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4화(214/302)
214화. 밤에 피는 등불(4)
“아!”
네블라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었다.
손님이 왔는데, 대접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손님이라 이렇게 깜박하다니.
그 인간은 누가 오면 늘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를 가져왔다.
때로는 과일을 깎아서 주기도 했다.
한눈에 봐도 정성스러웠기에 매번 눈길이 갔다.
“과일이 좋아? 과자가 좋아?”
“친구야.”
“응?”
네블라는 은호를 보았다.
천천히 뜯긴 벽으로 향했다.
끼이익.
바닥을 밟을 때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살고 있었던 거야?”
“맞아. 여기서 조용히 살고 있었어.”
네블라가 웃었다.
은호는 뜯긴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저 너머에는 그저 숲밖에 없었다.
이 일대는 잔디들이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중간에 바닥을 뚫고, 자라난 식물들도 존재했다.
은호는 긴 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
눈에 깃든 저 환상은 어떻게 해야 지워질까.
집을 보면 볼수록 무너져간 네블라의 마음이 느껴졌다.
‘…대체 뭘 붙잡고 있는 거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은호는 네블라를 알고 싶었다.
왜 이러고 있는지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된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최대한 맞춰볼게. 뭐가 좋아?”
은호는 네블라가 꺼내는 말을 주목했다.
손님 대접이 익숙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자주 했던 모양이었다.
“친구야.”
“다른 게 필요해?”
“지금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은데, 괜찮아?”
은호의 물음에 네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아. 내가 가져올게.”
“아니, 같이 가자.”
은호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동행을 요구했다.
네블라는 잠깐 멈칫거리다가 조금 전보다 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친구들은 집이 너무 좁아서 들어오지 못하니까, 여기에 있어도 되겠지?”
윈디드와 흑견이 들어온다면 이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 그럼, 밖에서 먹어야겠다.”
네블라는 아쉬움을 담아 말을 꺼냈다.
집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는데.
네블라는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삐그덕.
연기처럼 흩날리는 꼬리를 따라 바닥이 어긋난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흑견은 은호를 불렀다.
앞으로 가려던 그가 잠깐 멈췄다.
“저 존재는 제정신을 놓아버렸다.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흑견은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 집이 자신과 윈디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게 뻔했다.
“…아마도 추억 속에 갇힌 것 같아. 저 친구가 가진 힘으로 말이야.”
씁쓸함이 은호의 말에 묻어났다.
“등불 말이지?”
윈디드가 물었다.
“맞아. 추억은 가끔 뒤를 보면서 그리워해야 하는 곳이지, 사로잡히면 안 되는 곳이야. 추억에 사로잡히는 순간, 누구든 미래란 있을 수 없어.”
현실을 외면한 그때부터 시간은 멈추게 된다.
온갖 행복이 모여 있는 과거로 빠져들며, 기억 역시 그곳에 멈추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생각했지만, 사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과 다른 자신을 마주한 그때부터 처음 현실을 외면했을 때와 다른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저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
은호는 흑견과 윈디드를 보며 부탁했다.
현실이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살아가는 이상 현실에서 살아가야 했다.
추억은 도피처가 아니었으니까.
“은호. 내가… 내가 도와줄게.”
폭시가 은호에게 다가갔다.
은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추억에 갇혀 살았다.
모두가 과거와 똑같을 거란 희망을 품었지만, 막상 만나러 갈 때 이유 모를 공포를 느꼈다.
다른 친구들이 과거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때 알아버렸다.
정말 기다렸던 티토가 변했을 때, 밀려온 절망은 상상 이상이었기에 헤어 나오는 게 어려웠다.
저 존재가 지금 그런 마음일까.
그래서 가슴과 얼굴이 까맣게 칠해진 것처럼 보이는 걸까.
‘나도 은호가 없었으면, 용기를 내지 못했어.’
무리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은호가 도와줬다.
만약 은호가 자신을 외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폭시는 그 가정만으로도 슬펐다.
“지금, 내 힘이 필요한 순간이야. 그렇지, 은호?”
폭시는 다짐하듯 말을 꺼냈다.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고마워, 폭시야.”
“나, 할 수 있어!”
힘차게 말한 뒤, 폭시가 먼저 네블라에게 다가갔다.
