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2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27화(227/302)
227화. 떠들썩하다
* * *
“…하.”
태호의 긴 숨에 은호는 콧잔등을 건드렸다.
힐끔 보자 아예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은호 씨. 내가 뭘 잘못했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고를 칠 수 있을까.
“아뇨. 형이 뭘 잘못했겠어요?”
하하.
은호는 웃었다.
진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대답이 끝나자 밀려오는 침묵이 너무나 무거웠다.
은호의 목에 감긴 일렉트가 건전지를 안은 채 키득거렸다.
“은호, 혼나고 있어.”
“당연하다.”
흑견마저 동조하자 은호는 세티아가 보고 싶었다.
세티아는 안아줬는데.
하지만 은호는 흑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일렉트의 볼을 찔렀다.
이도현한테 다리를 다쳤으니 그냥 넘어가야지.
“그럼, 내가 은호 씨를 화나게 했을까?”
“그…렇지는 않죠?”
타악!
가을이 서류를 세게 내려놓자 은호는 움찔거렸다.
“그럼, 제가 화나게 했습니까?”
가을의 눈매는 날카로웠다.
평소와 달리 더 거셌다.
“…아니죠.”
은호는 눈동자를 움직이다가 차를 마셨다.
목이 탔다.
마시고, 또 마셔도 너무 탔다.
“이도현은 위험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제가 왜 이 힘을 가지고도 수없이 참았는지 모르십니까?”
가을이 언성을 올렸다.
이런 적은 처음 봤기에 은호는 놀랐고, 단단히 혼내려던 태호도 입을 벌리며 보았다.
“…대단하다, 은호 씨. 가을 씨를 이렇게 화내게 하다니. 나도 별로 못해본 건데 말이야.”
빈정거림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하다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런 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은호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어요.”
“적어도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거잖습니까. 만약에 잘못됐다면 어떡할 겁니까?”
가을의 물음에 은호는 머뭇거렸다.
실패한다.
이 전제를 왜 안 해봤을까.
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수 있었다는 것도 왜 모를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수는 있지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컸어요. 도망갈 자신이 있었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자신만 아니라 가을도 태호도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은가.
“오늘 이도현을 만나고 알았어요. 절대로 틈을 내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요. 뭐라도 발견하려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수확은 컸어요.”
은호는 말을 하며 가을의 눈치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어떤 말이든 할 것 같았던 그녀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있었다.
“형하고 가을 씨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건… 반대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랬어요.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요.”
혼자 적을 염탐하겠다고 말하면 누가 들어줄까.
거꾸로 생각해봐도 자신 역시 뜯어말릴 게 뻔했다.
“그래도 말씀하셨어야 했습니다.”
“…그건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걱정을 끼쳤으니까요.”
“그게 아닙니다, 은호 씨.”
가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 말하는 건 일의 연장선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말하는 겁니다.”
“네…?”
“은호 씨가 한 행동의 결과는 칭찬하는 게 맞습니다. 정말로 많은 것을 알려줬으니까요.”
“그래. 그건 맞지. 설마, 이도현이 환수들을 데리고 있을 줄이야. 그것 이외에도 정화자에게 협박받고 있다는 점도 아주 귀중한 정보지. 일로 본다면 은호 씨는 정말 잘한 거야.”
“그렇죠?”
은호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완벽한 일 처리를 지향하고 있었으니까.
몸이 근질거린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일과 별개로 은호 씨의 행동에 마음을 졸였어. 이건 진심이야.”
태호가 이어 꺼낸 말을 가을이 받았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주 많이 걱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환수 연구소에 도움이 될 사람이라 좋았다.
환수라는 영역에 더 많은 발전을 시킬 수 있었고, 태호의 바람을 이뤄줄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서은호라는 사람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더 많이 위태로웠다.
자신보다 환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런데 왜 걱정을 하지 않을까.
“저도 저를 아끼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걸로 박사님한테 정말 많이 혼이 났습니다.”
“…가을 씨가요?”
은호는 놀라며 가을과 태호를 번갈아 보았다.
“이야, 그런 적이 있었지. 그립네. 다시 못 돌아갈 시절이지.”
