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화(2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3화
23화. 가방 속은 미궁이다(2)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네가 이 가방을 손에 넣었을 때부터 기다렸어. 내가 왜 조급했는지 알겠지?”
“그러면 좀… 오래되긴 했는데요?”
이세계에 오자마자 입원부터 했는데, 그 시간만 해도 한 달이었다.
“그렇지? 왜 내 마음이 급했는지 알겠지? 지금 처리해야 되는 게 너무 많아. 대체 여기에 뭘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고.”
“저는 식물 몇 개밖에 안 집어넣…….”
“너 말고, 그 자식이! 그 자식이 그랬어! 나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제발…, 제발 서명 좀 해주라.”
소리를 지르던 요정은 이내 계약서를 두 손에 든 채 흔들었다.
이러다가 무릎이라고 꿇을 것만 같았다.
“내가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이상한 거면 시키지도 않아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당신이 절 위한다는 거 말이에요.”
은호는 요정을 말리려다 상당히 거슬리는 말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회사에서 너무도 자주 들었던 말이었고, 그 전부터 싫어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그래. 네가 계약을 싫어하는 것도, 어딘가 얽매인다는 것도 왜 싫어하는지 알아. 그래서 나도 시키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이게 규칙인 걸 어떡해.”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려다 조금 전 요정이 자신과 연결됐다는 말을 떠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는 거랑 다른 느낌이라 생각보다 꽤 기분 나빴다.
은호는 미간을 좁혔고, 요정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은 기준을 느슨하게 해도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편한 일이 어디 있어? 계약서 하나로 아무 대가도 없이 다 들어준다고?’
분명 대가가 있겠지. 그 대가가 자신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 무거운 대가라면 싫었다.
‘……피라면 줄 수 있는데.’
드루이드가 된 뒤로 회복 속도가 남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피가 대가라서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잘 먹고, 잘 자면 피는 금방 생성이 되어 나름대로 효율적이었다.
“서은호. 나는, 네가 필요해. ……이번이 마지막 말이야.”
요정은 귀를 내리며 간절히 바라보았다.
“마지막이라뇨?”
“…….”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요정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게 분명했다.
“…서은호,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지?”
“있죠. 아니, 생겼죠. 제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은호는 얼굴을 펴서는 잔잔히 웃었다.
“그걸 이뤄줘야 해. 그래야만 해. 그러니까 나는 너를 배신할 수 없어. 뒤통수를 칠 수도 없고,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소리야.”
“그렇다면 계약서 한 줄만 추가해 주세요.”
“뭘?”
“당신은 나를 위해 일한다고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잠깐만!”
요정은 수첩에 끼운 펜을 들어 계약서 뭔가를 적었다.
「서은호는 이제 이 가방의 주인입니다.」
그 밑에 새로운 글이 생겼다.
「가방의 요정 코코는 서은호를 위해 일합니다.」
계약서를 내밀며 코코는 은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됐지? 네가 바라는 대로 했어. 손가락으로 적어도 되니까, 이제 계약서에 서명해줘.”
“고마워요, 코코 씨.”
은호는 가방으로 손을 잡아넣어 종이에 손가락으로 이름을 써 내려갔다.
실제로 볼펜으로 쓴 듯한 느낌이 손가락 끝에 맴돌았다.
서은호.
이름에서 빛이 감돌았다.
그 빛은 조용하던 바다를 향해 번져갔다.
빛이 물결을 만들고, 그 물결이 모래를 훑고 지나가자 모래에서 반짝거림이 일어났다.
하나둘씩 나오는 반짝거림은 비눗방울과도 같이 동그랗고 작은 생물체로 변했다.
겨우 눈 두 개만 찍혀 있자 은호는 건드려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은호의 손가락이 그들에게 닿기도 전에 주변으로 흩어져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반짝이 가루가 흩날렸다. 가루에 닿은 모든 곳에 생물체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돌아왔다!”
코코는 양팔을 위로 올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퍼지는 코코의 환희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저게, 자동 시스템이라고요?”
“기계로 해야 꼭 자동 시스템이라는 법이 어디 있어?”
“……어. 하긴 그렇긴 한데, 이제 저 작은 생명체들이 일하는 거예요?”
“아니, 내가 여전히 일하는 거야. 그냥 숨통이 좀 트인 거지.”
은호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코코는 기가 찬웃음을 흘렸다.
“정말이라고. 쟤들은 내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코코는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뭐라고 지시를 내리는지 모르겠지만,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던 생물체들이 은호에게 몰려들었다.
눈을 깜박거리며 바라보기에 괜히 일렉트와 레비아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덩달아 웃는 모양새에 은호는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이름이 뭘까.’
그들은 은호의 손을 향해 다가왔다.
손톱 크기 정도 됐을까, 참 작고, 차가웠다.
