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7화(238/302)
237화. 이제는 웃었으면 좋겠어(2)
“뭐가… 뒤틀렸다는 거야?”
은호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무언가 엉켰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지금 자신이 보는 흑견은 껍데기이고, 그림자가 진짜라고 하는 걸까.
흑견은 그 물음에 눈동자를 움직이다가 숨을 들이마셨다.
말을 꺼내는 게 아주 힘든 모양이었다.
“우리는 새끼 때, 어둠으로 들어갈 수 없다.”“형이 말해주는 걸 들었어.”“여리고 여린 그 몸으로 어둠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너흰 어둠에서 태어났잖아.”“인간은 물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너희는 물속에 살 수 있는가?”
“…아니.”
갑자기 확 와닿았다.
물에서 태어났지만, 물과 거리가 멀었다.
“물에 익숙해지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둠에 적응하려면 기간이 필요하다.”“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고… 어둠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흑견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된다.”
흑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세티아가 몇 번이고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동정받는 건 딱 질색이었다.
이걸 알리는 것도 싫었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알아버린 세티아가 참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자신이었다.
“뒤틀린 채, 계속 어둠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곳을 나갈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이미 어둠이 됐을 테니까.
흑견은 은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뭐라고 말할까.
징그럽다고 할까.
아니면 괴물이라고 할까.
무엇이 되었든, 때가 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림자 속이 따뜻했구나.”
은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바닷속에서 흑견이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도현이 그림자를 찔렀을 때, 상처를 입은 것도.
식물들을 지배했던 알 수 없는 힘에 온몸이 가시에 찔려도 괜찮았던 사실까지.
저 모습이 껍데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변하지 않는 은호의 모습에 흑견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믿어…주는 것인가?”“당연하지. 내가 말했잖아? 멍멍이 형님이 어렸을 때, 하얀색이라고 해도 나는 믿을 거라고.”
은호는 손을 뻗어 흑견을 쓰다듬었다.
이게 껍데기라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느낌이 이토록 드는데.
마치 누군가의 몸을 사용하는 것만 같았다.
“무섭지 않았어?”
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서웠다.”
흑견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약해질까, 절대로 내뱉지 않는 말이었지만, 은호 앞에서는 달랐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수없이 삼켰던 그 감정을 천천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였다.
자신의 인간이었으니까.
“내가, 이래도… 되는지 몰라 두려웠다.”“이래도 돼. 잘 버텼어, 멍멍이 형님. 정말 잘 자랐어.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자라줘서 고마워.”
은호는 흑견을 안아주었다.
새끼일 때부터 많은 일을 겪었다.
겪지 말아야 할 일도 겪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었을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그렇게 성체가 되었다.
생각하면 너무도 구슬펐다.
하지만 은호는 울지 않았다.
그저 안아주었다.
안아주는 것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최대로 고통을 준 유일한 환수였으니까.
“인간 말이 맞다. 나는 아주 잘 자랐다.”
당당한 그 말에 은호는 뒤로 물러나 흑견을 보았다.
흑견은 평소처럼 오만해 보였다.
“인간.”
“응.”
“나는 괜찮다. 네가 우리를 만나 괜찮아졌듯, 나는 인간을 만나 괜찮아졌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봐주는 존재를 만났다.
너무도 거대한 애정을 주는 존재를 만났다.
끊임없이 마음에 약을 발라주는 존재를 만나버렸다.
“나는 인간을 만나서 정말.”
흑견은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정말, 행복하다.”
잔잔히 눈웃음을 지었다.
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려 입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은호는 겨우 그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도.”
손을 내려 흑견을 보았다.
다정한 눈빛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그래.”
* * *
은호가 문을 열며 주변을 기웃거렸다.
자꾸 밤에 이렇게 움직이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크라카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얼마나 자신을 기다릴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어디가, 은호?”
벽 쪽에서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기겁했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고스덕이 벙어리 장갑 같은 손을 흔들었다.
“쉿.”
은호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방금 흑견이랑 꼬맹이들이 자는 걸 확인하고 온 길이었다.