“저도 겪어 봤기에 은호 씨는 그러지 말라고 혼내는 겁니다.”
은호에게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비소속 초능력자였다고.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살았는데, 자기자신이 소중했을까.
태호가 바로 잡아주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도와주었다.
가을은 태호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주변이 없어 마음만 급했다.
“만약에 은호 씨가 위험했다면 박사님은 정말로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은호 씨를 구할 테니까요.”
가을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은호에게 말했다.
말에 묻은 감정은 낯설고 따뜻했다.
은호는 괜히 시선을 내려 일렉트를 보았다.
“가을 씨도 그럴 거야. 아니, 나보다 더 먼저 나섰을 거야. 오늘 일도, 가을 씨가 나한테 와서 계속 걱정했으니까.”
“…고마워요.”
은호는 잔잔한 미소를 입꼬리에 닿았다.
“정말로요.”
가슴이 벅찼다.
태호도, 가을도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다시 믿을 수 있게 계속 도와주고 있다는 걸 왜 모를까.
“……그래서였어요.”
은호는 여전히 시선을 흘리며 말을 꺼냈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웠다.
원했던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계속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그랬지만, 어렵진 않았다.
“환수가 얽혔기 때문이기도 한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더라고요.”
은호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일렉트는 은호의 표정을 빤히 보다 앞발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은호 얼굴 빨개졌어. 그리고 뜨거워.”
일렉트의 말에 흑견이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이런 부분에서 은호는 참 약했다.
“은호 씨.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알아.”
태호는 웃었다.
마음을 전달하는 건 언제나 버거운 일이라는 걸 왜 모를까.
은호에게 있어 저 말은 꽉 짜낸 용기에 가까웠다.
“그래도 앞으로 말은 해. 문자라도 남기라고.”
따악!
태호는 은호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은호의 눈이 커졌고, 태호는 만족하며 웃었다.
한 대 때리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무사히 왔으니, 그건 잘했네.”
태호는 이어 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긋 웃었다.
“…이거, 병 주고 약 주고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마음을 들었다가 놓을 수가 없을 텐데.
“오. 제법 괜찮은 말인데?”
태호는 은호의 말에 감탄했다.
그야말로 어울리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고생 많았어.”
“고생 많았습니다.”
태호와 가을은 동시에 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젠 또 약을 주시네.”
허탈하게 웃었지만, 은호는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말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은호는 두 사람을 보며 포근함을 느꼈다.
* * *
“…은호, 은호.”
은호가 거실에 누워 있자 폭시가 빙그르르 돌아다니며 말을 꺼냈다.
“왜 그래, 폭시야?”
“왜 그렇게 기운이 없이 누워 있어?”
“그냥.”
은호는 말을 꺼내다가 시야 안에 들어온 폭시의 얼굴에 빙그레 웃었다.
“내가 오늘 많은 걸 알아냈거든. 무모한 짓도 했어.”
“그래서 혼났어?”
“맞아. 혼났어.”
“나는 봤어! 은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텔레비전 앞에 있던 일렉트가 키득거렸다.
놀릴 거리를 찾아서 기뻤다.
“정말이더냐?”
라비가 활짝 웃으며 일렉트를 보았다.
“왜 기뻐하는 거야, 사고뭉치?”
은호의 물음에 라비는 못 들은 척 일렉트에게 걸어갔다.
“…하! 그게 혼이 난 거라니.”
흑견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혼나야 했는데.
다들 마음이 약한 탓일까.
“말썽꾸러기가 뭘 했길래 그래?”
윈디드는 털을 고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힘이 있는 강한 인간의 정보를 털겠다고 혼자 잠입했다.”
딱.
은호의 이마에 앞발이 올려졌다.
꿀밤을 때리는 것 같았지만, 하나도 안 아팠다.
“은홈! 그러면 안 ?”
레비아탐이 따끔하게 말을 꺼냈다.
“무서운데?”
“정말롬?”
은호의 말에 레비아탐은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하나도 안 무서웠지만, 은호는 웃음을 참았다.
“필요한 일이었어. 너희를 위해서, 그리고 내 친구들을 위해서.”
이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집에서라면 그들을 모두 친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사람 친구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치 케케묵은 먼지를 터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은호의 얼굴이 빨개진 거야?”
