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0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09화(209/302)
209화. 좀 많이 늦으셨네요
똑똑.
노크한 뒤 가을은 태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박사님.”
가을의 목소리에 태호는 시선을 올렸다.
“그래, 가을 씨. 무슨 일 생겼어?”
“보고드릴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보고라는 말에 태호는 작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을이 먼저 소파에 앉았다.
“우선, 오늘 오전 11시쯤에 환수 관리국에서 임시 보호하던 환수들이 이곳으로 올 겁니다. 조치는 다 해뒀습니다.”
“아, 그건 이지혜 국장한테 들었어.”
“그리고 이건 오늘까지 보호된 환수의 건강 상태입니다.”
가지고 온 서류와 함께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호는 요약된 태블릿 내용부터 먼저 살폈다.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환수가 오지 않아 손가락만 빨던 시설을 생각하면 너무도 행복했으니까.
“다들 경과가 좋네?”
“그렇습니다. 주요 관찰 대상인 레딩과 아타 역시 호전 중입니다.”
아타는 ‘티토’라는 이름이 있는 환수였다.
태호는 만족하며 태블릿을 내렸다.
나머지는 서류로 좀 더 자세히 봐야 했다.
가을은 태블릿을 가져와 움직이더니 영상을 하나 띄웠다.
CCTV 영상이었다.
숲으로 보이는 곳이었고, 그곳에 얼굴과 몸을 다 숨긴 채 다가온 남자가 보였다.
주변을 감찰하더니, 뭔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급하게 도망치는 모습이 찍혔다.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태호는 눈썹을 올렸다.
“여기 우리 연구소 같은데?”
“맞습니다. 환수 연구소 주변에 기웃거리고 있는 남자를 CCTV에 포착했습니다.”
가을의 대답에 태호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포착했다고? 경비는? 잡긴 한 거야?”
“경보가 울려 출동했으나,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잡지 못했다는 소리에 태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이지혜 국장에게 연락이 왔는데, 정화자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하더라고.”
정화자들은 원래 도시 외곽 쪽을 노리는 편이었다.
놈들에게는 이상하나,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환수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끔찍한 목표였다.
환수에게 나온 그 힘이 초능력자를 탄생시켰다.
기본적으로 환수를 싫어하는 이들이겠지만, 원치도 않게 초능력자가 된 사실에 통곡하며 정화자가 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환수의 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겠다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으로 도시 외곽 쪽에 어슬렁거리곤 했다.
“이거, 은호 씨가 최근에 입원한 이유와 이어져 있습니까?”
가을이 묻자 태호는 긴 숨을 내쉬었다.
요 며칠 괜찮나 싶었는데, 다시 또 시작이었다.
“그렇지. 산꼭대기에서 설쳐대는 정화자들을 막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정화자 일이라 혼내진 못했지.”
“정화자들이 변한 건 그 사건 이후가 아닐까요?”
“하이프 사건에 얽힌 정화자들 말이야?”
“맞습니다. 정화자들이 환수를 죽이지 않고, 실험했습니다. 그 실험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박사님은 아시잖습니까.”
“알고 있지.”
태호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실에 미안함을 담아 가을을 보았다.
왕과 관련된 일이었다.
“어쩌면 정화자를 조종하고 있는 위쪽에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잖습니까.”
“심경의 변화라니?”
“목표가 변했다기보다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심경의 변화 말입니다.”
가을이 꺼낸 말에 태호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 멍청이들이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는 거네?”
“그렇…….”
탁.
누군가 책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와 가을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움직였다.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그 문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어 활짝 웃는 은호의 얼굴이 뒤를 이었다.
“안녕… 하세요. 노크했는데, 못 듣더라고요.”
“…놀래라.”
태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쩐지 이상했다.
가을과 은호 이외에 접근이 어려울 텐데.
“지금, 왜 또 돌아다니십니까?”
“아니에요. 아윤 씨한테 심부름 받았어요.”
―어차피 소장님 방에 가실 생각일 테니, 이거 부탁합니다.
아윤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너무도 이상했다.
마치 그곳에 당연히 있을 거란 생각부터가 웃겼으니까.
은호는 뭐가 됐든, 웃으며 봉투를 흔들었다.
“진짜,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제대로 안 들렸어요. 누가 막 듣지 못하게 가로막은 것 같았어요.”
“맞아. 여기서 하는 말이 밖으로 새면 되겠어?”
