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6화(23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236화
236화. 이제는 웃었으면 좋겠어
“…형!”
태호는 힘차게 꺼내는 은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겁했다.
그 상태로 자신의 방에 올 줄이야.
“하….”
가을의 숨소리가 들려오자 은호는 그대로 굳어졌다.
문을 닫고 싶었다.
“가…을 씨가 있었네요?”
“네. 있었습니다.”
가을은 안경을 올렸다.
“분명히 조금 전에 보지 않았습니까?”
“…봤죠.”
정확히 30분 전에 가을이 문병을 와주었다.
“무리하지 마시고, 제발, 병실을 빠져나가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가을이 뒷말을 잇자 은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갑자기 말해줘야 하는 게 생각이 나서 왔을 뿐이에요.”
은호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전화는 어디에다가 팔아먹은 건데?”
태호가 턱을 괴며 째려보듯 쳐다보았다.
“전화…. 아, 이걸 자꾸 깜박하네요.”
“휴대전화를 깜박할 수 있습니까?”
“주로 장식으로 사용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나 봐요.”
휴대전화가 있어봤자 뭐하겠는가.
게임에도 취미가 없고, SNS도 하지 않고, 사진 찍는 용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접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은호가 머쓱해하자 태호는 입술을 잠깐 깨물다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아. 배도 아픈데 뭐 하러 서 있어. 휠체어는 또 어디로 간 건데?”
“아. 오늘 걸어봤는데, 별로 안 아프더라고요.”
은호가 활짝 웃자 태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흑견은 어디 간 거야?”
“형. 여기 온 걸 보면 모르겠어요?”
당당한 은호의 태도에 가을은 미간을 꾹 쥐었다.
“아무래도 산책을 갔나 봅니다.”
보통은 저런 중상을 입으면 지레 몸을 사리기 마련인데, 은호에게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을 꺼낸 뒤에 병실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빨리요.”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은호는 가을의 걱정에 실실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걱정이라는 걸 안 뒤로 계속 기뻤다.
“이 이상은 저도 안 봐줍니다. 무조건 아윤 씨에게 연락할 겁니다.”
“그건 안 돼요! 이번에는 묶어버릴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은호는 손끝을 떨었다.
―저도 진짜, 이번에는 못 참습니다. 이런 식으로 너덜너덜해서 오는 거 못 참는단 말이에요! 묶어버릴 거예요!
아윤이 남기고 간 말에 진심이 묻어 있었다.
“당연하지. 진짜 내가 아니었으면 은호 씨는 벌써 학회의 중심에 있을 건데? 진료 기록을 보고 탄식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기록이었다.
무려 신기록.
같은 병도 아니고, 수없이 다른 부상으로 입원했고, 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낫는 건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경우였다.
“초능력자는 다르지 않을까요?”
“초능력자의 몸은 진짜 장난 아니게 튼튼하지. 하지만 지금 은호 씨가 입은 상처를 똑같이 입는다고 해도 전치 12주 이상이야.”
초능력자가 튼튼한 것과 별개로 부상이 빨리 낫는 건 아니었다.
뚫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방패 같은 느낌이었다.
찌그러진 뒤에 방패가 복귀되는 건 이제 별개였다.
“은호 씨, 봐봐. 벌써 나아가고 있어. 5일째인데, 지금 입원한 지 6주째 같은 회복력이라니까?”
“…와. 그렇게 들으니까 진짜 대단한데요?”
은호는 금방이라도 손뼉을 마주칠 것만 같았다.
회복력이 마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들으니 진짜 장난 아니었다.
‘저걸 또 좋다고 웃고 있다니.’
아이고.
태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은호 씨.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건데?”
태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조금 전에 꺼낸 말은 모두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처럼 보였다.
“형. 그렇게 큰 건 아니에요.”
“…아, 그래?”
태호가 방긋 웃었다.
“HWM이 이번 일과 관련 없었잖아요?”
지금까지 나온 일의 결과를 들어보면 HWM은 그저 하나율에게 이용당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HWM이 갑자기 왜 나옵니까?”
가을이 서류를 내리며 시선을 올렸다.
분명히 관련이 없을 텐데.
관련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음, 식물한테 물어봤는데요. 이게 꿈인지 모르겠지만, 기절하는 동안 봤단 말이에요.”
방금 꾼 것처럼 선명했다.
여전히 꿈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냥 식물들의 시선을 빌린 것과 같았으니까.
“지금 초능력 관리국이 있는 그 자리에서 과거 HWM이 찍힌 자동차가 여러 대 온 걸 봤거든요.”
