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2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22화(222/302)
222화. 잠
“…다들, 건강 상태가 좋진 않네요. 대부분 치료가 필요하겠어요. 이 상태로 많이 떠돌았다고 하나요?”
아윤이 은호를 보며 물었다.
은호의 팔에도 링거가 꽂혀 있었다.
열이 39도를 넘어갔다.
이곳에 은호가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펴봐야 할 환수가 너무 많았다.
총 11마리였다.
“맞아요. 다들 많이 안 좋나요?”
은호는 바닥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크라카들을 쓰다듬었다.
꼬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 그거 빼면 안 돼. 나도 하고 있잖아?”
은호는 링거를 빼려는 크라카 중 한 마리에게 말했다.
“이거 이상해!”
“나도 이상하긴 한데, 안 아프려면 해야 해.”
은호는 공감하며 키득거렸다.
“지금 웃음이 나는가?”
흑견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웃음은 나는데, 멍멍이 형님?”
“지금 웃음이 나세요?”
아윤이 묻자 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웃음이 사라졌다.
“…아뇨.”
“아뇨, 아뇨. 웃으셔도 돼요. 웃으셔야 빨리 나으니까요. 그렇죠?”
아윤이 웃었다.
입꼬리에 힘이 단단히 들어간 게 보여 은호는 입이 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 저 잘했잖아요? …그렇죠, 아윤 씨?”
“잘하셨죠. 네, 정말이에요. 다른 것도 잘하시면 좋겠다고 아주 살짝만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칼같이 자른 똑 단발이 살짝 기운 고개를 따라 흔들렸다.
“전 언제라도 집에 갈 준비하고 있어요. 오늘은 바로 침대로 들어가야죠.”
“오늘만요? 오늘만 그러셨나요?”
아윤이 집요하게 묻자 은호는 어깨에 힘을 빼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너무 많이 왔죠?”
“단골이죠. 이게 제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네요. 단골 환자라는 게 있을 줄은 정말로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그으.”
은호가 말꼬리를 늘리자 아윤은 숨을 내쉬며 쪼는 걸 그만뒀다.
“너무 압박했다면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편안하게 오세요.”
“편하…게요?”
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이에요. 제가 잔소리를 좀 줄여볼게요.”
아윤은 은호를 똑바로 보았다.
저번에 환수들만 와서 약을 가져간 일을 떠올렸다.
얼마나 자신이 뭐라고 했으면 직접 와서 약을 타갈 생각도 못 했을까. 참 신경 쓰였다.
하지만 계속 입원할 일만 생기니 어쩌겠는가.
독에 당했고.
화상도 입었고.
고열이 났고.
자상을 입었고.
하나씩 떠오른 생각에 잠잠했던 감정에 또 뜨거운 화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정말요?”
은호가 기뻐하자 아윤은 하마터면 아니라고 말해버릴 뻔했다.
방금 꺼낸 상상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상상을 왜 해서는.
“…네.”
아윤은 마지못해 대답하자 은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뒤로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저 미소만 본다면 누구라도 순수한 청년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속으면 안 돼.’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올지 몰랐다.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아윤은 일에 집중했다.
“지금 병실에 입원한 환수가 첫째라고 했죠?”
아윤의 물음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첫째예요.”
“그 몸으로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네요.”
“그 친구가 제일, 심각해요?”
“맞아요. 다른 환수들은 3일 정도 입원하면 되겠는데, 그 환수는 조금 더 길게 봐야겠어요. 과거에 다친 것 같은데, 그때, 치료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 말에 은호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몸을 갈았을 첫째를 생각했다.
마음이 아려왔다.
“제가 그럼, 저 친구한테 잘 말해볼게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말을 전하는 것뿐인데요.”
“은호 씨도 쉬어야 하는 거 아시죠?”
“당연하죠.”
은호는 대답한 뒤에 크라카들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들아, 여기 잠깐만 얌전히 있어봐.”
“형한테 갔다 오려고?”
그 말에 크라카들은 은호를 빤히 보았다.
누가 봐도 같이 가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맞아. 따라오고 싶겠지만, 지금은 안 돼. 치료 다 받으면 그때, 가자?”
은호는 크라카들을 달랬다.
* * *
은호는 첫째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가벼운 치료가 불가능한 만큼 먼저 병실에 들어가 있었다.
“안녕, 친구야.”
은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주 넓었다.
동생도 함께해야 하기에 제일 넓은 병실로 배정되었다.
“…내, 동생은?”
첫째는 은호를 보자마자 동생을 찾았다.
“지금 치료받고 있어.”
“많이… 심각하다고 하는가?”
“아니.”
은호는 다가가 첫째의 코를 톡 건드렸다.
바로 반응이 있었다.