망가진 채 바닥을 뒹구는 냉장고 앞에서 네블라는 허공에 앞발을 허우적거렸다.
폭시는 그제야 입술을 꽉 다물었다.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너무 큰 슬픔에 정신이 무너진 모습이 이토록 선명하게 보였으니까.
“그만해. 더는 그러지 마.”
폭시의 말과 함께 푸른 나비가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
네블라의 행동이 멈췄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폭시를 보았다.
“이거 싫어하는 거야?”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은호가 바라던 시원한 물도 없어.”
네블라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
앞발을 쳐다보더니, 시선 살짝 올려 웃었다.
“…이거 물 아니야. 음료수야. 인간이 마시는 건데, 제법 맛있어.”
“친구야.”
은호는 다가갔다.
“왜 혼자 이곳을 지키고 있던 거야?”
“혼자 아니야. 잠시 나갔다니까?”
“망가진 이 집에서 대체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아. 이 손잡이? 이거 내가 실수로 망가트렸어. 곧 수리할 거야.”
“친구야.”
은호의 목소리가 깊어지자 네블라는 주춤거렸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
“나갔다니까? 왜 자꾸 그 말을 꺼내는 거야.”
“돌아오지 않아.”
“무슨 소리야? 내일 되면 와. 떠나기 전에 나하고 약속했어.”
“친구야.”
은호가 한 걸음 다가갔고, 네블라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앞발에 쥐고 있던 걸 떨어트린 것처럼 시선이 아래로 내렸다.
음료수가 떨어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은호는 네블라가 바라보는 바닥을 보았다.
그곳에는 그저 낡아빠진 바닥과 먼지뿐이었다.
은호가 다가왔다.
“오지 마. 음료수가 깨어서 위험해. 너는 다칠 수 있다고.”
이런 와중에서 네블라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히 상냥한 환수였겠지.
더욱더 네블라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집은 무너질 것처럼 낡았고, 정원에 있던 식물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야.”
네블라는 은호가 꺼낸 말에 그를 빤히 보았다.
“친구야. 이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은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보던 네블라는 다짜고짜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어깨를 쥐고 벽에 부딪쳤다.
콰앙!
큰 소리가 났다.
“너도 집을 없애러 온 거였어? 이 집을 부서트리려고 온 거였어?”
네블라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공허하던 두 눈동자에 절망이 스며들었다.
“아니.”
은호는 네블라를 똑바로 보았다.
머리가 다 얼얼했다.
“그렇지 않아.”
“아니야! 내 집을 부수러 온 거야! 네가 내 집을…….”
“당장 멈춰!”
폭시가 꺼낸 말에 네블라의 행동이 멈췄다.
푸르던 나비가 붉게 변하며 네블라의 몸에 달라붙었다.
“…지금, 은호를 건드렸어?”
폭시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마치 전신의 털이 부르르 떨리는 것만 같았다.
폭시는 그대로 네블라의 어깨 위로 조용히 올라왔다.
“폭시야. 그러면 안 돼.”
날을 세운 손톱으로 당장이라도 네블라의 목을 그을 것만 같았지만, 폭시는 격한 숨소리와 함께 앞발을 내렸다.
눈을 깜박거린 뒤, 은호를 보았다.
은호가 웃고 있었다.
폭시의 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저 친구는, 날 공격한 게 아니야. 내가 꺼낼 말이 두려웠을 뿐이야.”
어렴풋이.
어쩌면 이미 짐작하고 있을 사실이 나오자 다급했을 뿐이었다.
네블라의 눈동자가 크게 움직였다.
“미안해, 은호. 내가 보고 있었는데, 막지 못했어.”
갑자기 달려들 줄은 몰랐다.
폭시는 속상함에 귀가 머리에 달라붙었다.
“폭시야. 살짝 아프긴 한데, 괜찮아. 피도 안 나.”
은호는 네블라와 폭시에게 다가갔다.
“정말?”
“정말이야. 피 냄새 안 나지?”
“응.”
“이 친구가 마지막에 힘을 풀었어.”
큰 충격을 주면 집이 부서지는 줄 알고 있었다.
온전히 정신을 놓은 게 아니었다.
