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5화(215/302)
215화. 밤에 피는 등불(5)
여기가 현실이었다.
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갑자기 인간이 사라졌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어.”
왜 사라졌을까.
왜 오지 않을까.
그런 물음이 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마음을 수도 없이 찔렀다.
“내 인간은 오지 않았어. 모르는 인간들이… 집을 부쉈어. 내 인간과 내가 있던 이 집을… 부쉈어.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네블라는 밀려드는 슬픔이 버거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래서 벽이 뜯겨나갔구나.’
은호는 그제야 뜯겨나간 벽의 이유를 알았다.
“집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집을 지킬 수가 없었어.”
네블라는 시선을 내려 은호를 보았다.
“나는 그저 인간이 고치는 걸 지켜봤을 뿐이고, 인간의 물건을 알지 못해.”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어떻게 알겠는가.
누가 인간의 물건을 쓰는 법을 알려준 것도 아닐 텐데.
“부서지고, 망가지고, 그렇게 하나씩 고장 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어.”
네블라는 숨이 막힌 듯한 소리를 냈다.
점점 무언가로부터 잠겨가는 것 같았다.
“…도망쳤어.”
네블라 주변에 안개가 드리웠다.
서서히 네블라를 지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정원부터 망가졌다.
이 집의 자랑이었던 빨간 꽃이 식물이 죽었다.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죄다 죽어갈 뿐이었다.
만지면 망가지고, 만지면 부서지고.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오지 않는 걸까?”
네블라는 물었다.
인간인 은호에게 물었다.
“내가 싫어져서… 오지 않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그러면 왜!”
네블라는 소리를 질렀다.
원망이, 분노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왜… 나를 버린 거야?”
네블라의 다른 눈에도 눈물이 떨어졌다.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애타게.
숨이 막히도록 기다리는데.
환상에 빠져도 괴로울 거라면, 차라리 다 놓아버리는 게 맞지 않을까.
차라리 이 온기를 알려주지 말지.
같이 지내는 법을 알려주지 말아야지.
자신을 보고 모르는 척해버리지.
이 집은 자신 같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엉망이 되어갔으니까.
“내가 찾아줄게, 친구야.”
은호는 다급히 말을 꺼냈다.
네블라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알아봐 줄게.”
은호는 네블라에게 다가갔다.
약속을 걸었다.
현실을 놓아버리지 않게 미련을 넘겨주었다.
“왜 날 버렸는지…?”
네블라는 은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었다.
너무도 알고 싶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알려줄게. 절대로 널 버린 게 아닐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 주변을 봐.”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네블라는 폭시를 보았다.
혹시나 공격할까 날을 세우고 있었다.
“……똑같구나.”
네블라는 그제야 은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똑같았다.
자신과 닮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환수와 인간.
너무도 다른 두 종족이 서로를 좋아해 버린 상황이 같았다.
하지만 하나가 달랐다.
“…부럽다.”
네블라는 폭시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너의 인간은 우리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네블라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슬픔은 오로지 자신만 가진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넌 아니라서, 다행이야.”
네블라는 몸을 숙였다.
앞발을 내밀어 폭시를 쓰다듬었다.
불이 꺼진 등불이 흔들렸다.
“넌, 나와 달리 아무것도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네블라는 아직 아이인 폭시를 향해 웃어 보였다.
폭시는 물끄러미 네블라를 바라보았다.
까맣게 칠해진 검은색이 지워지고, 사라진 얼굴에 그저 슬픔만 끌어안은 존재가 있었다.
폭시는 앞발을 내밀었다.
네블라는 기꺼이 얼굴을 내어주었다.
“은호가.”
폭시는 어쩐지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밀려드는 감정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폭시는 조금 전 일을 잊었다.
“너의 인간이 왜 그랬는지 알려줄 거야. 꼭.”
은호가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겪을 수 있는 미래였으니까.
폭시는 지금 자신이 은호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금 알아 버렸다.
은호와 헤어진다는 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렇게 슬픈데, 저 존재의 세상은 대체 얼마나 무너진 걸까.
폭시는 시선을 돌려 집을 보았다.
저 존재와 참 닮았다.
* * *
은호는 정원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는 우두커니 기다렸다.
―인간이 올 거야. 이 집을 계속 부수고 싶어 했거든. 물어볼 때는 거기 말고 없어.
네블라가 그랬다.
이 집을 부수기 위해서 사람이 온다고.
뭘 위해서 집을 부수는 걸까.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벌써 두 밤이 지났다. 오긴 한 건가?”
흑견이 말하자 은호는 그대로 뒤로 누워 흑견에게 기댔다.
“오늘은 왔으면 좋겠다. 그렇지?”
“오늘은 와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게 말이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그를 잠깐 바라보다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에 보니 밤보다 더 낡아 있었다.
두 밤 사이에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우린 참 많은 행운을 받았구나 싶어. 그렇지 않아, 친구?
안에서 꺼내는 대화는 밖에서 들렸다.
자신과 윈디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블라의 절규와 절망이 남 일이 아니었으니까.
