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9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94화(194/302)
194화. 꼬맹이들
‘…아.’
은호는 눈을 뜨자마자 직감했다.
일어날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아무리 두 개의 토템을 이용해 새로운 식물을 만들었다지만, 상태가 이렇게 나빠질 줄이야.
‘…아닌데. 괜찮아서 집에 왔는데.’
퇴원은 빨랐다.
분명히 아윤에게 괜찮다는 말까지 들었다.
바로 다음 날 이러는 건 솔직히 반칙이었다.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감기몸살인가?’
갑자기 그런 게 걸릴 리가.
은호는 몸을 일으키다 온몸이 쑤신 걸 확인해서야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건 무조건 감기몸살이었다.
이건 분명했다.
‘…집에 먹을 게 없는데. 휴지도 떨어지고, 장도 봐야 하는데.’
하필 이런 날 모든 게 겹치기 마련이었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배달 주문해야지 어쩌겠는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주 애용하는 마트 사이트로 들어갔다.
여기가 외진 곳이라, 빠른 배송은 불가능했다.
못해도 이틀 이상은 걸리기에 식료품 배송은 틀려먹었다.
지금까지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간 이동을 해서 바로 마트로 가버리면 되기에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물론, 사람인지라 가끔 귀찮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도 배달이 안 된다는데 어쩌겠나 싶던 차, 버니멀들의 친구인 마트 사장님이 고맙게도 이쪽으로 배달을 약속해줬다.
미안해서 평소 잘 쓰지 않았지만, 오늘은 써야 하는 날이었다.
‘약도… 없네.’
은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왜 준비되지 않았을 때, 일은 항상 터지는 건지.
탁!
힘차게 문이 열렸다.
은호는 움찔거렸다.
“은호! 은호가 오늘은 잠꾸러기다?”
폭시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맞느리라! 은호가 잠꾸러기다!”
라비의 씩씩한 목소리도 들렸다.
폭시는 은호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빨리 다가가 침대에 올라갔다.
은호를 보았다.
뭔가 달랐다.
그게 뭔지 몰라 조금 더 물끄러미 보았다.
“은호. 뭔가 달라.”
“뭐가 다르더냐?”
라비도 침대에 올라와 은호를 보았다.
“…어, 은호의 눈이 작아졌느니라.”
“맞아. 눈을 제대로 못 떠. 그리고, 그리고, 숨소리가 조금 빨라.”
폭시가 고개를 올렸고, 라비 역시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올렸다.
“은호, 지금 아파!”
“은호 지금 배가 고픈…. 아, 아프더냐?”
폭시와 라비의 말이 엇갈렸다.
라비가 깜짝 놀라며 은호의 볼을 눌렀다.
뜨거웠다.
“은호. 아프면 안 되니라. 오늘은 은호랑 공놀이를 하기로 했느니라!”
“우리 사고뭉치는 나보다 공놀이가 먼저네?”
은호가 손을 뻗어 라비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렇지 않다!”
“까망아. 공놀이가 먼저인 것처럼 보이긴 했어.”
폭시가 넌지시 말하자 라비가 움찔거렸다.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폭시를 보았다.
“…정말이더냐?”
폭시는 은호를 보다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는 입을 다물었다.
이불로 얼굴을 숨긴 채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공놀이가 먼저는 아니었다. …아니, 아주 조금만 먼저일지도 모른다.”
“사고뭉치야. 오늘 공놀이는 건너갔어.”
“왜 그렇더냐?”
이불에 들어간 라비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 뛰어다닐… 몸이 아니야.”
지금 팔을 내뻗는 것만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오한이었다.
탁.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형을 안은 채 오던 레비아탐이 놀란 눈으로 다가왔다.
“…은호. 아팜?”
은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른함 위로 피곤함이 뒤섞였다.
눈도 뜨거웠다.
‘일단 약부터 사야 하는데.’
지금 흑견도 없기에 어떻게 거기까지 가야 하나 싶었다.
아무래도 연구소로 가서 약을 받아오는 게 제일 나을 듯했다.
“바닷속이 힘들었엄?”
레비아탐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
전신 근육통에 시달리는 느낌이기도 했다.
은호는 숨을 짧게 참다가 몸을 일으켰다.
레비아탐과 폭시가 은호의 어깨를 눌렀다.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안 돼. 누워 있어.”
“맞암. 은호 봐?c. 지금 우리를 못 이겼엄.”
“레비아탐. 원래부터 나는 너희를 힘으로 이긴 적이 없어.”
“…그, 그랬엄?”
레비아탐이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약이 없어서 가야 해.”
“우리가 갈겜!”
“오오, 좋은 생각이다. 우리가 갈게, 은호.”
폭시는 레비아탐을 따라 웃었다.
