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1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17화(217/302)
217화. 긴 여행
은호는 노트북을 물끄러미 보았다.
초능력 관리국 국장, 이도현.
이자가 다음에 잡아야 하는 표적이었다.
어떻게 끌어내리면 좋을까.
‘권석현은 알아서 자멸해줬단 말이지.’
욕심이 과해 무너졌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도현은 달랐다.
슬쩍 검색해봐도 온갖 호평밖에 없었다.
이룬 업적마저 많았다.
비초능력자 최다 검거.
비초능력자 갱생 비율 최고.
초능력자들이 근무하고 싶은 곳 1위 등.
언론에서도 그렇게 띄워주고 있었다.
비소속 초능력자들을 제일 많이 때려잡아 위협으로부터 서민을 보호했다며 공로상마저 수없이 받은 상태였다.
‘어마어마하네.’
아직도 권석현과 관련된 일로 욕을 가득 먹는 환수 관리국에 비하면 여긴 정말 이미지 관리가 철저했다.
‘HWM이 하나율의 뒷배가 아니라면 왜 하필 HWM이었을까. HWM에서는 진짜 몰랐나?’
얼마 전에 가을로부터 HWM과 관련된 정보를 들었다.
―HWM에서는 봉사 단체로 위장한 정화자들에게 후원을 지시했습니다. 후원을 받았다는 내역서와 영수증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걸 위조하고 조작한 건 하나율이었다.
HWM을 공격하는 행동을 취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은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빠르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탐정으로 직업을 바꾸는 거였는데.
훨씬 더 빨리, 효율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법을 알지 않았을까.
일개 회사원이었던 자신이 조사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은호는 이도현의 얼굴을 보았다.
30대 후반은 됐을까, 생각보다 젊었다.
단정한 외모에 누가 봐도 성실할 것처럼 생겼다.
‘이래서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누가 범죄를 저지를 거라 상상할까.
비소속 초능력자를 때려잡고, 초능력자를 관리해야 하는 저놈이 환수 밀렵꾼, 정화자와 함께 손을 잡았을지 누가 알았을까.
은호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찾아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다.
‘증거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은호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사건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었다.
얽힌 사건이 이것저것 참 많았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지금도 그랬다.
은호는 감았던 눈을 떴다.
천장을 보았다.
갑자기 어둠이 내려왔다.
‘…응?’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멍멍이 형님. 장난치는 거야?”
은호가 말하자 옆에서 털 같은 어둠을 고르고 있던 흑견이 기가 찬 소리를 했다.
“불이 꺼진 거다, 인간.”
불이 꺼진 것하고 자신이 장난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흑견의 말에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정전이야?”
저번에는 환수가 실수로 전기선을 끊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고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이 당장 먼저 생각이 났다.
은호는 교감의 힘을 퍼트리며 손전등을 대신했다.
“은홈! 불이 꺼졌엄!”
계단을 올라오던 레비아탐이 은호의 빛을 보며 말을 꺼냈다.
“정전인가 봐. 전기선이 끊어졌는지 봐야겠어.”
“폭시가 보러 갔엄.”
“폭시가?”
“응!”
은호는 레비아탐의 말을 들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안 되니라. 지금, 중요한 장면이 나오는 중이었다!”
라비가 절망했다.
“맞아. 지금 진짜 중요했는데!”
윈디드의 절망도 함께 흘러나왔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
웅크린 윈디드와 윈디드의 몸에 기대어 있던 라비를 보자 은호는 깜짝 놀랐다.
리모컨을 이용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 텔레비전을 켰는지 몰랐다.
“뭔가 눌렀더니, 켜졌다.”
“말썽꾸러기! 저기 안에서 동물이 튀어나왔어. 그때 봤던 요정이랑 비슷한 건가 봐.”
윈디드는 그때 봤던 영화를 언급하며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다들 좋아해서 태호가 따로 영화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며 열을 올렸던 일이 생각났다.
“동물이 열심히 먹이를 구해 다녔다! 나도 그 마음 아느니라. 밥 구하는 건 아주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은호가 더 좋다!”
라비의 웃음에 은호는 덩달아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원래 밥 잘 주는 사람이 최고긴 했다.
이건 어디든 최고인 모양이었다.
“레비아탐도 보고 있었어?”
“응! 폭시도 보고 있었엄. 엄청 재밌었엄!”
‘하긴, 그건 말이 필요 없지.’
동물 다큐는 대부분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라 상대적으로 언어라는 장벽이 덜 할지도 몰랐다.
은호는 밖으로 나가며 휴대전화를 살폈다.
「[속보]태산 지역을 중심으로 정전 발생. 원인 파악 중.」
몇 분 전에 속보가 떴다.
‘…어? 여기잖아.’
