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2화(243/302)
242화. 만남X만남
“…여기, 지낼만해?”
은호는 네블라에게 물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던 네블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누구하고 섞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여기가 더 좋아. 조용하고, 고요해.”
네블라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날개같이 늘어진 긴 털은 컵을 잡은 손을 따라 움직였다.
환수 관리국이 소유하고 있는 환수 보호 구역 내에 네블라를 위한 집이 만들어졌다.
어떤 곳이 좋냐는 질문에 네블라는 ‘그 집 같은 곳’이라고 대답했다.
집이 익숙한 환수는 아마 네블라가 처음이지 않을까.
“새집이라서 낯선 냄새가 가득한데, 다시 하나씩 채워지겠지?”
네블라는 그리움을 담아 집을 바라보았다.
네블라가 문승호를 기다리던 그 집에서 쓸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왔다.
여러 장식 중에 섞여 있을지도 몰랐다.
“은호.”
“응?”
“이도현은… 문승호한테 왜 그랬다고 했어? 알려줄 수 있어?”
네블라의 물음에 은호는 바로 입술을 다물었다.
그날, 네블라가 들을 수 있는 건 자신의 말뿐이었다.
말하기 참 힘든 질문이었다.
“나 이제 괜찮아. 정말이야.”“이유가 궁금한 건 알아. 그런데 친구야. 나는 네가 걱정돼.”
은호는 가슴팍에 있는 옷자락을 잡았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걱정이 됐다.
자신도 이도현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네블라는 오죽할까.
이도현이 문승호를 죽인 건, 환수 관리국의 국장 자리를 위해서였다.
지혜를 향한 아주 오래된 열등감과 혼자만의 비교로 뒤틀어진 마음이라는 걸 알면 또 슬퍼할지도 몰랐다.
“나도 화가 나는데, 너는 얼마나 더 들끓는 감정을 느끼겠어? 지금 힘들잖아.”“이지혜가 버티고 있어.”
네블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찻잔을 내리고 앞발에 달린 등불을 보았다.
“나랑 같은 슬픔을 아는 인간이야. 나한테 정말 많은 말을 했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속상했다.
정말 말 한마디마다 진지하게 했고, 열심히 감정을 담아 꺼냈으니까.
다, 알아듣고 싶었다.
‘…나를 부르면 좋았겠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기에는 어려운 말이었나 보네.’
은호 역시 덩달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럴 때마다 서로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더라.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어. 기운을 내라고 말하고 있었어.”
네블라는 은호를 보며 최대한 밝게 말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직 환상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온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벌써 마음의 상처가 회복됐을 리가 없었다.
“친구야.”
“응.”
“너무 힘들면 그러지 않아도 돼.”“하지만 알고 싶어. 문승호는 나에게 전부였으니까. 그걸 모르니까, 내 마음에서 보내줄 수가 없어. 문승호를 죽인 이도현을 잡았는데, 이유를 몰라서 괴로워.”
은호는 네블라의 손을 잡았다.
떨림이 일어났다.
때로는 이유를 알게 되는 이유로 더 큰 슬픔이 몰려올 수도 있었다.
네블라가 그럴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알았기에 은호는 입을 열었다.
“이도현이 그런 일을 한 건 출세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했어.”“…그래서였구나. 욕심 때문이었구나.”
네블라는 입술을 다물었다.
눈을 잠깐 감으며 감정을 다스리려고 했다.
이유를 알았음에도 가슴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지혜에게 뒤틀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이지혜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 곁에만 있어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니까.”
힘을 가진 인간에게는 묘한 떨림이 있었는데, 지혜는 그 떨림이 거셌다.
만약에 문승호가 아꼈던 인간이 아니라면 곁에 있고 싶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멍멍이 형님의 종을 죽인 사건을 은폐하려는 걸 너의 인간이 밝히려고 했어. 그 사건을 일으킨 게 이도현이었고.”
이도현에게 많은 게 얽혀 있었다.
“…어둠에서 태어난 그 종이 네가 좋아하는 그 존재였어?”“맞아. 다들 알고 있더라고.”“우리가 인간에게 더 큰 경계심을 세운 원인이 되는 사건이니까.”
네블라는 말을 끝낸 뒤, 잠깐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괜찮아?”
은호는 손을 뻗었다.
네블라는 그 손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새끼 사슴을 닮은 얼굴에 달린 눈이 조용히 감겼다.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은호는 생각 이상으로 평온한 네블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했다.
네블라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으니까.