흑견은 다시금 은호를 보았다.
시선을 마주했다.
“멍멍이 형님. 왜 그렇게 그윽하게 봐?”
“아무것도 아니다.”
“가끔 생각하는데, 그때도 생각이 나더라.”
“무엇을 말인가?”
“내 모든 행운은 너희를 만나기 위해 존재했다고.”
은호는 실실 웃었다.
넘겨받은 드루이드의 힘은 자신에게 희망이고, 빛이 되었다.
흑견은 고개를 돌렸다.
‘진짜 저 인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수없이 흘린 그 말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고 그러는 걸까.
은호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를 만나기 전의 자신을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조금만 떠올려도 벌써 숨이 막혔으니까.
‘인간이라면. 나를… 이해해주겠지?’
흑견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발을 뻗어 은호의 얼굴을 살짝 눌렀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온다.”
흑견은 그대로 그림자로 들어갔고, 은호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쿵.
뒤통수를 찍었다.
“아윽.”
은호는 일어나려다 발소리를 들으며 당황했다.
허둥지둥거렸다.
몸을 돌리고 팔로 땅을 붙잡던 차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구세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계심이 가득 들렸다.
“아. 안녕하세요.”
은호가 재빨리 일어난 뒤, 웃으며 인사했다.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의심하며 찌르는 시선에 은호는 더욱 부끄러웠다.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을 장소였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호신용이 아닐까.
“…엄청 수상해 보이겠지만, 저쪽에 좀 가보면 집이 있거든요. 혹시 봤나요?”
“차로 가면서 본 적은 있어요. 그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으니까요.”
“전, 거기에 살고 있어요. 주변을 산책하다가…….”
“이렇게 멀리요?”
그녀가 꺼내는 말에 은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수상한지 느꼈다.
이걸 어떡할까.
“멀긴 한데, 못 올 곳은 아니잖아요. 누가 사는지 궁금했으니까요.”
“그래서요?”
“혹시, 이 집을 없애러 왔나요?”
“그건 왜 물으시죠?”
“…누구십니까?”
남자가 당장 뛰어왔다.
남편으로 보였다.
그녀의 앞에 서서 날을 세웠다.
“여기에 환수가 있는 거 알고 있나요?”
은호가 환수 이야기를 꺼내자 두 사람은 더 깊게 경계하며 불쾌함까지 내보였다.
“뭘 생각하시던 오해입니다. 그 환수를 어쩌자는 게 아니라, 지나가다가 환수가 이곳을 지키는 걸 봐서 그래요. 집을 보면 부수려는 흔적도 있고 그래서 따끔하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혹시 환수 관리국에 연락하셨나요?”
“아뇨. 하려고 했어요.”
“하지 마세요.”
그녀가 말했다.
“어째서요…?”
은호는 모르는 척 물었다.
“아빠가… 좋아하던 환수였어요.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그런데 왜 집을 없애려고 하는 거예요?”
은호가 묻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려다 말고 잠깐 참았다.
“왜 그것까지 당신한테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그녀는 이 수상쩍은 만남이 불쾌해 차갑게 냉대했다.
“볼일 끝났으면 이만 가셨으면 합니다.”
남편 역시 정중하게 부탁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은호는 잠깐 고민했다.
네블라를 위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서은호 씨?”
발소리가 하나 더 들리는가 싶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여기 있냐며 눈으로 지혜에게 물었다.
도리어 어리둥절한 건 조금 전까지 은호에게 날을 세웠던 그녀였다.
“아는… 사이야?”
“알죠. 아주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지혜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은호와 지혜를 번갈아 살피더니 조용히 입을 가렸다.
“그거 아니에요, 언니.”
지혜가 잠깐 쏘아보자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깐만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지혜가 부르자 은호는 그녀를 따라갔다.
집을 벗어나 숲으로 향했다.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저야, 제집이 저쪽에 있어서 왔는데, 국장님은 무슨 일이에요?”
“…아. 이쪽에 살고 계십니까?”
“맞아요. 그리고 저기에 있던 환수한테 부탁도 받았고요. 이제 국장님 차례에요.”
환수가 얽혀 있었다.
지혜는 왠지 웃겼다.
“제게 은인 있다고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전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이셨던 분 말입니다.”
“그랬죠. 그게 왜…….”
은호는 말을 멈췄다.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분의 별장입니다.”
“그…럼, 그 환수는…….”
“그분의 친구인 거죠.”
네블라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지혜의 은인이었다니.
“방금 두 분을 대신해 조용히 집을 철거하려고 왔습니다.”
“어째서요?”
“그분의… 사실상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듣기만 한 거라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본인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환수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게, 집을 철거해달라고 말씀하셨다네요.”
어떤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했기에 은호는 부서진 집이 다시 보였다.
강제로 정을 떼어내 원래 살던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네블라에게는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환수가 그 집을 지키려고 힘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다 오늘 시간이 나서 이곳에 온 겁니다.”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 왔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문제는 없었다.
“…문승호. 그분의 이름이 맞나요?”
은호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맞습니다.”
“누구한테 죽었는지, 아직 모르겠죠?”
