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0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01화(201/302)
201화. 그림은 살아있다(2)
은호는 눈을 의심했다.
공에 발이 달렸다니.
하지만 정말이었다.
몇 번을 봐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공에 달린 발이 보였다.
‘……공을 닮은 환수도 있어?’
은호는 손가락을 뻗었다.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 다른 종족이야?”
“은호. 저건 공이야.”
일렉트가 딱 잘라 말했다.
인간이 만든 물건이었다.
왜 인간인 은호가 모르는 걸까.
일렉트의 눈동자가 묘하게 가늘어졌다.
“아니, 아니, 그런 눈빛은 안 돼, 삐죽아. 애초에 발이 달린 공은 없어.”
“없다고? 그런데 봐, 말썽꾸러기. 발이 달린 채 굴러가잖아. 저건 공이고.”
윈디드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새삼스럽게 반응했다.
“그러니까 다른 종족이냐고.”
“아니. 우리 종족 중에는 없어.”
윈디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처럼 올라온 깃이 내려갔다.
“잡아줘, 삐약아!”
은호는 저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
왜 발이 달려 있는지도.
“좋았어.”
윈디드는 숲에서도 거리낌 없이 날개를 펼치며 달려갔다.
저공비행이 어렵다는 걸 아는데, 윈디드는 나무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았다.
그대로 뒷발로 공을 쥐었다.
터졌을까 생각했는데, 멀쩡한 상태로 은호의 앞에 다시 돌아왔다.
“…와.”
은호는 새삼스럽게 윈디드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보고 있자니, 진짜 멋졌다.
“이거 받아, 말썽꾸러기.”
“삐약아. 어떻게 그렇게 잘 날아다니는 거야?”
“은호. 나도 날 수 있어.”
일렉트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알지. 우리 삐죽이가 잘 나는 건 아는데, 삐약이도 진짜 잘 날지 않아?”
은호는 일렉트를 쓰다듬으며 키득거렸다.
역시 삐죽이였다.
“고마워, 말썽꾸러기. 이런 칭찬은 처음이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게 당연했기에 별생각은 안 해봤다.
그런데 잘 난다고 칭찬받자, 이건 또 느낌이 달랐다.
윈디드는 방긋 웃었다.
“말썽꾸러기.”
“응?”
은호는 공을 붙잡으려고 몸을 숙이다 말고 고개를 올렸다.
“왜 그 친구가 말썽꾸러기 옆에 있으려는지 알겠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일렉트는 무슨 새삼스러운 말을 하냐며 말했다.
“똑똑한데, 작은 친구?”
윈디드의 칭찬에 일렉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썽꾸러기는 어떻게 쉴 새 없이 칭찬을 해줄 수 있는 거야?”
이 맛을 가장 먼저 흑견이 알아버린 걸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맞아. 은호는 계속 칭찬해줘. 나는 아까 받았어.”
먼저 반겼다고 칭찬해줬다.
일렉트는 우쭐거렸다.
“그거야, 당연히 잘했으니까, 잘했다고 말해야지.”
말은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때 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칭찬이 그랬다.
그 상황이 끝난 뒤에 칭찬해봤자 무슨 소용일까.
윈디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한 은호를 향해 웃었다.
“말썽꾸러기가 너무 상냥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나하고 작은 친구가 날고 있는 건 당연한 사실이잖아?”
“내가… 상냥한지는 모르겠는데?”
은호는 공을 움켜쥐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저 원래 세상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게 다였다.
은호는 괜히 머쓱함을 느끼며 시선을 내렸다.
공을 보았다.
‘…어?’
다리가 달렸고, 움직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실제 다리가 아니었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으로 만져보자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가방에서 물 토템을 꺼내왔다.
아주 살짝 물을 뿌리자 물감이 번진 것처럼 흐려졌다.
당장 움직임도 멈췄다.
‘와…….’
은호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자 윈디드와 일렉트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존재의 냄새는 나지 않는데? 여기에 있는 힘 때문인가?”
윈디드는 다시금 냄새를 맡았다.
매우 신중한 얼굴이었다.
“난 모르겠는데.”
일렉트는 알쏭달쏭한 느낌에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몇 번을 맡아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전기 냄새는 잘 맡을 수 있는데.”
입술을 내민 채로 일렉트는 속상함을 드러냈다.
“나는 아예 모르겠어. 그냥 풀 냄새만 나.”
일렉트가 은호가 꺼낸 말에 꺄르르 웃었다.
