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3화(213/302)
213화. 밤에 피는 등불(3)
은호는 환수의 모습을 보았다.
연기같이 흐드러진 긴 꼬리를 흔들며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길쭉하고 두꺼운 뒷발에 비해 앞발은 얇고 긴 편이었다.
몸의 움직임을 따라 앞발에 묶인 등불이 흔들렸다.
등불 속 피어난 보라색 빛에 시선이 단번에 눈길이 갔다.
‘방금 불이 붙던 소리는 저거였나?’
은호는 시선을 올렸다.
키가 2M보다 크지 않을까.
사막여우의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으며 얼굴은 커다란 눈을 가진 망아지를 닮았다.
갈기가 부드럽게 내려와 얼굴 한쪽을 살포시 가렸다.
흰색이어야 할 흰자위가 검은색이었고, 눈동자는 등불처럼 보라색을 띠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체적으로 회색 계열이었지만, 덩굴과도 같은 무늬가 몸에 박혀 있었다.
은호는 환수 주변에 흐르는 안개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 집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거니?”
환수가 조용히 물었다.
눈빛이 이상하게 공허해 보였다.
하이프와 살짝 닮은 눈이었다.
“집은 아니고, 주변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건데, 네 힘인 줄 모르고 건드렸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윈디드가 머뭇거리며 묻자 환수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역시 안개를 치워서 화가 났을까.
윈디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차, 환수가 갑자기 웃었다.
“아. 안개라면 괜찮아. 그것보다 손님이 찾아와서 기뻐.”
“어… 손님은 아닐 거야, 작은 친구.”
“그런데 지금 멀리 가서 없는데, 괜찮다면 안에서 기다릴래? 금방 올 거야.”
안개와 어울려 환수의 말 자체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누가 멀리 갔다는 건지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묘한 화법이었다.
“안녕, 친구야.”
은호가 다가가 인사하자 환수는 바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구나. 반가워.”
자신을 맞이해주자 당황한 건 도리어 은호였다.
이렇게 바로 웃을 리가 없는데.
‘사람이 익숙한 친구인가?’
환수 뒤편에 있는 집은 어딜 봐도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애초에 환수들이 가까이 가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이곳에서 사람하고 같이 지냈기 때문일까.
“봤는가?”
흑견은 다시금 폭시를 쳐다보았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건 귀신을 믿어 두려움에 빠진 폭시 때문이었다.
이제 귀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 볼일은 끝난 셈이었다.
“응. 다른 존재였어! 귀신은 없어!”
폭시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거렸다.
공포라는 감정에서 벗어나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이제 확인됐으니, 집에 가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가?”
흑견은 말을 꺼내며 은호를 재촉했다.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은호의 눈빛이 변할까, 신경 쓰였다.
‘…하.’
흑견은 벌써 눈빛이 달라진 은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입할 생각이었다.
“맞아. 지금 집에 가는 중이야. 우리의 집에.”
환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무언가 말이 어긋나고 있었다.
흑견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인가? 우리 집으로 간다는 소리다. 네 뒤에 있는 집 말고.”
“갑자기 왜 간다는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온다니까? 아니면 내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해줘.”
환수의 물음이 점점 늘어나자 흑견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애초에 누가 이곳에 볼일이 있다고 했는가?”
“혹시 안개 때문이야?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환수가 계속 묻자 이상함을 느낀 흑견은 은호를 보았다.
은호는 이미 저 존재를 보고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음.”
윈디드가 망설이며 소리를 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윈디드의 시선이 폭시로 향했다.
폭시는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몰라도 아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안개는 말이야. 다른 존재들이 이 집을 부수려고 해서, 내가 막는다고 힘을 썼을 뿐이야.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줘.”
“그랬어?”
은호가 화답하자 환수는 빙그레 웃었다.
“맞아. 나는 이 집을 지키고 있었어.”
“계속 지키고 있었던 거야?”
“맞아. 여긴 나의 집이기도 하니까.”
“그럼, 친구야.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은호가 묻자 환수는 대답보다 바로 문을 열었다.
삐그덕.
녹이 슨 소리가 들렸다.
