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3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38화(239/302)
238화. 와악! 무섭지?
“…좋다.”
은호는 흑견의 등에 기대어 무언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디인팅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온종일 보고, 또 봐도 좋았다.
바다가 일렁거리는 이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으니까.
“왔어?”
자안이 은호를 반겼다.
“이제 곧 떠나?”
은호는 자안을 향해 물었다.
동굴 안이 전보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맞아. 이제 떠나야지. 여기에 꽤 오래 있었어. 우리는 원래 한 자리에 음, 열 밤을 넘어가지 않으니까.”
자안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으쓱거렸다.
붓끝처럼 된 꼬리가 흔들렸다.
“스승님의 그림말이야. 잘 간직해줘. 다시 또 나올까 싶을 정도로 역작이니까.”“당연하지. 동굴 앞에 봤지? 내가 식물들한테 부탁했어.”
저 그림을 들어서 마당에 놓고 싶었다.
그런데 동굴 벽이기에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이 됐다.
“봤지. 엄청나더라. 갑자기 나무가 빼곡해졌어.”“그런데 친구야. 왜 혼자야?”
은호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늘 스승과 제자 둘이 하나였는데.
“아아.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내 그림을 보러 간다고 했어.”
자안은 부끄러움에 구름 같은 귀로 눈을 가렸다.
“새로운 그림이야?”
“…맞아. 좀, 부끄럽긴 해.”“내가 그리는 그림 보여줬지?”
“푸흡!”
자안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은호가 보여준 그림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테지.
“……와, 너무하네. 용기 내서 그렸는데.”“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런 의미도 아니었어!”
자안이 두 손을 다급히 휘둘렀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흑견이 넌지시 말을 꺼내자 은호는 기가 차 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멍멍이 형님은 얼마나 잘 그리는지 지금 볼까?”“내가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흥미가 없다. 물론, 인간이 저만큼 그릴 줄 알면 계속 보겠다.”
흑견은 앞발로 그림을 가리켰다.
그림에는 어떤 흥미도 없지만, 이건 윈디드와 일렉트가 자랑할 만큼 달랐다.
그냥 풍경을 가져다 놓았다고 할 수 없었다.
달랐다.
자연이 하나의 종처럼 살아있다는 기분을 들게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걸 언제 볼 수 있을까.
“너무 대단하지?”
자안이 흑견의 칭찬에 꼬리를 흔들며 활짝 웃었다.
생긴 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겠지만, 스승님의 그림 칭찬은 달랐다.
“친구 그림도 보고 싶은데, 같이 가도 되겠지?”
슬그머니 던진 은호의 말에 자안은 머뭇거렸다.
“그냥 가는 게 아니야. 범인과 관련된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
“…잡혔어?”
자안의 물음에 은호는 그저 웃었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아, 알았어! 알았어! 같이 가!”
“좋았어.”
은호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었다.
* * *
바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나잖아?”
은호가 놀라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었다.
앉아서 그림을 보고 있는 장면을 옆으로 그린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서 싫었다고.”
자안은 웅얼거렸다.
인간을 그리지 않겠다고 해놓고, 인간을 그렸으니 얼마나 한심하게 보겠는가.
하지만 은호가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건 부끄러우니 어쩌겠는가.
머릿속에 담긴 은호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 거야?”
“그렇다네.”
스승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은호의 귀가 빨갛게 변했다.
잘 그리고, 아니고를 떠나 이건 너무 부끄러웠다.
이제 겨우 그 그림에 적응하나 싶더니, 새로운 그림이 튀어나왔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마저 느꼈다.
“내가 이렇게… 밝다고?”
은호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를 하는가?”
흑견은 앞발로 은호의 머리를 눌렀다.
맨날 실없이 웃는 그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우스웠다.
“아니, 아니.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는 일은 잘 없잖아!”
“인간은 저렇다.”
흑견은 콕 집어 말했다.
은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흑견은 더 즐겁게 입을 열었다.
