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9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90화(190/302)
190화. 바닷속 이야기(3)
환수가 흘리는 눈물이 물방울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어떻게 저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바로 허락할 수 있을까.
사실 어떤 식으로 부탁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인간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자연의 대리자이기 전에 인간이었다.
동족을 비난했다.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다.
“…미안합니다.”
환수는 사과했다.
“제가 이기적이라서 미안합니다. 이 감정이 당신을 아프게 했다면 이 역시 미안합니다.”
또 사과했다.
은호는 저절로 미소가 번져갔다.
“사과해줘서 고마워요. 정말이에요.”
“…….”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적어도 나는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없는 건,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은호는 환수를 토닥거렸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는데, 알아서 바다가 닦아주니 할 건 없었다.
“갈까요?”
“…가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거예요?”
“왜 피를 흘리고 다니십니까?”
환수의 물음에 은호는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피가 안 멈춰서요.”
환수는 그 대답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곧 기겁하며 다급히 은호의 손을 잡았다.
* * *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환수입니다. 과거의 이름을 불러옵니다.》
‘아. 아직 발견되지 않은 환수였구나.’
은호는 태블릿을 보다 환수를 슬쩍 살폈다.
눈이 맞자 환수는 자신에게 웃어주었다.
《에르쿠나.》
《.》
《정령의 힘이 깃들어 물과 소통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히 바다에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명이 무척이나 길며 주로 바다를 관리하는 일을 맡습니다.》
《사나운 외모와 달리 무척 온순합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강직한 편입니다. 불합리한 걸 싫어해 이를 타개하려는 의지가 높습니다.》
“불편하십니까?”
에르쿠나가 말을 걸었다.
“…그, 존댓말은 안 해도 돼요.”
은호가 시선을 돌렸다.
에르쿠나의 양옆은 물론, 앞과 뒤까지 수호자들이 뒤따라왔다.
그런 에르쿠나 품에 안겨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에르쿠나가 정중히 사양했다.
이것도 참 그랬다.
“그, 음, 내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궁금증이라도 해결해보자고 생각하며 은호가 물었다.
“저희가 원래 있던 그곳에서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아십니까?”
“아뇨.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은호는 군침이 돌았다.
크게 숨을 내쉬었는지, 거품이 더 크게 일어났다.
모르는 걸 알게 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자연의 대리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게, 전부인가요?”
은호는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네. 전부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솔직히 계속 자연의 대리자라는 말을 하니까 헷갈리기도 해요.”
―드루이드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를 말합니다. 자연과 교감할 수 있으며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태블릿이 말했던 드루이드는 이랬다.
―너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다. 그래서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지금 내 눈에 너의 뒤에 펼쳐진 수많은 자연이 보인다.
세티아 역시 비슷한 말을 하며 자신보고 자연의 대리자라고 말했다.
―자연과 우리를 이어주는 존재가 자연의 대리자니까. 그 존재가 있어야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비호를 받을 수 있어.
윈디드는 자연의 대리자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언급했다.
드루이드와 자연의 대리자.
그 두 개는 같은 걸까, 다른 걸까.
“본디, 자연의 대리자는 자연으로부터 힘을 받아 생명을 틔울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어떤 형태를 띠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힘을 쓰는 모두를 자연의 대리자라고 부른다는 거죠?”
은호는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네. 이건 저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용어입니다.”
“그럼, 그 용어가 다를 수 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용어 자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나무가 나보고 ‘자연의 대리자’라고 말했어요.”
자신이 ‘아산’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나무가 알려줬다.
“그 용어 역시 저희가 쓰는 걸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왔을 때, 자연의 대리자는 없었으니까요.”
“바로 그거예요!”
은호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바로 그거라뇨?”
“자연의 대리자가 없어서 당신들이 원래 있던 세계가 무너졌다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여기도 있었다가 사라졌는데, 왜 망하지 않은 거죠?”
