츠러드는 것만 같았다.
총 세 마리의 수호자들이 웨핀을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네가 지켜야지. 태호의 친구를 지켜야지!’
웨핀의 뿔에 까만 구슬이 피어났다.
“마지막 경고다.”
“그만해.”
은호는 토템으로 모래를 흡수하며 그 안에서 나왔다.
요란한 물살을 따라 은호의 머리카락이 너풀거렸다.
“너희가 바라는 게 나 맞지?”
“…서은호.”
웨핀이 기겁했다.
“저 친구를 건드리기만 해. 그냥 가버릴 수 있어.”
“이 바다에서?”
수호자 중 첫 번째로 온 환수가 기가 막힌 듯이 입을 열었다.
“맞아.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 아니면 지금 가면 믿으려나.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거야.”
“멈춰.”
두 번째로 온 수호자가 은호를 말렸다.
“원하는 게 뭐지?”
“이 일로 저 친구한테 어떤 불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거야.”
“맹세하지.”
나머지 수호자들 역시 맹세를 언급했다.
“친구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은호의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서로를 보던 수호자 중 첫 번째 온 환수가 입을 열었다.
“관찰자께서 알려줄 거다.”
“이렇게 일방적인 건 마음에 안 드는데.”
“여기서 말할 수 없는 문제라서 그래.”
세 번째로 온 수호자가 은호를 달랬다.
생각보다 저자세라 은호는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짐작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게 해줘.”
웨핀은 은호에게 다가가다 말고 모래에 막혔다.
“아니, 너는 허락되지 않았어.”
“내가 은호를 여길 데려왔단 말이야. 내가 가야 해.”
은호는 간절한 웨핀을 보며 손을 뻗었다.
“같이 가자.”
혼자 떠나면 웨핀의 마음에 남을 상처가 보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육지에 닿겠지.
흑견이고, 윈디드고, 나머지 꼬맹이까지 바다에 자신을 구하겠다고 달려드는 무모한 미래가 그려졌다.
이게 나았다.
‘평생 우려먹을 만큼 바다 구경을 실컷 하겠네.’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 *
“…와.”
은호는 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처음과 달리 더 많은 생물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에서 봤던 바닷속 물고기들 수십 종이 바다를 가득 멜 만큼 떼를 지어 다녔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직선으로 움직이며 눈을 홀렸다.
푸른색만 보면 지겨울까, 가지각색을 띠는 식물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가득 차 이곳으로 들어오는 모두를 반겼다.
어딜 봐도 화려함의 극치를 달려 놀이동산에 놀러 온 기분마저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참 이상했다.
“……와.”
웨핀마저 입을 벌렸다.
“친구야. 여기, 안 와봤어?”
“맞아. 여긴 아무나 못 들어와. 오는 길에 봤던 많은 우리도, 저 물고기들도, 모두 다 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야!”
“관찰자라고 불리는 친구?”
웨핀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왕께서 계시니 누구도 감히 왕을 지칭할 수 없어.”
웨핀은 신이 난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래도 조금 전 상황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게 좋은 거지.’
은호는 웃었다.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손이었다.
물속이라 그런지, 피가 잘 멎지 않았다.
작은 양이긴 하나, 약간 걱정됐다.
“인간만 가거라.”
앞서가던 수호자들이 일제히 멈춰 은호를 바라보았다.
마치 선이 그러진 것만 같았다.
“우리도 안 된다.”
웨핀이 말을 꺼내기 전에 수호자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건 나도 알아. 고집 안 부린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웨핀은 은호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갈게.”
“정말 고마워.”
“아니야. 약속했잖아? 네가 큰일 나면 태호가 슬퍼할 거야.”
웨핀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갔다 올게.”
은호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수호자들을 보았다.
“앞으로 가거라.”
“그저 앞으로 가면 그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대답이 이어졌고, 은호는 앞으로 헤엄쳤다.
물살이 제법 셌기에 이게 될까 싶었는데, 갑자기 흐름이 뒤바뀌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물살이 자신의 등을 밀었다.
모든 물고기와 모든 바다 생물이 모인 것 같은 그 중심에 누군가 있었다.
