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2화(212/302)
212화. 밤에 피는 등불(2)
폭시는 눈동자를 굴리다 말고 다급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멍멍이 형님! 은호, 술 마셨어!”
폭시가 쪼르르 달려가 흑견에게 알렸다.
“……?”
은호는 순식간에 사라진 폭시의 자취를 보다 뒤늦게 움직였다.
술기운이 다 달아났다.
문을 닫고 나가려다 문득 든 싸한 느낌에 뒤를 쳐다보았다.
레비아탐과 라비가 꿈틀거렸다.
이대로 깨어나나 싶어 배를 문질러주자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차.’
은호는 침대를 꼭 덮고 자는 위그드라실에게 다가가 쓰다듬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머리에 달린 잎사귀가 파닥파닥 움직이다 이내 축 늘어졌다.
은호는 입꼬리를 올린 채 옷을 대충 챙기고 계단을 내려갔다.
흑견 옆에 폭시가 붙어 있었다.
흑견이 은호를 보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다.”
“삐약이도?”
폭시가 윈디드를 빼꼼히 보았다.
“솔직히 저게 술인지는 몰랐어.”
“안 돼. 은호가 술 마시면 무조건 말려야 해. 알겠지, 꼭 말려줘.”
폭시가 윈디드에 매달려 말하자 시선이 자연스럽게 은호에게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썽꾸러기.”
폭시까지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윈디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 삐약이가 느끼는 그 감정, 나도 같이 느끼고 있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은호는 콧잔등을 긁다 흑견과 폭시를 보았다.
절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은호는 그제야 뭔가 알 것만 같았다.
환수들은 술을 별로 먹지 않았다.
흑견이 아예 술을 먹어보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취할 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술을 먹고 달라진 반응이 낯선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웃겼다.
원래 술이 한 잔, 두 잔 이렇게 들어가면 정신을 사알짝 놓는 법이었으니까.
‘아, 이제 속이 좀 후련하네.’
은호가 갑자기 웃자 흑견과 폭시, 그리고 윈디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재밌네.’
이제야 저 표정들을 즐길 수 있었다.
은호는 시선을 돌려 윈디드를 보았다.
“삐약이는 술 좋아해?”
“…아니.”
윈디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정에서부터 묘한 난감함이 보였다.
“아마 좋아하는 존재가 드물걸?”
그 대답을 듣고서야 은호는 일부러 윈디드에게 다가갔다.
앞 발가락을 꿈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에 은호는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술 몇 잔에 맛이 갈 정도는 아닌데, 다들 굳어 있는 게 너무 재밌었다.
더 놀리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제 애들 깨기 전에 갔다 오자. 우선, 폭시 문제부터 해결하고.”
“작은 친구한테 문제라니?”
윈디드는 폭시를 보았다.
폭시는 은호에게 다가가 뒤로 숨었다.
말하기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은호가 대신해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귀신을 보러 갈 거야.”
“귀신…? 그게 뭐야?”
윈디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낯선 말을 듣는 듯했다.
“죽은 뒤에 남는 영혼을 말해.”
“아아, 영혼을 말하는 거였어?”
“그건 죽음의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다.”
흑견이 단호히 말했다.
죽음에서 태어난, 니르바나라는 환수를 만나고 왔기에 은호 역시 공감했다.
니르바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라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했다.
그곳에서 자신은 영혼조차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귀신일 수 있잖아. 정말, 정말, 드물게 그럴 수도 있잖아.”
폭시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흑견이 딱 잘라 말했다.
“빛이… 일렁거렸다가 사라졌대! 아무도 없었대!”
“분명히…….”
은호는 다급히 흑견의 입을 막았다.
왜 저렇게 말하는지 이해는 하나, 거기까지였다.
윈디드는 은호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확인하러 가려고. 어차피 나가는 길이었잖아.”
은호가 말리자 흑견은 여전히 아니꼬운 눈을 했다.
볼 수 없고, 보려고도 해도 할 수 없는 세계를 존재한다고 믿다니.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흑견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자로 파고들었다.
“가자, 폭시야.”
“그래. 가서 확인해보는 거야, 작은 친구.”
은호와 윈디드가 위로하자 폭시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 * *
흑견은 위를 보았다.
빛이 일렁거린다는 말에 윈디드가 하늘을 날았다.
위에서 보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이긴 했다.
알지만, 윈디드가 방향을 알려주는 게 뭔가 아니꼬웠다.
“멍멍이 형님. 표정 좀 풀어.”
“인간은 내 뒤통수만 보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보이는가?”
“딱 보면 알지.”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위를 보았다.