은호가 꺼내는 말을 태호와 가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뭘 봤다는 건지 몰랐다.
“아직 초능력 관리국 건물이 있기 전이었어요.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땅 밑을 파헤치다가 보석을 발견했어요.”
“보석?”
태호는 눈썹을 올렸다.
“솔직히 보석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그 힘으로 환수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거예요.”
“…….”
태호의 동공이 풀렸다.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얼굴이었다.
“자, 잠시만! 잠시만! 잠시마안!”
이윽고 정신을 차려서는 머리카락을 쥐었다.
은호가 꺼낸 말은 엄청난 거였다.
“큰 게 아니라며! 큰일이 아니라면서!”
이게 어떻게 큰일이 아니겠는가.
미친 소리였다.
환수가 어떻게 이 땅에 왔는가.
이 주제는 정말로 수많은 가설이 있었고, 그럼에도 알지 못했다.
왕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이나 날뛰었다.
“큰일은 아니잖아요. 환수들이 이 땅에 왔으니까요. 이미 끝난 사건인데, 이걸 되짚어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허.”
가을이 허탈한 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은호가 무슨 소리를 꺼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형. 가을 씨. 환수들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지, 뭘로 왔는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결과는 났다.
과정이 뭐든 간에 환수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는데 이유가 있을 테지.
아무리 알아봤자, 똑같이 재현도 못 할 텐데 왜 그럴까.
가을과 태호는 서로를 보았다.
이래서 일반인은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요해!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엄청! 정말 미친 듯이 중요하다고!”
“그래요?”
은호는 태호의 태도에 바로 이해했다.
“어쨌든, 그 보석의 힘으로 환수들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은호 씨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 보석을 HWM쪽에서 발견했음에도 이를 숨겼다는 사실입니까?”
“맞아요.”
“그리고 초능력 관리국이 위치를 옮긴 이유는 그 보석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말도 하고 싶은 거고요?”
정확히 마음을 읽은 가을의 대답에 은호는 손가락을 튕겼다.
“정확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대체 왜 크라카들이 있던 곳을 노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단 말이죠. 그런데 이유가 다 있었어요.”
은호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크라카들이 터전에서 내쫓겼던 이유이자 초능력 관리국이 갑자기 건물을 옮겼던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에 식물들에게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한 누군가가 숨기고 싶어 하던 사실이기도 했다.
그 보석이 대체 뭐길래.
“그러면 그 밑에, 보석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거네?”
태호의 질문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HWM이 몇 개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오래전 일이니까, 찾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환수가 오기 전 일이었다.
30년보다 더 오래된 일이라는 소리였다.
“이걸 알려주려고 했어요. 이 정보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설이 나올 수도 있겠죠?”
가령 HWM과 초능력 관리국이 한 편이다.
혹은 이도현이 HWM과 거래가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많아졌다.
은호는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호도, 가을도 둘 다 정신이 털털 털린 것만 같았으니까.
“이제 병실로 돌아갈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줘요.”
은호는 폭탄을 던져놓고 슬쩍 방을 빠져나왔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건 더 있었다.
이도현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었지만, 지혜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괜찮았다.
은호는 병실로 가려다가 방향을 틀었다.
1층으로 내려와 맨땅을 밟았다.
자신이 피운 꽃이 가득한 평지가 넓게 펼쳐졌다.
환수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은호는 웃었다.
‘평화롭네.’
갑자기 그림자가 지자 은호는 깜짝 놀랐다.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며 윈디드가 내려왔다.
“말썽꾸러기. 여기는 병실이 아닌데?”
윈디드가 미소를 지으려다 말고 이내 멈췄다.
“몸이 좀 찌뿌둥해서 그렇지.”
“안 돼. 빨리 회복해야지.”
“빨리 회복되고 있어. 방금 형한테 엄청난 회복력이라 칭찬받았으니까.”
은호는 윈디드에게 다가가 기댔다.
“정말로?”
“회복력이 엄청나다는 게 칭찬 아니야?”
“그렇긴 한데.”
윈디드는 몇 번을 고민하다가 몸을 낮췄다.
“몇 바퀴만 돌고 들어가는 거야. 어때, 말썽꾸러기?”
“너무 좋지.”
은호는 날름 타서는 윈디드의 도움으로 링거 거치대도 올렸다.
윈디드는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아, 삐약아!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아?”
“말해줄 수 있는 건 대답해줄게.”
