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02화(202/302)
202화. 그림은 살아있다(3)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제자가 떳떳하게 스승을 욕하고 다녔다.
은호는 이 사태가 몹시 웃겼다.
장난기가 어린 은호의 눈웃음에 환수는 기겁했다.
“하지 마!”
은호는 그 말에 더 웃었다.
“진짜 하지 말라고 했어!”
환수가 더 강조했지만,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안 쫓아낼 테니까, 하지 마!”
말이 바뀌자 그제야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묵적인 합의가 돌고 난 뒤에야 환수는 스승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만 좀 해요!”
이런 일이 익숙한지, 가져왔던 바가지를 들고 와 뿌렸다.
촤악!
물이 뿌려지자 발 모양의 그림이 녹아내렸다.
동시에 스승이 물벼락까지 맞아서야 모든 일이 끝이 났다.
스승은 고개를 흔들며 물을 털었다.
뭐라고 할 것만 같았지만, 스승은 오히려 부드럽게 환수를 불렀다.
“…자안아.”
“네, 스승님.”
“미안하다.”
스승은 자안이라 부르는 제자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어서 가시지요. 뒷정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세상 공손한 태도에 은호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친구,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는데?’
몸에 밴 행동은 하루 이틀 다져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스승은 말꼬리를 늘이다 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저 환수처럼 눈이 슬퍼 보였지만, 인자했다.
그것도 잠시, 그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당장 할퀼 것만 같이 천천히 날을 세웠다.
“왜 인간이 이곳에 발을 디뎠는가?”
스승의 물음에 은호가 먼저 답을 했다.
“지나가다가 발견했어.”
“지나가다가? …잠깐.”
스승의 눈이 가늘어졌다.
갑자기 은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은호의 목에 감긴 일렉트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은호 팔을 그렇게 세게 잡으면 부러져!”
“아니. 그건 아닌데…….”
“정말 인간인가?”
스승은 손을 놓고 은호를 보았다.
눈동자가 환해졌다.
“맞아. 인간이야.”
“…우리를 해치러 왔는가?”
제법 무거울 수 있는 물음이지만,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너머의 다른 걸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면 이렇게 오지 않았겠지?”
은호의 대답에 스승은 그의 곁을 지키는 윈디드와 일렉트를 이어 보았다.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한 시선을 했다.
“스승님. 왜 그러세요? 당장 쫓아낼까요?”
날름 꺼내는 그 말에 은호는 자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안 쫓아내기로 약속했는데.
‘좀 치사한데?’
은호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아니.”
스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을 꺼냈다.
“자안아. 인간을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말하는 인간을 본 적이 있더냐?”
“그 역시 없습니다.”
“그럼, 인간을 그려본 적은 있더냐?”
“인간을 왜 그립니까?”
자안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스승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릅니까?”
자안이 꺼낸 말에 은호는 괜히 입술을 다물게 됐다.
인간하고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승님께서 왜 병을 앓게 됐는지, 모릅니까?”
“그걸 왜 은호를 보면서 말해?”
일렉트가 불만을 드러냈다.
인간한테 불만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은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스승이 고개를 끄덕이다 자안의 머리를 때렸다.
“아잇! 왜 때리십니까?”
“무릇 그림이란, 마음에 따라 흐르는 거라고 말했을 텐데.”
“아니, 사실이잖습니까!”
“저 인간이 그랬는가?”
“…….”
“그걸 화풀이라고 한다. 알아들었는가?”
스승의 물음에도 자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윈디드는 미간을 꿈틀거리다가 다가갔다.
흑견은 매번 이런 광경을 봤을까.
“작은 친구. 지금 은호에게 화풀이한 거 맞잖아? 은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해버리면 은호가 난감하잖아?”
조용히 날을 세웠다.
스승과 일렉트에 이어 윈디드까지 말을 하자 자안은 압박을 느꼈다.
“…미안해.”
자안은 고개를 숙인 채 웅얼거렸다.
잘못했지만, 잘못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말썽꾸러기.”
“응?”
“매번 이랬던 거야?”
윈디드가 물었다.
저 억지 사과에 자신도 이렇게 속상한데 은호는 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까.
“아니. 그렇지는…….”
“매번 이래. 내가 봤을 때도 자주 그랬어.”
