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2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21화(221/302)
221화. 긴 여행(5)
“이 인간이다!”
금세 흥분해서는 첫째가 소리쳤다.
저 인간이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내내 찾던 인간이었기도 했다.
“내 동생을 죽인 인간이다. 내 동생을…….”
첫째는 말을 하다가 그대로 입을 꽉 다물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저 인간이… 내 눈앞에서, 동생을… 밟아 죽였다.”
―콰직.
그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 아이였는데.”
첫째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흔들었다.
온몸으로 가슴에 담긴 아픔을 호소하며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생들을 껴안았다.
“정말이더냐…?”
라비가 은호 뒤에서 조용히 물었다.
그제야 첫째는 라비를 보았다.
어렸다.
동생과 나이가 비슷할지도 몰랐다.
첫째는 몸에 힘이 빠진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 있었을까.
처음부터 있었을까.
아니, 이미 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였는지 몰랐다.
“…많이 슬펐더냐?”
라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물쭈물하다가 귀를 내렸다.
미안한 얼굴을 하며 쳐다보았다.
“싫다고 해서 미안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널 나쁘게 말했다. …미안하느니라.”
라비가 꺼낸 사과에 첫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전히 싫어.”
일렉트가 고개를 휙 돌렸다.
첫째는 한참이나 라비와 일렉트를 보았다.
‘……똑같았구나.’
첫째는 이제야 알았다.
자신에게 인간과 똑같다고 비방한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똑같은 존재가 될 뻔한 걸 저 인간이, 인간과 함께 있는 존재들이 말려준 거였다.
저 아이를 죽일 뻔했다.
이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미안하다…….”
첫째는 고개를 떨구며 사과했다.
오직 자신의 아픔만 보고 말았다.
이게 인간이랑 무엇이 다를까.
“내가 어리석었다.”
“괜찮아, 친구야.”
은호는 첫째를 위로했다.
“원래 슬픔이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이제라도 알아줘서 기뻐. 정말이야.”
은호가 짓는 미소에 첫째는 그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지키려고 한 건 저 아이였다.
자신과 똑같았다.
자신은 지키지 못했고, 저 인간은 지켰다.
그 차이였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너의 분노는 정당했어.”
은호는 첫째의 감정을 이해했다.
동생이 죽었는데, 분노를 어떻게 참으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방법과 복수를 향해야 할 대상이 잘못됐을 뿐이야.”
“…이제는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안다. 나는 엄한 곳에 분풀이했을 뿐이니까.”
“이제라도 알아들은 걸 보니 바보는 아니군.”
흑견은 첫째의 말에 콧바람을 내쉬었다.
분노로 눈이 멀어버린 건 이해하나, 화풀이는 선을 넘었다.
그렇기에 저 존재의 말을 누가 귀담아들을까.
“친구야. 이 인간이 맞다는 거지?”
은호는 휴대전화를 다시 첫째에게 내밀었다.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그래. 저 인간이었다.”
첫째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하게 조금 전보다 마음이 더 편해졌다.
범인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너는 이 인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가?”
“우리가 쫓고 있는 인간이야.”
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얽힐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 환수와 얽힌 거라면 제아무리 철저한 사람도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저들은 환수를 힘을 가진 짐승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환수에게 범죄를 들켜봤자 어쩔 텐가.
환수가 경찰서나 언론사로 가서 고발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저 친구들을 쫓아내고, 저 친구의 동생을 죽인 그 땅 위에 건물을 올려?’
은호는 자신이 대신해 사과하고 싶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서은호 씨.”
지혜가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반쪽짜리 말이었지만,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이 환수와 얽힌 게 이도현입니까?”
지혜의 눈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초능력 관리국과 이렇게 얽힐 줄은 몰랐다.
은호는 잠깐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말은 저들에게 닿을 테니까.
“맞아요.”
너무도 확고한 대답에 지혜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켜서야 겨우 말을 토해냈다.
“그놈들이 저 환수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환수는 세계 보호종이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환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국장님. 초능력 관리국이 건물을 새로 지은 적이 있나요?”
“전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이 죽은 뒤, 본부의 위치를 옮겼습니다. …그게 지금 사건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입니까?”
“맞아요.”
은호는 크라카들을 보았다.
“그 건물, 저 친구들이 살던 곳이래요. 갑자기 쫓겨났고, 그것도 모자라 동생을… 죽였대요.”
말을 꺼내는 내내 입안에 뾰족한 가시가 들어온 것 같았다.
