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1화(242/302)
241화. 숨바꼭질
오늘은 달랐다.
‘그럼, 그럼.’
라비는 수풀 속에 숨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보다 더 성장했기에 반드시 달라야 했다.
어제보다 밥도 더 잘 먹었다.
어제보다 잠도 더 잘 잤다.
산 위에서 눈싸움할 때와 지금의 자신은 차원이 달랐다.
이건 마치 지렁이가 하루아침에 뱀으로 진화하는 것과 같았다.
‘…하하하! 지렁이가 뱀으로 진화하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자신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안 돼, 꼬리야!’
라비는 수풀이 흔들리자 깜짝 놀란 채 꼬리를 쥐었다.
‘이번에는 안 돼.’
저번에 은호에게 가장 먼저 들킨 이유는 바로 몸의 색 때문이었다.
하얀 눈에 검은 자신의 몸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멍멍이 형님이 아니야.’
멍멍이 형님은 그림자에 들어갈 수 있지만, 자신은 아무리 그림자에 머리를 넣어보려고 해도 어려웠다.
이게 바로 시련이었다.
성체가 되기 전에 겪는다는 그 시련.
‘…후후후.’
라비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며 몸을 납작 엎드렸다.
오늘은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수풀과 이 몸은 하나다!’
라비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웃다가 갑자기 몰려온 생각에 순간 흠칫거렸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이 너무도 완벽하게 숨어 정말 이곳에 숨어 있다는 걸 모른다면.
‘……계속, 여기 혼자야?’
라비는 몸을 스치고 가는 두려움에 눈동자마저 흔들렸다.
‘안 되는데에.’
라비가 수풀 밖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술래인 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라비는 모르는 척 수풀로 들어갔다.
‘후. 후. 은호가 이 몸을 버리고 갈 리가 없다.’
등줄기가 차가워지고, 눈동자가 다 뜨겁게 타올랐다.
“사고뭉치야.”
은호가 부르자 라비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은호는 바보다!”
앞발이 축축해질 정도로 울었다.
“왜 자꾸, 자꾸, 나를 먼저 찾는가? 이럴 리가 없다!”
으헝헝.
“…사고뭉치야.”
은호는 수풀에서 라비를 꺼내왔다.
한숨을 잠깐 내쉬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곤란했다.
“자. 여기 봐봐. 여기가 어디야?”
은호는 라비를 데리고 정확히 네 걸음 앞으로 나가 나무를 가리켰다.
라비는 앞발 하나를 내려 쳐다보았다.
“…은호가 눈을 감고 귀도 가리고 숫자를 세던 곳이다.”
라비의 목소리가 먹먹했다.
“사고뭉치는 어디에 숨었어?”“…은호 뒤에 숨었다.”“이러니까 바로 잡힌 거야. 알겠지?”
이건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숫자를 다 셀 동안 폭시도, 레비아탐도, 일렉트와 레비비까지 다 흩어졌는데, 흩어지지 않은 건 딱 둘 뿐이었다.
흑견과 라비.
흑견은 아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도망치지 않냐는 말에 눈썹을 올렸다.
―정말, 내가 숨어버리면 찾을 자신이 있는가.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흑견이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찾을 수가 없었다.
식물에게 물어봐도 이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림자로 들어갈 줄 알아야 할 테니까.
‘…사라진 식물을 불러오면 가능하려나.’―■■은 사라진 식물입니다. 경고합니다. 여기서 멈추십시오.
그때, 태블릿에 뜬 식물의 이름이 깨진 이유를 알았다.
사라진 식물이었다.
사라진 존재에게 이름이 있을까.
하지만 자신은 그 식물을 불러왔다.
대체 어디에서 불러왔는지 궁금하긴 했다.
‘이름을 붙여줄 걸 그랬나.’
그러면 달라질까.
“원래 뒤에 있으면 모르는 법이다! 나는 무적이었느니라!”
라비가 억울함을 가득 드러냈다.
확실히 뒤에 숨어 있다면 모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숫자를 다 센 뒤에, 주변을 느긋하게 탐색하고 수풀로 들어가는 건 발견하라고 대놓고 말한 셈이 아닌가.
“사고뭉치.”
“…하지만, 하지만, 가장 먼저 잡히고 싶지 않았다.”
라비는 귀를 머리에 붙였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첫 번째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은호는 라비를 든 채 하품하고 있는 흑견을 보여주었다.
“멍멍이 형님이 가장 먼저 잡혔으니까.”
“정말이더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던 라비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맞아. 라비가 두 번째야.”
“하하하!”
라비는 ‘두 번째’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지, 의기양양한 채 웃었다.
은호는 라비를 내려주자 그의 주변에 빙그르르 돌았다.
“봤더냐, 은호? 나는 성장했다! 멍멍이 형님을 이겼다!”
그 말에 흑견은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말이 어떻게 저렇게 이어지는지 몰랐다.
무어라 말문을 열려다 기뻐 보이는 모습에 관뒀다.
“이제 붙잡혔으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야 해.”“가만히… 있어야 하더냐?”
라비는 충격받은 얼굴로 물었다.
