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9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97화(197/302)
197화. 절대 삐약(3)
“중대한 대결?”
은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삐요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렇소. 이제 볼일이 끝났다면 가주겠소?”
“…미안해.”
은호가 사과했다.
삐요는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너무 내 생각만 했네.”
자신이 삐요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게 이런 식으로 보일 수 있다니.
“어제 네가 다른 친구를 도와준 걸 봤어. 멋지더라고. 그래서 말을 나누고 싶었어.”
은호는 씩 웃었다.
이렇게라도 말을 나누니 기쁘긴 했다.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가 흘러나와 더 기뻤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친구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은호는 삐요를 보러온 진짜 볼일까지 끝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더냐?”
잘린 나무를 쳐다보고, 건드리던 라비는 은호를 올려다보았다.
“아쉬운 거 아는데, 더는 방해하면 안 되지. 집에 가자.”
“벌써 가는 것이더냐? 나는 좀 더 보고 싶다.”
“아. 잠깐만.”
은호의 말에 라비가 기대했다.
하지만 가방에서 피를 꺼내자 이내 실망하고는 나무에게 화풀이했다.
“사고뭉치야.”
은호가 꺼낸 말에 라비는 움찔거리다 레비아탐에게 달려갔다.
잠깐 키득거린 은호는 피를 살짝 떨어트렸다.
그대로 땅을 쓰다듬었다.
‘내가 저 친구 대신 사과할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은호는 삐요를 보았다.
“중대한 대결에서 반드시 이기길 빌게.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은호는 손을 흔들어주며 등을 돌렸다.
그를 멍하니 보던 삐요는 묘한 느낌을 느꼈다.
아쉽다.
낯선 감각이었다.
처음 보는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웃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삐요는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자라고 있었다.
그게 뭔지 유심히 바라보자, 자신이 벴던 나무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고 있었다.
삐요는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자라 다시 원래 나무가 되었다.
멍하니 바라보다 말고 부리를 핥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중요한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인간이 나무를 다시 자라게 해주었다는 걸.
“…잠깐만 기다리시오.”
삐요는 은호가 갔던 그곳으로 힘껏 달려갔다.
은호가 뒤를 돌아보다 삐요를 향해 웃으며 몸을 낮췄다.
“왜 그래, 친구야?”
“왜 날 도왔소?”
“응?”
“왜 날 위해 나무를 다시 키워준 것이오?”
“눈치챘어…?”
은호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꼭 친구를 돕겠다고 그런 건 아니야. 부담가지지 마.”
정확히는 그 땅을 위해서였다.
봤는데, 모르는 척할 순 없었다.
나무들도 베어지고 싶은 건 아닐 테니까.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소?”
삐요가 물었다.
“맞아. 그랬어.”
“물어보시오. 대답해주겠소.”
“친구야.”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그러지 않아도 돼. 이건 정말…….”
“어떻게 깃털로 나무를 벴더냐?”
라비가 끼어들었다.
눈이 초롱초롱 반짝거렸다.
“깃털이잖암. 깃털로는 나무를 벨 수 없는뎀.”
레비아탐도 성큼 다가가 은호의 옷자락을 쥐며 물었다.
“만져봐도 돼? 응?”
폭시가 꼬리를 흔들며 부탁했다.
“어떻소?”
삐요가 꼬맹이들을 보며 은호를 향해 부리를 벌렸다.
* * *
“…여기 있소.”
삐요가 깃털을 내밀자 폭시가 제일 먼저 용감하게 다가와 앞발로 만졌다.
금세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깃털이야. 그냥 깃털인데?”
킁킁.
냄새도 맡았다.
저 존재의 냄새가 났다.
“정말이더냐?”
라비가 그제야 다가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밀었다.
발가락으로 깃털을 건드리고는 이내 뒤로 빠졌다.
앞 발가락을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
라비가 그제야 당당하게 다가왔다.
폭시 옆에 있던 레비아탐이 앞발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레비아탐도 만져보거라.”
“그램.”
레비아탐이 앞발로 깃털을 만졌다.
“부드러웜!”
입꼬리를 올리던 레비아탐이 깃털을 쥐었다.
당당하게 위로 올렸다.
“내가 깃털을 쥐었담.”
바로 라비를 향해 휘둘렀다.
“으아아악!”
라비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거기 서람!”