아팠다.
저 친구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은호는 가라앉은 표정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정전을 일으킨 것도 초능력 관리국에 복수하기 위해서였어요. 사람은 전기에 약하니까, 정전이 나면 엉망이 되잖아요? 저 친구들은 정전을 일으키면 그 결과가 초능력 관리국에 닿을 줄 알았나 봐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입에 올리니 크라카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잘 느껴졌다.
정전하고 초능력 관리국하고 관련이 없었다.
정전을 일으켜서 오는 곳은 전혀 다른 부서였고, 설령 이 일이 저들의 일이라고 밝혀져도 환수 관리국이 출동할 뿐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그저 덧없이 손아귀 사이를 빠져나오는 모래와 같았다.
이 행동을 대체 몇 년간 한 걸까.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저 친구들은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정말 열심히 버틴 거예요.”
멍청한 게 아니었다.
방향이 잘못됐을 뿐이었다.
사람이 환수를 모르는 것처럼 환수 역시 사람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다행이에요.”
은호는 뒷말을 꺼내며 호선을 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저 친구들을 알게 되어서요.”
하지만 그의 눈빛은 달랐다.
살벌했다.
“저 친구들에게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줘놓고, 그놈은 아무것도 모르겠죠? 제가 놈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말해줘도 웃고 넘기겠죠?”
“그럴 겁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참, 역겹네요.”
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왜 계속 이런 걸까.
“국장님.”
“네, 은호 씨.”
“왜 고통은 양방향이 아닐까요? 어째서 한쪽만 계속 아파야 할까요?”
누가 되었든, 처음 고통을 준 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만 계속 행복했다.
그 새끼가 그랬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얼마나 오만했던가.
―…양보하라고. 돈 준다고. 수술비 부족하다며? 돈 준다니까? 한 번 양보한 걸로 무슨 큰일이 있다고, 이 지랄인데? 너, 돈 있어?
은호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웃었다.
지혜는 웃지 못했다.
마치 은호가 그런 고통을 당한 것처럼 들려왔으니까.
“누구도 함부로 타인의 것을 빼앗을 순 없어요. 그 대상이 환수라고 해도 똑같아요.”
인간과 환수가 다른 건 외형뿐이었다.
겨우 그 차이였다.
은호는 더더욱 알고 있었다.
“사람도 빼앗겼으면 빼앗긴 걸 돌려주려고 하잖아요? 물론, 그게 현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알아요. 하지만 환수는 그보다 더 큰 보호를 몸에 두르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지혜는 은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환수는 어떤 종을 떠나 전부 보호종입니다. 환수를 건드릴 수 있는 건 현행법상 환수 관리국뿐입니다. 환수가 사는 터전이 환수 보호 지역이 아니라고 해도 함부로 쫓아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환수 관리국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환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저예요.”
국가 특별 보호가 시행되면서 받은 권리 중 하나였다.
이제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환수에게 관여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서은호 씨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웃었다.
은호가 국가 특별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과 환수의 접촉을 예외로 한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통보받았다.
중요한 사항이기에 외부에 알리면 안 된다는 경고마저 받았다.
“국장님. 만약에 환수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당연히 아주 무거운 형벌을 받겠지요.”
지혜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도현을 끌어내릴 방법을 찾았다.
이런 곳에서, 놈의 약점을 잡다니.
잠깐 눈에 힘을 주던 지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금만 더 하면 도현의 목을 쥘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뭘 더 기다릴까.
“그럼, 이대로 돌아가 해당 기록이 남아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네. 제가 저 친구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줄게요.”
은호는 지혜에게 손을 흔들다 잠깐 떠오른 생각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국장님.”
“말씀하십시오.”
“아직은 이걸로 이도현을 잡을 수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아직 아닙니다. 확실히 숨통을 쥘 겁니다.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혜는 말을 끝낸 뒤, 그대로 고개를 숙이려다 조금 전부터 거슬렸던 한 가지를 언급했다.
“서은호 씨.”
“네?”
“괜찮으십니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요. 가끔 이래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은호는 지혜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혜의 눈이 잠깐 동그랗게 변했다.
가끔 이렇다니.
뭔가 찝찝한 말이었지만, 모르는 척 넘겼다.
“환수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혜는 부탁 하나를 남기며 허공에 떠서는 날아갔다.
은호는 그녀의 흔적을 눈으로 좇다 다시 돌아왔다.
“친구야. 많이 기다렸어?”
“…괜찮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더는 널 의심하지 않아.”