힐끔 흑견을 보았다.
아주 편해 보였다.
“멍멍이 형님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아니니라. 은호를 따라다녀도 되더냐?”
라비의 제안에 은호는 흑견을 보았다.
데려가라.
노골적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낮잠을 자려는 모양이었다.
더욱더 놔두고 가고 싶지만, 참았다.
저번에 흑견하고 라비만 단둘이 남은 적이 있었는데, 흑견이 귀를 막은 채 앞발마저 귀를 가렸고, 라비는 계속 떠들었다.
평소 에너지라고는 전혀 없는 흑견과 늘 에너지가 넘치는 라비는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조용히 따라와야 해. 다른 애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주면 안 돼.”“알겠느니라! 쉿이니라.”
“어서 가거라.”
흑견은 그제야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었다.
속이 보이는 게 참 우스웠다.
“멍멍이 형님.”
“왜 그러는가?”
“오늘 사고뭉치하고 잘래?”
“좋다!”
라비가 바로 응답했다.
그 대답에 흑견의 어깨가 힘없이 내려왔다.
갑자기 조카가 집으로 놀러 올 때 삼촌이 짓는 표정이었으니까.
은호는 크게 웃으며 걸어갔다.
그들이 움직인 뒤에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 * *
숨는 건 자신 없었다.
하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건 자신 있었다.
숨는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가만히 한 자리에서 웅크릴 수 있는 존재야말로 최고가 될 수 있는 놀이.
‘가만히 있는 건 내가 제일 잘해.’
레비아탐은 나무에 매달려 솟구치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술래는 은호였다.
은호가 어딘가에 숨어 있기에 제일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은호에게는 손톱과 발톱이 있었지만, 뭉툭했다.
만져봐도 금방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아마 가장 먼저 까망이가 잡혔을 거야.’
조금 전 흩어졌을 때, 라비만 우뚝 서 있었다.
걱정되어 숨으라고 말했지만, 라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쯤 붙잡혀서 울고 있을까.
레비아탐은 라비 걱정을 하면서 동시에 은호 걱정도 했다.
은호가 지금쯤 얼마나 찾아다니고 있을까.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은호는 더욱더 더 어려울 수 있었다.
‘은호 다리가 아플 텐데.’
자신도 오래 달리지 못하지만, 은호는 더 그랬다.
‘하지만 미안해, 은호! 나는 질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걱정이 됐다.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은호다!’
레비아탐은 입을 다물었다.
냄새가 났으니까.
냄새에는 하나 더 묻어 있었다.
‘까망이다!’
라비가 은호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라비가 먼저 잡힌 모양이었다.
레비아탐은 눈을 꼭 감았다.
심장이 쾅쾅 뛸 것만 같았다.
‘진정해, 심장아.’
레비아탐은 앞발에 힘을 주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은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간질간질.
“푸히힙.”
레비아탐의 웃음이 터졌다.
이내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 어떻게 알았엄?”
“다 보이던데?”
은호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들고는 말했다.
다들 숨바꼭질은 잘 못하는 모양이었다.
머리만 나뭇잎 사이에 가려버렸다.
꼬리가 붕붕 휘날렸는데, 어떻게 모를까.
“안 돼에엠.”
레비아탐은 그대로 미끄러졌다.
더듬이가 축 늘어졌다.
이렇게 들킬 줄이야.
“레비아탐도 잡았다.”
“잡았다!”
라비가 은호의 목소리를 따라 즐겁게 말했다.
남은 꼬맹이는 셋이었다.
일렉트, 폭시, 그리고 레비비.
* * *
숨바꼭질은 숨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왜 숨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전기가 주변에 있을 때였다.
여기에는 그냥 나무뿐이었다.
이런 풍경을 가만히 쳐다보는 건 너무도 지루했다.
나무에 매달린 일렉트는 꼬리를 풀고는 날았다.
사실 우승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은호가 있던 그 나무를 중심에 두고 크게 빙글빙글 돌면 이건 무조건이었다.
은호가 자신이 하늘을 나는지, 땅을 기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다.’
일렉트는 갑자기 든 생각에 고민했다.
땅이 나을까.
아니면 하늘이 나을까.
‘아!’
일렉트의 단춧구멍 같던 눈동자가 커지며 반짝반짝 빛났다.
그럴 땐,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하하.
일렉트는 앞발을 허리춤에 올렸다.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하겠지.
일렉트는 높이 하늘을 날았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바람이 얼굴로 스며드는 기분이 좋았다.
꼬리가 파르르 흔들렸다.
이렇게 날아본 적은 별로 없기에 앞발마저 좌우로 흔들며 기뻐했다.
‘재미있어!’
일렉트는 다시 하늘을 보며 힘차게 떠올랐다.
계속 흔들리고 있는 꼬리를 향해 누군가 손을 뻗고 잡았다.
익숙한 손길에 일렉트는 그대로 굳어졌다.
“삐죽아.”
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숨바꼭질이야. 술래잡기가 아니란 말이지. 규칙을 잊었어?”
웃음이 뒤따랐다.
솔직히 일렉트를 이렇게 찾을 줄은 몰랐다.