이 맛이 아닌가.
“매번 저렇게 웃는다.”
그 말에 은호는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생각한 사람도 있겠는데?’
“아니, 갑자기 부끄러워하면 어떡해! 부끄러운 건 나라고.”
자안은 은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방금 스승의 그림을 보고 온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줬다.
이보다 더 부끄러운 건 없었다.
“그… 친구야? 내가, 성인이거든?”
“그래? 성체였어?”
자안은 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조금 컸다.
“왜 많이 안 먹었어?”
순수한 물음에 은호는 잠시 멈칫거렸다.
“나는 인간 중에 그래도 큰 편이야. 아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으음.”“순수함은 나이와 상관없다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네.”
스승은 은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거렸다.
이게 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은호는 손을 내렸다.
숨을 들이마신 뒤, 오늘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꺼냈다.
“오늘 말이야. 너희를 찾아온 건 아주 중요한 일 때문이야.”
은호가 꺼낸 말에 자안과 스승은 은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설마 그 일일까.
막연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너의 그림을 훔친 범인, 잡혔어.”
은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병실에서 퇴원하던 중 가을이 찾아와 말해주었다.
―디인팅의 그림을 훔친 사기꾼놈 말입니다. 누구인지, 잡혔습니다. 아주 유명 화가였습니다. 잘 털 수 있겠습니다.
아주 좋은 소식에 이렇게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야아아! 잡혔대요! 잡혔대요, 스승님!”
자안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기쁜 일이 정말로 올 줄은 몰랐다.
상상만 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정말인가?”
스승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길게 뻗은 손가락을 꿈틀거리다 이미 슬퍼 보이는 눈동자가 더 깊어졌다.
“정…말인가?”
스승은 다시금 물었다.
“정말이야.”
은호가 다독거리듯 대답했다.
“이 인간이었어. 맞지?”
은호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환수의 그림을 도둑질한 죄와 사기죄로 체포되는 장면이었다.
뉴스에 아주 거대하게 장식했다.
환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그 그림을 사람이 도둑질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인 모양이었다.
이 일로 태호가 뉴스에 나와 하나씩 설명하지 않았는가.
―환수를 단순히 동물로 보시는 분들이 많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환수들은 고지능을 가진 하나의 종입니다. 그러기에 공존이 필요합니다.
차분히 인터뷰에 응하는 당당함과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어딜 내놔도 자랑스러운 형이었다.
은호는 이번 일이 환수를 향한 인식을 깨부숴줬으면 했다.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종의 하나로 인식하길 바랐다.
“…맞다네.”
영상을 빤히 보던 스승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내 마른침을 삼켰다.
휴대전화에 들어갈 정도로 가까이 보던 스승이 고개를 들었다.
“이 인간이 맞다네.”
꽉 눌린 목소리를 꺼내듯 스승은 요동치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간의 얼굴은 다 비슷했지만, 이 얼굴을 어떻게 잊을까.
“체포됐어. 이제 이 인간은 벌을 받을 거야. 증거가 너무도 명확하니까.”“그림은. 저 인간이 그린 그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당연히 파기되는 거지. 그건 너의 그림이니까.”
흘러나온 대답을 듣자마자 스승은 은호의 손을 쥐었다.
스승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벅찬 감정이 손을 통해 전달됐다.
“…고맙네.”
감정을 꽉꽉 눌러 담았다.
스승의 두 눈동자에 별이 어린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맙다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했다.
도둑맞은 그림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도, 자신의 그림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너희가 떠나기 전에 범인이 잡혀서.”
이걸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은호는 그걸로 충분했다.
“어떻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네.”
“이미 받았잖아?”
은호는 바위에 그려진 그림과 동굴 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너희의 그림말이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잖아?”
이보다 더 귀한 건 없었다.
두 디인팅의 노력과 눈물이 섞인 그림이기도 했다.
“이제 슬픔을 잊고, 마음껏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
은호는 남은 손 하나를 올려 스승의 손등 위에 올렸다.
