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2화(2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2화
22화. 가방 속은 미궁이다
은호는 손에 쥔 태블릿을 보더니, 한숨을 몰아쉬며 옥상에 기댔다.
《주변에 부를 수 있는 환수는 없습니다.》
“…아쉽네요, 태블릿 씨.”
아무리 흑견이 집 주변에 영역을 표시했다고 해도 어떻게 한 마리의 환수도 보이지 않는 건지.
오죽하면 태블릿으로 환수를 불러봤을까.
“……으음.”
은호는 태블릿을 빤히 보았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혹시 지금 환수를 부를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되는 거예요? 되게 좁은 것 같은데요.”
《지금으로서는 넓은 범위를 탐색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면… 태블릿 씨도 업데이트가 되는 거예요?”
은호가 눈을 깜박거렸다.
《서은호 님의 성장과 함께합니다.》
“…저, 성장해야 해요? 이거 큰일인데요. 지금이라도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야 하나.”
《…….》
《많은 환수를 만나며 그들을 도우십시오. 자연을 존중하십시오. 현재 서은호 님이 하시는 행동은 모두 성장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태블릿 씨, 혹시 기가 찬 거 아니죠?”
은호가 실실 웃자 태블릿은 단호하게 주장하며 그대로 가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X.》
은호는 입꼬리를 올린 채로 턱을 괬다. 금세 나른해진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환수 친구들을 부르는 속도 좀 올리면 좋겠고, 내가 직접 환수 친구들한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것도 내가 성장하면 되려나.’
애초에 키가 자라는 거 말고 성장이 뭔지.
은호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 가방의 비밀을 밝힐 순간이었다.
* * *
은호는 거실 바닥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가방을 노려보았다.
가방.
이건 대체 뭘까.
이세계로 오기 전에 ‘김태을’이라는 사람한테 드루이드의 힘과 함께 받은 거였다.
처음에는 개자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환수들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바뀐 지 오래였으니까.
은호는 엎드린 상태로 가방을 건드렸다.
“칼 줘봐.”
가방에서 칼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혹시, 오렌지도 있어?”
오렌지 역시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매번 사용했지만,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요구하는 게 다 튀어나오는 가방이 존재한다니.
‘이거 역시 뭐든지 다 나오는 X라에몽 주머니가 맞는 거지?’
은호는 고심하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걸 언급했다.
꿀꺽.
“…거기, 가방. 혹시 돈 있어?”
기대를 담아 두 손을 내밀었다.
얼마를 주려나. 얼마만큼 나오려나.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 물들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잠잠했다.
“이봐요, 가방 씨?”
은호는 가방을 흔들었다.
“돈 주셔야죠.”
자신이 무리한 걸 요구한 게 아니었다.
뭐든지 나오는 X라에몽 주머니라면 이것도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혹시 여기 화폐가 다르다면 금으로 줘도 되는데.”
말을 꺼냈지만, 은호는 잠깐 머뭇거렸다.
이곳에 금이 원래 살던 곳처럼 값어치가 있을까.
여러 생각이 맴돈 것과 별개로 가방은 여전히 잠잠했다.
‘……어라?’
혹시 너무 많이 나오려다 입구가 막힌 걸까 싶어 은호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바닥이 없는 느낌이라 손을 밀어 넣다 어깨까지 삼켜졌다.
뒤늦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감각은 제대로 있는데?’
은호는 한번 조심스럽게 손을 빼냈다. 멀쩡한 걸 보자 그제야 안도했다.
“…뭐 하는가, 인간?”
꿈나라에 갔던 흑견이 길게 하품하며 물었다.
그 모습에 은호는 가방에 다시 팔을 집어넣었다.
“아악! 가방이 내 팔을 먹었어!”
은호가 가방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지만, 흑견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길게 기지개를 켰다.
이내 실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은호의 눈과 마주하자 눈꼬리를 올렸다.
“왜 그렇게 보는가?”
“아니, 멍멍이 형님. 내 팔이 사라졌다니까? 지금 기지개를 켤 때가 아니잖아. 좀 더 놀라야지.”
“사라지지 않았으니 굳이 반응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세상 다 산 것처럼 말을 하지만, 흑견의 나이는 고작 10살이었다.
‘…저 초등학생이.’
은호는 뭔가 분했다.
초등학생한테 진 느낌까지 몰려왔다.
