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4화(234/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234화
234화. 나를 구한 거야
“…저런, 저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밤이 내려와 까맣게 물든 세상 속, 선명한 눈빛이 달빛에 반짝거렸다.
긴 꼬리가 흔들렸다.
“왜… 그러십니까?”
뒤쪽에서 물음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연의 대리자가 나타났다.”
간단한 대답에 뒤쪽에 있던 존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곳에 자, 자연의 대리자는 없잖습니까.”
“없지. 자연의 대리자는 이곳을 버렸으니까. 기약 없는 약속에 식물들 역시 고개를 돌려버린 지 오래인 이곳에 자연의 대리자가 나타났다니.”
코웃음을 쳤다.
돌 위에 누운 커다란 몸이 달빛에 살며시 비췄다.
누군가 봤다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조각된 듯한 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 힘이 깨졌다.”
이 힘을 깰 수 있는 자는 왕뿐이었다.
하지만 왕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그 방향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대리자에게 향했다.
“그럼, 자연은… 여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겁니까?”
“아니. 자연은 우리를 버렸다. 자연의 대리자가 나타난 건 왕의 짓이다.”
눈이 가늘어졌다.
“이 짓을 할 존재는 왕 말고는 없어. 처음부터 자연의 대리자가 살아있다고 모두를 속이려는 알량한 짓이지.”
아주 더러운 수작이었다.
이곳에 태어난 존재들은 자연의 대리자를 모른다고 봐도 무방한 세대였다.
그런 존재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자연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보았는가? 이게 왕이다. 자연이 이미 우리를 버렸다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한 겁쟁이이며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숨통을 옥죈 폭군이지.”
한쪽 입꼬리가 길어졌다.
본인의 무능함을 이렇게 증명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인간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게 누구인지, 점점 더 많은 존재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이 모든 걸 알게 되는 날, 왕이 지을 표정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 * *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이상하게 시선이 낮았다.
마치 자신이 길거리에 있는 작은 꽃이 된 듯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 분명, 찔렸는데?’
식물들이 자신의 손을 잡을 때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시선을 자신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공사를 하는지 땅을 파고 있었다.
‘아.’
은호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식물들에게 물어봤던, 그 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게 꿈으로 나타날 줄이야.’
자신의 힘인지, 식물이 가진 힘인지 몰랐지만, 은호는 일단 주목했다.
누군가 땅을 파던 와중에 알 수 없는 빛깔을 발견했다.
아래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흙더미를 털어보았다.
땅속에 묻힌 건 수십 개의 색을 가진 아주 아름다운, 그야말로 보석이었다.
‘…오. 진짜 멋지다.’
은호는 감탄했다.
근처에 있던 식물들 역시 저 보석을 보며 신기해하는 게 느껴졌다.
저게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몰라도 강인한 힘을 품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만큼.
사람들이 보석을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짓밟히고, 또 짓밟히면서도 보석으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시선이 뒤바뀌었다.
나무가 된 것처럼 이번에는 높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금 보았던 보석들이 정말 많았다.
차들이 가득했다.
그 차에 무언가 쓰여 있었다.
HWM.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HWM이 여기서 나온다고? 여기 땅을 팠던 회사가 HWM이라고?’
은호는 의문으로 점점 물들어갔다.
왜 하필 HWM일까.
사람들은 땅에서 캐온 보석을 일부 담아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게 무엇인지, 어떤 건지 상사에게 보이기 위해 가져간 듯했다.
회의가 길어졌는지, 몇 밤이 훌쩍 넘어갔다.
주변만 지키고 있던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이전과 다른 장비로 제대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저걸로 뭔가를 하려고 했어.’
회사의 지원이 달라졌다.
위쪽에서 허락이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계속, 계속 땅을 팠다.
구멍은 점점 깊어져 갔고, 보석들이 모습을 드러났다.
사람들은 다시금 모였다.
뭐가 즐거운지 몰라도 다들 웃고 있었다.
지금 시선에서 보이는 보석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는데, 저 속에는 얼마나 있는 걸까.
설렘과 흥분이 가득 보였다.
‘떼돈을 벌 거라 생각했던 모양인데.’
은호는 가만히 기다렸다.