이 고통은 저 디인팅 이외에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였다.
“만약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지게 되면 환수 연구소로 찾아와. 언제든지, 도와줄게.”
은호는 두 디인팅들이 안심할 수 있게 말을 꺼냈다.
* * *
은호는 흑견을 타서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좋은가?”
“당연하지. 떠난 뒤에 범인이 잡혔으면, 아니지, 그것도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떠나기 전에 들으면 좋잖아.”
은호는 주머니에서 디인팅들에게 받은 돌멩이를 꺼냈다.
위그드라실이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뭐 해, 위그드라실?”
잎사귀가 네 개로 늘어났기에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위그드라실은 돌멩이를 가리키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맞아. 반짝반짝 빛이 나지?”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멩이에는 별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것도 많았다.
―뭘 좋아하는가?
스승의 물음에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고 하니, 그때부터 두 디인팅들이 열심히 돌멩이에 그림을 그렸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다 그려놓았다.
집에 장식해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었다.
“인간.”
“응?”
은호는 뒤늦게 시선을 떼어 흑견을 보았다.
“인간이 식물에게 공격당했던 그때 말이다.”
흑견이 입을 열자 은호는 위그드라실을 쓰다듬으며 기다렸다.
알 수 없는 힘이 식물을 지배했고, 피로 된 말뚝 형상을 하고 있었다.
“혹시, 그 힘, 다른 자연의 대리자가 사용한 것인가?”“아닐 거야. 내가 마지막이라고 했어. 아예 다른 힘이었고. …으음. 굳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되게 불쾌했어.”
지금까지 식물을 억압하는 힘을 지닌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부탁마저 저버릴 정도의 힘이었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힘으로 식물들을 억압했어. 이게 가능한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 다들 나보고 자연의 대리자라고 했잖아?”
“그렇다.”
“이런 힘이 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일 테니까. 멍멍이 형님도 그걸 보고 자연의 대리자를 생각한 거잖아?”“그래서 물어본 거다. 계속 마음에 걸렸으니까.”“진짜 나 혼자야. 그렇지, 위그드라실?”
은호의 물음에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오죽하면 나를 전 자연의 대리자로 착각해서 싫어한다니까?”“…그 말, 농담 아니었나?”“농담이라니. 진담이었는데? 진짜야. 식물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 배신감에 노려보는 친구들이 많다니까?”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혼란스러웠다.
자연에게 무조건 사랑받는 게 자연의 대리자가 아니었는가.
애초에 자연이 탄생시킨 존재였으니 당연했다.
“오해를 풀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게 참 어렵더라.”
흑견은 눈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
은호 말대로 자연의 대리자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도 범인을 찾고 싶어서 그 숲에 다시금 가볼 거야.”
“안 된다!”
흑견이 날을 세웠다.
“이럴 줄 알고, 못하고 있는 거지.”
은호는 예상했다는 듯 낄낄 웃었다.
그곳을 얽맸던 힘을 지웠지만, 모두에게 끔찍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간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워졌다.
흑견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금 걸었다.
‘하지만 가긴 가야지. 그래서…….’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생각을 멈췄다.
“…벌레야?”
“벌레가 아니다, 인간.”
흑견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레보다 덩치가 훨씬 큼에도 무서워하는 은호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밟아버리면 그만이 아닌가.
흑견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수풀에 한 환수가 나왔다.
레서판다를 닮은 얼굴이었다.
귀는 훨씬 더 크고, 동글동글했다.
호랑이와 같은 문양이 얼굴이 가득했지만, 눈동자는 정말 동글했다.
몸통보다 꼬리가 더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통통했다.
“와악! 무섭지?”
환수가 두 발로 서서는 두 앞발을 위로 길게 뻗으며 말했다.
발바닥에 말랑거리는 젤리가 가득 보였고, 앙증맞은 발가락은 덤이었다.
표정이 제법 진지했기에 은호는 강한 의지를 담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웃지 마. 웃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