은호는 키득거리며 첫째를 보았다.
“친구가 제일 심각하대. 장기간 이곳에 머물지도 몰라서 알려주려고 왔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오래 머무는지 모르면 불안한 거 아니야?”
“…인간도 다쳤는가?”
첫째는 은호가 밀고 온 링거 거치대를 보았다.
“아니야. 다친 건 없어. 그냥 열이 좀 나서 이러는 거지. 이거 다 맞고 나면 괜찮아.”
“미안하다.”
“또 그런다.”
은호는 첫째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웅크려 있던 첫째는 은호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사과 그만해도 돼. 건강하게 나을 생각을 해야지.”
“여기에… 우리가 많았다.”
“아픈 친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
“다, 인간이 데려온 건가?”
“절반 정도는 그렇다.”
흑견이 대답했다.
첫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 있으니, 다른 존재들이 찾아왔다.”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어서 나아라느니. 은호가 데리고 왔냐느니.
은호가 얼마나 다정한지, 또 은호에게 함부로 하면 혼낸다느니.
“전부 다 네 이야기를 했다.”
은호는 그 말에 밀려드는 감동을 이기지 못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정말, 다정한 친구들이야.”
“그래 보였다.”
“친구야. 내가 그놈도 잡아줄게. 널 위해서. 그리고 날 위해서.”
“인간은 왜 그놈을 쫓는 건가?”
첫째는 궁금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희를 다치게 하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짧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곳에 있는 존재들의 다정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겠다.’
저 인간이었다.
자신들에게 인정받는 인간이 저 인간 이외에 누가 있을까.
아마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야. 그때, 약속을 깨려고 했지?”
“약속을 깨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을 깨야만 하는 순간이 늘 찾아왔지. 어디에 있는 건지 보이지도 않는 왕을 원망도 했다.”
인간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데, 자신들은 인간을 죽일 수 없었다.
“…이건 부당한 힘이다.”
이 부당함을 깨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오는 건 당연했다.
이렇게 구석까지 내몰리면 하루마다 수십 번씩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럼, 내가 왕을 대신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혹시, 왕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본 적은 없어.”
“그런데 왕마저도 감싸는 건가?”
첫째는 그 사실이 참 이상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지도 않았는데, 왕을 감쌀 수 있을까.
자신은 왕을 버리려고 했는데. 저 인간은 달랐다.
도리어 왕을 옹호했다.
“왕은 너희를 위하고 있어. 정말이야. 아마 보이지 않아서 믿기 어렵겠지만, 너희가 다치지 않게 혼자서 재해를 억누르고 있었어.”
첫째는 눈가를 좁혔다.
이런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재해를… 혼자 억누르고 계셨다니.”
“그렇지? 믿기지 않지? 하지만 정말이었어.”
“왜…. 대체 왜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너희가 행복하길 바랐던 거지.”
지금까지 왕의 행동을 보면 왠지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윈디드만 봐도 몰래 사건을 조사했으니까.
“아. 물론, 이건 내 생각이야. 만약에 왕을 보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알려줄게.”
은호는 약속이라도 하듯 말을 꺼내며 웃었다.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
첫째는 은호를 보며 웃었다.
왕은 자신들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인간.”
“응?”
“나는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눈웃음을 지었다.
모든 인간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겁던 짐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어서 기뻤다.
“내 노력을 알아준 것도.”
―너는 최선을 다했어. 정말 노력한 거 알아.
쓰러지기 전에 은호가 건넨 말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준 것도.”
잘못된 노력일 수도 있었지만, 이를 바로 잡아준 건 저 인간이었다.
첫째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이 말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리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 고맙다.”
몇 번을 말해도 아깝지 않았다.
“나도 널 만나서 기뻐.”
은호는 첫째의 머리를 감싸며 크게 웃었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건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 * *
“…왔어, 말썽꾸러기?”
집으로 오자 윈디드가 은호를 맞이했다.
“다들 자?”
밤이 늦었다.
꼬맹이들도 다 잘 시간이었다.
“나는 안 자.”
일렉트가 은호를 빤히 보았다.
다가와 앞발로 은호의 볼을 잡았다.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보더니 활짝 웃었다.
“이제 잘래. 침대에서 잘 거야.”
하품을 크게 한 일렉트는 계단 쪽으로 기어올랐다.
“……어?”
뒤늦게 은호가 반응했다.
“…나, 기다린 거야?”
“응. 난 은호를 기다렸어. 까망이도 기다렸는데, 잠을 이기지 못했어.”
“사고뭉치가 버티기에는 아직 어렵지. 삐죽이도 얼른 자. 나도 이제 씻고 자야지.”
“은호.”
“응?”
일렉트는 은호를 빤히 보았다.