땅에 숨어 있으면 풀색하고 워낙 비슷하기에 제일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날아다닐 줄이야.
“…이, 이건 아니야!”
일렉트는 입을 삐죽 내밀며 인상을 가득 썼다.
“아닌데? 내가 삐죽이를 잡았는데?”
은호는 키득거렸다.
짝짝짝.
레비아탐이 앞발을 부딪쳤고, 라비가 즐겁게 외쳤다.
“삐죽이 잡았느니라!”
* * *
모든 건 심리였다.
어디에 숨을 건가.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많은 존재가 수풀, 나무, 그리고 땅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건 너무도 단순했다.
숨바꼭질의 핵심은 ‘숨기’였다.
어떻게 해야 잘 숨을 수 있는가.
정답은 바로 틈 사이였다.
수풀, 나무, 땅. 이것만 보느라 수없이 놓칠 게 뻔했다.
틈 사이가 너무 큰 곳은 절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와. 이 정도면 못 들어가겠는데.
딱 그런 곳에 몸을 숨겨야 슬쩍 보고 말았다.
‘나는 심리를 꿰고 있다고!’
수많은 존재의 감정을 얼마나 많이 봤겠는가.
폭시는 틈 사이에 들어가 우쭐거렸다.
찌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눈동자 크기 정도의 틈만 보이는 그곳에 자신은 숨어 있었다.
이곳에 어떻게 숨었는지 이야기하자면 너무도 길었다.
숨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살피다가 저 작은 틈을 보았다.
저기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라비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자신이 들어갈 수 있게 땅을 파헤쳤다.
‘내가 이렇게 땅을 잘 파는지…….’
폭시는 생각을 멈추고 눈을 깜박거렸다.
틈 사이로 주황색에 가까운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히끅.
폭시는 너무 놀라 그만 딸꾹질하고 말았다.
“폭시야.”
은호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은호오…….”
“이럴 수가.”
아직 회상도 다 못했는데.
폭시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폭시 찾았담!”
“찾았느니라!”
“찾았어, 찾았어!”
레비아탐에 이어 라비와 일렉트가 기뻐 보였다.
“…은호.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정말 모르겠다는 저 얼굴에 은호는 웃음을 참았다.
땅을 판 흔적이 대놓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모르는 척할까.
라비부터 시작해 하나씩 뭔가 다 빠져 있기에 은호는 크게 웃었다.
자신이 해본 숨바꼭질 중에 제일 웃겼다.
폭시는 은호가 왜 웃는지 몰라 한쪽 귀를 접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으음.’
은호는 고민했다.
폭시를 찾은 뒤로 거의 한 바퀴를 돌아봤는데 레비비가 보이질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은호는 차분히 생각했다.
레비비는 꼬리를 이용해 무엇이든 변신할 수 있기에 숨바꼭질에서 가장 유리했다.
곧 미소가 감돌았다.
라비의 전략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라비한테 맞지 않는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레비비는 어떤가.
은호는 원래 장소로 움직였다.
“해가 지고 있어, 은호.”
폭시가 앞발로 하늘을 가리켰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하기로 했다.
“이럼, 은호가 지는 것이니라.”
라비가 초조해하며 말하자 은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그리며 손을 뻗어 수풀이란 수풀을 다 만졌다.
웅크려 있던 흑견이 귀를 쫑긋 세우자 은호는 확신했다.
‘레비비도 여기에 숨은 거야.’
바로 이곳에.
은호는 처음 자신이 섰던 나무에서 가장 가까운 수풀로 걸어갔다.
똑같이 손을 뻗어 만졌다.
다소 딱딱하던 나뭇잎의 감각과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은호는 그대로 걸음을 멈춰 수풀을 들췄다.
그곳에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려 있는 레비비가 보였다.
“레비비 찾았다!”
은호가 힘껏 외치자 꼬맹이들이 즐겁게 뒤따라 외쳤다.
“찾았다아!”
레서판다를 닮은 얼굴을 한 레비비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어, 어떻게 알았어, 스승님?”
역시 스승님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여러 번이나 옮겨 다녔다.
한 장소에만 있으려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후로 선택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는데.
“당연히 감이지.”
은호는 싱긋 웃으며 레비비의 코를 건드렸다.
“…와아.”
레비비는 둥근 눈으로 은호를 빤히 보았다.
“이제 다 찾았으니까, 간식 좀 먹을까?”
“좋아!”
아쉬움도 잠시, 간식 이야기에 레비비는 방긋 웃었다.
몸통보다 더 큰 꼬리를 흔들다 멈칫거렸다.
“엄마 앞에서 먹어도 돼?”“당연히 괜찮지. 엄청 좋아하실 거야.”“맞아! 엄마는 시끌벅적한 걸 좋아했어.”
레비비는 제일 먼저 뛰어갔다.
언제나 가는 길이 괴로웠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들떴다.
설렘이 묻어났다.
레비비는 힘차게 뛰어 하얀 꽃이 가득 피어난 그곳에서 데구루루 굴렀다.
꺄르르.
웃음이 터졌고, 벌떡 일어나 신나게 외쳤다.
“나왔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