“은호도 나랑 같아.”
‘그림을 그리는… 환수도 있는 건가?’
은호는 밀려오는 기대감에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다른 생각으로 뒤바뀌었다.
‘초능력자는… 아니겠지?’
초능력자라면 가능할법한 힘이긴 했다.
‘환수 밀렵꾼이라면 지금 국장님이 다 초토화하고 있는데.’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나는 와중에 환수 밀렵꾼이 설칠 리가 없었다.
‘정화자는 아니겠지?’
환수를 괴롭힐만한 단체는 이제 정화자뿐이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거슬리는 곳은 환수 연구소가 되었다.
환수의 숫자가 적었을 때야 굳이 위험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수많은 환수가 환수 연구소에 있었다.
자신이 환수 연구소를 들락날락하면서 계속 피를 넣는 것도, 식물을 키운 것도 다 환수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말썽꾸러기.”
윈디드의 부름에 은호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윈디드는 고갯짓했다.
“둘 다 날 따라오면 돼.”
뭘 발견했는지 몰라도 꽤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 * *
‘…와. 저게 뭐야?’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윈디드의 등에 탄 채 얼마나 숲속으로 들어갔는지 몰랐다.
나무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 이게 뭔가 싶었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뭔가 묘했으니까.
괜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점점 안으로 발걸음을 움직이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낙서는 그림이 되었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윈디드와 일렉트마저 시선을 뺏겼다.
“…은호. 그림이 움직이지 않아?”
일렉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다.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자 정말로 살아 움직였다.
깜짝 놀라 은호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림이 움직이는데?”
움찔거리는 건 일렉트만이 아니었다.
은호 역시 예상치도 못한 일에 경악하면서 동시에 신기해했다.
손을 뻗어봤다.
나비를 만져졌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가락을 보자 무언가 묻었다.
물감 같기도 했고, 부드러운 가루 같기도 했다.
묘했다.
바람을 불어보자, 훨훨 날아갔다.
‘…?’
은호는 깨끗해진 손가락을 보다 그림이 있는 나무를 향해 바람을 불어보았다.
흩날리지 않았다.
마치 어그러지지 않으면 한 대 꽉 뭉쳐서 풀리지 않는 조립형 장난감 같았다.
“이걸 왜 그렸을까?”
은호가 물었다.
“글쎄. 그런데 정말 예쁘지 않아,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제법 밝았다.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그림도 있었는데, 이 역시 근처를 지나가면 반짝거렸다.
그림마다 튀어나오는 효과가 달랐다.
“아. 공 가져다주고 올 걸 그랬다.”
은호는 공을 가방에서 꺼냈다.
어떤 환수가 공에 힘을 사용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그만 깜박하고 말았다.
지금쯤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 존재를 만난 뒤에 공을 줘도 되지 않을까? 공에 힘을 쓴 모양인데, 물어보고 줘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해. 이 근처에 있기도 하고.”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은호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흑견이라면 단호하게 말했을 텐데.
그걸 생각하니 뭔가 웃겼다.
새삼스럽게 성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삐약이는 이렇게 구경하는 거 좋아해?”
“좋아해. 날면서 보면 세상이 정말 넓게 보여. 그런데 딱 거기까지야. 때론 이렇게 내려와 가까이서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
윈디드가 눈웃음을 지었다.
포근한 미소였다.
“낮게 날면 되잖아.”
입을 벌린 채 여기저기 구경하던 일렉트는 귀에 들려오는 말에 대답했다.
“나는 몸집이 있는 편이라 나무를 피하는 게 좀 어렵더라고.”
“아. 나무를 피하는 건 나도 어려워.”
일렉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은호를 보았다.
“은호가 해주면 되지 않아?”
“응? …내가?”
“나무한테 비켜달라고 말하는 거야.”
일렉트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어렵겠는데, 삐죽아.”
“왜? 왜 어려워?”
“나무가 우리한테 맞춰야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여기를 살아가던 건 우리가 아니라, 저 나무들이야. 정말 급한 일이라면 부탁할 수는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맞춰야 하는 게 아닐까?”
일렉트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아! 맞아. 생각해보니 그게 맞아.”
일렉트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던 윈디드는 잠깐 말을 멈췄다.
“…오고 있어.”
나무에 그림을 그린 환수가 오고 있었다.
윈디드는 어떤 존재인지, 은호와 마찬가지로 설렘을 담아 바라보았다.
“나가, 당장.”
