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화(24/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4화
24화. 나비에 한눈팔면 안 돼요 (컨셉 아트)
* * *
“…아무도 없네.”
턱을 괸 채 쪼그려 앉은 은호는 허허벌판을 바라보았다.
아쉬움이 얼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집 근처를 산책하면 환수 친구들을 볼 수 있을까, 설렘을 담은 채 몇 번이고 돌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그림자처럼 살며시 눈에 들어오는 흑견의 영역 표시 흔적뿐이었다.
‘다들, 멍멍이 형님이 가진 힘이 무서운 건가? 역시 그때, 영역 좀 줄어달라고 말했어야 했나?’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자신이 봐도 흑견이 큰 건 확실했지만, 무섭다는 건 공감할 수 없었다.
보면 볼수록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랐다.
새롭게 얻은 추적의 힘을 사용하면 되긴 하지만, 자신은 자연스러운 만남이 더 좋았다.
은호는 고개를 돌려 산 쪽을 바라보았다.
―산으로 혼자 가지 마라, 인간.
흑견의 경고가 떠올랐다.
‘코카트레스 때문인가?’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는, 환수들 사이에 정해진 약속을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놓을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 보기로 했는데.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갑자기 반대로 부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꼭 저쪽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뭐가 있는데요?”
은호가 묻자 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왔다.
천천히 무언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다급히 안경을 써 맹금류의 눈을 발동하자, 거대한 날개가 보였다.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뱀을 닮은 꼬리가 나무 사이에 흔들렸고, 검은 눈동자가 매섭게 올라가 있었다.
코카트레스였다.
“친구야, 이쪽으로 와도 돼.”
은호가 손을 흔들자 코카트레스는 발로 나무를 걷어차며 등장했다.
우지끈 부러지는 나무를 따라가던 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요새 자연의 존재를 점점 더 알아서 그런지, 이런 모습은 꽤 잔인하게 느껴졌다.
코카트레스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오다 은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자꾸 여기에 맴도는 거지?”
“알고 있었어?”
“물론.”
“당연히 우리 친구를 기다렸지.”
“나를 비웃으러 왔나?”
“에이, 내가 너를 왜 비웃어? 그럴 생각도 없는데.”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너무 잘됐는데? 나는 그런 소식을 기다렸지. 혹여나 우리 친구가 밥도 잘 못 먹고 있으면 어쩌나 했지.”
왠지 비아냥처럼 들려오는 은호의 목소리에 코카트레스는 발로 땅을 할퀴었다.
자존심이 다 구겨졌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건 알고 있었어. 슬퍼하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거든. 다른 친구들이 우리 친구의 노력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반드시 널 이겨주지.”
“다음에도 또 날 만나주는 거야?”
은호의 밝은 웃음에 코카트레스는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만나면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가 차오를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 차오르는 건 의문이었다.
분명히 저 인간은 자신을 싫어해야 할 텐데.
코카트레스는 밀려오는 감정이 짜증 나 옆에 나무를 걷어찼다.
또 우지끈 쓰러지는 나무에 은호는 어깨를 떨었다.
“친구야. 나무도 생명이야.”
“그깟 나무, 알 게 뭐야?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바로 나다.”
코카트레스는 쓰러진 나무에 발을 올리며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순백으로 뒤덮인, 커다랗고 아름다운 날개를 들어 은호를 가리켰다.
“내가 널 쓰러트릴 때까지 날 기억해라.”
은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크다.”
아크는 그대로 돌아서서는 앞으로 돌진하듯 나아갔다.
그 걸음걸이를 보며 은호는 밀려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우리 친구가 부끄러움이 많았네.’
잘 지내는 걸 보니, 어쩐지 홀가분해졌다.
은호는 뒤돌았고, 뒤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짙게 그림자가 지자 은호는 입술을 다물었다.
“…인간. 그때 그 멍청한 닭대가리의 냄새가 난다.”
“잠깐 만났어. 우리 멍멍이 형님이 걱정이 많네.”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걸어가며 흑견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멍멍이 형님. 오늘은 시내로 가자. 그러니까, 도시 말이야.”
“어째서 가야 하는가?”
“사람은 필요한 게 좀 많아. 냉장고를 열었더니 텅 비었고, 과자도 없고, 마음이 슬프고, 장 좀 봐야 하더라고. 아, 생필품도 뚝 떨어진 게 있었어.”
앞으로 몇 걸음 걷던 은호는 어쩐지 발을 잡는 듯한 느낌에 다시 뒤로 몸을 돌렸다.
그저 단순한 감각은 아니었다. 다시 복구시켜달라는 그런 압박에 가까웠다.
‘나무를 부서트린 건 내가 아닌데.’