윈디드는 밤과 비슷한 색을 품고 있기에 원래는 잘 보이지 않아야 하지만, 머리 위에 달린 링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 켜놓고 있었다.
앞으로 쭉 날던 윈디드가 갑자기 멈추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덩달아 흑견이 걸음을 멈췄고, 폭시가 몸을 움찔거렸다.
은호의 팔을 잡은 폭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은호는 폭시의 등을 토닥이다 말고 웃었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털이 뻣뻣하게 올라올까.
“폭시야. 괜찮아.”
“은호는 아, 안 떨려?”
“나는 아직 괜찮아.”
폭시에게 말을 전한 환수가 뭘 봤는지가 더 궁금했다.
은호는 윈디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머리에 달린 링에 빛이 꺼지자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흑견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가 싶더니, 윈디드가 내려왔다.
잘 보니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기 앞에 빛이 있어.”
“…누, 누가 그랬는지 봤어?”
폭시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어. 빛이 혼자서 맴돌던데?”
윈디드가 꺼낸 그 말에 폭시는 기겁하며 은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벌벌 떨었다.
“…진짜 귀신이었어! 귀신!”
“아직 아니야 폭시야. 진짜인지 확인하러 가봐야지.”
“…….”
폭시가 입을 꾹 다물자 은호는 잠깐 고민했다.
혼자 남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따라오라고 말하기에는 겁을 먹은 상태였다.
“이렇게 가면 괜찮겠지?”
은호는 폭시를 안았다.
폭시의 앞발이 은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폭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폭시야.”
“…응.”
“귀신이 무서운 이유가 뭐야? 나는, 음… 나를 원망할 것 같아서 무섭거든.”
형이 찾아와서.
가족이 찾아와서 손가락질할까, 그게 참 무서웠다.
“…감정이 안 보일 것 같아서.”
폭시는 예상과 다른 말을 꺼냈다.
“그게 무서워.”
이어진 그 말에 은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자신도 경험해 본 세계였다.
감정이 눈으로 보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답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늘 그런 세상에서 살았는데, 이 힘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보면 얼마나 무서울까.
마치 얼굴 없이 다니는 사람과 마주한 느낌이지 않을까.
은호는 폭시의 두려움을 이해했다.
“그러면 더 봐야겠는데?”
그대로 흑견의 등에서 내려왔다.
혹여 넘어질까, 주변에 있던 식물들이 은호를 잡아주었다.
“고마워.”
은호는 식물들을 보며 웃었다.
이곳까지 피를 뿌린 적은 없었지만, 뭔가 소문이 퍼진 건지, 달라진 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따뜻해졌다.
은호는 앞으로 걸어갔다.
“병아리. 정말 아무것도 못 봤는가?”
흑견이 물었다.
“안 보이더라고. 나무 때문에 못 봤을 수 있는데, 일단 위에서는 빛밖에 안 보였어.”
“다른 건?”
“다른 거? …아.”
무슨 말을 하냐고 물으려다 윈디드는 곧바로 눈치챘다.
인간을 말한다는 걸.
“없더라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
힘이 있는 인간을 보면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가진 힘의 영향을 받았기에 일어나는 반응일지도 몰랐다.
흑견은 저렇게 확신하는 윈디드의 말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은호의 뒤를 따랐다.
밤의 숲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은호의 귀로 환수들이 꺼내는 말이 들려왔다.
“…또, 또 저러네.”
“아, 저 빛 말이야?”
“맞아. 잠 좀 자려고 하면 저래.”
“누가 그러는지 가봤어?”
“당연히 가봤지. 아무것도 없어. 요 며칠 전에는 누가 저 빛을 보고 비명을 지르더라.”
낄낄.
서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폭시에게 귀신 이야기를 한 그 친구인가 본데?’
적어도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빛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말 역시 사실인 모양이었다.
은호는 계속 모르는 척하며 환수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이 왔어! 저번에도 왔는데.”
“인간이 저번에도 온 적이 있어?”
“응. 여기에 왔어.”
은호는 귀에 닿았다가 사라지는 그 말 중 흘려들을 수 없는 소리에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를 나누던 환수들은 그대로 멈칫거렸다.
“친구야. 방금 그 말, 무슨 소리야?”
은호는 다가가 물었다.
도망가려던 환수들은 이내 멈춰 눈을 깜박거렸다.
민들레 씨를 품은 듯한 꼬리를 가진, 쥐를 닮은 환수가 은호를 빤히 보았다.
“…네가 서은호야?”
“맞아. 은호야! 내가 매일매일 말한 은호!”
폭시가 즐겁게 대답했다.
“아! 폭시야!”
