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2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28화(228/302)
228화. 파괴하라
지혜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은호가 보여준 영상은 그저 헛웃음만 나오기 충분했다.
이도현이 환수들을 우리에 처박아둔 영상이었으니까.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환수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세계보호종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정복감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사람 손에 길들여지지 않는 그 사실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렇죠. 환수와 얽힌 불법 사업의 규모는 굉장히 크잖아요?”
은호는 웃지 않았다.
어제 구출했지만, 모두가 무사한 건 아니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수는 다시 환수 연구소로 보냈다.
“…그곳을 더 뒤지니까, 시체도 보관되어 있었어요.”
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팔려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네. 환수라는 그 자체는 몹시 값비싸니까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수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국내 유통망을 막아놨기에 뚫을 곳은 거기뿐일 겁니다.”
지혜는 말을 하는 내내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는지 몰랐다.
자신은 그런 모습을 많이 봤기에 괜찮았지만, 은호는 괜찮을지 몰랐다.
“잠은 제대로 주무셨습니까?”
“아뇨. 그러진 못했어요. 그냥 멍멍이 형님한테 미안했어요.”
시체를 보지 못했다.
구역질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흑견이 그들을 챙겨주었다.
아무리 해도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았다.
깊이 가라앉는 듯한 은호의 모습에 잔을 만지작거리던 지혜는 시선을 올렸다.
“서은호 씨.”
“네.”
“저번에 서은호 씨가 데려온 정화자들 말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해도 될지 망설였지만, 지혜는 알게 된 정보를 숨기고 싶지 않았다.
“정화자가 아니었죠?”
은호의 되물음에 지혜는 입을 다물며 잠깐 생각했다.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지혜는 깊어진 은호의 눈빛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도현.”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놈 짓입니까?”
이윽고 분노가 뒤이어 끓었다.
거기까지 손을 댔을 줄이야.
“국장님이 알아내신 사실이 맞아요.”
은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대답은 너무도 가벼웠으나, 말에 깃든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정화자가 아니었습니다. 초능력 관리국 소속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용된 비소속 초능력자였습니다.”
지혜가 몇 박자 늦게 말을 꺼냈다.
그저 쓰고 버릴 패였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도현은 설산에서 벌어진 눈사자 사건에 개입될 마음이 없었다는 소리와 같았다.
‘흑견 때문이 맞구나.’
은호는 지혜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도현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사건에 개입한 변수는 흑견이었다.
하나율이 흑견이라는 이유 하나로 정신을 놓아버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흑견이 탐나서가 아니라, 흑견과 관련된 사건에 본인이 개입됐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이도현은 정화자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어요. 둘은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고요.”
은호는 자신이 아는 걸 이야기했다.
“그래서 후원금이라는 이름의 상납금을 바친 거였습니까?”
왜 초능력 관리국이 정화자들이 만든 봉사 단체에 후원했을까.
그 의문이 은호가 말한 지금 풀렸다.
지혜는 엄지를 잡고 꽉 눌렀다.
“단순히 제가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의 모든 권한을 가져가서 난리를 피웠던 것도 아니었네요.”
고소까지 하겠다고 과하게 나온 도현의 과한 대처가 눈에 들어왔다.
지혜는 말을 끝낸 뒤 웃었다.
아주 기뻐 보였다.
“제가, 이도현의 계획을 망쳐버렸습니다.”
“아주 절묘했죠.”
은호 역시 웃었다.
“국장님.”
“네, 은호 씨.”
“이거라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겠죠?”
가지고 온 영상을 가리켰다.
도현을 잡을 아주 중요한 단서였다.
“물론입니다. 이건 그 무엇으로도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지혜는 확신했다.
증거가 이토록 명확한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제 더 나아가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도현을 잡을 준비를 할 차례였다.
* * *
며칠 뒤.
은호는 병실로 들어왔다.
“…은호?”
크라카의 첫째가 은호의 등장에 고개를 움직였지만, 이내 눈을 깜박거렸다.
뭔가 많이 달라졌다.
“좀 많이 달라졌지?”
“냄새는 그대로인데, 얼굴이 달라졌다.”
“살짝 좀 꾸몄지.”
은호는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다른 크라카들에게 인사했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 가기 전에 만나러 왔어.”