“모릅니다. 제가 제일 알고 싶으니까요.”
문승호.
그 사람은 전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이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흑견의 사건을 조사하다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국장님. 환수가 그 사람을 아주 많이 기다렸어요.”
“…그렇습니까? 그분을, 기다렸습니까?”
지혜는 먹먹한 소리를 냈다.
“집은 제가 부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설득을 해보죠. …그리고 혹시, 제가 만나봐도 될까요?”
지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승호가 아꼈던 환수였다.
안면이 없진 않았다.
* * *
밤이 찾아왔다.
은호는 집에서 네블라를 기다렸다.
안개와 함께 찾아온 네블라의 앞발에 달린 등불이 잠깐 켜졌다.
주변을 살펴보다 은호를 보고는 빛을 꺼트리며 다가왔다.
“오늘은 왔구나.”
네블라는 불안함을 담아 은호를 보았다.
그의 옆에는 흑견과 윈디드가, 그리고 지혜가 있었다.
폭시는 물론 다른 꼬맹이들도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곤히 잠이 들어버렸다.
억지로 깨우지 않았다.
네블라는 흑견과 윈디드를 본 뒤, 지혜에게 시선을 돌리다 멈췄다.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친구야.”
은호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분의 이름은 문승호야.”
“문승호…?”
네블라의 눈동자가 금세 촉촉해졌다.
감정을 꾹 누르려고 하나, 입술을 파르르 떨려왔다.
이름을, 알았다.
드디어 그 인간의 이름을 알았다.
“그리고 그분은 돌아가셨어.”
“…….”
네블라는 인형처럼 멈춰버렸다.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감히 입에도 올리기 힘은 그 말을 꺼냈다.
“…죽었다고?”
네블라의 앞발이 덜덜 떨렸다.
그대로 무너져 내려서는 은호를 보았다.
“누가… 누가 죽인 거야?”
강한 인간이었다.
힘이 있는 인간이기도 했다.
“아픈 적 없어. 건강…했어. 마지막으로 보기 전까지 그랬어. 누가. 누가… 죽인 거야?”
네블라는 온몸을 떨며 물었다.
마치 이를 악문 것만 같았다.
“……인간이야?”
네블라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인간이, 내 인간을 죽인 거야?”
미웠다.
너무도 미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자신의 인간을 원망했던 사실도 싫었다.
네블라는 숨겼던 발톱을 드러내며 땅을 긁었다.
드르르륵.
“…죽여버릴 거야.”
누가 되었든, 죽여버려야 했다.
머릿속에 약속이 웅웅 울며 자신을 말렸다.
“내가 죽여도 되는 거지, 응?”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소중하고, 소중한 인간이 죽었다는데, 약속이 뭐라고.
네블라의 앞발에 은호의 손이 닿았다.
“범인은 계속 찾고 있었어.”
“…네가?”
“아니. 저 인간이 말이야. 혹시 기억해?”
은호가 지혜를 가리키자 네블라는 고개를 돌렸다.
바라보고, 바라본 뒤에야 눈을 감았다.
바짝 올라간 귀가 내려갔다.
“…너구나.”
승호가 따뜻하게 바라보던 인간이었다.
무척이나 자주 왔던 인간이었다.
저 인간을 위해 승호가 과일도 깎아주고, 과자와 음료수를 내어주었다.
“너였어.”
튀어나온 발톱마저 들어갔다.
지혜가 네블라의 말을 들으며 다가왔다.
“널, 안아봐도 될까?”
지혜는 팔을 벌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블라는 은호의 말을 들으며 먼저 다가가 지혜를 안아주었다.
눈동자를 본 순간, 같은 아픔이라는 걸 간직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모두 문승호를 잊어버린 줄 알았어.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분은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
지혜가 꺼낸 말이 은호를 거쳐 네블라의 귀에 닿았다.
자신에게 친구였던 그 인간이 저 인간에게는 아버지였다.
얼마나 더 슬플까.
“…너도 참고 있는 거였어. 죽여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었던 거야.”
네블라는 떨림과 밀려드는 감정에 지혜를 이해했다.
저 인간도 견디고 있는데, 자신도 견뎌야지.
“나도 같이 찾을게.”
네블라의 말에 지혜는 뒤로 물러나 바라보았다.
“너는, 내 인간의 조각이야.”
저 기억 속에 인간이 살아 있었고, 저 눈동자에는 그 인간의 미소가 피어 있겠지.
네블라는 마음을 둘 곳을 찾았다.
인간이 남긴 마지막 조각이었으니까.
그제야 네블라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네블라는 은호를 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은호의 눈동자를 보며 다가가 안아주었다.
“날, 환상에서 꺼내줘서.”
혼자서는 나올 수가 없었다.
도무지 세상이 무너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생각한 것보다 더 차갑지 않았다.
다시금 살아갈 이유가 생겨버렸으니까.
안개가 드리웠고, 네블라의 등불에 빛이 켜졌다.
망가진 집이 다시 돌아왔다.
네블라는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문승호가 살았던 그리운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