“문승호가 죽은 게 슬프지만, 문승호다운 끝이었어.”“어떤 인간이었는지 물어도 되겠어?”“응. 이야기해줄게.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어.”
네블라는 눈을 떠 은호를 보았다.
사실 네블라와 지혜만 본다면 어떤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 * *
은호는 네블라의 집 밖으로 나와 잠깐 걸었다.
오늘은 혼자 왔다.
이도현 일은 모두에게 있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기에 이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나한테도 그곳이 좋지 않은 곳으로 남았나 봐.’
네블라에게 들리기 전에 초능력 관리국이 있는 그 숲으로 갔어야 했는데, 이곳으로 먼저 왔다.
머뭇거려졌다.
그렇다고 무서운 건 아니었다.
그저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은 게 아닐까 했다.
식물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은호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가지고 노는 위그드라실을 꺼내 보았다.
“재밌어?”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은호를 빤히 보았다.
고개가 기울었다.
본인의 얼굴로 손을 뻗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안 우는데?”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을 살짝 굴리며 다시 한번 제대로 알아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럼, 음, 슬퍼 보인다고?”
그제야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길 가야 하는데, 충격이 좀 큰가 봐.”
위그드라실은 손바닥으로 걸어가 발을 굴렸다.
화가 난 것 같았다.
주먹도 휘둘렀다.
“그러지 마. 그 친구들도 어쩔 수 없었잖아?”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휙 돌렸다.
편을 들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반응하길래 은호는 키득거렸다.
“그래도 그때, 좀 아프긴 했어. 그럼, 살짝만 혼내도 되지 않을까?”
슬쩍 꺼낸 제안에 위그드라실은 다시금 은호의 손가락에 매달렸다.
어차피 가야 했다.
식물을 조종한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으니까.
‘저곳 이외에 다른 곳에서 힘을 사용한 것 같진 않아.’
초능력 관리국은 인간들이 많은 곳이었다.
터전을 빼앗긴 크라카들 이외에 환수들이 구태여 그곳으로 갈 이유가 어디 있을까.
‘…마나석하고 이어져 있는 건가? 왜?’
아직은 빠진 정보가 너무 많았다.
서로 이을 수 없었다.
은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은호 씨?”
“……!”
은호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뒤를 돌자 지혜가 보였다.
“…놀라셨습니까?”
“좀, 놀랐어요.”
은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네블라가 걱정되어 잠깐 나왔다가 반가운 마음에 불렀을 뿐입니다.”“마침 네블라도 국장님 걱정을 했어요. 둘이 잘 통하는데요?”“저는 이제 서은호 씨 걱정을 해야겠습니다.”
지혜는 은호를 보며 눈꼬리를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때,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부상이 심했습니다. 아직 돌아다닐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렇긴 하죠…? 그래서 슬쩍 네블라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걱정할까 봐요.”
은호가 지혜를 보며 웃자 그녀는 어깨를 내렸다.
고집쟁이.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하지 않았다.
이미 본인도 알 테니까.
지금도 아픈데 참고 온 걸까.
“은호 씨는 참 신비한 사람입니다. 그걸 아십니까?”
지혜는 잔잔한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시선은 앞을 보았다.
은호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저요? 아니요. 그냥 평범한 사람 A죠. 길거리에 가면 아마 흔할 거예요.”“객관화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충분히 객관화했다고 생각해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좀 많이 들었거든요.”“…은호 씨한테요?”
지혜가 놀라며 은호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빙그레 올라간 저 미소를 보자 그녀는 입술을 다물었다.
시선을 살짝 흘린 채 숨을 들이마셨다.
“……어렵습니다.”
“갑자기 어렵다뇨? 뭐가 어려워요?”“국장으로서 얼굴을 하고 싶은데, 은호 씨 앞에서는 이게 참 어려워집니다.”“이미 훌륭한 국장님이신데요?”
칭찬이 밀려오자 지혜는 귀 옆으로 넘긴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쥔 채 손끝을 떨었다.
언제나 굳어진 채 익숙하던 표정이 풀어질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호 씨.”“에이, 인사는 저번에 했잖아요. 이미 충분해요. 너무 배가 부를 정도예요.”“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진심은 이미 전해졌어요.”
담담한 은호의 대답에 지혜는 그제야 참았던 감정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은호 씨에게 말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신뢰의 의미로 은호에게 말했다.
이걸 이뤄달라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약점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 된 사실이 단순한 변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더 좋았다.
그런 마음이었다.
