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3화(23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233화
233화. 파괴하라(6)
크라카들이 왜 이곳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낼 차례였다.
은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손을 땅 위에 올렸다.
“뭐 하는 거얌?”
레비아탐이 물었다.
“맞다. 왜 집에 안 가더냐?”
라비가 이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크라카들이 살던 이곳이 왜 필요했는지, 식물 친구들한테 물어보려고.”
“그러면 다른 것도 물어보면 되는 게 아닌가?”
흑견이 말하자 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맞네.”
“……?”
흑견은 눈가를 좁혔다.
이게 대체 무슨 반응인지 몰랐다.
“멍청한 얼굴 하지 마라, 인간.”
“아니, 진짜 생각도 안 해본 거라. 아주 좋은 생각이야, 멍멍이 형님.”
“나도 가끔 그래. 말썽꾸러기도 그렇구나.”
윈디드가 덩달아 웃자 은호는 손을 내밀었다.
윈디드 역시 앞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은호를 꿰뚫을 것 같은 발톱을 보이자 집어넣으려고 했다.
은호는 괜찮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대로 쥐었다.
“삐약아. 발톱이 있어도 괜찮아. 이 발톱은 나한테 닿지 않는다는 걸 알아.”
다정한 저 말에 윈디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발톱은 흑견처럼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얼마든지 상처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기에 늘 조심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줘서 기뻤다.
은호는 윈디드의 앞발을 몇 번 흔들며 덩달아 웃었다.
갑자기 흑견이 어둠으로 잡은 손을 떼어내자 멍하니 흑견을 바라보았다.
“그만하거라.”
푸흡.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고, 윈디드는 넌지시 흑견을 보았다.
대체 얼마나 질투하는지 몰랐다.
“빨리하거라. 집에 가야 하니.”
흑견이 재촉하자 은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아래를 보았다.
‘뭘 이야기해주려나.’
궁금증을 드러내며 눈을 감았다.
이곳에 이상한 느낌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몰랐다.
심장이 멋대로 뛰었으니까.
여기에 뭔가가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식물 친구들아. 이곳에 살던 친구들이 왜 쫓겨났는지 나한테 알려줄래?”
은호는 기대를 담아 물었다.
그 물음이 번지자 식물들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마치 온몸을 비트는 것만 같았다.
반응이 이상했다.
겨우 질문 하나였는데.
“애들아. 왜 그래?”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본능적으로 불안한 느낌이 밀려왔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식물들의 시선에 날이 섰다.
바닷속에서 자신을 원망하던 식물들의 시선과 다른 종류였다.
아무 이유도 없는 증오에 가까웠다.
‘…이건 마치.’
콰드드득.
어떤 예고도 없이, 어떤 느낌도 없이 땅에서 가시가 일어났다.
아주 날카로웠다.
그저 죽이겠다는 의지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허.”
은호는 허망한 소리를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어둠이 뒤덮였고, 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에 일어난 일에 눈동자가 바짝 말라버리고 말았다.
“……멍멍이.”
주르륵.
은호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흐르는 피와 함께 그는 잠깐 무너졌다.
그제야 배를 관통한 가시가 보였다.
“…형님.”
하지만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어둠이라 생각했는데, 어둠이 아니었다.
흑견이었다.
흑견의 온몸을 관통한 가시가 보였다.
은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조금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은호의 주변으로 피가 번졌다.
그는 손을 뻗었다.
‘어떻게……. 어떻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마치 식물이 조종당한 것만 같았다.
이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이건 자신이 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힘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이곳 식물들을 강하게 휘어잡고 있었다.
식물들이 본 그걸 발설하지 못하게 막은 셈이었다.
“……안 돼.”
은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 절망이 드리웠다.
모두가 있었다.
저기에 자신의 가족이 있었다.
겨우 찾았는데.
겨우, 발견한 따뜻함이었는데.
흑견.
윈디드.
아리스.
레비아탐.
레요.
라비.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방금까지 나눴던 온기가 맴돌았다.
“…안 돼.”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위험한 걸 알았는데, 분명히 알았는데.
“내가… 또.”
은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눈앞에 그 사고가 재생되듯 나타났다.
“……죽인 거야?”
힘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끼이이익.
차가 급히 멈추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쿵!
누군가 부딪치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닿았다.
온몸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형이 있었다.
목이 꺾이고, 팔과 다리가 꺾인 채 새빨간 피를 뒤집어쓴 형이.