당장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는 비늘부터 눈에 들어왔고, 머리 위에 신부가 쓰는 면사포가 덮인 듯 얇은 천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상어와도 같은 외형을 가진 환수가 커다란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꼬리와 지느러미에 나비 날개 같은 무늬가 박혀 있었다.
“무례를 범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손한 말이 흘러나왔다.
‘……?’
은호는 환수의 뒤로 커다란 조개껍데기로 이뤄진 의자를 눈에 담았다.
‘협박… 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달라 은호는 도리어 머쓱했다.
“쭉,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수는 은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평소와 달리 은호는 말을 높였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싸늘한 얼굴과 달리 환수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촉촉한 눈동자가 이어 살포시 감겼다.
“그 사실을 어떻게 들은 거예요? 왕이 이곳에 왔나요?”
“아닙니다. 모든 우리는 왕과 ‘약속’이라는 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환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왕께서는 무릇 하나이시기에 모든 곳을 살필 수 없습니다. 하여, 대신할 이들을 임명하셨습니다.”
왕이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니.
꽤 체계적이었다.
“저는 이 바다를 살피는 관찰자 중 하나입니다.”
“다른 관찰자가 또 있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바다는 저 혼자 살피기에 너무도 넓지요.”
“그렇긴 하죠.”
“제가 살피는 바다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서 미안한데요, 여기는 인간을 되게 싫어하던데 괜찮아요?”
은호의 물음에 환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당신이 인간이라서요?”
“맞아요.”
“당신만은 예외입니다.”
“내가 자연의 대리자인가, 뭔가 그래서요?”
“그렇습니다. 다른 인간은 싫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인간이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환수는 미안함을 담아 말을 꺼냈다.
“우리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을 인간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걸 멈추기 전까지 저는 이 생각을 거둬들일 수 없습니다.”
은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환수 주변에는 환경 오염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막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게 어떤 건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건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부여된 조화의 힘입니다. 이 힘은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늦출 뿐,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뤄뒀다는 거죠?”
“맞습니다.”
환수는 고개를 돌렸다.
위를 바라보았다.
빛이 아른거렸다.
“인간들의 잔인함을 가장 빨리 보는 건 바다입니다. 가장 먼저 죽어가는 곳이 바다니까요.”
이곳은 어떤 감시 체계도 없었다.
인간들은 바다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었기에 당연했다.
그 어떤 곳보다 인간이라는 생물의 낯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데 제가 어떻게 인간을 좋아하겠습니까?”
환수는 참았던 암담함을 털어놓는 것 같았다.
언성이 높아지지 않았지만, 밀려오는 절망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다는 지금, 너무도 불안합니다. 수많은 존재들에게서 불만이 밀려오고, 인간뿐만 아니라 왕을 향한 원망까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은호는 저 말에 얼마 전에 들었던 영상 속 말이 생각났다.
―왕은 너희를 버렸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약속을 어긴 존재들을 늘리고 있었다.
그걸 떠올리며 물었다.
“약속을 어긴 존재들 역시 수없이 늘어나고 있겠죠. 그렇죠?”
“맞습니다.”
환수는 대답 후에 머뭇거렸다.
“바닷속 식물들이 죽어가고 있나요? 인간이 그러든, 다른 존재들이 그랬든 죽어가고 있는 게 맞겠죠?”
“…맞습니다.”
환수는 당장 눈물이라고 흘릴 것처럼 미안함을 목소리에 눌러 담았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은호는 환수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환수는 조용히 머리를 가져댔다.
“사실 나는 내가 가진 이 힘에 큰 생각은 없어요. 식물들을 자라게 할 수 있고, 그걸 사용할 뿐이니까요.”
아주 단순했다.
복잡하게 생각하려면 그럴 수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당신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에요.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해주고 싶고, 슬퍼하면 안아주고 싶어요.”
은호는 손 하나를 더 뻗어 환수를 안아주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어요? 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환수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정말로 힘껏 마음까지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이게 자연의 대리자가 가진 힘일까.
할 수 있다면 온종일 기대고 싶었다.
“내 힘이 필요한 그곳으로 날, 안내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