살짝 억울했지만, 은호는 할 수 없이 다시 반대로 돌았다.
“잠깐만, 멍멍이 형님. 자연이 나를 막 잡네?”
“대체 뭘 했는가? 자연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간섭하지 않는다.”
흑견은 사고뭉치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멍멍이 형님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자연은… 떼쟁이 같은데?”
아직은 예쁘게 봐줄 수 있었다.
은호는 아크가 부순 나무 앞으로 걸었다.
두 그루 정도 부러진 것처럼 보였지만, 착각이었다.
도미노처럼 무너져 있자 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하, 그 친구 참 꿀밤 때리고 싶게 하네.’
은호는 가방에서 칼을 꺼내며 땅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과일이나 신선한 채소라도 집 앞에 놔줘요. 무상 노동은 싫어요. 알겠죠?”
* * *
어둠이 드리운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차자 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자동차가 없기에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타라.
언제나 내뱉던 흑견의 그 말이 그때만큼은 다르게 들렸다.
불안함이 컸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자신이 만났던 환수 관리국 사람들은 환수들을 싫어했다.
환수가 힘을 쓰면 특이한 파장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걸 추적할 수 있는 환수 추적 기계 역시 가지고 있어 더 머뭇거리게 했다.
걸리면 어떡하겠는가.
은호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흑견이 그림자를 타고 빠르게 움직인 곳은 어딘지 모를 상가 안 화장실이었다.
“아무도 없다.”
흑견이 말을 꺼내자 은호는 그제야 안도했다.
“멍멍이 형님.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어?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다니는 거야?”
“도심의 위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자세한 건 모른다.”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내가 잘 알지.”
차로 1시간 거리를 5분 정도로 줄였으니 이보다 더 기쁠 순 없었다.
몇 걸음 걷다 은호는 그림자를 향해 두 엄지를 들었다.
“멍멍이 형님이 최고야.”
그림자가 일순간 흔들리자 은호는 웃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마트가…….’
현대인의 필수품인 내비게이션을 틀다 코끝에 맴도는 달콤한 냄새에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푸른 빛을 가진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아름다운 빛깔에 눈이 홀릴 무렵, 무언가 맞부딪치는 소리에 고개를 더 올렸다.
건물 벽이 다다다 움직이며 무언가를 향해 내뻗어지고 있었다.
이게 초능력일까.
밖으로 나와 바라보던 차, 수많은 나비에 파묻히다 싶은 그 속에 뭔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존재가 우아하게 허공을 돌자 나비들이 주변으로 퍼졌다.
냄새가 더 짙어지며 가느다랗게 눈을 뜬 존재와 시선을 마주쳤다.
‘여우…?’
여우라기에는 좀 더 동글한 느낌이었다.
얼굴과 꼬리에 나비 문양이 번져 있어 신비롭다 싶었다.
환수를 붙잡기 위해 누군가 내뻗었던 건물 벽 잔해로 부드럽게 착지했다.
“너도 웃을래?”
환수가 눈웃음을 짓자, 뒤에서 웃음소리가 번졌다.
은호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뭔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죽고 싶나?”
그때,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는 흑견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자 환수는 몸을 낮췄다.
그쪽으로 길게 그인 자국이 생겨났다.
“지금, 인간 편을 드는 거야? 정말? 정말로?”
환수는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촐랑거렸다.
“인간, 입을 가린 채 물러서라. 저 냄새, 심상찮다.”
“너무 재밌다. 너무 신기해. 너무 부러운데?”
환수가 몸을 웅크리며 웃자 목에 목도리처럼 올라온 털이 환수의 얼굴을 간질였다.
은호는 당장 가방에서 안경을 꺼냈다.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폭시.》
《.》
《.》
《혼자 있는 걸 싫어하며 종에 상관없이 무리에 끼는 걸 좋아합니다. 화려한 곳을 좋아해 주로 꽃과 알록달록한 색이 가득한 곳에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정신 계열의 힘을 가져 가까이 가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달콤한 냄새와 나비를 조심하세요.》
《많은 무리 속에 지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 친근감 넘치며 애교가 많아 누군가하고 금방 친해집니다. 촐랑거리며 말이 많고, 누군가 바라봐주는 걸 좋아하고 즐깁니다.》
‘……저 나비가 정신을 조종하는 힘 자체였다고?’
은호는 뒤늦게 소름이 돋아났다.
이런 힘을 가진 환수가 존재하다니.
폭시가 다가왔다. 달콤한 냄새가 감돌자 은호는 숨을 참았다.
“그거 뭐야? 너무 예쁘다.”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자 건물 그림자에서 나타난 검은 손이 폭시를 향해 휘둘러졌다.
콰드득.
건물을 사선으로 그어버렸다.