눈동자를 움직여 자신과 마주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아. 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피가 묻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인간.”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은호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흑견이 웅크린 몸을 열자 윈디드가 꼬맹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분명히 찔렸는데, 흑견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피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어.’
그걸로 충분했다.
그걸로 됐다.
뭘 더 바라겠는가.
눈물이 앞을 가릴 것만 같았다.
은호는 밀려드는 울먹거림을 겨우 삼켰다.
정신 차려야 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걸 알려주듯 비로소 자신의 주변으로 울리는 자연의 경고를 들었다.
사아아아아.
이제야 식물들 중 일부가 알 수 없는 힘에서 해방이 된 것처럼 보였다.
자유로워진 건 자신의 피 때문이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피가 들어갔으니까.
미안해.
제정신을 차린 식물들이 사과했다.
그건 우리가 아니었어.
또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과와 달리 다른 식물들이 날을 세운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비밀을 파헤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은호는 숨을 거세게 쉬었다.
배가 더럽게도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가에 피 맛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은호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 자연스럽게 교감의 힘이 뻗어 나왔다.
빛이 맴돌며 새로운 생명이 피어났다.
은호를 죽이려고 하는 식물들을 향해 화를 내는 것처럼 새롭게 자란 식물들이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같은 식물인데,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게 만든 저 알 수 없는 힘과 이 상황이 너무도 화가 났다.
“…누가 감히.”
은호는 말을 내뱉었다.
기침을 몇 번이나 꺼냈다.
“내 친구들의 숨통을 잡은 거지?”
그 부름에 응답을 하는 것처럼 위그드라실이 주머니에서 나와 땅에 내려왔다.
당당하게 팔짱을 꼈다.
원래 몸을 맴돌며 나는 빛보다 더 거센 빛이 위그드라실의 온몸을 감돌았다.
둥.
북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아주 반가웠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둥.
“아무도 그럴 수 없어. 그 누구도 말이야.”
선전포고와도 같은 소리를 따라 땅이 꿈틀거렸다.
은호의 빛이 스며든 것처럼 땅마저 빛이 났다.
그의 주변에서 퍼진 은은한 빛이 하나의 거대한 나무를 이뤘다.
흑견의 눈이 커졌다.
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을 불러옵니다.》
태블릿이 허공에 떠올랐다.
《■■은 사라진 식물입니다. 경고합니다. 여기서 멈추십시오.》
은호에게 경고했다.
《서은호 님의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태블릿이 은호의 시야 앞으로 몸을 옮겼지만, 그는 보지 않았다.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는 게 없었다.
자신의 힘과 저들을 억압한 그 힘을 용서할 수 없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식물들이 자신에게 하려던 말은 하나였다.
도와줘.
그 말이 가슴 속까지 깊이 번졌다.
은호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땅에서 무언가 자라났다.
나무 수십 개는 합쳐야 할 만큼 거대한 줄기를 타고 꽃봉오리가 맺혔다.
은호는 배를 부여잡은 채 입을 열었다.
“그 누구도 너희를 억압할 수는 없어. 내가 허락하지 않아.”
단호한 말이 떨어졌다.
그 말을 따라 하나의 거대한 꽃봉오리가 자라났다.
하얀 꽃이 피어났다.
그 존재 자체로 다가오던 식물들이 멈췄다.
이곳에서 태어난 식물과 달랐다.
비단결 같은 꽃잎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은호는 하얀 꽃의 등장과 함께 땅에 박힌 힘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식물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뿌리에 피로 된 힘이 말뚝처럼 박혀 있었다.
저거였다.
땅속에 있는 다른 피가 식물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파괴해.”
은호의 지시가 떨어지자 하얀 꽃에 피어난 잎사귀가 땅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앙!
여린 잎사귀가 아니었다.
거인의 주먹과도 같았다.
땅에서 피로 된 말뚝이 튀어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꽃봉오리 중앙에 빛이 빠르게 모이더니 순식간에 쏘아졌다.
빔과 같았다.
콰아앙!
떠올랐던 피로 된 말뚝이 그대로 바스러지며 재처럼 사그라졌다.
은호의 숨소리가 거세졌다.
이곳에 존재하던 식물들을 옥죄던 것들이 완전히 지워진 걸 확인했다.
“…됐다.”
미소가 감도는가 싶더니 은호는 땅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부딪치지 않았다.
식물들이 은호를 감싸 안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동원하겠다는 듯 지혈하고, 상처를 감쌌다.
“……괜찮아.”
은호는 식물들을 다독거렸다.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 저들에게 이 모진 고통을 안겨줬을 뿐이었으니까.
