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0화(241/302)
240화. 와악! 무섭지?(3)
은호는 레비비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어린 기대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우선, 저 기대감부터 지워야 했다.
“애, 애들아. 다시 말해볼까? 나를 뺀 진짜, 무서워하는 거 말이야.”
은호는 말을 꺼내며 라비를 보았다.
‘제발, 사고뭉치야? 뭐든 말해줘.’
기대를 넘어 간절함을 담아 보자 라비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다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나는 씻는 게 무섭다!”
앞발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 소리에 레비비가 몸을 덜덜 떨었다.
씻는 거라니.
레비비는 본인의 앞발을 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너, 대단하다. 날 바로 무섭게 했어!”
레비비의 말에 라비는 놀라다 급히 아닌 척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봤더냐? 이게 무서움이니라!”
말이 끝나자 라비는 초롱초롱한 레비비의 시선에 묘한 압박을 느꼈다.
빨리 고개를 돌려 레비아탐을 보았다.
“레비아탐은 뭐가 무섭더냐?”“…나, 남? 내가 무서워하는 거 말이얌?”
레비아탐은 당황한 채로 물었다.
예상치도 못했다.
“맞다. 레비아탐이 무서워하는 게 무엇이더냐?”“밤에 잘 때 말이얌. 중간에 깰 때 무서웜.”
“그게 왜 무서워?”
레비비는 눈을 깜박거리며 두 발로 섰다.
중간에 깰 때 무섭다기보다는 ‘왜 깼냐’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어둡잖암.”
“어둡지.”
폭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무언가가 내 뺨을 스치고 가는 느낌이 들엄.”
레비아탐은 앞발을 들어 뺨을 만지작거렸다.
“무언감, 부드럽곰, 가벼운 거 말이얌.”
자던 중에 눈을 뜨긴 했지만, 아직 졸음이 밀어닥치는 순간이었다.
다시 눈을 감는데, 무언가 얼굴을 쓸었다.
스르륵.
그 감각이 생각이 나 레비아탐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러면 소름이 쫘아악 돌암!”
“…어어엇.”
레비비는 두 앞발로 귀를 잡았다.
뭔가 무서웠다.
왠지 오늘, 그런 느낌이 강하게 생각이 날 것만 같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혹시, 무서웠어?”
폭시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레비비에게 물었다.
“…무서웠어.”
레비비가 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라비와 레비아탐이 건넨 말에 수없이 반응하는 레비비를 보며 조용히 입가를 가렸다.
웃음이 또 터질 것만 같았다.
‘저 친구, 태생적으로 겁이 많구나.’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은호는 기대를 담아 폭시를 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다른 시선이 쏠리자 폭시는 앞 발가락을 꼭 쥐었다.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아, 아무거나 말해도 되는 거야?”“나도 최근에 제일 무서웠던 걸 말했엄!”“최근에…? 그렇다면 나도 하나 있어!”
폭시는 귀를 쫑긋 세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냈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밤에 숲을 간 적이 있었어. 낮에 다른 애들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은호는 폭시가 꺼내는 이야기에 바로 알아차렸다.
네블라 이야기라는 걸.
라비와 레비아탐한테 이렇게 자세히 말한 적은 없었다.
“갑자기 허공에 보라색 불이 나타났다는 거야. 밤중에 말이야.”
“불이? 왜?”
레비비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걸 확인해 보려고 나도 밤중에 간 거였어. 숲에 가까워졌는데, 불은 찾아볼 수 없었거든? 아. 애들이 장난을 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보라색 불이 화르륵 타올랐어. 정말로 허공에 떠 있더라고.”
“…정말롬?”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올라갔다.
“놀라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아무도 없었어.”
폭시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고, 레비비와 라비, 그리고 레비아탐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리고 불이 꺼졌어.”
폭시는 말을 멈춘 채 다른 애들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한 발 다가갔어. 분명히 불을 봤으니까.”
폭시는 한 발 다가갔다.
다른 애들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거기에서…….”
말꼬리가 늘어지는가 싶더니, 폭시는 두 앞발을 위로 올렸다.
“와악!”
그대로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악!”
세 환수에게서 비명이 터졌고, 은호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었기에 몹시 흡족했다.
꼬맹이들과 레비비가 모이니까, 꼭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나, 진짜 놀랐어.”
레비비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꺼냈다.
“정말?”
폭시는 기뻤다.
레비비의 감정 중 공포가 드러났으니까.
이러면 성공한 게 아니겠는가.
“정말이야! 정말, 정말, 무서웠어! 어떻게 한 거야?”“답은 이야기와 상상력이야.”
