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화(2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1화
21화. 전기는 조심합시다(3)
“그거 꼭 검사해야 해요?”
은호는 가을을 따라 나갈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풀고 싶었다.
“원래 초능력 같은 힘을 가질시, 검사는 거쳐야 합니다.”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설마 감옥이라도 가는 거예요?”
은호는 말에 장난기를 가득 감았다.
“네, 갑니다. 법으로 검사는 필수라고 명시되어 있거든요.”
은호가 얼른 가을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자 그녀의 시선이 묘하게 가늘어졌다.
“워, 원래 가려고 했어요. 그냥… 그냥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에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무서워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감옥에 가지 않게 도와드릴 테니까요.”
가을은 등을 돌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뒷모습이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 * *
은호는 숨을 고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은 거 맞죠?”
“맞습니다. 박사님께서 만드셨으니까요.”
“형이요……?”
“시중에 풀린 초능력자 확인 장비도 박사님이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박사님 작품이죠.”
“그런데, 음, 장비는 보통 이런 의자에 앉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은호는 자신의 손과 발을 결박한 의자를 내려다보았다.
목소리에 긴장감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 기계가 제일 정확합니다. 실제로도 검사를 위해 많이 오세요. 손과 발을 결박한 건 검사 도중 혹시 모를 공포에 뛰쳐나갈까 해놓은 안전장치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다고 말하면 웃으실 거죠?”
“네.”
가을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게 기계를 조작하며 은호를 보지도 않았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제가 초능력자가 되면 어떡하죠? 사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가끔 그런 생각하잖아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퇴사 후에 초능력자?’ 같은 거요.”
“초능력자는 기본적으로 국가 소속 사람이 됩니다.”
“그거 이전에도 들었는데, 국가 대표 같은 느낌은 아니죠? 혹시, 다른 말로 현대판 노예인가요?”
은호는 바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만약에 그런 거라면 진짜 화가 날지도 몰랐다.
“국가 소속이 되었다고 자유권을 빼앗기진 않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정부의 시선이 더 강할 뿐이죠. 무엇보다 초능력을 가졌다고 모두가 국가 소속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에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만 봐도 초능력자는 위험하다며 격리하던데요?”
“초능력은 다양하죠. 가령, 지우개만 뒤집는 힘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키보드 중 ‘ㅏ’와 ‘ㅗ’를 손대지 않게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고요.”
“……어.”
은호는 말을 아꼈다.
사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걸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압니다.”
가을은 고개를 올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놀란 그의 표정을 보자 가을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서은호.
저 사람은 대체 뭘까.
그 뒤로도 틈틈이 은호의 지문과 사진을 이용해 확인을 해봤지만, 아예 존재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지식을 제외하면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말이 신뢰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진짜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
애초에 환수도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하늘에서 구멍이 생겼고, 그곳에서 등장한 존재라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때, 모든 전자기계가 마비되어 그 상황을 사진이든 영상이든 기록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미 선례가 있어 완전히 이상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는 자신의 나라 ‘아리아’든, 다른 나라든 세간의 시선을 피해 양성된 특수요원일 수 있다는 가능성.
사실 현실성을 보자면 후자였다.
국가가 작정하고 만든 보안을 뚫으면서까지 불법을 저지른 적은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 속에 은호의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티 났나요?”
가을은 어색하게 웃는 은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 자체는 흔한 편이에요. 국민의 절반 이상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절반 이상이요?”
와.
이세계.
은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네. 제대로 된 초능력자가 잘 없을 뿐이죠. 저도 초능력자거든요.”
가을이 안경을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초능력이 전투와 관련된 능력이 아닐 뿐이죠. 어떻게 서은호 씨의 신분을 그렇게 쉽게 조작했겠어요?”
“맞는 말이네요? 전 진짜 대단한 해커인 줄 알았거든요.”
