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9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95화(195/302)
195화. 절대 삐약
은호가 움찔거리다 다급히 눈을 떴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끼이이익.
―쿵!
꿈속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공간 이동 때문에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기억나고 말았다.
“…꿈을 꿨나?”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흑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조금은 힘이 없는 미소였다.
“오늘은 기억났네.”
“악몽인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은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옆에 꼬맹이들이 가득했다.
쑥쑥 잘 자라니, 침대를 좀 더 큰 걸로 사야 하지 않나 싶었다.
“산책 가던 중이었어?”
“가려던 참이다.”
은호는 창문에 몸을 기댔다.
“그래?”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묻고 싶은 게 있나?”
“있는데, 그냥 안 물어보려고.”
“있다. 나한테도 형제가 있었다.”
“…어?”
“그걸,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나?”
“어, 어떻게 알았어?”
“잠깐이지만, ‘형’이라고 했다. 꿈속에서 형을 봤나?”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놀랐다.
“그걸 들었어?”
“들었다. 그걸 끼지 않아도 요새 좀 들린다.”
“정말?”
은호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웃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알려줄까?”
“억지로 알려줄 필요 없다.”
“같이 가도 돼?”
“…하.”
흑견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역시 이게 목적일 줄 알았다.
“타거라.”
은호는 창문을 열기 전에 잠깐 애들을 바라보았다.
곤히 자고 있었다.
가기 전에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고는 마지막으로 위그드라실 역시 쓰다듬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다들 방긋 웃기에 은호 역시 미소를 지었다.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창문 닫아줘, 멍멍이 형님.”
흑견이 어둠으로 창문을 살포시 닫았다.
“삐약이는 어디 갔어?”
“모른다.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가?”
“삐약이도 멍멍이 형님처럼 밤 산책을 좋아하니까, 이미 알 텐데?”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가?”
“저번에 삐약이랑 멍멍이 형님이랑 서로 웅크려 자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데.”
찍어서 잘 간직해뒀다.
이미 수없는 사진을 찍어뒀지만, 그 사진은 더 특별했다.
이건 마음속 보물 1호가 되었다.
은호가 만족스럽게 웃자 흑견은 이빨을 까드득 깨물었다.
“그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일단,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했지만, 두 번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끔찍했다.
은호가 키득거렸다.
“그리 재미있는가?”
“재미있지. 너무 재미있지.”
은호는 흑견을 토닥거리며 대답했다.
“아, 멍멍이 형님.”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흑견은 일단 출발했다.
은호는 조금은 머뭇거렸다.
“그때, 어떻게 바다에 들어온 거야? 수압이 장난 아니었고, 숨도 쉬기 어려웠을 텐데?”
은호가 흑견의 몸에 기대어 물었다.
가장 궁금했는데, 차마 물어볼 타이밍이 나지 않았다.
흑견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고.
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발을 몇 번 움직이던 흑견이 걸음을 멈췄다.
“…인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주는가?”
이상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믿지.”
“인간이 바라보던 내 모습 중에 가짜가 있다고 해도?”
“에이, 그게 뭐라고. 당연히 믿지. 나는 사실 지금 멍멍이 형님이 새끼 때, 하얀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잠깐 흑견이 웃었다.
“알겠다.”
“기분 내킬 때 말해도 돼. 지금 꼭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그럼, 나도 하나만 묻겠다.”
“어떤 거? 뭐든 물어봐.”
흑견은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집에서 떨어지고, 은호가 모르는 곳으로 움직여서야 목소리를 꺼냈다.
“…지금, 행복한가?”
흑견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흑견이 물어볼 말이 아니었기에 잠깐 놀랐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생각 말이야?”
“내가 인간을 구했기에 우리와 얽혀버렸다.”
은호는 잠깐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지금까지 다 소소한 만남일 뿐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많고, 인간이 좋아하니 됐다고 생각했다.”
레비아탐, 폭시, 라비, 일렉트 등 많은 존재가 은호의 손아귀를 거쳐 갔다.
때로는 곁에 남았고, 때로는 고마움을 남기며 원래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경우가 있었다.
도중에 불만도 있긴 했지만, 점점 그런 상황이 자연스러워져 갔다.
“그런데 그 만남이 점점 커져 이번에 재해까지 얽혀 인간이 개입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바닷속 사건만큼은 달랐다.