은호가 다시 손을 빼내자 흑견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 말이 맞지 않은가.”
‘저 초등학생이…….’
순간, 은호의 마음이 들끓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그럼, 멍멍이 형님. 혹시 이 안으로 손 넣어볼래?”
은호가 가방을 들고는 흑견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흑견이 뒤로 물러서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멍멍이 형님……?”
“……싫다.”
“에이, 무서워서 그래?”
한순간 장난기가 은호의 얼굴에 가득 퍼졌다.
“이것 봐봐.”
은호는 멀쩡한 손을 내보였다.
그저 물속에 손을 넣은 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축축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뭐, 너무 무서우면 하지 않아도 되고.”
“누, 누가 그렇다고 했는가.”
흑견은 혀를 날름 꺼내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놀릴 거리를 잡았다는 듯 기쁘게 웃고 있었다.
“…나는 크다!”
“우리 멍멍이 형님이 겁이 많았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흑견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다가왔다.
“가방이 찢어져도 책임지지 않겠다.”
흑견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주저 없이 가방 속으로 앞 발가락 하나를 집어넣었다.
잠깐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다급히 빼냈다.
“찢어졌는가? 바닥에 내 발이 닿았다.”
“바닥에 닿았다고?”
그럴 리가.
은호는 주저 없이 가방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잠깐만, 인간!”
이번에는 흑견이 깜짝 놀랐다.
은호는 가방 속에서 눈을 깜박거렸다.
끝이 보인다는 흑견의 말과 달리 바닷속 세계가 펼쳐졌다.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칼이 보이고, 히모스 나뭇잎이 물결을 따라 움직였다.
‘……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다른 물건도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기자,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속이 펼쳐져 있었다.
산호초와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삭막한 느낌보다는 고요하며 깔끔했다.
어디선가 물거품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 거품을 따라가던 은호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작은 요정이 몸에 빛을 내며 날개를 흔든 채로 바닷속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요정이 왜 가방에 살고 있지?’
은호는 머리가 멈추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급하게 뛰어다니던 요정이 갑자기 멈추더니, 고개를 올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너어!”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은호는 순간, 돈을 뜯기는 듯한 느낌에 휘감겼다.
“……누구세요?”
은호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니, 가방을 잘만 쓸 때는 언제고, 이렇게 굴면 내가 섭섭해.”
요정은 화를 내며 다가왔다.
“일단, 왜 섭섭한지 말해줄래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아는 척해도 반갑거든요.”
“됐어, 됐어. 대화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이것부터 쓰자고.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요정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요정을 가릴 만큼의 커다란 종이가 날아왔다.
글자가 빼곡하게 적힐 줄 알았더니, 겨우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서은호는 이제 이 가방의 주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이미 가방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가.
따로 서명을 해야 쓸 수 있는 거였다니.
“서은호. 여기 글자 보이지? 읽을 수 있지?”
“그렇긴 한데…….”
“그럼 서명해!”
요정은 바로 강요하듯이 말을 꺼냈다.
“아니, 이게 뭔지 알아야…….”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은호는 무언가 자신을 당기는 힘에 끌려갔다.
가방에서 머리를 빼내자 흑견이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 대체 왜 이렇게 손이 가는가.
“…아니, 가방 안에 요정이 있어.”
은호는 뒤늦게 몰려오는 황당함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X라에몽이 아니라 가방 속 요정이라니.
‘이거 완전… 판타지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도 모르겠어.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은호는 흑견을 진정시킨 뒤에 머리카락을 쥐었다.
처음 자신이 이세계에 떨어지기 전에 웬 남자한테 납치되지 않았는가.
그때 꺼낸 말이 생각이 났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이제 큰일 났다고요! 중세 판타지로 가야 하는데, 어떤 세계로 떨어질지 몰라요! 갑자기 차가 떨어질지…….
‘……중세 판타지.’
그런데 막상 떨어진 세계는 환수가 있는 현대 사회였다.
원래 중세 판타지에 도착해야 했다면 가방 속에 요정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진짜 요정 맞는 거야……?’
은호는 밀려드는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가방을 쥐었다.
“걱정하지 말고 있어, 멍멍이 형님. 저기, 공놀이하고 있어도 돼.”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 은호는 가방으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요정이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을 반겼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 난 또 도망간 줄 알았네!”