“너희가 이곳으로 올 때, 어떤 보석이 사용됐다는 걸 봤는데, 그게 뭔지 알아?”
“…보석?”
윈디드가 눈동자를 굴렸다.
천천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가 기울었다.
“그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알았어?”
“봤어.”
“봤다고…?”
“맞아. 식물들이 알려줬어.”
“…역시, 식물들의 눈은 속일 수가 없네.”
윈디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려줘도 되는지 아닌지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마나석이야.”
“마나…석?”
“말썽꾸러기한테 낯설 거야. 나도 그러니까. 이 땅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정도의 물건이래.”
“그게 실제로 있는 거야?”
게임에서 나오는 물건의 이름과 참 비슷했다.
“우리가 살던 원래 세상에 있던 물건이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지녔다는데, 정확히는 몰라. 본 적은 없어.”
“그럼, 왕이 말해준 거야?”
“맞아. 어릴 때 들었어. 나도 되게 궁금했으니까. 우리가 어떻게 여기로 온 건지 말이야.”
윈디드는 가볍게 웃었다.
‘그걸, 발견했으니 얼마나 들떴겠어?’
그제야 은호는 사람들이 환호했던 이유를 알았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동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야. 모두 다 마나석 때문이야.”
“정말?”
“응. 우리가 신호를 보내더라도, 그쪽에서 받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 이곳 마나석이 우리 신호를 받은 거지.”
윈디드의 대답에 은호는 안도했다.
마나석의 발견이 환수를 이곳으로 안내했다니.
“진짜 다행이네.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잖아?”
은호는 우연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이 상황이 너무도 기뻤다.
“말썽꾸러기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아, 그런데 이거 알려줘도 돼?”
“괜찮아. 아마 대부분 사라졌을 테니까. 사용 방법도 모를 테고, 사용할 수도 없다고 했어.”
“왜?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잖아.”
“여기는 그게 없어.”
“그거?”
“마나라고 해야 하나. 존재 자체로 신기한 힘이 없어서 괜찮대.”
‘그러니까 뭘 했든 간에 헛고생이었다는 거지?’
은호는 나른한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했다.
환수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았어도 어차피 예쁘기만 한 보석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런데 말썽꾸러기.”
“응?”
“그 친구 말이야.”
“멍멍이 형님 말이야?”
“맞아.”
“혹시, 그때, 말썽꾸러기도 봤어?”
“…아. 봤어.”
몸에 수없는 가시가 꿰뚫렸음에도 흑견은 다치지 않았다.
어둠을 지녔기 때문일까.
“다치지 않은 건 괜찮은데, 신경 쓰이긴 해. 대가가 없는 건 없으니까.”
윈디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흑견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대답해주지 않을 걸 알았다.
은호는 다르겠지.
“말썽꾸러기가 그 친구를 잘 봐줘.”
윈디드의 말에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친구가 어디 있겠어?’
괜히 흐뭇했다.
“그런데 나 말고도 삐약이가 봐주면 되는 거잖아.”
“내가 곁에 가는 걸 싫어하잖아.”
“그걸 삐약이가 즐기고 있는 거 알아.”
은호가 장난기를 담아 윈디드를 꾹꾹 눌렀다.
“그렇지만, 반응이 너무 재미있잖아.”
“그렇긴 해. 보고 있으면 계속 놀리고 싶으니까.”
은호는 키득거림을 따라 윈디드가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 * *
“…….”
은호는 흑견을 빤히 보았다.
조금 전 윈디드의 말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눈을 마주치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아니야.”
은호는 말을 흘렸다.
창문을 바라보며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창문에 매달린 환수들이 있기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 병원에 머무는가 싶었는데, 환수들을 보니 제법 괜찮다 싶었다.
환수들이 자리를 떠난 뒤에야 은호가 고개를 돌렸다.
힐끔 보려던 차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다시 눈을 감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에 은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인간.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말하거라.”
“…아니.”
괜히 머쓱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다.
이전에 도현한테 그림자를 찔렀을 때는 분명 상처가 났는데,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그날 일을 묻고 싶은가.”
“…맞아.”
일단 대답은 했지만, 은호는 머쓱했다.
“궁금하긴 한데, 멍멍이 형님이 부담스러우면…….”
“이건 껍데기다.”
“껍데기?”
은호는 흑견의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가 껍데기라는 걸까.
흑견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덩달아 은호는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는 그림자뿐이었다.
“진짜 나는 여기에 있다.”
앞발로 그림자를 가리켰다.
은호의 눈이 커졌다.
“…뒤틀려버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