심지어 식물들이 ‘배신’이라는 말까지 썼다.
“이곳이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에르쿠나가 너무도 정직하게 물어보자 은호는 할 말을 잃었다.
이곳이 어땠는지 솔직히 알지 못했다. 자신은 외부자였으니까.
그저 환경 오염이 심했다며 알려준 태호의 말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저희의 등장으로 유예가 된 것뿐입니다. 느리더라도 다가올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한부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은호는 기분이 묘했다.
“솔직히 그런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되게 낯설게 들리긴 하네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인간들은 안일함을 품고, 이 진실을 더 빨리 앞당기고 있습니다.”
에르쿠나의 씁쓸함을 들으며 은호는 앞을 보았다.
아직도 바다는 푸르렀다.
숨을 쉬면 일어나는 물거품을 따라 요동치는 모습만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제가 당신을 만나 가장 기뻤던 게 무엇인지 압니까?”
에르쿠나를 보자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바다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거요?”
“아뇨. 자연이 다시 희망을 품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내가 와서요?”
에르쿠나는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자연의 대리자는 자연이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힘을 부여하든 무얼 하든요.”
은호는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을 억지로 붙잡아야 했다.
자신은 저 설명과 너무도 달랐다.
그냥 김태을이라는 사람에게 물에도 젖지 않는 이 가방과 드루이드의 힘을 억지로 받았다.
그게 다였다.
자연이고, 뭐고, 그런 것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냥 회사원이었으니까.
“이세계에 자연의 대리자가 없다는 건, 자연이 더는 이곳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인간이 자연을 버렸든, 자연이 인간을 버렸든 말입니다.”
이어진 말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자신이 본의 아니게 희망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고맙습니다.”
에르쿠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아니에요.”
슬슬 은호는 부담을 느꼈다.
‘…이거 더 난감해졌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와 맞지 않았다.
그냥 저들이 바라는 희망 속에 우연히 들어온 것 같았다.
은호는 조금 전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멍하니 보았다.
‘그러고 보니, 왕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당신을 보내주신 이 땅에 많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자연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걸 오늘에서야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아닌데. 나는 그냥, 납치되는 중이었는데. 그것도 중세 판타지 세상으로 말이야.’
비정상적인 추락으로 원래 가려던 세계와 달라졌다.
그럼, 그 추락은, 누군가의 힘이 개입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자연의 대리자니 뭐니 하는 힘과 아주 유사한 드루이드의 힘을 바랄 존재가 누구겠는가.
‘…왕.’
몇 번을 생각해도 왕밖에 없었다.
지금 위기에 봉착한 건 세계가 아니라, 왕이었으니까.
‘확실히, 난감하긴 하겠다.’
원래 세계를 포기하고 이곳으로 왔는데, 저들에게 무척 중요한 ‘자연의 대리자’가 사라진 세계였다.
본인들로 자연재해의 여파가 미뤄지긴 했지만, 시한부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지배하는 인간하고 말도 안 통하고, 그들 중에 본인을 노리는 미친놈들도 있고.
심지어 자연은 세계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와. 진짜 너무… 어려운데? 왜 날 반가워했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네.’
난이도 최강 어려움에서 그나마 어려움으로 바꿔놓은 기분이 아닐까.
‘왕을 만나면 일단 안아주자.’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게 정말로 왕이라면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다.
소중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해줬으니까.
은호는 문득 든 생각에 시계를 찬 손목을 보았다.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너무 늦어지면 안 되는데.’
은호는 흑견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며 웃음을 꾹 참았다.
“즐거운 일을 떠올리셨습니까?”
에르쿠나가 묻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떠올리기만 해도 기쁜 거 있잖아요? 친구도 있어요?”
“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기쁜 그 감정 말입니다.”
에르쿠나는 바다를 보았다.