레비아탐은 달리다 말고 바로 몸을 돌려 폭시를 향해 휘둘렀다.
꺄르르.
폭시도 도망쳤다.
“안 잡힐 건데? 나는 빠른데?”
은호는 깃털 하나로 정말 잘 노는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길어졌다.
동시에 저 사이에 낀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했다.
도저히 체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레비아탐. 적당히 뛰어. 나중에 걷기 어려울지도 몰라.”
“알겠엄!”
레비아탐이 힘껏 대답하며 달렸다.
으함.
흑견은 그대로 몸을 뉘었다.
햇살도 따뜻했고, 노곤노곤한 느낌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윈디드가 없어서 아주 최고였다.
흑견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눈을 살포시 감았다.
평화로웠다.
주변을 둘러보던 삐요는 은호에게로 걸어갔다.
이곳에 있던 나무까지 다 살아났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왜 오늘 만난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지 몰랐다.
“나는, 오늘을 위해 수많은 나무를 베었소.”
삐요가 말했다.
“중대한 대결 때문에 말이야?”
“맞소.”
삐요는 날개를 닮은 앞발을 보았다.
“이 작은 손으로는 내가 목표로 하는 걸 이룰 수 없소.”
깃털이 작게 달려 있어봤자 뭘 하는가.
날지도 못했다.
그저 뛰어내릴 때, 덜 다치게 하는 용도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힘 역시, 약하기 그지없소. 그러니 더 강해져야 했소.”
“아, 그래서 깃털을 단단하게 만든 거야?”
“맞소! 간단히 구할 수 있고, 쥐기도 편했소.”
아주 잠깐 꽁지깃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단단하게 만들어서 베어내면 낼수록 나는 깃털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소.”
그윽한 눈빛을 하던 삐요의 눈동자에 반짝거림이 어렸다.
머리에 달린 긴 깃털을 살짝 만지며 미소가 감도나 싶더니, 고개를 들자마자 사라졌다.
“그래서 나무를 베어냈소. 이게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소. 그렇기에 이 일이 끝나면 나는 내가 벴던 모든 나무에게 사과하고, 돌보는 일을 하려고 했소.”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소리에 은호는 잔잔히 웃었다.
애초에 환수는 자연과 어울려 사는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준 환수가 있었나 싶었다.
‘아니지, 있긴 있었지.’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른 환수는 바로 ‘왕’이었다.
어떤 종인지, 어떤 이름인지 몰라도 그 마음은 바닷속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나무들은 네가 그런 마음을 품은 것만으로도 진짜 좋아할 거야.”
은호는 바닥으로 손을 다져댔다.
땅을 쓰다듬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렸다.
화.
안 났어.
“화 안 났대, 친구야.”
은호는 그 말을 얼른 알려주었다.
“…정말이오?”
삐요가 놀라며 물었다.
“식물 친구들아, 이 친구가 믿을 수 있게 한 번만 도와줄래?”
은호가 부탁하자, 주머니에서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 모습을 은호가 봤다.
처음에는 자신이 식물들에게 부탁할 때마다 왜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내미나 싶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똑바로 안 해?
그렇게 말하면서 살펴보는 게 분명했다.
‘군기가 확실하게 들어갔는데?’
자신은 그런 적이 없는데, 누가 그렇게 군기를 잡았을까.
은호는 위그드라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삐요 옆에 식물이 자라났다.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잎으로 삐요의 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다였다.
식물은 애초에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삐요에게는 달랐다.
“…내가, 내 욕심을 차린다고 베어버렸소. 화가 나지 않소? 너무도 일방적이었소. 그대들은 내게 화를 내도 되오. 나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오.”
수없는 은혜를 나무에게 입었다.
평생을 다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였다.
하지만 식물은 다시 삐요를 살짝 건드렸다.
삐요가 앞발을 내밀고, 식물은 그 위로 잎을 잠깐 얹다 이내 내렸다.
삐요는 그 앞발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나오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짧지만, 정말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교감을 느낀 것만 같았다.
삐요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에는 뿌듯함만이 보였다.
“…나는 이곳에 원한을 갚으러 왔소.”
삐요는 할 생각이 없던 말마저 흘렸다.
“원한… 이라고?”
“그렇소.”
삐요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내겐 은혜를 갚아야 할 존재가 있었소. 절벽에 떨어질 뻔한 날 구해준 고마운 존재요.”
당장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 존재의 모습이 선명했다.