태호는 손을 내밀었다.
뭐길래 심부름까지 시킨 건지.
태호는 봉투를 열어 안을 보았다.
아주 잠깐 얼굴이 굳어졌다.
그대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은호가 흥미를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앉았다.
덩달아 책상에 앉은 태호가 입을 열었다.
“정화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환수 연구소 주변에 기웃거리는 걸 확인했거든.”
“아! 그거 내가 잡았어요.”
은호가 활짝 웃었다.
가을이 그 말에 사례라도 걸린 듯 기침했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수상한 사람 있으면 잡아달라고 부탁해놨거든요.”
식물들한테.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 일단 기절시켰다.
“재워놨어요. 혹시 몰라 멍멍이 형님한테 부탁했는데, 데려올까요?”
“잠깐만 은호 씨. 연락부터 할게.”
태호가 말을 꺼내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은호는 기다리며 가을을 바라보았다.
뒷말을 꺼내주길 바라는 그 시선에 그녀는 흔쾌히 목소리를 꺼냈다.
“최근 바뀐 정화자 전략과 관련된 말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이프 사건과 얽힌 정화자들을 기준으로 놈들을 조종하는 자의 심경 변화가 있었다고요.”
“확실히 다르긴 하죠. 무려 실험이라는 걸 했으니까요.”
왕은 너희를 버렸다.
저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재생했다.
누가 부탁한 걸까.
아니면 그냥 환수에게 ‘약속’이라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아채 이를 깨버리려고 하는 걸까.
‘사실 환수가 약속을 깨서 야성이 드러나면 정화자 입장에서는 좋긴 하겠네.’
명분이 생기는 꼴이 아닌가.
환수가 먼저 사람을 공격했다고.
“그럼,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 이야기도 했나요? 이지혜 국장님이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이 얽혀 있다고 했잖아요.”
은호는 말을 던지며 잠깐 생각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초능력 관리국 국장, 이도현 개인이 얽혀 있습니다.
그때, 지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 근거로 여러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하이프와 얽힌 정화자 관련된 사건에 환수 밀렵꾼은 일절 엮이지 않았다.
환수 밀렵꾼 중 가장 큰 단체인 SA의 수장 하나율이 위장 취업한 곳이 HWM기업이었다.
그 기업에서 봉사 단체로 위장한 정화자에게 때마침 후원을 보내지 않았다.
환수가 있어 엮일 수밖에 없는 환수 밀렵꾼과 대기업인 HWM의 상황을 보면 너무도 수상하다고.
“맞습니다. 우회해 후원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을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따로 조사했다.
그 결과, 지혜가 말했던 것처럼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 이도현이 나왔다.
이도현이 넘긴 돈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그렇게 여러 번 우회해 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정화자들에게 꽂혔다.
가을은 태블릿으로 그 증거를 띄웠다.
“…와, 진짜네요? 이렇게 증거가 나와버렸네요?”
은호는 신기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이렇게 명확한 증거로 보니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인 이도현의 발악이 보였다.
어떻게든 죄를 피하고자 하는 발악.
“저번에 하나율이 연락을 취한 곳이 초능력 관리국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증거가 있을 거잖아요.”
은호가 웃었고, 태호는 전화를 끊으며 대답했다.
“가지고 있지. 초능력 관리국 때문에 유예림을 놓쳤으니까. 그 이유로 사건이 좀 꼬였잖아?”
“꼬였죠.”
“아마 은호 씨가 아니었으면 더 꼬였을 거야.”
태호는 눈썹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유예림의 세 치 혀에 놀아났을 가능성이 컸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정화자들이 위장한 봉사 단체에 후원했음에도 HWM 혼자 빠진 사실을 들었을 겁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여러 가능성이 나왔잖아.”
태호는 다시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서류 내용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이 대화에 낄 시간이었다.
“이 미심쩍음을 제가 조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을이 자신감 있게 말을 꺼냈다.
그제야 태호는 그녀가 이 방으로 온 이유를 알았다.
‘이것 때문이었네.’
언제 이렇게 조사를 마쳤는지 몰랐다.
아무래도 대기업이다 보니, 여러 방비가 꽤 강했을 텐데.
“대기업답게 초능력 방어도 잘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을은 안경을 올리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방어가 잘 되어 있으면 뭐 하겠는가.
결국, 뚫려버린 것을.