“…내 원수를 만나러 가는 길이야?”
“맞아.”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너의 기운 좀 받아 가려고.”
“그게 무슨 말인가?”
첫째는 은호의 말을 알아듣질 못했다.
“힘내러 왔다는 거지.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었어.”
얼마나 애가 탈까.
사실 지금 가장 조바심을 느낄 이들은 지혜와 크라카들이었다.
둘 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혜는 은인인 문승호를 죽인 놈을 잡기 위해서.
크라카들은 이도현을 비롯한 초능력 관리국에게 뺏긴 터전을 되찾고자.
지혜와 크라카들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은호.”
“응?”
“…내 이름은 호란이다.”
은호는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호란의 말과 그 목소리에 간절함을 느꼈다.
어떤 감정을 섞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꼭 돌아오라는 말이었으니까.
“호란. 나중에 찾아올게. 더 많이 이름을 불러줘야지.”
은호는 호란에게 인사하며 병실에서 나왔다.
윈디드가 있었다.
“…깜짝아.”
분명히 집에서 헤어졌는데.
은호는 윈디드를 보았다.
“언제 왔어?”
“위험하면 더 빨리 불러. 그 말을 전하지 못해서 왔어.”
윈디드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것처럼 보였다.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마. 아직 삐약이 일도 해결해주지 못했는데. 그리고 오늘,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은호의 말에도 윈디드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인간이 얽힌 일이었다.
은호도 알고 있겠지.
약속 때문에 자신들이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는걸.
윈디드는 흑견을 보았다.
“네가 쳐다보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흑견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윈디드가 무어라 말을 하기 전부터 그래왔다.
“…부럽네, 친구.”
진심을 섞어 말하는 소리에 흑견은 비웃지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품에 안은 불만을 고스란히 은호에게 꺼냈다.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그 인간을 내버려 둔다면 자신들의 일상마저 앗아갈 수 있으니까.
약속이 자신들을 묶어버리고 있는 이상, 뭘 할 수가 없었다.
“…멍청한 인간.”
흑견은 눈가를 좁혔다.
나올 말은 그뿐이었다.
본인이 얼마나 소중한 인간인지 알면서도 이러는 게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 알면서 실실 웃고 있는 모습도 죄다.
흑견은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걱정하지 마라, 병아리.”
흑견이 건넨 조그마한 위로에 윈디드는 그제야 웃었다.
“맞아 삐약아. 걱정하지 마.”
하지만 이어진 은호의 말에 윈디드는 다시금 신뢰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네.”
그 표정을 보며 은호는 괜히 콧잔등을 건드렸다.
* * *
은호는 초능력 관리국 앞에 섰다.
초능력 관리국은 환수 관리국보다 더 도심과 가까이 위치했다.
원래는 도심 내부에 있었다고 했는데, 건물을 새롭게 옮기면서 도심에서 살짝 멀어졌다.
건물을 둘러싼 정원은 넓었고, 새로 지어진 건물답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였다.
이곳이 크라카들의 집이었고, 터전이었다.
원래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을까.
건물 주변에 산봉우리와 빼곡한 산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어 억지로 깎았고, 억지로 길을 튼 흔적이 가득한 도로가 그다음으로 시선 끝에 담겼다.
왜 이곳이 필요했던 걸까.
왜 이곳으로 건물을 옮겨야만 했던 걸까.
은호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살짝 산지라 도심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땅?
은호는 호란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려보았다.
―우리가 이곳에 터를 잡기 전에 버려진 땅이었다. 무언가를 파냈다가 흙을 덮은 흔적도 있었지만, 신기한 힘이 흘렀다. 마치 전기와 비슷한 힘 같기도 했지.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호란은 ‘신기한 힘’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나도 여기서 이상한 느낌을 느꼈어.’
공명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도 그랬다.
무언가 묘했다.
이러니 왜 이곳으로 정했는지 더더욱 신경 쓰였다.
‘식물들은 알고 있을까.’
은호는 건물 뒤쪽으로 펼쳐진 숲을 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 묻고 싶었다.
이곳에서 뭘 봤냐고.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하지만 은호는 참았다.
조금만 참으면 차분히 물어볼 수 있을 테니까.
은호는 초능력 관리국 건물로 들어갔다.
문부터 제법 무거웠다.