일렉트가 은호의 말을 잘라먹었다.
“…너무하네.”
윈디드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지 못했다.
이렇게 일방적이라면 인간을 욕할 자격도 없었다.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었다.
“에이. 내가 낯설어서 그런 거야. 나하고는 말이 통하잖아? 그간 인간한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어. 그게 나한테 오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은호가 표적이 되는 건 옳지 못해. 이건 틀린 거라고.”
폭시도 윈디드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은호는 그게 기뻤다.
윈디드는 행복해 보이는 은호의 표정에 분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래서 그 친구가 날을 세운 거였어.’
윈디드는 흑견을 떠올렸다.
애초에 저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일부러 강하게 나갔던 거라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왜 저렇게 하나 생각만 했네.’
윈디드는 흑견에게 미안했다.
은호가 자신들과 너무도 당연하게 있기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은호는 이곳에서 혼자 인간이었다.
만약에 이 세계에서 인간이 소수라고 치면 이런 일이 얼마나 빈번하게 벌어질까.
그렇게 생각하니 똑같았다.
윈디드는 천천히 날을 세웠다.
“똑바로 사과해. 그건 사과가 아니야.”
자신이 은호를 보호해야 했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
스승이 자안을 대신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자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과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괜히… 화풀이해서 미안해. 이건 진심이야.”
“사과해줘서 고마워.”
은호는 두 환수에게 걸어가 안아주었다.
거리낌 없는 그 행동에 둘 다 놀랐다.
하지만 굉장히 좋았다.
이 느낌은 뭘까.
자안은 혼란스러운 눈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야.”
은호는 스승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대를 그리고 싶네.”
“나를?”
“…쭉,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네.”
“자, 잠시만요, 스승님!”
자안이 기겁했다.
인간을 그리다니.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내가 농담이라도 하겠는가?”
“아니, 아니.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잖습니까.”
“그건 실패야.”
단호한 소리에 자안은 꼬리를 내렸다.
실패라니.
“거의 다 그리면 완성이잖습니까! 그게, 그게 어떻게 실패일 수가 있어요?”
“자안아.”
스승은 자안을 불렀지만, 자안은 그저 혼란에 찬 눈으로 뒷걸음질했다.
꼬리가 땅에 질질 끌렸다.
“조금만 그리면 완성이었어요. 스승님의 마지막 그림을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잖아요.”
당장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애달픔이 눈에 어렸다.
“이게 곧이었는데…….”
“자안아.”
스승의 부름에도 자안은 숲을 달려갔다.
이내 깊은 숨소리가 스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동자로 뒷모습을 좇는 시선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쫓…을까?”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내버려 두어도 되네. 자안이 내 그림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고 있으니.”
스승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내 마지막 그림이라네. 부디, 그대를 그릴 수 있게 해주게.”
* * *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디인팅.》
《.》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환수입니다. 그림 이외에 그 무엇도 상상하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그림을 위해 진화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간혹 그림에 관심이 없을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 큰 행복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은호는 디인팅의 설명을 듣다 기분이 이상했다.
‘평생… 그림을 그린다고? 그냥,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거야?’
이게 본능이었다.
환수가 거절할 수 없는 본능.
디인팅에게 있어 그림이란 그냥 삶이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삶.
《손가락과 꼬리에 특이한 물질이 나옵니다. 이 힘으로 그림을 그리면 살아 움직입니다. 완성된 그림을 직접 움직일 수 있으며 상상력을 따라 힘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다만, 물에 닿으면 지워질 수 있습니다. 지워진 그림은 바로 힘을 잃지 않고, 천천히 사라집니다.》
비가 오면 그림이 사라진다는 소리였다.
‘아름다운 그림이 비에 닿으면 사라지는 건 좀 그렇네.’
아쉬웠다.
잠깐 그림을 본 자신도 이토록 아쉬운데, 디인팅들은 얼마나 더 안타까울까.
“여기라네.”
스승은 동굴로 안내했다.
“그림은 비에 닿으면 사라진다네.”
“사라진다고?”
윈디드가 깜짝 놀랐다.
그 반응이 신선한지 스승은 웃었다.
“그러면 나무에 그려졌던 그림도 다 지워진다는 소리야?”
윈디드가 다시금 물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왜 그리는 거야?”