흑견도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그 뒤로 몇 번 쓰다듬어주니, 꾸벅꾸벅 졸다 잠에 빠졌다.
슬슬 크라카들한테 가볼까 생각하던 차, 꼬맹이들이 우르르 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몰라도 폭시, 레비아탐, 라비 순서로 하품하기에 밑에 깔아둔 이불 위로 바닥을 두드렸다.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자 스르르 잠이 빠졌다.
일렉트도 쓰다듬어줬으면 좋겠지만, 원래 집으로 가겠다는 걸 어떻게 말릴까.
“쉿이야.”
고스덕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은호는 조용히 문을 닫고는 고스덕의 뺨을 만졌다.
“안 자고 뭐 해? 안 졸려?”“자려고 했는데, 은호 냄새가 났어.”
고스덕은 오리주둥이를 닮은 부리를 벌렸다.
마치 활짝 웃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은호는 어디 가아?”
고스덕이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크라카들한테 가려고. 알려줄 일이 있거든.”
“으으음.”
고스덕은 눈을 살짝 좁혔다.
익숙한 눈빛이었기에 은호는 물어보려다 수없이 망설였다.
“은호, 병실을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으으.’
고스덕한테까지 저 말을 듣다니.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사실 윈디드의 등을 타고 가볍게 산책하는 내내 다른 환수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은호, 왜 나와 있어? 병실에 있어야 한다고 했어.
―아프면 안 돼! 빨리 병실로 가!
―은호오! 우리보고 아프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은호가 이러면 어떡해! 나 그러면 약 안 먹을 거야.
은호는 잠깐 눈을 감았다.
대체 누가 그랬던 걸까.
“누가… 그렇게 말했을까?”
은호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 까망이가 그랬어.”
‘사고뭉치!’
“폭시도 그랬고, 레비아탐도 그랬고, 삐죽이도 그랬어!”
고스덕이 빙글빙글 돌며 꺼내는 말에 은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모든 게 다 꼬맹이들의 작품이라니.
‘어쩐지, 어쩐지 지쳐 보이더라니.’
온종일 그 사실을 알리려고 뛰었을까.
은호는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고스덕이라는 변수를 만났다.
우선, 대답이 너무 느렸다.
지금도 말꼬리가 늘어졌다.
급한 와중이라 입술이 바짝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은호는 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크라카들을 만나야 해.”“응. 아까 은호가 그렇게 말했어.”
고스덕이 눈을 깜박거렸다.
“크라카들이 벌써 오래 기다렸어. 내가 병실에 있다는 걸 알 텐데, 얼마나 슬프겠어?”
은호의 말에 고스덕이 깜짝 놀랐다.
“은호가 다친 게 그 존재들하고 관련이 있는 거였어?”“비슷한데, 내가 해결해주기로 했거든. 고스덕도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잖아?”
“맞아!”
고스덕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파트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너무 슬펐다.
“그래서 지금 가는 거야. 하루라도 더 빨리 전달해주고 싶어. 알겠지, 고스덕?”“응! 내가 이거 끌어줄게!”
고스덕은 도와주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래. 고마워.”
은호는 대화가 통하자 안도했다.
고스덕이 링거 거치대를 끌며 복도를 거닐었다.
꽤 즐거워 보였고, 씩씩했다.
* * *
은호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자신의 병실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5분 정도 걸린 느낌이었다.
고개를 내밀던 차, 고스덕이 당당하게 문을 통과했다.
다시 다급히 은호가 있는 곳으로 통과했다.
“…날, 날 노려봤어.”“경계심이 많아서 그래.”
호란이 깨어있다는 말이었다.
은호는 문을 더 열고는 방긋 웃었다.
“호란아.”
은호가 이름을 부르자 호란은 매끄럽게 걸어와 문 앞에 앉았다.
몸에 달린 여러 가지가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미안한 눈으로 은호의 상태를 살폈다.
“안 돼, 호란아. 그러면 아프다고.”
은호는 다급히 다가가 호란을 조심스럽게 뒤로 밀었다.