기대와 달리 날카로운 목소리부터 흘러나왔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그렸던 그림들이 갑자기 하나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매서운 눈동자라 상당히 섬뜩했다.
“여긴 우리 작업 공간이야. 누구도 날 방해할 순 없어.”
더욱더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눈으로 변한 그림 역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널, 방해하러 온 거 아니야.”
은호가 목소리를 냈다.
“거짓말하지 마!”
숲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평소 누군가에게 위협이라도 받았는지, 제법 신경질적이었다.
“공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어. 공에 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이게 어떤 힘이 궁금해서 숲속으로 들어가던 중에 그림을 발견했어.”
은호는 저 환수가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설명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아름답더라.”
달리 꺼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정말로 그림은 아름다웠다.
모두가 하나씩 구경하면서 걸어갔을 정도였으니까.
진작 알았으면 더 빨리 왔을 텐데.
환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걸어오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나무 사이로 구름을 닮은 귀가 보였다.
빼꼼히 내민 얼굴에 박힌 눈은 날카로운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슬퍼 보였다.
“안녕, 친구야.”
은호는 환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환수는 은호를 보더니 살짝 뒷걸음질했다.
“너, 넌 뭐야?”
까칠한 소리가 흘렀다.
얼굴을 보니,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환수의 꼬리는 길었고, 꼬리 끝은 붓처럼 수많은 털이 모인 채 부드럽고, 가지런했다.
두 발로 선 채로 은호를 보았다.
팔에 달린 털은 날개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손가락은 섬세한 작업을 위해 매끄럽게 뻗은 편이었다.
굳이 닮은 얼굴을 꼽는다면 새끼 사슴을 닮아 있었다.
“인간이야.”
은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환수는 기겁했다.
“인간이… 어떻게 우리 말을 하는 거야?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여길 찾아온 거야?”
환수는 손을 옆으로 크게 벌렸다.
“오지 마! 아무것도 방해하지 말라고!”
“…여길, 인간이 찾아온 거야?”
은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인간은 우리를 싫어해!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아? 인간은 우리를 잡아간다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이 환수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저 불안함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은호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이제 마지막 그림이야! 조금만, 조금만 그리면 되는데, 왜 여길 온 거야?”
환수는 불안한 듯 다시금 소리쳤다.
제발, 가줘.
그냥 가.
막연한 거절만 눈동자에 어렸다.
은호는 완벽한 거절의 의사에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인간이 온 건 내가 처음이야?”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고 싶었다.
“맞아. 여기까지 올 리가 없잖아. 여기에 미친놈이 살고 있는데.”
“…미친놈?”
쿠웅!
갑자기 어디선가 큰 소란이 들렸다.
“아씨!”
환수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환수가 말한 미친놈일까.
어떤 다른 환수인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너희 빨리 가. 알겠어?”
환수는 대충 말을 던진 뒤, 왔던 곳으로 급히 움직였다.
“말썽꾸러기.”
“응?”
“저기 멀리 그림이 보였어.”
“…그림?”
“맞아. 아주 짧지만, 발이 보였고.”
윈디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은호. 슬쩍 보고 오자.”
일렉트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도 동의해.”
윈디드 역시 이 호기심을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일렉트와 윈디드의 시선을 받은 은호는 잠깐 고민했다.
이 일에 개입해도 될지 말지를.
“…잠깐만 보고 올까?”
은호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미끼를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다.
특히 방금 환수가 꺼낸 ‘마지막 그림’이라는 그 말이 참 마음에 걸렸으니까.
* * *
쿵쿵!
그림이 살아 움직여 나무를 마구잡이로 부수고 있었다.
윈디드가 봤던 발이 저거일까.
조금 전에 봤던 그림과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여러 의문이 돌았지만, 은호는 말부터 꺼냈다.
“멈춰, 친구야!”
저 앞에 누군가 있었으니까.
흙먼지가 가라앉자 다른 환수가 보였다.
방금 그 환수랑 똑같이 생겼다.
‘…어?’
은호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윈디드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방금 가라고 분명히 했는데, 나를… 쫓아왔어?”
방금 그 환수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질겁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급히 앞으로 가 손을 길게 뻗었다.
“우리 스승님한테 뭐 하려고 한 거야?”
“스승님…?”
“그래!”
“너 방금, 미친놈…….”
“조용히 해!”
환수가 다가와 은호의 입을 막았다.
크게 흔들리는 눈을 보자 은호는 알아버렸다.
방금 말한 미친놈이 스승이었다는 걸.
은호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