일렉트의 입에서 가장 순수한 질문마저 튀어나오자 스승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
“지워질 걸 알면서도 왜 그리고 있는지 궁금한가?”
스승이 물었고, 일렉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궁금해.”
“영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네.”
“영혼이 어떻게 살아 있는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가득 오르면서 바라보는 것들이, 삶이 그렇게도 기쁠 수가 없다네.”
“그런데 마지막 그림이라며? 네가 하는 말은 이상해.”
일렉트는 입을 아주 살짝 내밀었다.
저렇게 기뻐하는데 대체 왜 마지막이라는 건지 몰랐다.
“병을 앓고 있다네.”
“병…?”
은호는 스승을 똑바로 보았다.
겉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되는 건 없었다.
어떤 게 문제가 되는 걸까.
“마음의 병이라네.”
은호의 시선을 느낀 스승은 그저 웃어주고는 천장을 보았다.
“그림이… 이제 더는 내게 어떤 울림도 주지 않게 되어버렸지.”
평생, 무언가를 그려오기만 했다.
다른 그 어떤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밀려드는 자괴감과 상실감에 몸부림치는 것도 이제는 힘들었다.
그저 텅 비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대를 보니, 그때, 그 울림이 살아나는 것 같았네.”
“정말? 날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렇다네. 허락해줘서 고맙다네.”
“친구야.”
은호는 머뭇거리다 스승을 불렀다.
“말해도 된다네.”
“아까 자안이 그러더라고. 네가 마음의 병을 앓은 건 인간 때문이라고.”
“그대가 미안할 필요 없는 일이라네.”
“하지만 사과할 인간은 나밖에 없잖아.”
“그게 그대가 될 이유는 없다네.”
스승은 은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내 마음을 다시 이렇게 뛰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야.”
스승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한눈에 보자마자 꺼져가던 영감을 되살려주었다.
참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눈동자부터, 미소, 그리고 흐르는 분위기까지 손이 다 근질거렸다.
“무엇보다 내 잘못도 있다네.”
더는 묻지 말라는 소리에 은호는 그만하기로 했다.
스승은 은호의 손을 꽉 쥔 뒤, 놓아주었다.
“작은 친구. 혹시, 아까 그리다 만 그림을 보여줄 수 있어?”
윈디드는 그 그림이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면 제자가 저런 반응을 할까.
“눈을 버릴까 걱정스럽다네.”
“아니야. 나는 그림을 그리는 법도 몰라. 어릴 때 바닥에 낙서한 게 다인데.”
윈디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궁금해. 보여줘.”
일렉트 역시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준비 좀 하고 있을 테니 보고 있게나.”
“나도 봐도 돼?”
은호는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사실 엄청 궁금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괜찮다네.”
“그런데 친구야. 자안을 안 쫓아도 되는 거야?”
“아마 그 그림 앞에 있을 거라네.”
스승은 제자가 어디 있을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을 정말 좋아했으니까.
* * *
“…어어.”
일렉트의 단춧구멍 같은 눈이 아주 커졌다.
“이건 정말…….”
윈디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미완성임에도 그림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다가 펼쳐진 모래사장에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도 생생했다.
얼마 전에 바다를 갔다 와서 그런지 더욱 진짜 같았다.
“……친구야.”
은호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설마 이 그림이야?”
“그렇다네.”
“…이, 이걸 왜 완성 안 시키는 거야?”
은호는 저절로 말이 더듬어졌다.
귓가로 파도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토록 생생한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자안이 대답했다.
그림 앞에 웅크려 앉아서는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건 그 누구보다 내가 더 간절하네. 하지만 어떤 걸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네.”
“저하고 하면 되잖아요! 제가 계속 도와드리겠습니다!”
“자안아. 손이 멈추면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너 역시 알고 있지 않더냐.”
자안 역시 그림을 그리기에 이 막막한 감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그림은 한 번 놓아버리면 다시 이어가기가 너무도 힘들었으니까.
자안의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정말로 저 그림을 포기할 셈인지 단호함까지 보였다.
그럴 수 없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었다.
자안은 밀려드는 감정을 더는 이길 수 없었다.
“스승님께서는.”
입가가 다 떨렸다.
“…또 인간한테 그림을 빼앗길까 포기하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