잠시 뒤,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새벽이 될 때쯤에 보석들이 가득 빛을 냈다.
사람들은 그 빛에 놀라 도망쳤다.
아무도 보석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
당장 식물들의 시야마저 가릴 정도로 온 세상에 푸르른 빛만 가득 메우자 은호마저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곳을 가득 메웠던 보석은 하나도 남긴 없이 사라졌다.
‘보석이 사라졌다고? 왜?’
사람들은 허망한 얼굴로 구멍을 보았다.
보석이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은호 역시 이상함만 남았다.
보석이 느닷없이 혼자 빛을 내더니 사라져버렸으니까.
어떤 예고도 없었다.
나무는 온몸을 강타하는 그 느낌에 시선을 올렸다.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열렸다.
마치 하늘을 잡아먹은 것처럼 웅장했다.
‘……설마.’
은호는 그 구멍을 보자 누가 등장할지 빤히 예상했다.
그 속으로 하늘을 다 채울 만큼 수많은 존재가 등장했다.
‘환수다.’
새하얀 빛을 내는 존재 뒤로 수많은 환수가 내려왔다.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내려왔고, 나무는 시선을 내렸다.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작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태호가 말해줬던 것처럼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보석의 힘으로 환수들이 이쪽으로 온 거라고?’
그게 뭔지 몰랐다.
보석의 일부를 HWM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환수들이 등장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보석은 사라지고, 구덩이만 있던 그곳으로 차 몇 대가 나타났다.
다급히 흙도 부으며 구멍을 막았다.
마치 저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든 걸 숨기려는 듯 보였다.
‘저게 뭐길래 숨기는 거야? 왜 숨겨야 하는 거지?’
이미 보석은 환수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음에도 찾아와 흔적을 지워버렸다.
모든 구멍을 메운 뒤, 미련도 없이 떠났다.
그 자리에 풀이 자라고, 전혀 다른 모습을 띨 때쯤, 크라카들이 이곳에 걸어왔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주변을 살펴보고, 냄새도 맡으며 활짝 웃었다.
‘이때, 크라카들이 온 거야.’
저 밑에 보석이 완전히 다 사라지지 않은 걸까.
그 힘을 느껴 이곳에 왔을까.
은호는 미친 듯이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걸 봐야 한다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았다.
크라카들은 쑥쑥 자라났고, 호란은 동생들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다 막내가 태어났다.
모두가 애지중지하게 키웠다.
꼬물거릴 때마다 기뻐했으니까.
행복으로 번져가고, 이런 행동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 자리에 초능력자들이 등장했다.
이도현.
수많은 사람 중 그들이 보였다.
크라카들이 저항하며 전기를 쏘아냈지만, 이도현에게는 닿지 않았다.
무슨 초능력인지 몰라도 전기를 막아내며 웃었다.
그 이상 힘을 내며 몰아붙이려고 했지만, 호란은 동생들을 신경 써야만 했다.
아직 어린 동생들이 가득했다.
호란은 동생들에게 소리쳤다.
도망쳐.
혼자 피하지 못한 막내를 향해 이도현이 발을 들이밀었다.
무어라 말하는지 몰라도, 그거 하나는 분명했다.
짐승 새끼.
그대로 짓밟았다.
피가 땅으로 번지던 차, 은호는 이도현을 보았다.
‘빌어먹을 새끼!’
저놈을 잡은 건 정말 잘한 행동이었다.
저놈을 잡지 못했다면 크라카들이 당한 억울함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무엇도 달래줄 수 없는 말이었다.
쿵.
갑자기 심장이 뛰는 소리가 거칠게 들리며 은호는 새하얀 빛을 마주했다.
그 빛 사이로 누군가를 보았다.
은호는 심장이 다 떨렸다.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형이었다.
죽기 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뭘 말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 손가락 끝을 보았다.
* * *
은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당장 얼굴을 적셔오는 눈물의 감각에 큰일났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식물들에게 크라카 일을 묻기 전까지 멀쩡했는데.
태호한테 으쓱거릴 일을 생각하며 정말 기뻤는데.
슬쩍 눈을 떴지만, 꼬맹이들이 달려들지 않았다.
뭔가 병실이 평소랑 좀 다른 것만 같았다.