평소랑 눈빛이 달랐다.
아주 진지했다.
“나는 이번에 알아버렸어.”
“어떤 걸 알았어?”
“나는 전기보다 은호를 더 좋아해.”
갑자기 다가온 말에 은호는 뭘 들었나 싶어 조용히 숨마저 삼켰다.
“은호가 나의 전기였어.”
일렉트는 활짝 웃었다.
“은호. 나는 레요야.”
절대로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아니, 사실은 과거를 생각하는 게 싫었을지도 몰랐다.
좁은 그 우리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예쁘다고 생각한 적 없었고, 그때를 되살리는 말 같아서 이름은 앞으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은호가 이름을 불러줬으면 했다.
은호가 부르면 분명히 아름다워질 테니까.
“레요.”
은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이름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더 많이 반짝거렸다.
일렉트는 설렘이 묻어난 표정을 하며 웃었다.
“좋은 이름이야.”
은호가 활짝 웃었다.
이렇게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응!”
일렉트가 크게 대답했다.
“앞으로 내 이름으로 불러줘도 돼.”
“아니, 나는 삐죽이라고 부를 건데?”
이름이 있더라고 삐죽이만큼 잘 어울리는 건 없었다.
일렉트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위로 뒤틀었다.
“흥!”
그대로 계단을 올랐다.
은호는 크게 웃다가 입을 가렸다.
“그렇게 재미있어?”
윈디드가 묻자 은호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 맛에 사는 건데?”
“삐졌을지도 몰라.”
“내일 달래줘야지. 이름도 많이 불러주고.”
“알았으니까, 이제 자거라.”
흑견은 꼬리로 은호의 얼굴을 살짝 쳤다.
“자더라도 씻고 자야지.”
은호의 시선이 윈디드와 흑견을 향했다.
윈디드와 흑견은 그 묘한 눈빛에 뒷걸음질했다.
“같이 씻을래?”
흑견은 눈치껏 빠르게 그림자로 들어갔다.
“아니, 친구! 이러면 곤란하잖아!”
윈디드가 기겁했다.
창문을 깰 수도 없고.
은호가 다가가 윈디드를 양팔로 잡았다.
“삐약이뿐이네?”
“…말썽꾸러기. 있잖아, 진정 좀 해.”
“진정하고 있어. 당황한 건 삐약이잖아?”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씻을 필요는 없어. 몸에 깃든 냄새가 지워지는 게 더 좋지 않으니까.”
“삐약아. 여기는 집이야. 집에 오면 씻어야지. 나도 그렇고, 너한테서도 탄 냄새가 나.”
“작은 친구들은?”
“일렉트도 그렇고, 사고뭉치도 씻겨야 하는데, 아이에게는 잠이 더 중요하지.”
은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이는 쑥쑥 자라야 했다.
“하지만 삐약이는 아니잖아?”
은호가 씩 웃었다.
성체였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긴 한데.”
윈디드는 뒷걸음질했다. 이 걸음을 따라 은호가 움직였다.
날개가 홀딱 젖는 건 사실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바다는 특별한 곳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말썽꾸러기 지금 힘들잖아. 날 씻기면 더 힘들 거야.”
“…아. 그건 그렇긴 하네.”
생각해보니 감기몸살 걸리기 전에 일렉트만 빼고 죄다 씻겼다.
노동을 한 셈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절박했다.
그렇게 씻기 싫은 걸까.
“어쩔 수 없지.”
은호는 아쉬움을 담아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화장실로 향하자 윈디드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갔는가?”
흑견의 목소리에 윈디드는 살짝 째려보았다.
“억울하면 빛으로 파고들거라.”
“그런 힘은 없어.”
“…뭐야? 멍멍이 형님이 왔어?”
“왔…….”
흑견이 다급히 윈디드의 부리를 잡았다.
입 다물어라.
흑견이 그렇게 노려보았다.
* * *
은호는 개운한 몸으로 침대에 들어갔다.
구석진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괜찮았다.
‘몸이 무겁긴 해.’
그대로 눈을 감다가 작은 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
“…은호.”
라비였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깼어?”
“아니니라.”
라비는 크게 하품했다.
“그럼, 얼른 자. 아직 아침은 멀었어.”
은호는 라비를 토닥거렸다.
“나도, 은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 마음, 알지.”
“다음에는… 꼭. 꼭, 지켜주겠느니라.”
라비는 그 말을 꺼내고는 바로 꿈나라로 가버렸다.
저 말을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은호는 라비의 숨이 길어질 때까지 토닥거렸다.
“날, 지켜주는 건 나중에 해도 돼, 사고뭉치.”
성체가 될 때, 그때 해도 되는 일이었다.
은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주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