“밖에서 절 걱정해서 그랬어요. 갑자기 대화가 도중에 끊겨서 미안한데, 일단 누구인지 알려주실래요?”
그 물음에 요정이 웃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만한 외모 위로 장난기가 드러났다.
“너, 동화책 중 ‘알라딘’ 읽었지? 나를 거기서 나오는 ‘램프의 요정’이라고 생각해.”
“거기도 램프의 요정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너랑 연결됐으니까. 좀 어중간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너의 지식도 가지고 있지.”
“사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저랑 어떻게 연결됐다는 거죠? 지금 제 생각이 들려요?”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마. 지금 네가 기억해야 하는 건 이 가방의 온전한 주인이 된다. 이 사실 하나야, 알겠어?”
요정은 금방이라도 ‘하하하’ 하며 웃을 것처럼 호쾌한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은호의 미간은 좁아졌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천천히 생각하니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저, 지금까지 계약직이었어요?”
“맞아. 그 자식한테서 나를 받았잖아? 강제로 양도받아서 문제가 터졌어.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버렸지 뭐야?”
“어정쩡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내가! 내가 죽어라 일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쉬질 못했어! 자동 시스템이 꺼졌다고! …아, 말 나온 김에 잘됐네. 대체 칼은 왜 자꾸 찾는데? 칼이 그렇게 좋아?”
목청을 높이며 꺼내는 말에 은호는 그제야 요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전형적으로 일에 찌든 직장인이 아닌가.
왜 그렇게 짜증이 많은가 싶더니,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음, 일단, 오해부터 풀어보죠. 저는 가방뿐만 아니라 드루이드 힘까지 억지로 양도받았어요.”
“뭐……?”
“그런데 이걸 쓰려면 피가 필요하다는데 어쩌겠어요? 베어야죠.”
“…벴다고?”
“그렇죠. 원치 않게 손바닥이 매번 상처투성이에요.”
요정의 눈빛이 차차 누그러졌다.
동질감.
그 감정이 이상하게 싹트기 시작했다.
“너도 나랑 같았네…….”
“그런 거죠. 그러면 이제 계약서에 사인하면 한결 편해지나요?”
“자동 시스템이 켜져서 편해지지. 이렇게 말하면 내가 편해지려고 그러는 것 같지?”
“네. 그렇게 들리긴 해요. 하지만 이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효율을 추구하는 게 뭐가 나빠요?”
“정확히 잘 봤는데? 하지만 그 이유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러면요? 어떤 이유가 있는데요?”
은호는 뭔가 기대가 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깜짝 선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요정이 웃었다.
“일단 계약서부터 작성…….”
“아뇨. 이런 일방적인 계약이라면 됐어요, 이름 모를 요정 씨. 여기에서 가방을 관리하는 건 당신의 업무로 보이는데, 자동 시스템이 꺼졌다고 제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니고 요정 씨만 훨씬 더 힘들어지는 거죠.”
“너무해, 서은호!”
“너무한 게 아니죠. 계약서를 그렇게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게 더 너무한 거죠.”
“그래도 그렇지. 왜 나한테는 가차 없는데? 환수들한테는 그렇게 다정하면서! 이건, 이건 차별이야!”
은호는 그 말에 미소를 그렸다.
“…다 보고 있었네요?”
“…….”
“뭐, 좋아요. 억울할 수 있죠.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계약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니까요. 그럼, 전부 사실대로 말해줘요.”
“……음.”
본인이 잘못한 걸 인지한 듯 요정은 시선을 내리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계약하면 너만의 공간을 열 수 있어. 그 공간은 네가 가본 모든 곳과 연결할 수 있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해.”
‘나만의 공간? 내가 가본 모든 곳을 이동할 수 있다고?’
은호는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즉, 계약서만 작성한다면 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네가 가진 그 태블릿 말이야.”
“태블릿 씨요?”
“이곳과 연동도 가능해. 어때?”
요정이 자랑스럽게 양팔을 벌렸다.
“…아니, 이걸 왜 숨기려고 한 거예요? 괜히 의심했잖아요.”
“숨겨? 내가 언제? 그냥 계약부터 하면 좋잖아. 너도 좋고.”
요정은 손가락으로 은호를 가리키고 고스란히 본인을 가리켰다.
“나도 좋고.”
이내 요정은 당당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