“친구야.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은호는 다가가 네블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교감의 힘을 퍼트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이곳이 너한테 있어 얼마나 아늑한 곳인지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문득 드는 기시감을 너도 눈치챘을 거야.”
은호는 토닥거리며 네블라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 환상은 도피처가 될 수 없어. 널 계속 갉아먹을 거야. 마지막에 널 죽음으로 이끌지도 몰라.”
흔들리던 네블라의 눈동자가 멈췄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폭시가 네블라의 어깨에서 은호의 어깨로 넘어와 바라보았다.
“말은 해도 돼.”
폭시가 명령하자 네블라가 입을 열었다.
“…여긴 내 집이야.”
“알아. 너의 집이야.”
“건들지 마. 아무것도 건들지 마.”
“친구야.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네가 기다리는 그 인간도 없어.”
“……아니야.”
네블라는 주변을 보았다.
자신이 알던 그 집이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다 너의 환상이라는 걸.”
“아니야. 아니라고! 올 거야! 온다고 했어!”
네블라는 그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며 짓는 미소가 아직도 선명했다.
머리를 쓰다듬은 뒤, 밖으로 나간 그 뒷모습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대체 왜 없다고 말하는 건지 몰랐다.
“다 기억하고 있어! 내가 다 기억하고 있다고! 내가 다… 기억해. 나가.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네블라는 목을 긁는 듯한 소리를 냈다.
마치 우는 것만 같았다.
“너에게 얼마나 소중했을까. 네가 환상에 빠지고 싶을 만큼 얼마나 크게 슬펐을까.”
은호는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감정에서 얼마나라는 건 너무도 상대적이기에 알 수 없었다.
다만, 애잔함이 가슴 속에서 넘실거렸다.
“…나는 환상에 빠지지 않았어. 올 거야. 나한테 돌아올 거야.”
네블라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눈동자가 차오른 눈물에 일렁거렸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알고 있어. 나도 그랬어. 머릿속으로 그냥 지워버렸어.”
은호는 두 손을 뻗어 네블라의 얼굴을 만졌다.
“그런데 다 기억이 나더라. 전부 다, 잊을 수가 없더라. 너도 지금 그런 마음일까.”
네블라는 은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어떤 감정도 다 이해해줄 것 같았다.
“친구야. 빠져나오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네블라는 그 말에 멈칫거렸다.
하지만 나오는 말은 하나였다.
“여긴, 환상이 아니야.”
마치 낭떠러지에 매달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목을 찌르는 느낌이 점점 강렬해졌다.
“폭시야. 저 친구가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래?”
은호는 희망을 보며 폭시에게 부탁했다.
지금 환상을 지울 힘은 폭시밖에 없었다.
“응. 내가 해볼게.”
폭시는 네블라를 바라보았다.
은호의 말 때문이었을까, 검게 칠해졌던 얼굴과 가슴이 천천히 옅어졌다.
그 사이로 네블라의 얼굴이 보였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했다.
은호를 공격한 건 화가 났지만, 괴로움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슬픔이 아주 깊었다.
폭시는 두 앞발에 힘을 주며 감았던 눈을 떴다.
한쪽 눈이 붉게, 다른 눈이 푸르게 빛이 났다.
폭시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던 그때, 푸른 나비와 붉은 나비가 동시에 빛을 내며 나타났다.
네블라의 어깨에 앉은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머리를 가득 채웠던 안개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안개가 흐려져 갈수록, 눈을 감고 뜰 때마다 집이 하나씩 변하고 있었다.
깜박.
벽지가 뜯겨나가며, 탁하고, 색이 바랜 가구들이 시선에 닿았다.
깜박.
그 인간과 함께했던 추억이 흘러갔다.
인간이 자신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매 순간, 그 인간은 정말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깜박.
웃음이, 미소가 지워져 갔다.
인간이 나갔던 그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보이다 사라졌다.
깜박.
행복하던 순간은 짧고, 한순간에 찾아온 절망은 너무도 길었다.
깜박.
네블라는 망가지고, 고장 난 그 모든 것들을 보았다.
후.
누군가 초를 불 듯 등불의 빛이 꺼졌다.
네블라는 눈을 감았고, 다시 떴을 때, 진짜 집과 마주했다.
흐렸던 머리가 맑아졌다.
밀려오는 감정을 따라 한쪽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