은호는 그제야 정전의 원인이 따로 있음을 알았다.
은호는 마저 스크롤을 내리며 살폈다.
요즘 정전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났는지, 지역마다 몇 달 주기로 속보가 떴다.
‘과학도 더 많이 발전된 곳인데, 정전에 취약한 건 똑같네. 무슨 몇 달 주기로 정전이 일어나?’
은호는 한숨을 내쉰 뒤, 폭시를 불렀다.
“폭시야.”
폭시가 빛을 보자마자 달려왔다.
“전기선은 안 끊어졌어.”
“맞아. 다 같이 정전이 난 모양이야.”
“…안 돼에. 진짜 다 같이 재미있게 봤단 말이야.”
폭시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봤으면 그럴까.
“먹이 구하는 건 진짜 어려워. 특히, 눈이 내리면 더 어려워. 먹이를 잘 구했을까? 내가 도와주고 싶어.”
폭시의 간절한 표정을 보자 은호는 입이 간지러웠다.
이건 이미 찍은 영상이라 가도 소용이 없다는 말과 먹이를 구한 것과 별개로 지금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는 말 역시 삼켰다.
“아마 먹이를 구했을 거야.”
“인간들은 어떻게 동물을 네모에 가둔 거야? 저번에 요정도 그랬어.”
“음. 그건 말이야…….”
은호는 말을 하다 말고 머뭇거렸다.
이걸 어떻게 잘 설명하면 좋을까.
지이이이잉.
전화가 왔다.
가을이었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잠깐만 폭시야.”
은호는 폭시를 쓰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가을 씨.”
<갑작스러운 연락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에이, 괜찮아요.”
<서은호 씨. 지금 바로 연구소로 오실 수 있습니까?>
“네. 가능은 한데, 무슨 일이에요?”
<지금 서은호 씨 집에도 정전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어제 산 아이스크림이 진짜 걱정이거든요.”
<환수가 벌인 일입니다.>
“…네?”
<만나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은호는 잠깐 멍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환수가 왜 정전 사태를 일으킨다는 걸까.
‘…선을, 끊어버렸나?’
은호는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며 폭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가더라도 말은 하고 가는 게 맞았다.
* * *
“…아, 오셨습니까?”
은호를 보자 가을이 그를 맞이했다.
서율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서은호 씨. 오늘은 국장님 대리로 찾아왔습니다.”
서율은 왜인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빨리 와줘서 고맙고, 어서 앉아, 은호 씨.”
태호가 자리를 권했다.
이렇게 모여 있으니 평소 같았지만, 서율이 있어 다르게 느껴졌다.
“요새 정전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꺼낸 말에 은호는 조금 전 기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순 정전 사태가 아니었다니.
“그것도 지금 사태랑 이어져 있는 거예요?”
“맞습니다. 이어져 있습니다.”
가을은 자연스럽게 태호를 보았다.
“정전 사태가 예전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했어. 원인을 조사하면 꼭 과부하가 나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정부가 우리한테도 조사를 맡겼거든. 혹시, 환수의 사태가 아닌가 해서.”
태호는 장기간 조사한 결과를 풀어놓았다.
은호는 그 사실에 놀랐다.
내부적으로 환수 연구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자신이 이곳에 자주 눌러앉았기에 늘 서류를 살피던 태호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그게 다 일거리였지, 참.’
은호는 새삼스럽게 태호가 얼마나 바쁜지를 깨달았다.
“조사가 꽤 길어졌는데, 환수가 맞았어.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된 환수야. 아직 학회에 정식으로 올리진 못했는데, 전기의 힘을 사용하고 있어.”
“전기요?”
은호는 바로 일렉트를 떠올렸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신이 날까.
“몸 자체가 전기 같은 힘을 지닌 환수였어. 그러니까, 전기와 전기 사이를 건너뛴다든지, 전기를 타고 이동도 하는 식으로 말이야.”
“…순간 이동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율이 물었다.
설마.
서율은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맞아.”
태호가 대답하자 서율은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까다로운 환수였다.
“국장님이 사건 현장으로 움직이긴 했는데, 지금쯤 허탕을 치고 있을 확률이 엄청 높겠네요?”
“바로 그거야. 붙잡기가 너무 어려울 거야. 추적도 어려울 거고.”
태호는 은호를 보았다.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치 멍멍이 형님 같은 힘이네요?”
흑견이 그랬다.
어둠에 녹아내렸고, 어둠 속으로 이동도 가능했다.
“정확해. 딱 흑견 같은 힘이야. 물론, 둘 중에 누가 더 응용력이 좋냐고 한다면 당연히 흑견이지. 그 환수는 도시로 가야 가진 힘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형이 왜 날 불렀는지 알겠어요.”