“어쨌든, 이제 시작할게요. 머리 근처로 기계가 빙글빙글 돌 텐데,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빛이 세게 나와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가을의 말에 은호는 숨을 참았다.
그냥 긴장됐다.
사실 어른으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뿐이지, 주사 놓는다고 하면 다들 긴장하지 않는가.
은호는 눈을 감았다.
양쪽에 있던 기계가 붕붕 움직이며 귓가를 간질였다.
이어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감아도 놀랄 만큼의 빛이었다.
왜 손과 발을 포박했는지 알 정도였다.
머리라고 하지만, 사실, 몸을 중심으로 기계가 돌아갔다.
그 소리가 꽤 위협적으로 들려 은호는 좀처럼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2분만 참으세요.”
2분이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은호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상하게 숫자를 세면 셀수록 몸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기계가 뇌를 자극해 가지고 있던 힘을 극대화해 어지러울 수도 있다고 했는데, 뭔가 달랐다.
몸이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시금 떠오르는 느낌이 맴돌았다.
웅성거림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자연이 이따금 말을 걸 때와 비슷한 소리 같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힘이 주변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자마자 갑자기 발은 뿌리가 되었고, 다리는 굵직한 몸통이 되었으며 팔은 나뭇가지처럼 위로 뻗어졌다.
이상한 느낌이라 은호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그게 어려웠다.
“반갑습니다,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그때, 낯선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귀가 다 간지러웠다.
“잠깐, 당신을 느껴 벅찬 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이곳으로 불렀습니다. 놀라게 했다면 너무도 죄송합니다.”
‘너무… 놀랐는데요? 심장이 지금 다 튀어나오기 직전이에요.’
그 존재는 웃었다.
웃음마저 이렇게나 감미롭게 들릴 수 있을까.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당신을 보내주신 이 땅에 많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자연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걸 오늘에서야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가 고개를 숙이는 게 느껴졌다.
감동했을까. 아니면 안도했을까.
아주 조금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괜찮습니다. 당신의 존재로 이미 모든 게 충분합니다.”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요, 그런 거창한 존재가 아니고 그냥 좀 특별한 사람이에요.’
“뭘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 이상은 당신이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무리하게 당신을 불러들여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목소리의 떨림이 더욱 커졌다.
눈물을 삼키는 건 분명했다.
‘갑자기 왜 울어요?’
“…기뻐서 그럽니다. 너무 기뻐서요. 부디 몸조심하시고,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공손한 그 말을 끝으로 땅에 박힌 다리이자 뿌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은호는 다급히 눈을 떴다.
“……괜찮으세요? 서은호 씨! 괜찮으세요?”
눈앞에 놀란 가을이 보였다.
이렇게 감정을 크게 드러낸 적이 있을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라도 일단, 해야 하는 건 그녀를 다독이는 일이었다.
“…잠깐 꿈을 꿨나 봐요. 괜찮아요.”
은호는 웃다 말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짙은 피가 그의 코에서 흘러내렸다.
* * *
“은호 씨가 그러니까…….”
태호는 가을의 말에 크게 놀라서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이내 방에 꽉 들어찬 흑견의 시선이 덩달아 움직였다.
그 움직임 하나에 태호와 가을은 저절로 긴장했다.
사실 환수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위험성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저들의 고삐를 잡고 있던 은호가 사라진 셈이 아닌가.
“그, 그러니까, 은호 씨가…….”
은호의 침대에 웅크려 있던 레비아탐과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일렉트는 다시금 태호의 입에서 나온 ‘은호’라는 말에 반응해 소리를 냈다.
“삐옹. 삐오오옹.”
“티라?”
태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레비아탐과 일렉트의 시선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런 시선은 살면서 언제 받아볼 수 있을까.
“네. 초능력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을은 태호의 뒷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 사람과 같았다. 아니, 일반 사람 중에도 초능력과 아예 관련이 없는 그런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환수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걸까.
가을은 밀려오는 의문에 삼켜질 것만 같아 살짝 긴장된 채 안경을 올렸다.