첫째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뭘 더 의심할까.
“조금 전 인간은 이지혜라고 하는데, 너희를 돕는 인간 단체의 대장이야. 너희의 사정을 알리고, 너희의 적을 말하고 오는 길이었어.”
“우리를 돕는 무리가… 있었다니. 그럼, 너도 그 무리에 소속되어 있는가?”
첫째는 기분이 이상했다.
몰랐던 세계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난 아니야. 나는 너희의 임시 보호소를 자청하고 있어. 저 단체도, 나도 너희를 돕는 건 똑같아. 너희의 적은 곧 우리의 적이니까.”
같은 적이라니.
인간과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첫째는 참 낯설다고 생각했다.
“너희의 적이자, 우리의 적은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인 이도현이야. 이도현.”
“…이도현.”
첫째는 그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며 눈가를 꿈틀거렸다.
원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놈을 끌어내리려고 해. 너도 도와줄래?”
“당연하다. 내가 바라는 일이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이었다.”
첫째는 은호에게 걸어갔다.
왜 자신을 신경 쓰고 돕냐는 말에 저 인간은 자신들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진심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렇기에 첫째는 또 사과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고, 무엇보다 엉뚱한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다.
“내가 너희에게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단, 쉬자.”
“……뭐라고?”
“쉬자고. 너희 다, 쉬어야 해.”
은호는 다가오는 첫째를 두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첫째는 깜짝 놀랐다.
이게 다 무슨 느낌인지 몰랐다.
“너희가 피해를 입힌 인간들에게 뭘 할 수 있는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쉬자.”
저들이 이런 행동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몰랐다.
다른 건 몰라도 몸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마저 끝까지 내몰린 게 분명했다.
“그래. 말썽꾸러기 말이 맞아. 너희 너무 지쳐 보여.”
윈디드가 동조했다.
분명히 저 존재는 약속을 깨려고 했다.
은호가 이를 말린 것이었다.
여기서 뭘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도, 너의 동생들도 다, 휴식이 필요해.”
은호는 첫째 말고 다른 크라카에게 다가갔다.
살짝 무서워했지만, 은호의 손길이 닿자 다들 묘한 느낌에 그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다.
은호는 아예 자리를 잡아 손 크기만큼 작아진 크라카들을 계속 쓰다듬었다.
크라카들은 눈을 감으며 손길을 즐겼다.
너무 따뜻했다.
계속 쓰다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랑 같이 가서 맛있는 밥도 먹고, 편안하게 잠도 자고, 그러자. 어때?”
은호가 묻자 크라카들을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좋은데, 형은 어떨지 모르겠어.”
“맞아. 오빠가… 싫어하면 어떡해.”
“오빠는 이런 거 허락 안 해줄 텐데.”
슬쩍 첫째를 보자 뭔가 얼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되는가?”
“당연히 되지. 우리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동생들 상태가 어떤지 보는 게 좋으니까 너희를 돕는 곳으로 가도 될까?”
환수 연구소로 가는 게 맞았다.
“그게 아니라…….”
첫째는 말을 꺼내다 말고 주저했다.
은호는 고개를 돌려 첫째를 바라보았다.
손마저 뻗어 뺨을 쓰다듬었다.
“죽은 동생이 마음에 걸린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너는 최선을 다했어. 정말 노력한 거 알아.”
“…….”
첫째는 은호를 보며 눈을 붉혔다.
왜 저 마음을 모를까.
편해져도 되는지, 죄책감이 밀려오는 거겠지.
“너 혼자만 누리는 게 아니야. 네가 무너지면 너의 동생이 흔들릴 거야. 남은 동생을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지켜야 한다. 내가 지켜야 해.”
“그러니까, 오늘은 쉬자. 널 위해서, 너의 동생을 위해서.”
은호는 미소를 지으며 첫째를 안아주었다.
첫째의 눈을 따라 눈물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동생들 돌보느라 고생했어. 오늘은, 아니 당분간 괜찮아. 내가 널 대신해서 동생을 지켜줄게.”
첫째는 그 말에 은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지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언제 끝나지 않을 이 길은 너무나도 멀었으니까.
‘오늘만. 딱 오늘만…….’
눈을 감았고, 그대로 몸의 힘이 풀렸다.
바로 의식이 흐려졌다.
은호는 첫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뒤로 쓰러졌지만, 여전히 안아주었다.
“잘자, 친구야.”
긴 여행에 지쳤을 친구를 위해 조용히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