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9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93화(193/302)
193화. 혼이 나다
“…뭐라고?”
태호는 은호의 부탁에 기가 찼다.
깨어나서 하는 말이, ‘바닷속을 구경하고 싶으니, 환수를 위한 물안경과 산소마스크를 만들어 달라’였다.
“너, 아니, 은호 씨 지금 어디에서 다쳤는지 알고는 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병실에 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거야, 바닷속이죠.”
은호가 당당하게 말했다.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도 안 한 거 알지?”
윈디드가 그 말에 쫑긋 귀를 세웠다.
“형.”
“왜?”
“나 말이에요. 국가 특별 보호 인물이 됐나요?”
“…….”
태호는 은호의 물음에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내 윈디드와 시선을 마주쳤다.
괜히 흠칫 놀랐다.
날개를 관리하던 윈디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그 일이야?”
태호는 말을 더듬었다.
왕과 관련된 일을 언급했다.
하지만 차마 그 이상은 꺼내지 못했다.
“비슷하죠.”
꿀꺽.
태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은호 씨가 바다로 가기 전에 나한테 말하려던 것도 그런 일이야?”
“그렇죠.”
은호가 웃자 태호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내가 준, 그 영상과 관련됐고?”
“정답이에요.”
“……배가 갑자기 아픈데?”
“형.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겠죠? 그래서 물안경하고, 산소마스크를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요.”
“그게 그거랑 무슨 관련이 있어?”
“관련 있어요.”
왕의 고민거리 하나를 덜어주었다.
애초에 바다의 재해를 막고 있던 건 왕이니, 왜 관련이 없을까.
“잠깐만 기다려, 은호 씨. 진짜 더는 안 돼.”
“알아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머릿속이 엄청 복잡해지네.”
“복잡하죠? 나도 그래요. 그래도 같이 고민할 사람이 있으니 괜찮네요.”
태호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웃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꽤 말이 되는 소리이기도 했다.
“환수 관리국 쪽은 내가 재촉할게. 하나율이 터트릴 정보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기다리고는 있죠. 뭐든 나오면 좋은 거고요. 하지만 재촉은 하지 않아요.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요. 이미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잖아요?”
“진짜, 은호 씨가 밟고 있는 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네.”
환수로부터 대체 어떤 정보를 듣는 걸까.
그걸 자신도 알고 싶었다.
“아니, 정부도 왜 이러는 거야? 평소에 다른 건 다 빠르면서 이건 진짜 느리네. 이러면 대체 왜 정보 제한을 걸어버린 건데?”
“아무나 막 주는 건 아니잖아요?”
“은호 씨가 아무나야?”
태호가 버럭 반박했다.
잠깐 멍하니 있다 은호는 곧 키득거렸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볼걸요?”
“그건 맞아.”
고민도 없이 나오자 은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칭찬이죠?”
“…그럼, 칭찬이지. 진짜 은호 씨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태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를 한 대만 콱 쥐어박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형. 형도 바닷속에 갈래요?”
“은호 씨가 간 그곳 말이야?”
“네. 형이 봐야 내가 꺼낼 말이 잘 이해가 될 거예요.”
“내가 가도 되긴 해?”
“당연히 되죠.”
태호가 어떻게 빠질까.
말 한마디에 새겨지는 무게가 다른 사람인데.
“…은호 씨.”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머뭇거려요?”
“은호 씨, 혹시, 기억이 돌아온 거야?”
“…….”
진짜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은호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하지도 못한 소리였다.
“아니, 막 추궁하는 게 아니라, 그런 느낌이더라고.”
“형. 내가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에요.”
정말이었다.
지금은 믿어줄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는 달랐다.
그때, 사실대로 말했다면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환수도 아니고, 차원 이동이라니.
“알아, 알지. 은호 씨 그때, 진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잖아.”
“그랬죠.”
이 회복 속도를 가지고도 한 달 정도 걸렸다.
드루이드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사고였다.
“그런데 형.”
“왜?”
“혹시, 사고 장소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어요?”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분명히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죽었는데, 진짜 죽은 게 맞을까 싶은 생각이.
“사고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래요…?”
“왜? 누가 있었어? 내가 찾아줄까?”
“아뇨. 형은 알까 해서요.”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어쨌든, 은호 씨.”
“네?”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 어디 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알겠지?”
“알죠. 삐약이 보이죠?”