아주 밝은 존재였다.
―내가 구했어! 내가 널 구했어! 그렇지? 그럼, 우리 친구 하자!
경쾌한 웃음소리도 기억났다.
“…그 존재가 죽었소. 알다시피 약속 때문에 서로를 죽일 수 없소.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별개요.”
은호는 삐요가 꺼내는 괴로움에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은호는 손을 뻗어 삐요를 토닥거렸다.
“…정말, 지독하게도 그 존재를 괴롭혔다오.”
삐요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원래도 깊은 그 눈에서 짙은 슬픔밖에 없었다.
“몰랐소. 계속 웃고 있기에 몰랐소. 그 마음이 다치는 것도… 나는 몰랐소.”
삐요는 앞발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잘 봤어야 했는데.
자신이 더 잘 눈치챘어야 했는데.
웃는다고 진짜 웃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썩어가도 웃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으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은호가 건넨 위로에 삐요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들어도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은혜를 갚겠다고 했는데, 갚을 게 이것밖에 없소. 내가 그 존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소.”
“승부 말이야?”
“…맞소.”
삐요는 숨을 들이마시며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단 한 번의 승부를 가리고자 했소.”
“그 존재가 허락해준 거야?”
“그렇소. 나를 비웃으며 허락했소.”
삐요는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살아오면 승부를 해주기로 했소.”
“…잠깐만. 그 상처도 그 존재가 입힌 거라고?”
“그렇소.”
“이렇게… 심각한데? 약속을 어기려고 한 거야?”
은호는 긴가민가하다 물었다.
삐요의 배에 있는 흉터는 정말로 깊었으니.
애초에 죽이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오. 그저 내가 작았기 때문이오. 나는 조금만 스쳐도 크게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소.”
작았다.
몸은 작고 여렸다.
단련해서 바뀌지 않는 여린 몸이기도 했다.
왜 자신은 작게 태어났을까.
꽈악.
삐요는 앞발에 힘을 주었다.
“그 존재가 조건을 허락한 것도 아마 겁이 나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소. 아니면 그렇게 해야 공격을 당한 내가 정신을 붙잡을 수 있으니 허락하지 않았나 싶소.”
하지만 이건 다 추측이었다.
그 존재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살아 돌아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죽어가는 자신에게 꺼낸 그 소리가 너무도 선명했으니.
“나는 살아 돌아왔고, 이제 대결을 할 수 있소.”
굳건함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은호는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친구야. 혹시 그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나보다 훨씬 크오. 나보다 작은 존재는 없겠지만, 정말 크오.”
삐요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뭔가 특정될 게 없기에 은호는 자고 있는 흑견을 가리켰다.
“멍멍이 형님보다 커?”
삐요는 눈을 돌렸다.
사실 처음 볼 때부터 눈길이 가는 존재였다.
어떻게 인간하고 같이 있을 수 있을까.
“비슷할지도 모르겠소.”
그 대답에 은호는 조급함을 느꼈다.
‘멍멍이 형님하고 비슷하다니.’
솔직한 심정으로 말리고 싶었다.
그게 옳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대결은 언제 하는 거야?”
“모레요.”
“내가 지켜봐도 될까?”
“괜찮소.”
흔들림 없는 대답에 은호는 머뭇거리다 물었다.
“혹시 무섭지 않아?”
“괜찮소.”
삐요가 웃었다.
“나는 나를 믿소.”
굳센 눈을 하며 은호를 보았다.
솔직히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 인간 옆에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꼭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소.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랐소.”
은혜를 갚으려고 꺼낸 이야기에 누구보다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건 바로 자신이었다.
또 은혜를 입었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랐다.
당장 이틀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 자신이 뭘 해줘야 할까.
“나는 그대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그럼, 친구야. 내 집에 가서 밥 같이 먹을래? 잠도 푹 자고 말이야.”
“밥과… 잠이오?”
“내가 보기에 넌 휴식과 함께 실전 훈련이 필요해 보여.”
“실전 훈련을 어디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은호는 그 물음에 흑견을 가리켰다.
여기 딱 있었다.
“아. 집에 가면 한 친구 더 있어.”
윈디드라고 흑견과 맞먹는 크기를 가진 환수이기도 했다.
“어때? 밥 한번 같이 먹을 만하지?”
군침을 흘리는 삐요의 눈빛을 보자 은호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