“나야 환영이지. 여기 대문부터 예쁘지 않아? 빨간 꽃이 늘 환영해줘.”
은호는 시선을 내렸다.
대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조금만 세게 당겨도 부서질 것처럼 녹이 슨 문이 보였다.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곳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레비아탐을 봐서 하는 말이니까 명심해. 걘 좀, 이상하니까 가까이 가지 마.
은호는 아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상한 존재가 있다고 했다.
그 존재가 저 환수였다.
‘…저 친구는, 지금 환상에 빠진 걸까?’
안개로 환상을 본 건 자신들이었지만, 이제 환상은 없었다.
그럼에도 환수가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마치 녹이 슨 대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환수는 모두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은호가 그 안으로 발을 디디자 흑견이 놀라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딱 봐도 저 존재의 상태는 이상했다.
아주 불안정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였다.
분명 알면서도 저렇게 순순히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멍청한 것도 정도껏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으, 은호.”
폭시는 귀를 접으며 은호를 불렀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가자. 응?”
저 존재는 이상했다.
감정을 보는 순간, 섬뜩했다.
새카만 무언가로 얼굴과 가슴을 까맣게 만든 것만 같았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벅찼다.
‘감정을 읽지… 못하겠어.’
귀신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다시 무서웠다.
그때, 윈디드가 앞발을 내밀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병아리!”
흑견이 날을 세워 윈디드를 불렀다.
분명히 은호를 말리라고 했을 텐데.
“초대를 받았으면 들어가야지. 그게 맞는 거야, 친구.”
은호가 무슨 마음으로 이곳으로 들어가려는지 윈디드 역시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꺼려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피해 가려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음에도 은호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조차 외면하려고 하는 저 존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자신은 왕의 수호자였다.
왕이 가장 소중히 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그들 안에 저 존재 역시 포함되었다.
이러니 은호 옆에 서는 건 당연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아, 빨간 꽃을 싫어해? 그럼, 이쪽으로 와. 뒷문이 있어.”
환수가 흑견을 보며 제안했다.
‘정신이 나갔군.’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 존재가 말하는 뒷문 역시 없었다.
이미 이름도 모를 식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흑견은 숨을 짧게 내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은호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흑견까지 안으로 들어오자 환수는 즐거워했다.
“아마, 정말 좋아할 거야.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라서 행복해할지도 몰라.”
누가 좋아한다는 걸까.
은호는 환수가 꺼내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고개를 돌렸다.
폭시가 오지 않았다.
그대로 서 있었다.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감정이 안 보일 것 같아서.
폭시가 귀신이 무서웠던 이유가 바로 저거였다.
지금 저 환수의 감정이 보이질 않는 걸까.
은호는 뒤로 가 폭시에게 걸어갔다.
환수의 시선이 덩달아 따라갔다.
이 집을 벗어날까, 상당히 조급해 보였다.
“날 보고 있어, 폭시야.”
“…은호를?”
폭시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맞아. 무서우면 날 보고 있으면 돼. 나한테 보이는 감정을 읽으면서 추측해봐도 되고.”
“그건 한 번도… 안 해봤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나만 보고 추측하기 어려우면 멍멍이 형님하고 삐약이를 살피면 더 쉬울지도 몰라. 만약 그래도 어렵다면 물어보면 돼.”
“은호한테?”
“맞아.”
은호가 웃자 폭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혼자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려운 게 있으면 기대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폭시는 웃었다.
은호는 별 같았다.
보고 있으면 반짝반짝해 미소가 맴돌았다.
“나, 이제 갈 수 있어!”
“그럼, 내 뒤를 따라와, 폭시야.”
“응! 따라갈게.”
폭시는 앞서가는 은호의 뒤를 따랐다.
정말로 은호만 보면 저 존재를 볼 필요가 없었다.
정답을 알자 괜히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은호가 돌아오자 환수는 안도하며 문을 닫았다.
삐그덕.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 * *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저 환수는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웃어줬지만, 다가가면 물러났다.
아주 깊은 벽이 보였다.
할 수 없이 맹금류의 눈으로 환수를 인식했다.