“이 친구들 이름이 뭐예요?”
“그게 중요해?”
“동글이로 하죠.”
마음에 들었는지, 동글이는 그의 손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쨌든, 이제 네가 이 가방의 주인이 됐으니까, 손을 내밀어봐.”
은호는 코코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코코가 수첩을 열자 페이지가 넘어가며 무언가 하나 나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다.
‘……지퍼?’
어딜 봐도, 다시 봐도 지퍼였다.
이게 대체 뭔지 생각하던 차,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깜짝 놀란 눈으로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도망가면 안 돼.”
코코는 옆으로 돌아보더니 손을 까닥거렸다.
동글이들이 태블릿을 든 채로 날아왔다.
이 공간에서는 실제 크기대로 있는 게 아닌지 엄지 한 마디만큼 작아진 태블릿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분명히 계약하면 이 태블릿과 연동할 수 있다고 했지?”
“그렇게 말했죠.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동 능력이 추가되어 추적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 원래는 기본 기능인데, 넌 계약직이라서 지금까지 반쪽짜리 힘만 가졌던 거야. 태블릿이 가진 소환 능력도 좀 답답했을 거야. 그렇지?”
은호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태블릿만 바라보았다.
“왜? 쟤가 삐질까 봐?”
“…사실 그래요. 그것도 있고, 태블릿 씨는 제 성장과 함께 진화한다고 말해줬거든요.”
“그 말이 맞아. 하지만 이건 오류고, 내가 잡아줘야 하는 거라 아마 몰랐을 거야.”
코코는 태블릿을 손에 쥐어서는 이것저것 건드렸다.
“이제 환수 소환 능력 속도는 기본으로 돌아가고, 아, 네가 성장한 만큼 소환 속도가 감소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 이런 게 편해지는구나.’
그제야 은호 ‘성장’이라는 말에 편의성 증가도 포함된 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새삼 성장이라는 증표가 피부로 와닿자 묘하게 신기했다.
“솔직히 환수를 부를 수는 있는데, 추적할 수 없는 건 이상하잖아. 소환이랑 비슷하게 사용하면 될 거야.”
“그렇긴 하죠. 그럼, 이동이랑 나만의 공간은요? 사실 이게 핵심으로 보이는데요?”
“이거 보이지?”
코코는 동글이들이 넘긴 열쇠를 흔들었다.
“원래는 바로 너만의 공간이 딱 열려야 하는데, 지금 안 돼.”
“안 된다고요?”
“오류가 생겼네? …하.”
코코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직장인의 짜증이 얼굴에 드러났기에 은호는 말을 아꼈다.
“이거 고치면 말해줄 테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이동은… 너, 지퍼 열 줄 알지?”
“당연하죠. 코코 씨도 날 줄 알잖아요.”
자연스럽게 받아치는 은호의 말에 코코는 기가 찬 듯 바라보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미 갔던 장소 중 가고 싶은 장소를 떠올리면서 아무 곳에서나 지퍼를 여는 흉내를 내. 그럼, 요란한 색으로 휘감긴 공간이 드러날 거야. 들어가면 끝. 간단하지?”
“간단하긴 한데, 허점이 좀 큰데요? 만약에 산을 떠올렸는데, 제가 들린 산이 여러 개라면요? 어떤 산인 줄 알죠?”
“그럴 줄 알고, 태블릿이 있는 거지. 이동 어플이 열렸을 거야. 그걸로 네가 갔던 장소 중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지퍼 열어도 돼. 다만, 안 되는 기능도 있을 거야. 이것도 네 성장에 따라 변하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고. 아, 왔다 갔다 가능하고, 누구 데려오는 것도 돼. 이제 됐지? 더 자세한 건 태블릿한테 물어봐.”
뭔가 빨리 쫓아내려는 느낌이라 은호는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설명 끝났나요?”
“끝이지. 이 정도면 다 설명해줬어.”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이랑 너무 다른데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이것 참 아쉽네. 내가 사람이 아니 요정이라서.”
코코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곧 환하게 웃었다.
“자주 올 건데요?”
“……뭐?”
“나 쫓아내려고 일부러 이렇게 구는 거 맞죠? 내가 이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요. 나랑 이어졌다면서요. 그럼, 알잖아요?”
“…….”
“뭐 좋아하는지 말해주면 가방에 넣어둘게요. 그건 먹어도 되니까 부담가지지 말아요.”
바보 같은 모습에 코코는 시선을 살짝 흘리며 목소리를 냈다.
“……이동 기술 가졌다고, 너무 자주 이동하지 마.”
“어째서요?”
“꿈을 자주 꾸게 될 거니까.”
“괜찮아요. 악몽이라면 이미 지나갔으니까요.”
은호는 손을 흔든 뒤, 가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흔적을 바라보듯 코코는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 * *
“나, 왔어!”