유리로 되어 있지만, 이상할 만큼 두꺼운 것 같았고.
‘뭐지?’
은호가 주변을 살펴보던 차,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주십시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초능력 관리국의 직원이 정중히 부탁하며 은호를 보았다.
앞에는 공항 금속 탐지기보다 더 큰, 문으로 된 기계가 존재했다.
비초능력자와 초능력자, 각자 들어갈 입구가 나뉘어져 있었다.
“확인한 뒤, 바로 앞에 있는 안내대에 방문증을 목에 거셔야 합니다.”
직원은 바로 옆에 놓여 있는 팻말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도 방금 안내와 똑같이 적혀 있었다.
은호는 비초능력자가 적힌 곳으로 걸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기계 뒤쪽에 서 있던 직원은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안내대 왼쪽으로 가셔서 방문증을 받으러 왔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비초능력자라는 걸 알자 눈빛이 편해졌다.
아무 사고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마저 보였다.
이곳에서 사고가 여럿 있었던 모양이었다.
은호는 왼쪽으로 가서 말을 꺼냈다.
안내대 주변에도 직원이 꽤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조금 전 상황을 전달받은 것처럼 은호를 빤히 보았다.
‘속인 경우도 있었나 보네.’
시작부터 참 부담스럽다 싶었다.
“방문증을 받으러 왔습니다.”
은호는 이런 시선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꺼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의 말에 은호는 뒤를 보았다.
초능력 관리국의 복장을 한 직원들도 똑같은 절차를 밟고 있었다.
죄다 초능력자 쪽으로 향했으니까.
“이곳을 방문하신 목적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직원은 은호를 보며 물었다.
“이도현 국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국장이 언급되자 쏠리는 시선이 더 많아졌지만, 은호는 표정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서은호가 아니라 이하민으로 이곳에 왔으니까.
“이하민 씨입니까?”
직원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다.
“네. 이하민입니다.”
“신분증이나 그 이외에 신분을 증명할 게 있습니까?”
은호는 가방에서 가을이 넘겨준 연구소 직원증을 꺼내 내밀었다.
기계에 잠깐 넣더니 다시 은호에게 건넸다.
“확인되셨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은호는 대답 후, 시계를 보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찾아와요.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하민 씨.
따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그 말도 약속이라면 약속이지 않겠는가.
은호는 노트북을 꺼내 잠깐 안내대에 올려놓아 무언가를 하는 척 굴었다.
오늘도 서류 정리였다.
―…그런데 은호 씨. 서류 정리 말입니다. 이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저희 업무도 모르시는데, 정리가 이렇게 깔끔할 수 있습니까?
서류 정리된 걸 보던 가을이 자신을 칭찬했다.
정말로 연구소로 채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눈동자에 가득 보였다.
아주 조금 우쭐거려보았다.
오늘도 할 거 없으면 서류 정리나 하겠다고 말하니 가을은 말없이 자료를 넘겼다.
외부로 노출되면 안 되는 것들은 가을이 알아서 다 제외했겠지만.
‘묘하게 재밌단 말이지.’
회사에서 일벌레, 일중독 등등 여러 말을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일을 하는 게 즐거웠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지금 장소가 이래서 재미있는 거겠지.’
은호는 딱 잘라 생각했다.
발소리가 들렸지만, 은호는 모르는 척 자료를 보았다.
“…이하민 씨.”
그 소리에 은호는 놀란 듯 노트북을 닫았다.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로 이도현이 미소를 흘린 채 서 있었다.
아주 반가운 얼굴을 보는 듯 기쁨이 어렸다.
‘뒤통수 맞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기쁜데?’
어쩌면 이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자신이 반가울지도 몰랐다.
상황을 뒤바꿀 존재처럼 보일 테니까.
‘아주 좋은데?’
은호는 도현을 보며 고개부터 숙였다.
“연락처를 몰라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연락처 교환이 되지 않아 나도 이하민 씨가 언제 찾아오시나 정말 기다렸죠.”
애가 탄 듯한 표정이 자연스럽게 도현의 얼굴에 그려졌다.
저 모습만 본다면 진심밖에 보이질 않았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올라가서 나눌까요?”
도현은 옆으로 손을 뻗었다.
덩달아 은호의 미소가 길어질 것만 같았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