《네블라.》
《안개를 사용하는 환수입니다. 몸 주변에 안개를 둘러 이를 본 사람들의 눈을 홀립니다. 등불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불이 켜지는 순간, 안개에 환상을 보게 하는 힘이 발동됩니다. 안개에 오래 있을수록 이 힘에 강해집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안개로 주변을 가려 그 속에서 생활합니다. 네블라가 ‘집’이라 불리는 장소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은 크게 날을 세우지 않습니다.》
‘…여기가 네블라의 집이야.’
은호는 다 죽어버린 식물과 마주했다.
분명히 이곳에 아름다운 식물들로 장식되었던 흔적이 가득했다.
“여기가 정원이야. 아주 많이 좋아해서 계속 가꾸고 있어.”
네블라의 말에는 계속 ‘누가’가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이 집의 주인이었던 사람이 아닐까.
왜 그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 건지 몰라도 네블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혼자만 보는 환상에.
“보여? 여기 식물들이 가득하고, 예쁘지? 달빛에 반사된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네블라는 무언가를 보며 웃었다.
공허하나, 그 눈동자에 깃든 건 분명 환희였다.
정말 아름다운 걸 본 눈이었다.
“내가 매일 물을 준다? 아마 돌아오면 나를 칭찬을 해줄 거야.”
흑견은 저 말에 찌푸려지는 눈살을 펴지 못했다.
조금 전부터 이해 못 할 소리만 내뱉었다.
앞발만 세게 내밀어도 쉽게 무너질 집과 이미 말라비틀어진 채 굳어버린 식물들, 썩어버린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체 여기서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몰라도 당장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네블라는 정원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사라진 문을 보지 못하는지 앞발로 뭔가를 돌리는 듯한 흉내를 냈다.
“친구야.”
“응?”
“네가 말한 그 존재 말이야. 언제, 떠난 거야?”
“…….”
네블라는 고개를 돌렸다.
잠깐 싸늘한 시선으로 은호를 보았다.
하지만 곧 웃었다.
“이틀 전에.”
“그러면 친구야.”
은호는 앞을 가리켰다.
“거기 문이 없는데, 뭘 잡고 있는 거야?”
“문을 잡고 있는데?”
네블라는 앞발을 보았다.
늘 만지던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정말?”
은호는 그대로 다가가자 네블라가 멈칫거렸다.
“왜 그렇게 다가와? 내가 문을 열어줄 건데?”
“친구야.”
은호는 네블라를 바라보았다.
“문은 없어. 그러니까 열어줄 필요는 없어.”
은호는 그대로 네블라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네블라의 눈이 잠깐 커졌다.
“…내가 문을 닫지 않았나 봐.”
앞발을 보았다.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나는데, 은호는 닫힌 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지부조화가 왔지만, 네블라는 눈을 감았다고 다시 떴다.
그곳에는 열린 문이 존재했다.
역시 잘못 본 거였다.
네블라는 은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은호를 보며 웃었다.
“장식품이 많아. 그림도 많고. 난 매일 봐도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
은호는 뒤를 돌아 네블라를 보았다.
“삐약아. 빛 좀 비춰줄래?”
은호의 말에 윈디드의 머리 위 링에서 빛이 퍼졌다.
“고마워. 마침 불을 켜려고 했는데.”
뒤에서 피어난 빛을 보며 네블라는 몸을 돌렸다.
윈디드는 빛과 함께 드러난 내부의 상태에 눈을 찌푸려졌다.
안에는 아예 발을 내디디지 않은 것처럼 먼지가 수북했다.
싸움이라도 난 건지 몰라도 부서지고, 망가진 물건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벽 한쪽이 완전히 뜯겨 밖이 보였고, 깨진 유리창과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장식은 어디 있고, 그림은 어디 있는가.
그냥 버려진 집이었다.
대체 저 존재는 이곳에 왜 홀로 있는 걸까.
왜 인지를 못 하는 건지.
“어서 와.”
분명히 웃고 있지만, 네블라의 뒤에 펼쳐진 집 내부의 모습과 어울려 섬뜩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