은호는 윈디드를 가리켰다.
“날 감시하려고 있는 거예요.”
“그럼.”
윈디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눈에도 힘을 주었다.
“듬직한데?”
태호가 웃었다.
진짜로 어디든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을 것만 같았으니까.
* * *
“…세티아!”
은호가 세티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왜 왔는가?”
꽤 냉정한 소리가 세티아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는데?”
“그 꼴로 오니, 내가 뭐라고 말하겠는가?”
어딜 봐도 병원에서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김대환 덕분에 병원에서 어떤 옷을 입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늙은이가 간만에 옳은 소리를 한다.”
흑견이 낄낄 웃자 윈디드는 놀란 눈을 했다.
“아니,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 친구.”
“애초에 먼저 날 꼬맹이라고 불렀다.”
“그건 맞지 않아? 저 존재는 우리보다 오래 산 걸로 보이는데?”
윈디드가 흑견에게 다가오며 말하자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다가오는가?”
“미뤄줬잖아. 내 옆에 꼭 붙어 있겠다는 그 약속 말이야. 잊었어, 친구야?”
“…….”
까드득.
흑견은 이를 깨물었다.
자신이 미뤘고, 윈디드는 본인이 원할 때 다시 쓰기로 했다.
“그게… 오늘인가?”
“맞아. 지금부터 시작인 거지, 친구.”
윈디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왕의 수호자라서 그런지 꼬맹이를 참 잘 놀리는구나.”
세티아는 윈디드가 마음에 들었다.
흐뭇한 미소를 보았지만, 윈디드는 놀란 눈으로 은호에게 시선을 뒀다.
덩달아 당황한 건 그였다.
“…나? 아니야. 내가 왜 말하겠어?”
“여긴 내 영역이다.”
세티아가 미소를 흘렸다.
스티커처럼 붙여진 마름모 모양의 형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 이마에 왕이 부여한 수호자의 증표가 보이는데, 왜 모를까.”
“…어, 어떻게 알았어?”
윈디드는 앞발로 이마를 다급히 가렸다.
은호는 그 소리에 윈디드에게 다가갔다.
평소에도 몇 번 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내 눈에는 보인다.”
세티아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은호 네 몸에서 나는 왕의 냄새를 알아낸 게 나라는 걸 잊었는가?”
“당연히 잊지 않았지.”
“이제 여길 왔으니, 약속대로 주거라.”
“당근 말이야?”
“그렇다.”
세티아는 대답 후에 윈디드를 보았다.
“신기한가?”
“당연히 신기하지. 바로 알아차리는 일은 없으니까.”
세티아는 윈디드를 보며 미소를 흘렸다.
“왕께서는 잘 지내는가?”
“…일단은 잘 지내.”
“최근 기쁜 소식을 은호가 가져오지 않았는가.”
“말썽꾸러기가?”
윈디드는 은호를 보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은호 주변에 꼬맹이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바닷속에 사는 친구를 도와줬어.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딱 저토록 간단하게 설명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꽤 섭섭했다.
“말썽꾸러기. 여기라면 말해줄 수 있어?”
윈디드가 묻자 은호는 당근을 세티아에게 주며 입을 열었다.
“바닷속, 재해를 모아둔 곳에 갔었어.”
“……?”
윈디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재해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으니까.
“…재해라고 했는가?”
하지만 흑견은 달랐다.
은호의 머리를 씹어 먹어버릴 정도로 이빨을 사납게 드러냈다.
“그걸 알고도 달려들었다는 건가? 이 멍청한 인간이!”
“좀 아프긴 하더라.”
은호는 손을 보았다.
손바닥이 반 이상이나 아물었는데, 재해에 닿은 곳은 치료 속도가 느렸다.
“…바닷속 존재가 말썽꾸러기에게 강요한 거야?”
윈디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니. 강요하지 않았어.”
“말썽꾸러기한테 도와달라고 했을 거야. 그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서. 그렇지?”
분명히 은호는 거절하지 못했을 테지.
그게 강요가 아니면 뭐겠는가.
자신도 그런 부탁은 하지 않았다.
“자연재해…를 뭉쳐놓은 그런 힘, 아니야?”
“맞아. 언제라도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 있어. 그리고 그 힘은 말썽꾸러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나도 말렸다.”
세티아는 당근을 더 우적우적 씹었다.
“가지 말라고 했다.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구나.”