대체 어떤 존재인지 더더욱 모르겠다 싶었다.
“……와.”
은호가 목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나른함이 얼굴이 확 번졌다.
흑견이 그 목소리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저 초능력자 아니라고요? 사실, 호랑이 입속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살았는데요? 다시는 어디에 소속되고 싶지 않거든요.”
어딘가에 소속된다고 생각만 해도 거의 만성에 가까울 정도로 남아 있던 위염과 장염이 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은호는 웃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슬픔이 느껴졌다.
은호는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 흑견에게 달려갔다.
태호가 놀라며 링거를 당장 들고는 따라갔다.
“미안, 놀랐어? 그런데 멍멍이 형님. 내가 회사에서 개같이 굴렀을 때도, 기절은 잘 안 했는데. 이상하더라고.”
은호는 흑견을 꽉 안았다.
솔직히 꿈인지, 뭔지 아직도 헷갈렸다.
하지만 뭐가 됐든, 신기한 경험이었고, 머릿속에 계속 지워지지 않겠다 싶었다.
“별로 안 잤지? 기분상 30분인데, 맞으려나?”
은호는 손가락 두 개를 든 가을의 행동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2시간 정도 흘렀단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서은호 씨.”
가을이 고개를 숙이자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온기가 사라지자 흑견의 눈이 커지고, 덩달아 태호 역시 움직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아니니까, 그러지 말아요! 고개 안 숙여도 돼요!”
은호가 곤란해 보이는 얼굴을 하자 가을은 잠깐 웃음을 터트렸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태호에게서 흘러나왔다.
가을이 웃다니.
자신도 그녀와 일하면서 잘 보지 못했는데.
“축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은호 씨는 초능력자가 아닙니다.”
“축하죠. 당장 샴페인부터 터트리고 싶은데요?”
자신이 강제로 정부에 귀속될 리는 없다는 소리였다.
자유를 선고받았는데, 얼마나 신이 날까.
은호는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탁자에 놓인 헤드셋을 낀 뒤에 레비아탐에게 물었다.
“놀랐지? 검사는 잘 받고 왔어?”
“…혹시, 많이 졸렸남? 어제 나 때문에 못 잤남?”
“원래 다니던 회사가 좀 악질이라 한 10년 치 피로가 몰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래.”
은호는 고개를 내려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잘 있었어? 검사는 놀라지 않았고?”
“……안 놀랬어.”
“왜 거기 있어? 다들 안 잡아먹을 텐데.”
“…무서워서.”
은호가 손을 뻗자 일렉트는 조용히 기어나 와서는 그의 손을 타고 올랐다.
다른 손으로 레비아탐을 쓰다듬었다.
“레비아탐은 어때요? 혀, 나을 수 있죠? 아, 멍멍이 형님이랑 일렉트가 짧게나마 검진했는데, 상태는 어때요?”
은호는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태호에게 물었다.
“은호 씨?”
“네.”
“보통은 본인 몸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괜찮으니까요. 회복력도 어마어마하게 좋아요. 난 괜찮잖아요? 그렇죠?”
당연함을 담아 묻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레비아탐의 상태부터 말해줘요. 사실 그걸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일단 보조기를 장착해야 해. 혀가 잘린 지 좀 시간이 지나서, 힘을 조절할 능력을 잃어버렸거든. 우선, 감부터 찾는 게 중요해. 보조기는 지금 만들고 있고.”
“보조기를 계속 차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 잘린 혀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거기에 재활 훈련도 필요해. 훈련만 제대로 한다면 감각은 두 달, 길면 넉 달 안에는 돌아올 거야.”
당당한 태호의 말에 은호는 주저 없이 바로 레비아탐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는 은호의 표정에 레비아탐 역시 덩달아 웃었다.
“레비아탐! 보조기를 착용하고 재활 훈련을 열심히 하면 다시 힘 조절을 할 수 있대!”