“너희가…?”
“그렇다! 우리가 가겠느니라!”
금세 회복한 라비가 이불 밖으로 나와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야. 내가 가면 돼.”
“약만 받아오면 된다며?”
“그렇긴 하지?”
“은호가 공간을 열어두면 우리가 그쪽으로 가서 약을 받고 오는 거야. 어때?”
폭시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연구소였기에 해가 될 것도 없었고,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도 않을 테니까.
“은호는 쉬고 있엄. 우리가 갔다 올겜! 나, 약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암!”
“나도 안다.”
레비아탐과 라비가 방긋 웃자 은호는 기분이 묘했다.
약이 있는 곳을 알면 안 되는 게 아닐까.
‘너무 자주 입원해버렸네.’
은호는 멍하니 꼬맹이들을 보았다.
맡겨도 될까.
“아암! 물부터 줄겜!”
레비아탐은 은호에게 필요한 것부터 말했다.
라비가 아플 때, 라비를 간호하던 은호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맞다! 그리고, 그리고 얼음도 필요하다!”
“약까지 있으면 완벽하겠는데?”
라비에 이어 폭시까지 말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출발!”
폭시의 외침에 꼬맹이들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애들아. 애들아, 잠깐만.”
냉장고를 연다고 해도, 물을 어떻게 따를 수 있을까.
얼음은 또 어떻게 꺼낼까.
모든 게 인간 위주로 되어 있기에 흑견이라면 몰라도 꼬맹이들이 온전히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멍하고, 땅으로 빨려 들어갈 것같이 몸이 무거웠다.
‘…죽겠네.’
은호는 제자리에 섰다.
숨을 짧게 내쉬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바이러스도 금방 낫는 거 맞지? 믿는다?’
병에 걸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힘을 써서 일어나는 부작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짜 바이러스였다.
은호는 한 계단, 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우당탕.
쨍그랑.
수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은호는 잠깐 계단에 앉아 얼굴을 쓸었다.
미래를 보았고, 암담함에 혀를 내두르고 싶을 정도였다.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어떻게 다 치우지?’
은호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계단을 향해 윈디드가 고개를 내밀었다.
“말썽꾸러기.”
“…삐약아.”
혹시나 윈디드가 멈춰준 걸까.
은호는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잠깐 바람 좀 느끼고 왔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 말썽꾸러기는… 왜 그래?”
놀란 표정을 짓던 윈디드가 은호를 보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오는 은호를 보자 윈디드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 친구는 어디 갔어?”
“잠깐 나갔나 봐.”
흑견이 있으면 은호를 데려와 줄 텐데.
윈디드는 조바심을 담아 은호를 보았다.
계단은 자신이 지나가기에 너무도 좁았고, 비틀거리는 은호의 걸음걸이는 너무도 불안해 보였다.
은호가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윈디드는 그를 자신의 등에 태웠다.
윈디드의 등에 누운 은호는 엉망이 된 부엌을 보며 곡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이고.”
어떻게 잠깐 사이에 엉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은호를 보자 레비아탐과 폭시, 그리고 라비까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약은 있어, 말썽꾸러기?”
“…슬프게도, 없더라고. 이래서 챙겨놔야 하는 건데.”
“병원 가자.”
“아니야. 약만 받으면 돼. 가면 아마…….”
은호는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상상만으로 무서웠다.
아윤이 뭐라고 하려나.
“…우리가 약을 받기로 했느니라.”
라비가 슬쩍 말을 던졌다.
“맞아. 이미 꼬맹이들한테 맡겼어.”
“그럼, 은호는 내가 돌보고 있을 테니까, 먼저 갔다 와, 작은 친구들.”
윈디드의 말에 침울해하던 꼬맹이들은 이내 다시 기운을 차렸다.
혼나지 않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은호가 바들거리는 팔로 공간을 열었다.
“갔다올겜!”
레비아탐이 앞발을 흔들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라비와 폭시가 공간으로 들어갔다.
은호는 꼬맹이들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응?”
“작은 친구들이 약을 어떻게 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그냥 약 달라고 말하면 되잖아.”
“…말썽꾸러기. 진짜 많이 아픈가 보네. 인간은 우리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은호는 윈디드의 말에 그대로 이마를 때렸다.
큰일이었다.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잘 해낼 거야. …그렇지?”
아이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 부모 마음이 이럴까.
불안함과 초조함에 은호는 심장이 크게 뛰었다.
“우선, 정리부터 해야겠네.”
윈디드는 냉장고 문을 닫으며 가볍게 웃었다.
* * *
“…헤인이한테 가야 햄.”
한참 달리던 레비아탐이 말을 꺼냈다.
“왜 헤인이한테 가야 하더냐? 아…윤. 그 인간한테 가야 한다.”