와르르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부드럽게 피하며 폭시는 위로 올라갔다.
은호는 주변을 다급히 둘러보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모습에 진땀이 흘렀다.
어깨 쪽에 사자 얼굴 문양이 박혀 있었다.
‘환수 관리인들한테 쫓기고 있었어?’
일단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좋지 않았다.
“꺼져라.”
흑견이 그림자에서 으르릉거리자 폭시는 툴툴거렸다.
“…너무해.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친구야. 멍멍이 형님. 우선 도망치자.”
은호의 말에 폭시는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의 말이 똑똑히 들렸다.
뒷걸음질 치다 말고 발이 살짝 미끄러지자 은호가 다급히 뛰어와 손을 내밀었다.
다시 중심을 잡았지만, 폭시는 은호를 바라보며 일부러 떨어졌다.
품에 안기며 활짝 웃었다.
“……하아.”
은호는 폭시를 보며 안도했다. 두 손으로 안아야 할 정도로 제법 크기가 있었고, 털은 가까이서 보자 푸르른 빛깔이 나는 하얀 털 같았다.
“친구야, 괜찮아?”
은호의 걱정에 폭시는 위로 바라보며 물었다.
“…인간 아니야?”
“맞는데?”
“어떻게…….”
폭시는 말을 하다 말고 두 귀가 쫑긋 섰다.
아쉬웠지만, 당장 은호의 품에서 벗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푸른 나비가 날아들며 은호의 뒤를 향했다.
“도망쳐, 인간.”
폭시는 그대로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인간.”
흑견의 목소리에 은호는 정신을 차려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이어 도착한 환수 관리인들 역시 웃고 있었다.
억지로 웃는 모양새가 참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은호가 앞으로 달려 나갔고, 골목길을 돌 때쯤, 그림자로 삼켜졌다.
* * *
‘…폭시가 사람들을 공격한 걸까.’
은호는 마트 카트를 밀며 조금 전 일을 생각했다.
폭시의 설명을 보면 난폭하지도 않은 환수였다.
환수 관리 지역을 벗어났기에 환수 관리인들이 그렇게 쫓고 있었을까.
툭.
은호는 떨어진 옥수수 통조림을 줍다가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멍멍이 형님 말이 맞아. 혼자 고민할 게 아닌데.”
은호는 당장 휴대전화를 들었다.
“형. 혹시 많이 바빠요?”
<바빠도 은호 씨 연락이라면 무조건 받아야지. 혹시 레비아탐이 걱정되어서 전화했어? 아니면 일렉트? 바꿔줄까? …아, 전화로도 말을 나눌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
“당연히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 좋은데, 지금 좀 상담할 게 생겼어요.”
<…흠흠. 뭐든 말해 봐. 내가 인생 선배로서 잘 조언해줄게.>
뭘 생각했는지 몰라도 태호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를 꺼냈다.
“도시 중심가 쪽에서 폭시가 나타났어요.”
<……뭐어? 뭐, 뭐라고 했어, 은호 씨?>
“나중에 알게 됐는데, 환수 관리인들에게 쫓기는 중인가 봐요. 내가 쫓아서 데려왔어야 했죠? 그게 맞는 거죠?”
<…자, 잠시만, 은호 씨.>
태호는 갑자기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폭시를 봤다고 했어?>
“네. 폭시였어요. 나비를 막 쓰면서 다른 사람을 웃게 했어요.”
<그리고 환수 관리인들이 폭시를 쫓았다고 했고?>
“정확히 알아들었는데요?”
<은호 씨. 혹시 폭시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아?>
“잠시만요.”
은호는 그때 그 건물의 위치를 태호에게 보냈다.
<잠시만 기다려 봐. 진짜 1분만. 내가 다시 연락할게.>
태호가 급히 어디로 가는 듯한 발소리를 끝으로 휴대전화가 끊어졌다.
계속 밀던 마트 카트를 멈춘 채 은호는 옥수수 통조림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
그렇게 정확히 1분이 흘렀을 때쯤, 태호가 목소리를 냈다.
<…역시.>
태호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역시요?”
<폭시는… 암시장에서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환수야.>
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환수 추적 기계와 연동되는 핵심 기술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서 우리 쪽에서 환수 관리인들의 경로를 대략 확인할 수 있거든. 어쨌든, 가을 씨가 확인한 결과 환수 관리인들은 그쪽으로 간 적 없어.>
“……네? 분명히 환수 관리인이었는데요?”
<가짜라는 말이야.>
“…….”
<저번에 환수의 털이든 발톱이든 암시장에서 고가로 팔리고 있다는 말, 혹시 기억해?>
은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환수 관리인이 가짜라면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대놓고, 밀렵을 저질렀다는 말이에요?”
<폭시 컨셉 아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