폭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레비비를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도 네블라의 일로 엄청 겁에 질려서 잠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불꽃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그 불꽃이 왜 나타났는지가 무서웠던 게 아닐까.
“내가 보라색 불이라고 말했을 때, 다 머릿속에 상상했잖아?”“맞느니라! 나는 엄청 큰불을 상상했다!”
라비가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무서웠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상상한 건 이 정도 되는 불꽃이었지만, 너희는 아마 다르게 상상했을 거야.”
폭시는 발가락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도 컸엄! 저 나무만큼 컸엄!”
레비아탐은 한 발로 꼬리를 잡으며 다른 앞발로 나무를 가리켰다.
“그게 너희가 무서웠던 이유였던 거지. 어때? 이게 네가 바랐던 그 무서움이 맞을까?”
레비비를 바라보는 폭시의 두 눈에는 기대가 가득 어렸다.
“맞아! 나는 이런 무서움을 바랐어. 내가 정말, 정말 무서웠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존재가 내 말을 안 들어주면 어떡하지?”
레비비가 품은 걱정에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레비비의 몸에 있는 상처.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려는 상황.
그리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방.
이 조합이 별로 좋진 않았다.
“그런데 친구야. 누굴 무섭게 하고 싶은 거야?”
은호는 밀려드는 저 조합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비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물쭈물하며 망설였다.
이걸 말해도 되는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친구야. 누굴 무섭게 하고 싶은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
“…덩치가 커.”
“어느 정도 큰 거야? 멍멍이 형님만큼?”
은호는 흑견을 가리켰다.
바로 귀가 쫑긋거렸다.
‘역시 안 자고 있었네. 치사하긴.’
은호는 흑견에게 다가가 볼을 찔렀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걸 보며 웃다가 레비비를 보았다.
“…아니. 전 스승보다는 작아. 그런데 나보다 커.”
‘멍멍이 형님보다 덩치가 작은 존재라.’
은호는 감이 왔다.
“혹시, 쫓아내고 싶은 거야?”
레비비가 놀라며 은호를 보았다.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역시 스승이었다.
“맞아! 꼭, 쫓아내고 싶어.”“우리가 도와줄까?”
“아니. 내가 해야 해. 내가 쫓아내야 해. 스승님이 가면 다시 또 오잖아. 그걸로는 안 돼.”
‘아무래도 끈질긴 친구가 있는 모양이네.’
은호는 숨을 들이켰다.
이미 레비비가 수없이 시도를 해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널… 때린 거야?”
은호가 묻자 레비비의 어깨가 내려왔다.
무척, 곤란해 보였다.
눈동자가 요동쳤다.
“그렇구나.”
은호는 레비비가 지금 협박을 받는다는 걸 알았다.
가장 소중한 걸 상대가 쥐고 있는 모양이었다.
말하면 그걸 어떻게 하겠다고 협박한 게 아닐까.
은호는 레비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이 왜 기특하지 않을까.
참 대단한 친구였다.
“친구야.”
“…응.”
“아까 말이야, 네 말이 맞아. 내가 좀 무서워.”“그렇지? 스승님이 제일 무서운 거지?”“그리고 넌 내 제자지?”“정말, 날 제자로 받아주는 거야?”
스승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받아주는 건 별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맞아. 받아줄게.”
은호가 눈웃음을 짓자 레비비는 진짜 놀랐다.
진심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정말로 날 제자로 받아주는 거야?”
“당연하지.”
그 대답 역시 진심이 묻어나자 레비비는 도리어 멍한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내가 하는 말, 정말로 다 믿는 거야?”“믿어. 믿으니까 하는 말이 아니겠어?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레비비는 두 앞발을 앞으로 뻗으며 은호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안겼다.
레비비는 옷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다, 비웃었는데.”
이런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정말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었다.
“스승님은 왜 날 믿어주는 거야?”“네가 얼마나 절박한지 느껴졌으니까.”“힘으로 무섭게 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나는 있지. …힘이 없어. 그 존재를 무섭게 하려고 했는데, 다 안 됐어.”“그래서 다친 거야?”
은호는 레비비를 토닥거리며 묻자 레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행동이 공격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뭘 해도 나는 하나도 안 무섭게 생긴 걸 알아. 그래도 나는 해야 했어.”“그런데 꼬리는 왜 사용하지 않는 거야?”“이미 사용해봤어.”
레비비는 꼬리를 흔들었다.
털이 풀어지는가 싶더니 바로 바위로 변했다.
“…와아아.”
꼬맹이들에게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레비비가 다시금 꼬리를 흔들자 늑대의 얼굴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우렁찬 울음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작았다.
바로 티가 났다.