“맞아. 약을 주는 인간은 아윤이야, 레비아탐.”
라비의 말에 폭시가 동조했다.
은호를 아프지 않게 해주는 인간도 아윤.
자신을 돌봤던 인간도 아윤이었다.
그러니 아윤에게 가야 하는 게 맞았다.
“그건 나도 알암.”
레비아탐은 라비와 폭시를 보았다.
시선이 몰리자 이내 주춤거렸다.
자신의 주장이 너무도 강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얌. 내 생각이 틀렸나 ?c.”
“괜찮아, 레비아탐. 어떤 의견인지 알고 싶은데?”
“아니얌. 아윤한테 먼저 가보잠.”
레비아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자 폭시는 한쪽 귀를 꿈틀거렸다.
왜 저런 감정을 품는지 몰랐다.
“아윤에게 가려면 이쪽이다!”
라비는 벌써 발을 떼 헐레벌떡 뛰었다.
레비아탐 역시 방향을 틀어 라비를 따라갔다.
“폭시얌.”
레비아탐이 폭시를 불렀지만, 폭시는 여전히 레비아탐의 감정이 신경 쓰였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저런 감정을 품을 때가 있었다.
까만 감정이었다.
왜 그럴까.
폭시는 의문을 품은 채 뒤따라갔다.
앞으로 쭉 달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아윤은 건물에 있었다.
냄새도 기억하고 있었다.
신이 난 라비가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렸다.
복도에 인간들이 지나가는 일은 잘 없었다.
서로 다른 곳을 쓰기에 다른 환수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안녕이다!”
라비는 활짝 웃으며 다른 존재들을 볼 때마다 인사했다.
달리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게다가 가장 앞에 있었다.
이대로 들어가면 1등이었다.
라비가 머리로 문을 밀며 들어왔다.
“1등이니라!”
“…깜짝아.”
아윤이 낯선 소리에 놀라 가슴을 부여잡았다.
누군가 확인하다가 그대로 쓸어내리며 숨을 내쉬었다.
흑묘성이었다.
은호가 데리고 있는 흑묘성.
‘…무슨 일이지?’
아윤은 벌써 불안했다.
또 은호에게 무슨 일이 터졌을까.
아윤은 시선을 내리며 흑묘성을 보았다.
깜찍한 생김새에 바라만 봐도 마음이 설??다.
“안녕.”
라비를 향해 인사했다.
라비는 그 손짓에 앞발을 흔들었다.
“안녕이니라!”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도 아윤은 기뻤다.
그녀는 슬쩍 손을 뻗으려다 시선을 멀리 주었다.
발소리가 여러 개 들렸다.
열린 문 사이로 폭시와 레비아탐이 덩달아 들어왔다.
폭시가 성큼 뛰어 책상 위로 올라왔다.
아윤은 그 모습에 뒤로 물러났다.
탁탁.
폭시가 앞발로 책상을 두드리며 무어라 말했다.
“…응?”
아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뭘 놓은 건가 싶어 바라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윤은 은호를 기다렸다.
저 환수들 전부 다 은호가 데리고 있는 환수였으니까.
하지만 기다려도 은호는 오지 않았다.
폭시, 레비아탐, 그리고 라비까지 울었다.
뭔가를 요구하는 건 알겠는데, 울음이 뒤섞여 더욱더 알 수 없었다.
“…은호 씨는 어디에 간 거니?”
아윤이 물었지만, 꼬맹이들은 여전히 울었다.
혹여나 은호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 늦게 오는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행동에 꼬맹이들은 뒤로 물러섰다.
아윤이 밖으로 나가자 뒤를 따랐지만, 다시금 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물러섰다.
아윤은 복도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은호가 없었다.
“서은호 씨는 어떻게 된 거니? 혹시, 다친 거야?”
아윤이 물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냐?”
라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걱정하고 있어.”
“은호를 걱정하고 있는 거얌?”
레비아탐이 묻자 폭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야.”
아윤이 꺼내는 말은 전부 이상한 소리로 들렸기에 폭시는 어려웠다.
이대로 무슨 말을 해도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아! 그래서 레비아탐이 헤인이한테 먼저 가자고 했구나.”
폭시는 그제야 레비아탐이 꺼낸 말을 이해했다.
약을 달라는 말을 인간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존재였다.
폭시는 그제야 웃었다.
“헤인이는 저쪽에 있어.”
고스덕이 고개를 내밀며 말하자 아윤은 깜짝 놀랐다.
“…놀래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스덕이 천장에서 앞발을 뻗었다.
아윤이 두 손을 내밀자 고무줄이 떨어졌다.
“아! 이거 어떻게…….”
다다다다.
꼬맹이들이 갑자기 어딘가로 달렸다.