어둠이 내린 병실 안으로 샛노란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놀라며 주변을 살폈지만, 이곳에는 자신과 흑견뿐이었다.
그럼, 방금 눈물은 흑견이 흘렸다는 소리였다.
“……멍멍이 형님.”
평소와 달리 흑견의 눈동자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은호는 놀라며 손을 뻗었다.
흑견이 고개를 내밀었다.
“…미안해. 미안해.”
은호는 사과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옆에 꼬맹이들도 오지 못하게 막을 정도로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았을까.
“사과하지… 마라.”
흑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소리에 은호는 마음이 미어졌다.
단단하던 흑견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긴 숨이 흑견을 타고 흘러나왔다.
안도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미안하다, 은호.”
흑견이 꺼낸 소리에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름을 불러줬는데, 기쁘지 않았다.
조금도 좋지 않았다.
흑견에게 저 소리를 듣다니.
가슴을 파고드는 감각에 온몸이 아팠다.
“너를 지키지 못했다.”
“아니야.”
은호는 흑견의 말을 부정했다.
왜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는지 몰랐다.
“멍멍이 형님은 모두를 지켜줬어. 날 지켜준 거야.”
가족을 지켜주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네가 아니었다.”
흑견은 뒤로 물러서며 은호를 보았다.
“네가 없었다…!”
자신이 지키던 그 속에 은호만 없었다.
가장 지키고 싶었던 그가 자신의 품에 없었다는 소리였다.
“아니야. 나였어. 너희는 모두 나야. 너무나도 소중한 나야.”
은호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더 잘 표현할지 몰랐다.
손을 뻗으며 웃었다.
“폭시는 모든 가족을 잃을까 조마조마하던 나였고, 레비아탐은 친척 집을 전전하던 나였어. 일렉트는 소중한 걸 세상에 빼앗겼을 때의 나. 그리고 라비는 막내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나였어.”
감정을 이입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끌렸다.
더 감싸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
모두 다 자신의 삶과 비슷한 결을 지녔으니까.
“윈디드에게는 병을 앓던 아버지를 책임져야 했던 내가 보이더라.”
미성년자였던 자신이 떠맡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멍멍이 형님은… 모든 걸 잃은 내가 보였어.”
이건 동정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 혼자 이입했을 뿐이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헤맸으니까, 다른 애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랬는가?”
흑견은 은호를 보며 같은 눈빛을 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아.”
“나도 그랬다.”
은호는 손을 뻗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도 인간에게서 나를 보았다.”
“그래서 모두가 나인 거야. 멍멍이 형님은 나를 구한 거야.”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견은 저 감정을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당연히 소중했다.
하지만 때론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은호도, 자신도 그랬을 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걸 적은 수첩이 있었어.”
은호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손바닥만큼 작은 수첩이었다.
“30개를 채우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 너무 많았어. 정말 많았어.”
10개도 못 채웠다.
그중 하나가 동물원이었다.
어릴 적, 가족이 같이 갔던 동물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10개도 못 채웠지만, 나는 다 해보고 죽으려고 했어.”
“…어째서인가?”
흑견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은호하고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지금, 웃고 있었으니까.
“늪에 빠진 기분이었어. 매일 허우적거려. 누군가 내 숨통을 쥐고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 감정이라면 나도… 느껴보았다.”
역시 그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흑견에게 그 감정을 이입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은호는 더 활짝 웃었다.
“그때의 나는 적어도 행복을 느껴본 뒤에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
제주도에 들려서 보았던 말 한 마리가 흑백의 세상에서 자신을 끄집어 주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게 물들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나는 너희를 만나서 행복이 뭔지 알게 됐어.”
무척이나 중독될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내가… 소중해지기 시작했어.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졌어. 그래서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그래서 인간은 우리를, 아끼는 것인가?”
임시 보호소를 언급한 날, 반짝거리던 은호의 눈빛이 떠올렸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보잘것없는 날, 너희가 먼저 소중하게 생각해줬어.”
먼저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주었다.
“너희가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이 돼.”
자신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
특별한 건 저들이었다.
이러니, 저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은호는 흑견을 안아주며 웃었다.
“멍멍이 형님은 나를 구한 거야.”
몇 번을 생각해도.
몇 번을 말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