“바위나 수풀은 괜찮은데, 이런 건, 아무도 속지 않아.”
늑대의 얼굴로 변한 레비비의 꼬리가 스르르 풀어졌다.
은호는 레비비가 뭘 말하는지 알았다.
긴급 탈출용이라는 소리였다.
좀 더 상대를 속이려면 꼬리가 좀 더 커야 했지만, 애초에 도주용에 가깝게 진화한 모양이었다.
“꼬리를 이용해 무서운 존재로 변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니었어. 나는 내 꼬리가, 내가 얼마나 작은지 몰랐던 거야.”“그런뎀. 왜 불로는 안 변햄?”
레비아탐이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조금 전에 폭시의 말 때문에 더욱 생각이 났다.
“불…?”
레비비는 낯선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불은 무서웜.”
“나도 불은 무서워! 털이 타는 건 싫어.”
폭시는 말을 내뱉은 뒤, 슬쩍 은호를 보았다.
자신의 친구인 티토에게 은호의 몸이 탄 적이 있었다.
“나도 무섭느니라. 번개도 무섭다!”
“…그거네!”
은호는 활짝 웃었다.
꼬맹이들이 정답을 주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불과 번개. 눈으로 보기에도, 가장 무섭게 보이긴 했으니까.
은호는 레비비한테 제안했다.
“한번 해볼래?”
“불을?”
“맞아. 불을 피워봐.”
불을 따라 한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 생소했지만, 레비비의 가슴이 오히려 뜨거워졌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불탔다.
‘불. 불. 불이 타올라라!’
눈을 감고 불을 생각했다.
불을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본 적은 있었다.
화르륵.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레비비가 슬쩍 눈을 뜨자 빛이 피어올랐다.
붉은빛이 거세게 타올랐다.
레비비는 깜짝 놀랐다.
꼬리를 흔들어보자 불이 덩달아 흔들렸다.
너무도 선명한 불에 레비비는 바로 옆에 있던 라비에게 가져다 대자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정말로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 안 뜨겁더냐?”“안 뜨거워. 이건 진짜 불이 아니니까.”
레비비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모든 걸 태워버리는 불은 언제나 무서웠다.
앞발을 뻗어 불을 만졌다.
타지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되지 않을까.
“친구야. 우리가 도와줄게.”“도와줘도 안 돼. 내가 해결해야 해.”“숲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불…?”
“아니. 숲 자체야. 움직이는 숲은 특히 더 무서워.”
은호가 조용히 웃었다.
꽤 섬뜩한 미소로 보여 레비비는 깜짝 놀랐다.
* * *
익숙한 냄새가 나자 고개를 돌렸다.
“저게 또 왔네?”
레비비가 말한 대로 흑견보다 못하지만, 덩치가 컸다.
코뿔소처럼 거대한 코 위로 뿔이 났지만, 육식 동물의 눈을 하고 있었다.
두 발로 서 있어 어깨가 굉장히 넓어 보였다.
하지만 두껍게 발달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상대적으로 짧고, 얇은 편이었다.
몸에 그려진 문양으로 눈길이 갈 정도로 세련됐다.
환수는 레비비 뒤로 오는 꼬맹이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또, 친구를 데리고 왔어? 도망치게? 아니면 여길 또 엉망으로 만들라는 거지?”
환수는 땅을 가리켰다.
이미 마음대로 파헤쳐서 엉망이었다.
레비비는 땅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그곳에 놔둔 꽃도 엉망이 되었다.
또.
또 그랬다.
“다른 곳에 가면 되잖아! 땅은 얼마든지 있잖아!”
레비비는 애가 탔다.
이곳을 콕 집어 머무는 행동에서 고의가 엿보였으니까.
“난 여기가 마음에 드니까, 네가 꺼지라고. 억울하면 강해져서 오든지.”
낄낄.
환수는 크게 웃었다.
“친구야.”
은호가 뒤에서 걸어오며 목소리를 내자 환수는 긴장했다.
인간이었다.
“여기 식물들이 말하던데, 네가 좀 싫대.”
진실이었다.
걸어오면서 식물들에게 슬쩍 물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저 환수가 땅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레비비를 향한 일방적인 괴롭힘을 시도했다고 말해주었다.
이곳은 레비비의 부모가 묻힌 무덤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간 뒤에 너는 다시 올 거지? 그런데 이전하고 다를 거야. 우리가 이 친구를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은호가 손을 뻗자 환수의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움직였다.
환수의 눈이 커졌다.
마치 숲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까.
자신을 향해 나뭇가지를 뻗어오자 환수는 뒤로 물러섰다.
진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렇게 해 봤자, 다 소용없다는 걸 모르나? 모르냐고!”