“드디어.”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은호는 자신의 작은 그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
환수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도현을 잡았습니다.”
이토록 한줄기 내려온 빛과 같았을까.
길고 길었던 바람을 들어줘 놓고, 은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다독였다.
―국장님의 마음이 이제는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드디어, 원수를 잡았습니다.”
지혜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며 눈웃음이 뒤따랐다.
은호는 덩달아 웃었다.
마치 이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활짝 반겼다.
“아직 더 남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들뜨고 싶었습니다.”“들뜨셔야죠. 원수를 잡았는데요. 더 기뻐하셔도 돼요.”“아뇨. 조금 더 뒤로 미루겠습니다. 잡아야 할 놈들이 아직 있으니까요.”
정화자.
그 길로 가는 건 이도현이 안내할 테지.
‘하긴 밝혀야 할 사실도 있고.’
은호 역시 생각했다.
티토를 지배한 환수.
식물을 지배한 누군가.
둘을 찾아야 했다.
“서은호 씨, 혹시 기억하십니까?”“어떤 거 말이에요?”“환수 관리국을 염탐했던 자 말입니다.”
“……아. 맞다.”
은호는 본인의 이마를 때렸다.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 있을까.
HWM이 정화자가 꾸민 봉사단체에 후원을 보냈던 내역이 있었다. 하나율이 이를 위조했다는 사실을 두고 의견을 나눌 때 벌어진 일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사실로 분류가 되어 머릿속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일이 많았잖습니까?”
“…그렇죠?”
“정화자였습니다.”
지혜의 대답에 은호는 잠깐 탄식했다.
진짜 정화자였다.
정화자가 환수 연구소를 노리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었다.
“혹시, 형도…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도 알고 있나요?”“어떤 거 말씀이십니까?”“HWM이 초능력 관리국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하나 나왔어요.”“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새로운 게 나와버렸다.
지혜의 표정이 싹 변했다.
“이걸 확인해 보려면 지금 초능력 관리국의 땅이었던 그곳이 과거에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아봐야 해요. 그리고 초능력 관리국 밑도 좀 파봐야 하고요.”“밑을 왜 파야 하는 겁니까?”“확인해야 할 게 있거든요. 지금 이해가 가지 않으실 거라는 거 알아요. 사실 저도 좀 뒤죽박죽이니까요.”“털어달라는 말씀입니까?”
지혜는 은호의 말을 가장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맞아요. 하나율과 이도현한테 털어야 할 이야기가 있긴 하죠.”“말씀해보시죠. 초능력자는 생각 이상으로 튼튼하니까요.”
지혜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의욕을 드러냈다.
* * *
“…하.”
은호는 숲에 발을 디디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미루지 말자고 생각해 다시 그 숲을 찾아왔다.
이상하게 나았던 상처가 욱신거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
은호는 한 걸음 정도 걷다가 멈췄다.
식물들이 움직여 자신에게 잎사귀와 줄기, 그리고 나뭇가지 등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가오던 식물들이 그대로 멈췄다.
미안해하고 있는지, 축 늘어졌다.
“…미안해!”
은호는 당황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렇게 감정 표현을 선명할 수 있구나 싶었다.
“놀래서 그랬어.”
은호는 먼저 손을 뻗어 식물들을 만졌다.
기쁜 듯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에 은호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너희들은 괜찮은 거 맞지?”
식물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축 늘어졌다.
시선을 내리자 위그드라실이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사전에 합의한 내용이기에 은호는 가만히 있었다.
잠깐 기다리던 은호는 위그드라실을 쓰다듬으며 말렸다.
대화가 꽤 길어졌으니까.
위그드라실은 마치 한숨을 내쉬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제야 식물들이 은호의 몸에 손을 뻗었다.
“있잖아, 식물 친구들아.”…몰라.
대답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상당히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모른다고…? 누가 너희들에게 그랬는지, 몰라?”응.
대답이 들려왔다.
왜 모른다는 걸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일 텐데.
다 봤을 텐데.
사아아아아.
갑자기 오한이 일어났다.
식물들이 급히 좌우로 비켜셨다.
그 끝에 누군가 있었다.
뒤늦게 맹금류의 눈을 썼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누구인지 봤지?”
은호의 말에 식물들이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잔상과 바위뿐이었다.
‘…분명히 날 봤어. 날, 확인하러 온 거야.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지만 은호는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보았으니까.
그 형태, 누가 봐도 환수였다.
식물들에게 힘을 쓴 누군가가 환수란 소리였으니까.
은호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