이 힘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호란은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은호는 안도했다.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찾아왔어.”
은호는 두 손을 뻗어 호란의 뺨을 잡았다.
“승리를 알리러 왔는데, 사과하면 되겠어?”
“…나는 정말로.”
호란의 눈이 잠깐 감겼다.
이곳에 있으면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은호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은호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은호는 자신의 원수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
거기서 다쳤다는 사실 이외에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이토록 할 수 있을까.
“내가 약속했잖아?”
은호는 새끼손가락을 들자 호란의 표정이 흘러내리듯 일그러졌다.
“너의 원수, 이도현. 쓰러트렸어.”
“…정말인가?”
“정말이야.”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 하나를 내보였다.
이도현의 모습이었다.
붕대로 온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그가 허공을 향해 무어라 말을 했다.
<똑바로 하랬지?>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네가 똑바로 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건데? 너 1부서의 팀장이라니까?>
하지만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와 대화하듯 말하고, 행동했다.
“왜 허공에 말을 하는 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 호란은 의문을 담아 은호를 보았다.
“이도현을 증오하는 한 존재와 한 인간이 더 있어.”“그 존재들 모두가 그 인간에게 당했는가?”“맞아. 그 존재에게는 환상을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어. 그 힘으로 지금 환상에 빠졌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환상 말이야.”“뭔가 무서운데에?”
고스덕이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무서울 수 있어. 그런데 이도현은 너무 많은 슬픔을 불러왔어. 이게 가장 잘 어울려. 모두의 현재를 뺏어놓고, 혼자만 현재를 즐기면 안 되는 거잖아?”
중간중간 네블라가 일부러 환상을 풀 생각이었다.
더 큰 절망을 위해서.
수없이 날린 시간을 보며 얼마나 한탄할까.
시간.
이게 얼마나 값어치 있는 건지 누가 모를까.
“터전까지 되찾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을 거야.”
“…은호.”
호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은호를 불렀다.
이도현이라는 그 인간이 당한 건 속이 시원했다.
정말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몰려왔다.
“네가 우리한테 준 건 희망이다.”
호란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버린 줄 알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들의 행동에 말 하나 걸어주지도 않았다.
터전을 잃어 수없이 머물게 해달라 부탁했음에도 거절당했다.
“우리는 서로를 믿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절망이 닥쳐와도 이를 감싸 안을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핥아줘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너는… 우리를 도와줬다. 너를 공격했던 우리인데, 어떤 망설임도 없이 도와줬다.”
호란은 은호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존재가 어디 있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아서 그랬어.”
은호는 호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모두가 너희를 버려도, 나는 안 버려. 모두가 너희를 외면해도, 나는 너희를 볼 거야. 그러기로 했거든.”
환수들의 임시 보호소.
그 결심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이곳에 와서 우리를 걱정하는 존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호란은 눈물을 흘렸다.
오늘도 많은 존재가 병실을 찾았다.
물어보고, 걱정해주고, 심지어 같이 살자고 제안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너로 인해 이곳에 있는 다른 존재들이 우리를 도왔다.”
“…정말?”
“세상이 우리를 버린 게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줄 존재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들을 좋아해 줄 누군가는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은호처럼.
호란은 앞발을 조심스럽게 들어 은호의 등을 향했다.
천천히 그를 당겼다.
“…고맙다. 정말, 모든 게 고맙다.”
그간 가슴에 품었던 서러움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원망도, 절망도, 그 무엇 하나 남지 못했다.
“나도 고마워. 날 믿어줘서 너무 고마워.”
은호도 손을 뻗었다.
살짝 힘을 주었다.
“나는 말이야.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이미 충분할 정도로 행복하다.”“이제는 웃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러겠다.”
“그럼, 나는 그걸로 충분해.”
은호가 호란을 보며 씩 웃자 고스덕은 눈치를 보다 같이 안아주었다.
키득키득.
그 행동에 은호의 웃음이 터졌다.
‘…좋다.’
은호는 가슴 속까지 밀려드는 따뜻함에 눈을 살며시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