은호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
환수를 붙잡아 달라고 부른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여기에 서율 대신 지혜가 있을 테니까.
“그 환수를 추적해달라는 거죠?”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저들보다 제일 잘하는 건 추적이었다.
한 번 인식하고 나면 어디에 있는지 태블릿의 힘으로 쫓을 수 있었다.
“추적이 가능합니까…?”
서율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은호가 뭔가 잘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추적까지 잘하면 솔직히 사기였다.
“가능합니다.”
가을이 대신 대답했다.
안경 속 눈동자에 자랑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뭐야. 대체 무슨 힘을 지녔길래 저게 가능한 거야?’
서율은 은호를 신기하게 보았다.
은호를 만난 뒤로 신기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꼬여가고, 뒤엉킨 모든 게 그의 손을 닿으면 신기하게도 풀려갔다.
‘이러니까 국장님이 계속 탐을 내시지. 당장 나도 탐이 나는데.’
조금 전까지 골치 아팠던 일이 은호를 기점으로 사르르 풀려나갔다.
당장 추척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는데, 그게 해결이 되어버렸으니까.
이미 여러 사건을 해결한 은호이기에 믿음은 당연했다.
“심서율 씨.”
가을이 불렀다.
“네?”
“군침 흘리시면 곤란합니다.”
은호를 노리지 마라.
넌지시 꺼낸 경고에 서율은 어색하게 웃었다.
가을과 척을 지는 일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왜 모를까.
“그럼, 침만 바르면 안 됩니까?”
“안 돼.”
태호 역시 딱 잘라 말했다.
농담을 던졌음에도 살벌해 서율은 입을 다물었다.
* * *
“…서은호 씨는 피곤하지 않습니까?”
“피곤이요?”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에 꺼낸 서율의 물음에 은호는 느닷없다고 생각했다.
“기대하는 바가 너무 많지 않냐는 거죠. 환수 연구소나 환수 관리국 둘 다 말이에요.”
“…아.”
은호는 서율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버겁지 않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기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말입니까? 지금 은호 씨만큼 편안하게 국장님하고 소장님을 만나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어떤 기대가 없으면 애초에 두 사람이 은호에게 매달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 편안함 역시 만들어질 수도 없었다.
“두 분이 그만큼 대단하고, 짊어진 것도 많은데, 제가 왜 버겁겠어요?”
“겸손하시네요.”
“겸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분에 비하면 그냥 거드는 정도라는 거죠. 하지만 전 제힘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대단한 것도요.”
은호는 으쓱거렸다.
이 힘의 위력을 모르면 바보지.
“제가 꽤 탐이 날 거예요. 그런데 아무한테도 안 줘요. 이미 임자가 있거든요.”
“…임자요? 그게 누구죠?”
“환수요.”
은호는 씩 웃으며 가면을 썼다.
서율은 뒤를 힐끔 쳐다보더니 가면을 보고 아예 고개를 돌렸다.
“그거 어디서 산 겁니까?”
“멋지죠?”
“가슴을 자극하는데요? 멋이 좌르르 흐릅니다.”
“형이 만들어준 거예요.”
“……네?”
서율은 자동 운전 모드로 들어간 뒤에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저, 정말입니까?”
“네. 정말이죠.”
“…와. 어쩐지 다르더라니. 내기만 하면 아주 막 난리가 나는 소장님의 제품을 이렇게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은호 씨가 거의 유일할 겁니다.”
“늘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은호는 가면을 툭툭 두드렸다.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이 더 짙어졌다.
* * *
서율과 함께 누군가 내리자 주변을 통제하던 환수 관리자들은 시선을 움직였다.
네온사인으로 그려진,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박힌 가면이었다.
서로 누구냐며 시선을 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은호는 웅성거림을 들으며 주변을 보았다.
변전소였다.
수많은 철근으로 된, 같은 모양의 기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환수가 왔는지, 한눈에 봐도 그을림이 가득했다.
‘불이 났나?’
변전소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낸 건지 몰랐다.
‘멍멍이 형님이 냄새를 맡았는지 모르겠네. 삐죽이라면 알 텐데.’
“…그런데 이렇게 당당히 걸어도 됩니까?”
서율은 걱정이 되어 슬쩍 물었다.
“그럴 때가 됐으니, 괜찮아요.”
이제 공개적으로 드러내야지.
그래도 되는 힘을 얻었다.
은호는 서율을 따라 지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혜는 주변을 살피다 은호를 보고는 멈칫거렸다.
‘은호 씨가 그냥 걸어왔다고?’
왜.
지금까지 본인을 꼭꼭 숨겼던 은호의 행보와 너무도 달랐다.
급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왜 이렇게 오신 겁니까?”
지혜가 물었다.
물음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서율을 향했다.
“저, 저 아닙니다!”
서율은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