“인간이 그 일에 얽힌 건…….”
“아니야!”
은호가 더는 흑견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
상체를 일으켜 소리쳤다.
얼마 전에 세티아를 만났을 때, 윈디드가 그런 죄책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흑견일 줄이야.
“둘 다 왜 그래? 아니, 멍멍이 형님은 또 왜 그래?”
은호는 이 일그러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흑견은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했을 뿐이야. 위험성 역시 충분히 이해했어.”
“재해에 닿은 부분은 아직 낫지 않았다.”
흑견은 은호의 손가락에 감긴 반창고를 보았다.
“더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막으려 애를 써도, 그 일이 인간을 덮칠 수 있다.”
“불안해, 멍멍이 형님?”
“……그렇다.”
흑견은 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인간이 그 일에 휩쓸리다 사라질 것만 같다.”
흑견이 꺼낼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 아닐까.
은호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땅으로 내려와 흑견의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아무리 해도 멍멍이 형님하고 다른 애들 눈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걸 알아. 하지만 진짜 나도 인지하고 있어.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야.”
자신이 다치면 눈물을 흘릴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미치도록 아팠다.
그러니 다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힘 자체가 대가를 요구했다.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
“멍멍이 형님. 나는 말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가 제일 싫어.”
“인간은 무능력하지 않다.”
흑견이 딱 잘라 말했다.
“맞아. 그래서 너희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데?”
가만히 지켜보지 않아도 됐다.
달려 나가서 지키든, 도와주든, 뭐든 할 수 있었다.
원하는 만큼 더 할 수 있었다.
“멍멍이 형님. 오늘도 꿈에서 형이 죽는 모습을 봤어. 매번 똑같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놀란 눈으로 은호를 보고 있었다.
“형이 죽은 건 나 때문이야.”
은호는 웃고 있었다.
아니, 저게 웃는 걸까.
갑자기 은호의 얼굴이 까맣게 물든 것만 같았다.
“……인간.”
흑견은 은호를 겨우 불렀다.
“내 죄책감을 말하려고 한 게 아니야. 멍멍이 형님이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을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건 분명히 무섭고, 괴로운 거니까.”
은호는 흑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멍멍이 형님. 진짜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멍멍이 형님을 혼자 두지 않아.”
은호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존재가 흑견이었다.
흑견이 얼마나 외로움이 많은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족을 잃은 그 비참한 감정을 아는데, 내 가족한테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을 거야.”
은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럼,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인가?”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어째서인가?”
“멍멍이 형님이 있으니까. 모두가 내 옆에 있어 주니까.”
그제야 흑견이 앞발을 들어 새끼발가락을 내밀었다.
은호는 꼭 쥐었다.
“멍멍이 형님. 나 진짜 행복해.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 바닷속 일도 그래. 내가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그 꼴이 되어서도 뿌듯한가?”
“당연하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좋아할지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
“…타거라.”
흑견은 다시금 은호를 태웠다.
“우리 멍멍이 형님, 날 너무 좋아해서 어떡하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아무도 없는데, 솔직해지면 어때.”
은호는 키득거렸다.
“인간도 똑같다.”
아무도 없어야 저렇게 말을 하면서.
꼬맹이들한테 걱정 끼치기 싫다고 입이나 꾹 다무는 주제에.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뭐, 뭐?”
은호는 깜짝 놀라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흑견은 귀를 쫑긋 세웠다.
“멀리 있다. 대화는 들리지 않았을 거다.”
“뭐야. 그럼, 못 들은 거잖아.”
“가볼 건가?”
“당연하지.”
은호는 즐겁게 웃었다.
* * *
“…그 열매 내놔. 대체 무슨 열매길래 밤새 캐 온 거래?”
아기곰을 닮은 환수는 같은 종을 향해 앞발을 흔들었다.
“이건 내 거야. 네가 가져오면 되잖아.”
“그러고 있잖아? 네 걸 가져가면 내 거니까.”
“하지 마. 내가 진짜 열심히 캔 거란 말이야!”
“뺏기기 싫으면 힘으로 해보시던지.”
환수가 두 앞발을 앞으로 내밀며 제법 사납게 웃었다.
‘…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말없이 들어보면 아기자기하게 생긴 두 환수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을 들어보면 내용이 전혀 달랐다.