“…수면 밖으로 나가 다 같이 해를 바라본 적 있습니다. 그런 일이 별로 없었지만,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에르쿠나는 부드러이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몸놀림은 마치 나비 같았다.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볼 수 있을 거예요.”
은호가 손을 뻗어 쓰다듬자 에르쿠나는 웃었다.
“아, 이 앞에는 이제 수압이 강해질 겁니다.”
에르쿠나는 고개를 숙여 은호를 향해 숨을 불어넣었다.
물거품이 크게 일었고, 주변으로 무언가 움직였다.
마치 예전에 가방 속에 코코를 돕는 동글이 같았다.
“바다는 이제 당신을 지켜줄 겁니다.”
에르쿠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 * *
아래로 들어갈수록 빛이 희미해 점점 어두워졌다.
바닷속 생물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반기는 건 바위와 모래뿐이었다.
아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고 생각하던 차, 은호는 숨을 멈췄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절망이 드리운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괜찮으십니까?”
“…아뇨. 울고 있어요. 분노하고 있어요.”
여기에 식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감정이 느껴졌다.
“우는 것도, 분노하는 것도 바다입니다.”
에르쿠나는 아래를 보며 애달픔을 드러냈다.
‘…이게 뭐야?’
은호는 덩달아 그쪽을 보았다.
잠깐 눈빛이 멍해졌다.
마치 누군가 선을 그은 것처럼 저 아래에 까만 세상이 펼쳐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쓰렸다.
“저게 어떻게 된 거죠?”
은호는 앞으로 헤엄쳤다.
마치 공간을 따로 둔 것만 같았다.
아래로 손을 뻗자 손이 잘리는 듯한 통증과 함께 밀려드는 절망이 거세졌다.
은호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저 까만 건 뭐고, 이걸 어떻게 막은 거예요?”
“왕께서 막으셨습니다.”
‘왕이?’
이 힘 너머에 펼쳐진 까만 무리는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무엇인지 몰라도 나오면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제가 이를 지키고 있습니다. 넘어오지 못하게 말입니다.”
“뭐가… 넘어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거죠?”
“우리의 힘으로 미뤄뒀던 재해들 말입니다.”
에르쿠나의 답을 들으며 은호는 아래를 더 깊이 바라보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왕의 힘으로 가장 깊은 바다로 숨어들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있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을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수십 개, 수백 개나 있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걸 왕이 다 감당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혼자서 다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은호는 순간, 화가 났다.
마스크에서 거품이 더 세게 일어났다.
충격이었다.
이 재해들을 일으킨 건 사람이었고, 그걸 환수와 그들의 왕이 감당하고 있었다니.
사람도, 아니, 심지어 이걸 모르는 환수들이 너무 많았다.
은호는 당장 이마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약속이 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왜 왕이 환수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지 바로 이해했다.
나타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윈디드가 내뱉었던 그 말은 너무도 정당한 소리였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게 누구의 희생으로 이뤄진 건지, 제발 한 번만 생각해보면 안 되는 거야?
이 세계를 위해 왕이 희생하고 있었다.
그 희생이 얼마나 큰지 아직 완전히 체감할 수 없지만, 이건 아니었다.
왕이 죽으면 모든 환수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에르쿠나는 적막한 바다를 보며 그리움을 담았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산호초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느러미로 바위를 쓸었다.
그저 모래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곳에서 수없는 경기가 열렸죠. 산호초들 사이에 앉아 쳐다만 봐도 행복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때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곳은 이제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막고, 막아도 재해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져 갑니다. 곧, 우리가 만난 그 장소까지 번져가겠죠.”
“…아무것도 없던 게 그 이유였어요? 저것 때문에요?”
“그렇습니다.”
에르쿠나는 대답한 뒤에, 숨을 길게 터트렸다.
바다가 죽어가는 걸 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은호가 오기 전까지는.
“…부디, 이곳에 생명을 터트려주십시오.”
에르쿠나는 간절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