어쩐지 늘 차분하던 세티아가 점점 언성을 높여나갔다.
은호는 어깨를 움츠렸다.
“저 늙은이가 말렸는데도, 기어코 움직인 건가? 이 멍청한 인간이! 진짜 어디까지 멍청해질 건가?”
흑견 역시 언성이 올라갔다.
멍청한 인간.
세티아가 가끔 쓸데없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틀린 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거긴 바다라는 걸 잊었는가? 바닷속에서는 숨도 못 쉰다는 걸 잊었는가, 멍청한 인간?”
지금 흑견인 ‘멍청한 인간’을 몇 번이나 꺼내는지 몰랐다.
“…아니. 잊진 않았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어.”
은호는 괜히 당근을 입에 물었다.
생각보다 더 달았다.
“그러니까… 위험한 줄 알면서도 움직였다는 거야?”
윈디드는 뻣뻣해지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눈동자를 굴렸다.
주변에는 자신과 세티아, 그리고 흑견뿐이었다.
이 말썽꾸러기가.
“말썽꾸러기는 대체 왜 본인을 소중히 하지 않는 거야? 다들 널 얼마나 보고 있는데?”
윈디드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히 하고 있어. 그런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잖아. …그렇지?”
은호는 뒷말을 흐렸다.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왕의 수호자로서 많은 걸 보고 들었기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왕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은호가 가지고 있었다.
윈디드는 당장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정말로 말썽꾸러기한테 부담을 짊어 줄 생각이 없었어.”
“당연히 알지.”
“나는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그 바람은 변하지 않아.”
윈디드는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그동안 흑견이 자신을 정말 많이 추궁했다.
은호를 어떻게 할 거냐며.
왜 이용하려고 드는 거냐며.
그때는 저 말을 왜 꺼내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이렇게 약속을 어긴 존재하고, 재해니 뭐니 하면서 복잡한 것과 얽히는 건 아닐까.
‘…나 때문인가?’
부리의 등쪽 부분으로 은호의 이마를 톡 쳤다.
“그거 아니야.”
은호가 딱 잘라 말했다.
“맞다. 그건 아니다.”
세티아 역시 은호의 편에 섰다.
“은호가 혼이 나야 하는 건 맞지만, 그건 억측이다.”
세티아는 앞발로 은호를 가리켰다.
“보거라. 누가 그렇게 쏘아 다니는지 모르겠는가?”
은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렇게 콕 집을 줄이야.
“혼내거라. 계속 혼내거라.”
하지만 말과 달리 세티아는 은호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이게 혼내는 거야?”
“어쩌겠는가. 우리가 좋아서 본인을 내버리니,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수밖에.”
“…….”
은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세티아는 방긋 웃었다.
“무모하게 굴지 말거라. 네가 없다면 나는 정말로 혼자다.”
“…너무하네, 진짜.”
은호는 마음에 못을 박는 소리에 괜히 투정을 부렸다.
윈디드의 날개가 은호를 감쌌다.
“너무한 건 말썽꾸러기야. 대체 왜 몰라? 왜 말썽꾸러기만 모르냐고.”
“멍청해서 그렇다. 그러니 몇 번이나 알려주거라.”
흑견은 다가와 꼬리로 은호의 얼굴을 찔렀다.
“아주 소중하다고.”
고개를 돌린 채 내뱉는 흑견의 말에 은호는 마음이 너무도 요동쳤다.
장난 아니었다.
제일 치사한 건 흑견이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저러면 어쩌자는 건지.
은호는 목구멍까지 밀려오는 감정을 꾹 참았다.
“봤는가? 이렇게 혼내면 된다.”
세티아는 키득거렸다.
앞발로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법 놀릴만했다.
“진짜 확실한데?”
윈디드 역시 웃었다.
이렇게 바로 변화를 볼 수 있을 줄이야.
눈빛이 천천히 깊어졌다.
“아프지 말거라.”
세티아가 부드러이 말했다.
“빨리 나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고집이 센 아이 같으니라고. 하나를 안 지려고 하네.”
은호는 스르르 세티아에게 기댔다.
위를 쳐다보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러면 계속 혼나고 싶은데.”
입꼬리가 빙그레 올라갔다.
“혼나고 싶다면 계속 혼이 나야지.”
세티아는 더 포근하게 은호를 안아주었다.
은호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혼을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