아윤은 뭔가 정신이 없었다.
‘뭘 말한 거지?’
왜 은호가 없는지부터 이상했다.
‘아픈가…? 감기?’
아윤은 병을 의심했다.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이 이제껏 부상으로 왔으니, 병에 안 걸린 게 용했다.
‘혹시, 약을 가지러 온 건가?’
아윤은 그제야 환수만 온 사실을 하나씩 추론했다.
* * *
“…약?”
헤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약이 필요하느니라!”
“은호가 아파?”
헤인이의 물음에 폭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
“잠시만 기다려봐.”
헤인이는 자신의 연습장이 있는 책상으로 움직였다.
찹찹.
그 소리를 따라 태호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은호네 꼬맹이들이 우르르 와서는 헤인에게 뭐라고 말하는데, 바라만 봐도 행복했다.
어떻게 저토록 예쁠 수가 있을까.
태호는 아예 모니터를 옆으로 치워 턱을 괸 채 구경했다.
‘뭘 하는 걸까?’
태호는 설렘을 담아 보았다.
연습장을 가져온 헤인은 자신의 책상으로 올라와 옆에 놔둔 색연필을 들고 갔다.
뭔 그리나 싶어 태호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헤인이 긴 타원형을 그렸고, 중앙에 좌우로 선을 그었다.
위에는 빨간색으로 색칠까지 했다.
‘…알약?’
태호는 살짝 놀랐다.
헤인은 아주 신중하게 밑에 글자를 써 내렸다.
악.
“……후.”
헤인은 아주 큰 눈을 깜박거리며 앞발로 이마를 쓸었다.
탁탁.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호는 뒤를 보았다.
일렉트였다.
창문을 열어주자 일렉트가 날아와 모두를 향해 물었다.
“뭐 해?”
고개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원래 있어야 할 존재를 찾았다.
“은호는? 은호는 어디 갔어?”
“일렉트음!”
레비아탐이 일렉트를 보며 웃었다.
“일렉트! 이거 빨리 아윤한테 전해줘!”
폭시가 종이를 물고는 일렉트에게 다가갔다.
“왜? 이게 뭔데?”
“약! 은호가 아프니라!”
라비의 말에 일렉트는 종이를 당장 품에 안았다.
이건 말이 달랐다.
“내가, 내가 빨리 갈게!”
일렉트가 들어왔던 창문으로 날아갔다.
“고마워, 헤인아!”
“고마웜!”
“고맙다!”
꼬맹이들이 헤인이에게 인사하고, 태호를 보며 앞발을 흔든 뒤 방을 벗어났다.
“은호를 구해! 꼭!”
헤인은 크게 당부하며 앞발을 흔들었다.
‘……허. 허어.’
태호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발견에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헤인이 글씨를 쓰고, 일렉트와 협조까지 하다니.
이건. 이건 정말로.
‘…잠깐만.’
태호는 헤인이가 적었던 걸 떠올리며 미간을 꾹 눌렀다.
악이 아니라 약이라 쓸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바로 아윤 씨한테 연락하면 되는 거잖아?’
이 바보가.
대체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저럴까.
태호는 아윤에게 연락했다.
“아아, 아윤 씨. 거기에 은호네 꼬맹이들이 갈 건데…. 아, 알고 있어? 약 준비해놨다고? 어어. 알았어.”
* * *
은호는 거실에 누워 멍하니 열린 공간을 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 어느새 흑견이 누워 있었다.
“온다. 멍청한 인간.”
흑견의 말에 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꼬맹이들이 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꼬맹이가 하나가 더 늘어나 있었다.
‘…삐죽이는 왜?’
은호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랐다.
일렉트가 가장 먼저 도착해 품에 안은 걸 당당하게 내밀었다.
“약이야!”
‘……와.’
은호는 뭉클거림을 느꼈다.
진짜 약을 가져왔다.
이어 달려오는 애들을 보며 은호는 팔을 크게 벌렸다.
밀려오는 모두를 안아주었다.
심부름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진짜 잘했어. 고마워.”
은호는 모두를 쓰다듬어주지 바빴다.
“…은호 씨.”
가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헛걸 듣나 바라보다 공간 너머에서 가을이 보였다.
그대로 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화 모릅니까?”
“…알아요.”
“다음부터는 아프시면 꼭 전화하십시오.”
“……네.”
은호는 가을의 말을 들으며 꼬맹이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약 드시고, 거동이 괜찮아지면 아윤 씨에게 가십시오. 그럼.”
가을의 말이 끝나자 은호는 조심스럽게 공간을 닫았다.
‘…무섭네.’
간호를 받아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연락하면 된다는 그 간단한 사실도 잊어버릴 줄이야.
은호는 임무 완료에 자축하는 꼬맹이들을 보며 다시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