“…….”
힘차게 꺼낸 그 말에 레비아탐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두툼한 꼬리가 땅에 닿았고, 더듬이가 내려와 얼굴에 닿았다.
몸이 덜덜 떨리는가 싶더니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은호는 레비아탐의 등을 토닥거렸다.
레비아탐은 앞발로 얼굴을 가린 채 침대에 그대로 얼굴부터 묻었다.
“……고마웜. 고마웜.”
뭘 더 말할까.
너무도 간절히 바라던 말을 들었는데.
“레비아탐.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태호 형이야.”
레비아탐은 울면서 고개를 올렸다. 은호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키가 큰 인간이 있었다.
벌써 눈가가 촉촉해진, 그 눈동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 인간도 특이했다.
“사실 난, 정말롬. 정말로 인간한테… 도움을 받을지 몰랐엄.”
레비아탐은 훌쩍였다.
혀가 잘린 그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외롭고, 고달프고, 계속 마음이 아팠다.
레비아탐은 태호에게 두 팔을 내밀었다.
겨우 짧은 그 팔이 내밀어졌을 뿐이었지만, 태호는 목구멍까지 밀려오는 감정에 눈가가 시큰거렸다.
연구소가 지어진 이래로 이렇게 다가와 줬던 환수가 있던가.
태호는 혹여 레비아탐의 저 손이 깨질까, 조심히, 정말 조심히 손을 내밀었다.
레비아탐이 태호의 손을 쥐었다.
찌리릿 하고 밀려오는 감정에 태호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삐오오옹!”
다른 건 몰라도 레비아탐의 두 볼이 올라가며 꺼낸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마워.
* * *
“…으쌰.”
은호는 그대로 마당에 드러누웠다.
이러라고 있는 게 마당이 아닌가.
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소리를 들으며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반짝이 가루가 무수히 날리는 광경같이 아름다운 별들이 눈에 스며들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홀려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은호의 눈동자에 수많은 은하수들이 생기며 밀려오는 감동에 마음이 흘릴 때쯤, 흑견의 목소리가 툭 치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자라.”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일찍 잔다고 크는 시기는 이미 지났거든.”
흑견이 꼬리를 움직여 은호의 몸뚱어리 위에 살포시 놓자 은호가 실실 웃었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금빛이 뒤섞인 흑견의 까만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말해라.”
“오늘 말이야, 레비아탐이 태호 형의 손을 잡을 때, 사실 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뭐가 이상했나?”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처음 봤거든.”
은호는 잠깐 헤드셋을 벗어 바라보았다.
자신은 드루이드이기에 환수들과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헤드셋을 착용하며 웃었다.
“난, 행운아야.”
“뭐가 말인가?”
“이렇게 멍멍이 형님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지.”
은호는 고개를 위로 올리며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귀를 쫑긋 올린 흑견은 시선을 피하자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레비아탐은 이제 당분간 거기서 재활 훈련을 받을 테고, 일렉트는 진짜 집을 구했잖아?”
일렉트가 연구소의 전기를 끌어다 쓰긴 했지만, 태호는 일렉트가 연구소에 머물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다.
둘 다 너무 신나 보였기에 자신 역시 신났다.
“이 정도면 임시 보호소로서 잘한 걸까?”
“인간.”
“응?”
“대체 왜 우리를 돕는 건가?”
은호는 다시금 마주한 샛노란 눈동자를 보며 이번에는 먼저 고개를 돌려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지켜보다 은호는 아주 늦게 말문을 열었다.
“…그냥. 내가 좋으니까.”
천천히 은호의 눈에 힘이 풀려갔다.
“내가 더 행복하니까.”
이내 은호는 눈을 감았다.
고요한 숨소리가 들리자 흑견은 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특이했다.
신기했다.
무엇보다 거짓말 같지 않았다.
흑견은 발가락 끝으로 은호의 볼을 살짝 누르다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