은호가 흑견을 보며 웃었다.
“……?”
흑견은 눈을 깜박거렸다.
“고개를 가방에 넣었다 뺐을 뿐이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나, 꽤 오래 대화했는데?”
은호는 놀라며 흑견을 바라보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뭐지? 시간이 느리게 가나?’
은호는 의문을 품은 채로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업데이트가 되었습니다.》
《소환 기능 강화 및 추적 기능, 그리고 이동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은호는 환수 어플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환수 정보가 드러났던 것과 달리 새로운 화면이 생겼다.
가장 크게 화면을 차지하는 건 환수 정보이며 밑에 소환과 추적이라는 버튼이 따로 생겼다.
은호는 소환부터 눌러보았다. 검색 기능은 물론, 밑에 자신이 만났던 환수가 주르륵 목록화되어 있었다.
슬쩍 흑견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집 밖으로 나간 뒤, 쪼그려 앉아 흑견을 소환해봤다.
《예상 소환 시간 ? 5초.》
“오!”
시간이 빨라진 건 물론, 표시까지 되자 은호가 감탄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검은 바람이 불어 닥치며 그림자가 졌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인간? 왜 옆에 있는데 나를 부르는가?”
흑견이 인상을 가득 쓰자 은호는 실실 웃었다.
“있잖아, 멍멍이 형님. 혹시 내가 부르면 어떤 느낌이야?”
“…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저항할 수 없어?”
“당연히 저항할 순 있다. 하지만 친근하게 들려와 저항하지 않을 뿐이지.”
“저번과 비교하면 뭔가 달라졌어?”
“이리 오라는 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인간이 있는 위치 역시 선명해졌고.”
“오……!”
“그래서 뭐 하는 건가, 인간?”
“내가 성장했거든. 지금 성장의 맛을 보고 있지!”
은호는 혀를 살짝 내밀어 추적을 눌러보았다.
무작위, 가까운 위치 등 버튼이 꽤 많았다.
하지만 가시적이라 복잡하진 않았다.
무작위라는 버튼을 눌러보자 모래시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탁 걸렸다.
《무작위 환수로 도착하기까지 예상 시간은 20분입니다.》
‘……이래서 태블릿 씨가 못 찾았네.’
은호는 실망하며 슬쩍 흑견을 바라보았다.
“왜 또 그렇게 보는가?”
“여기서 잠깐 기다려 봐. 놀라운 걸 보여줄게.”
은호는 신나게 웃었지만, 흑견은 여전히 영문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가고 싶은 장소를 떠올리며 은호는 손을 위로 뻗었다.
그대로 지퍼를 내리는 흉내를 냈다.
지이이익.
공간이 일그러지자 흑견은 침을 삼켰다.
“와…….”
은호는 감탄했다.
물 위에 물감을 흘린 듯한 일렁거림이 사라지자 그 너머가 펼쳐졌다.
“……연구소가 아닌가?”
흑견이 뒤로 물러서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연구소가 맞아.”
자신이 생각한 곳은 태호의 연구소였다.
“봤지, 멍멍이 형님? 신기하지?”
은호는 우쭐거리며 공간 속으로 거침없이 한 발 내밀었다.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뒤, 흑견에게 손을 뻗었다.
“이게 내 성장이지.”
자신만만한 소리에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자 공간은 흑견이 지나갈 만큼 커졌다.
곧 앞발을 내밀다 말고 주저했지만, 은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지나갈까.
그런 눈이기에 괜히 오기로 나아갔다.
완전히 밖으로 나와서야 주변에 퍼진 냄새를 맡았다.
연구소가 맞았다.
발소리가 들려오고 은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여기 진짜 연구소야, 멍멍이 형님! 너무 신기한데?”
“……대체 정체가 뭔가?”
흑견이 꽤 진지하게 물었지만, 나오는 말은 하나였다.
“서은호……?”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사실 그거 말고 말해줄 게 뭐가 있겠는가.
“아! 레비아탐!”
앞을 보며 고민하던 은호는 자신에게 오는 환수를 보자 주저 없이 뛰어갔다.
오동통하고, 짧은 앞발이라면 누가 봐도 레비아탐이었다.
은호의 걸음을 보던 흑견은 몸에 긴장을 풀었다.
어딜 봐도 마법 같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곳은 마법이 없는 세계라고 했으니까.
레비아탐을 끌어안고 밝게 웃는 은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다.
몇 걸음 걷다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흑견은 바람에 실려 온 냄새를 맡다 눈을 크게 뜨고는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이 냄새는…….’
다시금 확인하려고 하지만, 사라졌다.
“왜 그래, 멍멍이 형님?”
은호의 물음에 흑견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다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왕이 이곳에 있을 리가.
자신이 맡은 냄새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흑견은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