‘도와줘야겠네.’
카락인 시칸이 생각났다.
시칸도 딱 저렇게 만났으니까.
흑견이 은호를 붙잡았다.
“왜 그래?”
흑견은 말 대신 앞을 가리켰다.
은호는 맹금류의 눈을 발동하고 있었기에 더 확대해 앞을 보았다.
“잠깐.”
그쪽으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달빛을 등지고 있었기에 어두웠다.
어떻게 생겼을까.
“괴롭히는 건 허락할 수 없소.”
무거운 목소리가 다시금 흘러나왔다.
괴롭히고 있던 환수가 그 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 어, 어쩔 건데?”
아직 협박이 엉성했다.
성체가 아닌 걸까.
말과 다르게 뒷걸음질하는 모습도 우스웠다.
“응징하겠소.”
스겅.
무언가를 뽑는 소리가 들렸다.
‘……?’
은호는 소리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달빛에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보며 놀랐다.
‘…검?’
어딜 봐도 검처럼 보였다.
도구를 쓰는 환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은호는 갑자기 나타난 저 환수를 더 주목했다.
상황 자체가 변해버렸다.
“…공격할 거야? 진짜, 날 공격한다고?”
“괴롭힘을 한다는 건, 그 반대도 각오한 게 아니오?”
발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작았다.
달빛이 서서히 걷어졌고, 그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은호의 눈이 커졌고, 괴롭히던 환수가 크게 웃었다.
작았다.
그야 어딜 봐도 병아리를 닮아 있었다.
동글동글한 모습과 달리 벼슬과도 같은 깃이 머리 위를 장식했고, 깊게 누른 꽁지깃이 바닥에 쓸릴 정도로 꽤 길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칼이 아니라 깃털이었다.
깃털을 꼽기 위해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검집 같은 깃털 집이 있었다.
아기곰을 닮은 환수의 절반조차 안 되는 크기였다.
“네가…….”
스걱.
번쩍이는 깃털과 함께 나무가 베였다.
괴롭히던 환수의 뒤쪽에 있던 나무였다.
쿵.
그 소리에 환수는 뒤를 돌았다.
나무가 잘려버렸다.
“…….”
언제 나무를 벤 건지 보지도 못했다.
“물러가시오.”
병아리를 닮은 환수의 말에 괴롭히던 환수는 아무 말도 없이 도망쳤다.
“저어…….”
“고맙단 말은 됐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환수는 병아리를 닮은 환수를 보며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윽한 눈빛을 하고는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잠…….”
은호는 뛰어가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쫓아가겠는가?”
흑견이 뒤에서 묻자 은호는 겁에 질린, 아기곰을 닮은 환수를 보며 웃었다.
“안녕.”
은호가 손을 흔들었다.
일단 이 친구가 먼저였다.
* * *
“…자, 받아.”
태호가 은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봉투였다.
“갑자기 이게 뭐예요?”
“열어 봐.”
은호는 그 말에 봉투를 열었다.
국가 특별 보호 지정 인물이 됐다는 내용 증명서였다.
자세히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며 복도를 거닐다 태호에게 물었다.
“왜 임시에요?”
“…뭐? 임시라고?”
태호가 손을 내밀자 은호는 글자를 정확히 가리켰다.
“……진짜네? 이것들 왜 이래?”
“한 번 직접 오라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겠죠.”
가을이 대답했다.
“…하. 이번 일이 끝나면, 확인해볼게.”
태호는 지혜의 방 앞에 서서는 노크했다.
똑똑.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오시는 길이 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혜는 세 사람을 반겼다.
“국장님.”
자리에 앉자마자 은호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깃털을 칼처럼 사용해 나무를 베는 환수가 있는 거 알아요?”
은호는 어젯밤에 일어난 작은 소동을 떠올렸다.
너무 신기해서 지혜한테도 알려주고 싶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태호가 지혜의 심정을 대변하듯 말을 꺼냈다.
여기서 그 이야기라니.
가을의 표정마저 살짝 일그러졌다.
“……병아리였어요.”
제법 진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혜가 웃음이 그만 가볍게 터지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이내 표정을 다잡았다.
이런 일을 웃을 줄이야.
황당한 태호의 시선을 지혜는 살짝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