하얗던 거대한 꽃이 붉게 물이 들며 하나씩 떨어졌다.
왠지 세티아가 생각났다.
‘울고 있는 걸까?’
은호는 힘겹게 손을 뻗었다.
식물들은 그의 손에 매달렸다.
미안해.
미안해.
식물들은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진짜 괜찮은데.’
입이 뻐끔거릴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 큰일이야.’
이번에는 정말이었다.
모두가 슬퍼할까 걱정이었다.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은호는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힘들었다.
축 늘어지자 식물들은 은호를 데리고 흑견과 윈디드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구해달라는 듯 보였지만, 흑견은 그대로 앞발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흑견 앞에 있던 식물들이 죄다 베어졌다.
어둠이 일렁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물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식물이 은호를, 자신들을 공격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건 있을 수 없었다.
은호는 자연의 대리자가 아닌가.
배신했다.
자연이 은호를 배신하고 말았다.
“…정신 차려!”
윈디드가 살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제야 흑견이 고개를 돌렸다.
샛노란 눈동자는 뭐든 베어버릴 만큼 섬뜩해졌고, 입가에 침이 흐를 만큼 흥분하고 있었다.
“지금 네 눈에 은호는 안 보여?”
윈디드가 정색하며 물었다.
“……은호. 은호.”
흑견은 머뭇거리며 그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흑견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 그대로 어깨로 숨을 쉬며 앞발을 파르르 떨었다.
공포가 얼굴에 드리운 것만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또 볼 수 없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은호는 안 죽어.”
윈디드가 단호히 말했다.
“네가 은호를 데려가. 지혜라는 그 인간한테 데려가.”
그게 맞았다.
지금은 그래야만 했다.
자신들이 은호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었다.
“가.”
윈디드가 말하자 흑견은 시선을 내려 은호를 보았다.
그를 중심으로 또 다른 생명이 꿈틀거리며 꽃이 피어났다.
더럽게도 아름다운 꽃이었다.
은호는 죽어가는데, 그 피를 통해 새로운 생명이 자라다니.
이건 모순이었다.
마치 은호의 모든 걸 집어삼켜서 자연이라는 게 유지되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에 정말로 아무런 기척도,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시가 자라는 걸 보고 일어난 본능대로 모두를 감쌌다.
더는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되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사이에 은호가 없었을까.
왜 은호만 감싸지 못했을까.
흑견은 몸에 파묻힌 가시를 다 내뱉은 뒤에야 은호를 감싸 안았다.
“은호…….”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분명히 들었다면 좋아했을 텐데.
고개를 파묻고는 그대로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윈디드는 흑견이 사라져서야 숨을 거세게 뛰었다.
식은땀마저 흘렀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꼬맹이들을 움켜쥔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자신도 이런데 꼬맹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날개를 열어버리면 숨죽여 우는 소리가 더 커질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누가 봐도 자연이 은호와 자신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체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랐다.
혼란과 충격만이 맴도는 눈으로 윈디드는 꼬맹이들을 더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작은 친구들.”
누구에게 하는 위로인지 몰랐다.
* * *
지혜의 주변에 온갖 자료들이 휘날렸다.
모든 서랍이 열린 채 숨겨둔 자료들을 토해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러 감정이 올라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너무도 어려웠으니까.
―…너는, 이 결정을 후회할 거야. 세상이 굴러가는데, 많은 이해관계가 얽혔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걸 네가 망친 거야.
‘…개소리.’
지혜는 몇 번을 생각해도 도현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해관계가 얽혔다고 해도 결국, 그 역시 부서트리면 그만이 아닌가.
지혜는 잠깐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저 숲에 빛이 맴돈 것만 같았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은호가 그곳에 있기에 그 누구도 가지 말라고 막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생각도, 행동도 같이 멈췄다.
몸이 경직될 만큼 싸늘함이 몸을 감쌌다.
앞을 보자 흑견이 나타났다.
“…….”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지혜는 눈동자를 굴렸다.
은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지혜는 기분이 이상했다.
흑견이 품에 안았던 은호에게서 몇 걸음 물러나서야 지혜가 비명을 터트리듯 은호를 불렀다.
“서은호 씨!”
이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다.
초능력으로 상처 부위를 짓누르며 은호 위에 옷을 올린 뒤, 조심스럽게 들었다.
온몸을 떨고 있었다.
“…소장님.”
그대로 은호를 데리고 움직이며 연락했다.
“서은호 씨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