폭시가 궁금증에 꼬리를 흔들며 물었다.
일렉트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도 몰라. 은호가 그 인간들, 그러니까, 가을하고 태호를 보고 그랬어.”
“좋아하는 것이더냐?”
라비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맞아. 나는 두 사람을 좋아해.”
은호가 대답하자 라비가 귀를 내렸다.
“나보다 더 좋아하더냐? 나보다…?”
라비가 다가와 입꼬리를 내렸다.
은호가 가을하고 태호를 더 좋아하는 건 싫었다.
“너랑 다른 종류의 감정이야.”
“어떻게 다른 감정이더냐?”
라비는 안심하며 물었다.
금세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너는 내 가족이고, 두 사람은 내 친구야. …사실, 친구라는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은호는 두 사람에게 묻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친구죠?’라는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릴까.
어린아이도 아니고.
“은호도 무서워서 그램?”
레비아탐이 묻자 은호는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무섭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일이었다.
시선을 돌리자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쳐다보는지 몰랐다.
텔레비전을 보는 게 더 나을 만큼 시시한 이야기일 텐데.
“나는, …음,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전에도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에 윈디드가 다가가 물었다.
“어째서 그런 거야? 이거 물어봐도 돼?”
“너희가 한때 인간을 싫어했던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은호의 대답에 폭시가 앞발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이 은호한테 상처를 줬어?”
“그렇긴 한데, 이제는 그냥 아련하게 남은 기억으로 여전히 싫어했던 거지. 막 공포나 두려운 건 아니었어.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서 꺼려지는 거 있잖아?”
“알고 있다! 씻는 거다! 이 몸은 씻는 게 제일 싫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사고뭉치?”
절묘한 은호의 말에 라비는 뒤로 물러나 윈디드에게 다가갔다.
입꼬리를 내리며 아쉬움에 웅크려 앉았다.
이게 통하지 않다니.
“어쨌든, 그 기억도 이제는 희미해져 가고 있어. 새로운 기억이 덮였으니까.”
마치 갈라진 틈 사이에 시멘트를 덧대는 기분이었다.
갈라졌다는 사실은 존재했지만, 새로 바름으로써 감쪽같아질 테니까.
은호는 천장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시야 안으로 여러 얼굴이 보였다.
다들 실실 웃고 있었다.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은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면 은호도 이제 나아가고 있는 거네?”
폭시가 묻자 은호는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나아가고 있다니.
“말썽꾸러기는 몰랐나 보네.”
윈디드가 웃자 흑견은 코웃음을 쳤다.
“인간은 멍청해서 모른다.”
“모를 수 있엄. 그리고 은호는 멍청하지 않암.”
레비아탐이 허리춤에 앞발을 올렸다.
“은호도 좋아지고 있었어!”
일렉트가 꼬리를 흔들었고, 라비는 혼자 어리둥절했다.
“뭐가 나아가는 것이더냐?”
몰려오는 웃음과 관심과 걱정에 은호는 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게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은호 부끄러워한다! 맞지? 그렇지?”
폭시가 은호 옆에서 뛰며 물었다.
저 해맑은 미소에 은호는 날뛰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은호가 말을 더듬자 흑견의 입꼬리가 가득 올라갔다.
“부끄러워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옆구리를 찌르는 듯한 말에 은호는 얄미운 표정으로 흑견을 바라보았다.
아주 재미있어 흑견은 크게 웃었다.
은호는 그 웃음소리에도 뭐라고 말하지 못한 채, 부엌으로 걸어갔다.
물을 마신 뒤에야 가슴이 차분해졌다.
‘이래도 좋긴 하네.’
이곳은 집이었다.
떠들썩하고, 가득 차 있는 곳.
이 기분을 내내 느끼고 싶었으니까.
자신을 다독거려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저들을 위해 뭘 못할까.
한 번은 내버리려고 했던 목숨이었다.
‘하지만 두 번은 싫어.’
저 환하디환한 저들의 미소를 계속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걸리적거리는 다 치워야 했다.
무엇이든 과거와 똑같이 살아갈 마음은 없었다.
‘아무것도 안 뺏겨.’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