환수는 레비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미 몇 번이나 이러지 않았는가.
지금 쫓겨나도 다시 오면 그만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달라!”
화르르륵!
레비비의 꼬리에 불꽃이 타올랐다.
환수는 웃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불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일까.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데.
레비비는 환수에게 힘껏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휘둘러. 그러면 분명히 겁에 질릴 거야.
은호가 꺼낸 말이 생각이 났다.
달려가며 그대로 휘두르자 환수는 허세와는 다르게 불에 놀라 크게 물러섰다.
식물의 뿌리가 그대로 환수의 발목을 잡자 얇은 다리가 이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쓰러졌다.
레비비는 환수에게 다가갔다.
달랐다.
이전하고 확실히 기세가 달랐다.
파지지직.
불꽃이 타올랐던 레비비의 꼬리에 불꽃을 사라지고, 번개가 튀었다.
너무도 선명한 빛깔을 뽐냈다.
환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힘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깜짝 놀랐지?”
은호가 웃자 환수는 그를 보며 불안한 눈을 했다.
인간이었다.
저 인간이 이 멍청이한테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파지직.
“여긴. 여긴! 우리 엄마의 무덤이야! 다시는 오지 마!”
레비비는 꼬리를 내밀며 힘껏 말했다.
금방이라도 튈 것만 같은 번개에 환수는 얼굴이 굳어졌다.
번개가 위로 화염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두 개의 힘이 공존했다.
당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레비비에게 수없는 원한을 가진 자신이 저 힘에 당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환수의 생각이 멈췄다.
저들의 뒤에 어둠이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다.
손으로 딛고 있는 그곳에 작은 소리가 속삭이듯이 퍼졌다.
오면 죽인다.
서늘한 감각이 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가슴마저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언가 있었다.
아주 강한 존재가.
“…아, 안 올게! 다시는 안 올게! 정말이야!”“다시는 오지 마! 이 땅을 밟지도 마!”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레비비는 끝까지 환수를 향해 말했다.
“또 오면 용서는 없어!”
마냥 귀여워 보이는 얼굴이 달라졌다.
불과 번개가 튀는 빛깔에 드러난 표정은 싸늘했으니까.
환수는 그대로 뒤로 팔을 움직이며 물러섰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오지 마!”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환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은호는 뒤를 쳐다보았다.
금세 그림자로 파고드는 흑견을 발견했다.
‘안 도와줄 것 같더니.’
레비비는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라지는 환수를 보며 참았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으허허엉.”
드디어 갔다.
드디어 저 존재가 사라졌다.
“엄마! 엄마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 드디어 엄마를 지켰어! 스승님이 도와줘서 지킬 수 있었어!”
엄마의 무덤이 짓밟히고, 또 짓밟혔지만, 지킬 수가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가리고 엎드려 울부짖었다.
은호는 자신을 비웃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해낼 수 있게 도와줬다.
“짓밟히게 해서 미안해! 미안해에…!”
힘이 없어서 저 존재를 이길 수가 없었다.
무덤이 훼손되는 걸 알면서도 뭘 어쩌질 못했다.
발소리가 들렸다.
“친구야. 방금은 정말, 충분히 무서웠어.”
다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맞암. 나는 보고 멍하니 있었엄.”
앞발 하나가 추가되어 등을 두드렸다.
“나도 보고 진짜인 줄 알았다니까?”
한 발 더.
“진짜 아니더냐? 진짜 힘인 줄 알았다.”
한 발 더.
온기가 늘어나자 레비비는 더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혼자서 지키지 않아도 돼. 내가 도와줄게.”
은호는 미소를 지으며 땅을 토닥거렸다.
“피어나 줄래?”
은호의 말을 따라 땅에 숨어 있던 식물이 머리를 드러냈다.
수많은 꽃으로 자라났다.
짓밟혔던 새하얀 꽃과 같았다.
눈물을 흘리던 레비비는 얼굴에 와닿는 감각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꽃이었다.
하얀 꽃이 피어났다.
그제야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땅이 헤집어져 엉망이 됐던 그곳에 수많은 꽃이 뒤덮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새하얀 꽃이다.’
매일 가져다 놓아도, 매일 짓밟혔을 뿐이었던 그 꽃이 이곳에 가득 피어나 있었다.
레비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꽃은 시들지 않을 거야.”
은호가 건넨 말에 천천히 입꼬리를 움직였다.
예뻤다.
정말 예뻤다.
눈물이 또 가득 차올라 꽃을 적셨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할까.
레비비는 일어나 은호에게 달려갔다.
“고마워!”
힘껏 외쳤다.
“고마워, 스승니임!”
그대로 은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