“조사 결과, 하나율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HWM에서는 봉사 단체로 위장한 정화자들에게 후원을 지시했습니다. 후원을 받았다는 내역서와 영수증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HWM은 정화자들이 위장한 그 봉사 단체에 돈을 보냈단 말이야?”
“맞습니다. 하나율이 도중에 돈을 가로채고, 위조까지 했습니다.”
“…뭔가 이상한데요?”
은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마치 하나율이 HWM을 공격하려는 것 같잖아요. 우리가 알아낸 건 하나율 뒤에 HWM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였는데요?”
은호는 이상함을 더 털어놓았다.
봉사 단체가 정화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당연히 후원자들을 조사하기 마련이었다.
HWM도 조사를 받게 될 테고, 여기서 문제가 터질 게 뻔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조사가 시작되면 HWM에 화살이 가지 않을 리가 없죠. 더 강한 화살 말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요.”
돈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 내역서는 가짜였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가을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찾았던 정보가 맞지 않았다.
“이게 하나율이 숨긴 정보입니다. HWM은 하나율의 뒷배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가을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아주 불쾌했다.
“환수 관리국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지금으로서는 하나율의 뒷배는 자연스럽게 초능력 관리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율이 도움을 요청한 곳은 초능력 관리국이었으니까.
“정화자와의 관계 역시 다르게 변하겠네요?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이 돈을 넘긴 셈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초능력 관리국과 손을 잡은…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진 않지. 이번에 은호 씨가 잡은 정화자들을 추궁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
태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정화자가 하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하나의 파로 이뤄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목표는 정해졌네요.”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 이도현.”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왔다.
다만, 그를 잡기에는 부족했다.
국장을 끌어내리려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형.”
은호는 태호를 불렀다.
“조심해야겠는데요?”
환수 연구소 주변을 얼쩡거린 그 남자가 정화자가 맞다면 놈들의 표적은 환수 연구소였다.
“…그러게. 이게 제일 크네.”
태호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팔짱마저 낀 채 굳어진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것도 아주 깊은 고민이었다.
“형. 그래도 말할 입은 있어요.”
은호는 손깍지를 껴 엄지를 만지작거렸다.
천천히 눈빛이 깊어 갔다.
하나율이 있었다.
“털어버릴 곳도 명확하고요.”
“그렇지. 끌어내려야 하는 곳은 초능력 관리국이야.”
정화자들의 날개를 끊어버려야 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큰 연줄이 초능력 관리국이었다.
* *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혜가 눈앞에 앉은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하도 연락이 없어서, 바쁜 사람에게 와달라 말할 수도 없으니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네, 바쁩니다.”
지혜는 딱 잘라 말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이도현 국장.”
그가 눈앞에 앉아 있었으니까.
“바쁜 와중에 이렇게 연락도 없이 오셨으니, 해야 할 일이 꼬여가는 중입니다. 이 무슨 행동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의를 따진다면 할 말은 내가 더 많습니다.”
“무슨 말씀이 그렇게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지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 환수 관리국이 가져간 환수 밀렵꾼들, 데려가겠습니다.”
“우리한테 그놈들을 맡겨놨습니까?”
“초능력자입니다. 비소속 초능력자. 초능력 관리국에서 관리해야 하는 놈들이란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업무를 빼앗아 가시면 무척 곤란합니다.”
지혜는 도현을 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꽉 눌렀다.
상당히 초조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쉽게, 하나율을 붙잡을 줄 몰랐을 테니까.
“그 전에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지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씀하시죠.”
“환수 밀렵꾼이든 정화자든 호송 중에 왜 그렇게 많이 놓치신 겁니까?”
지혜는 정곡을 찔러버렸다.
“환수 관리국에 계시다 보니, 잠깐 잊으셨나 봅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건 환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간악하고, 약아빠진 사람 말입니다.”
“그걸 달리 말해 ‘무능력’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아, 초능력 관리국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간악하고, 약아빠진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지혜는 말을 마친 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으로 걸어갔다.
“이도현 국장. 꽤 급했나 봅니다. 오늘 온 연락도 받지 못한 걸 보면 말입니다.”
지혜는 책상에서 공문서를 하나 가져와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들은 앞으로 우리 환수 관리국에서 관리하라는 정부의 지침입니다.”
지혜는 공문서를 강탈하듯 가져가는 도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좀 많이 늦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