목소리를 듣고는 바로 알아채 다가왔다.
가까운 나무 끝까지 다가온 환수는 코를 벌름거렸다.
“네가 서은호구나.”
“서은호였어!”
두 환수가 은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서은호야. 폭시가 날 알려준 거야?”
“진짜 우리 말을 해! 와! 와아!”
“어떻게 한 거야? 배웠어? 아닌데, 우린 글자가 없는데.”
두 환수의 말이 동시에 들렸다.
얼마나 신기한 건지 알기에 은호는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친구들아.”
환수들은 그 웃음을 잠깐 멍하니 보았다.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했다.
“폭시, 네 말이 맞았어.”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다정한 냄새가 났다.
조금만 더 곁에 있다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렇지? 내 말이 맞았지?”
폭시가 꼬리를 흔들었다.
“혹시, 폭시랑 인간이랑…….”
환수의 시선이 흑견에게 닿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괜찮아, 작은 친구.”
윈디드가 웃었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둘 다 컸다.
무서웠다.
짧고 굵은 웃음이 흑견에게서 튀어나왔다.
너도 마찬가지면서.
그런 눈빛에도 윈디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덩치가 큰 건 사실이었으니까.
“괜찮아. 정말이야.”
은호가 손을 뻗자 두 환수가 다가와 머리를 내어주었다.
“…정말?”
“우리, 안 물어? 막 안 쫓아내?”
“나도 있는데?”
폭시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말했다.
“맞네?”
두 환수는 서로를 보더니 이내 웃었다.
“폭시도 저 빛이 뭔지 궁금해서 온 거야?”
“응. 그런데 저 빛이… 어떤 건지 알아?”
“아니. 궁금하긴 한데 저기에 인간이 온 적 있어. 그 뒤로 얼씬도 안 했어.”
“인간이 온 거야?”
“맞아. 몇 밤 전에 왔어.”
―이 근방에 다른 인간이 얼쩡거리는 걸 봤다.
아크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곳에 인간이 왔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힘이 있는 인간은 온 적이 없다.”
흑견이 단호히 말하자 두 환수는 은호의 손아귀에 딱 붙어 머리를 숨겼다.
“히, 힘이 있는 인간이라고 말한 적 없어.”
“힘이 있는 이, 인간이 아니야!”
떨며 꺼낸 말에 은호는 속으로 안도했다.
정화자가 아닐 확률이 확 올라갔다.
은호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그저 별장을 찾아온 거였어.’
그럼, 그 빛은 뭘까.
은호는 밀려드는 궁금증이 더 커졌다.
* * *
윈디드가 봤던 곳으로 다가가자 정말로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왜 환수가 무서운 걸 본 것처럼 이야기했는지 직접 보니 알았다.
빛이 있음에도 밝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주변에 깔려 있었다.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나무들이 혼자 흔들렸고, 스산한 소리마저 귓가를 때렸다.
무언가 풀을 밟는 소리까지 어렴풋이 들렸다.
쿵. 쿵.
품에 바짝 붙은 폭시의 심장 소리가 꽤 격렬했다.
‘…분위기가 좀, 으스스하긴 해.’
은호 역시 묘하게 긴장됐다.
만약 혼자 갔으면 진짜 농담 아니라 무서웠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걸어가던 흑견이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입꼬리가 사알짝 올라갔다.
탁.
갑자기 빛이 꺼졌다.
“……히익.”
폭시의 몸이 경직됐다.
주변이 더 어둡던 차, 윈디드가 링 위에 빛을 냈다.
전등이라도 튼 것처럼 환하게 바뀌자 흑견이 눈을 찌푸렸다.
“너무 밝았어?”
윈디드가 놀라며 빛을 줄였다.
“눈치챘는가?”
“당연하지, 친구.”
윈디드가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대로 세차게 흔들었다.
나무가 뒤로 휠 정도로 거센 바람과 함께 안개가 거둬졌다.
“귀신이니, 그런 건 아니다.”
흑견이 꺼낸 말에 폭시가 앞을 보았다.
안개에 가려져 어렴풋이 보이던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차가 지나갈 수 있게 만든 길이 보였다.
숲으로 둘러싼 그 중앙에 집이 보였다.
“가지고 있는 힘으로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제야 폭시가 활짝 웃었다.
“귀신이 아니었어!”
폭시는 크게 외친 뒤, 드디어 땅을 밟았다.
조금 전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에 누가 있어.”
확연히 느껴진 냄새에 폭시는 자신감이 붙었다.
화르륵.
어디선가 불이 붙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어졌던 안개가 다시 보이며 그 사이로 환수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