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3화(244/302)
243화. 은호는 지금 자
“…형.”
은호는 가장 먼저 그 소식을 태호에게 알렸다.
이건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말꼬리를 늘여놓던 태호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은호가 방으로 찾아와 꺼낸 말은 너무도 거대했다.
사람들이 알아낼 수 없는 환수의 세계였기에 더 아득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식물들을 존중하는 환수가 도리어 식물을 지배했고, 저번에 은호 씨가 말한 그 마나석과 관련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거지?”“맞아요. 약속을 깬… 환수인 건 분명해요.”“사방에서 난리네, 사방에서.”
“형.”
“…그래.”
“왕을 만나게 해줘요. 형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
그 물음에 태호는 말문을 삼켰고, 얌전히 웅크려 있던 흑견이 그대로 일어났다.
“인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멍멍이 형님도 알잖아. 언제가 되었든 나는 왕을 만나야 해. 이미 너희끼리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됐어. 사람이 개입해야 해. 너희를 도와줘야 한단 말이야.”“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꺼내는 말인가?”
흑견이 걸어와 은호를 빤히 보았다.
“잠깐만, 친구.”
윈디드가 흑견을 말렸다.
“넌 빠져라.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니까.”“내가 이 일에 어떻게 빠져. 우리라고 하잖아. 식물들을 지배해서 은호를 그 꼴로 만든 존재가 우리라고 한 거 너도 들었잖아!”
윈디드가 다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약속을 깬 존재가 그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다.
원래도 선을 넘었지만, 이건 달랐다.
어서 왕한테 알려야 하는 사실이었다.
“…알아.”
은호는 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멍멍이 형님이 얼마나 싫어하는 일인지 알아.”“알면서 인간은 왜 자꾸 이러는가? 관여할수록 인간이 괴롭다는 걸 왜 모르는가?”“…하지만 내, 가족을 공격했잖아?”
은호는 흑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흑견이 저 몸으로 가시를 막지 않았으면 다 죽었다.
윈디드 역시 뒤늦게 알았다.
대상이 자연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흑견도, 윈디드도 반응하는 게 늦었다.
굳이 자신들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그 공격을 맞았을 거고, 그게 자신들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번 일로 가장 불안하고, 최악의 가정을 했어.”
“그게 무엇인가.”
흑견은 찌푸려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은호가 최악이라는 말까지 꺼낼 정도였다.
“환수와 인간이, 손을 잡았다고 생각해.”
“……뭐라고?”
놀란 소리는 태호에게서 들려왔다.
“그 환수는 초능력 관리국에서 있었던 일을 숨기려고 했어요. 내가 봤던 마나석. 그걸 숨기려고 했겠죠.”“마나석을 가져간 곳은 과거 HWM이라고 했지?”“마나석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굳이 그곳에 힘을 놔둔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은호는 앞 머리카락을 쓸다 말고 쥐었다.
머릿속에 여러 사실이 소용돌이쳤다.
정화자들이 환수를 죽이기 전에 약속을 깨기 위한 실험을 했던 사건이 맴돌았다.
어디에서 ‘왕은 너희를 버렸다’라는 음성을 얻었나 싶었는데, 환수에게 얻었다면 이상할 건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그 전에 환수와 인간이 손을 잡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그 가정이 성립된 셈이었다.
“우리가 바라던 건 환수와의 공존이었어요. 하지만 증오로 가득 찬 환수와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이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최악이네.”
태호는 질겁하며 대답했다.
어느 쪽에서도 최악이었다.
기존에 있는 환수와 인간 사이의 갈등이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칠 테니까.
고스덕과 디인팅 사건으로 환수를 새롭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채 남지 않겠는가.
“이 모든 사건이 왕을 공격하는 행위가 된다면 형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아니. 절대 그럴 수 없지.”
은호는 대답을 들은 뒤, 흑견을 바라보았다.
“왕이 사라지면 멍멍이 형님이 사라져. 삐약이가, 아니, 그냥 너희가 사라진다고.”
왕이 재해를 막기에 사람들은 환수라는 존재를 인정했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정말 역겹지만, 지금은 그랬다.
사람들이 환수를 받아들이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환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재해를 위해 환수가 필요한 것처럼 그 재해를 이용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면 될 테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너희가 사라지는 게 싫어. …끔찍해.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
왕이 사라질 때 나오는 결과를 알고 있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너무도 싫어했다.
그냥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본능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 막아야 하고, 막으면 달라지는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멈춰?”
왕을 지켜야 하는 명확한 목표가 생겼다.
왕이 사라진 뒤에 발생하는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손길이 닿을 때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멍멍이 형님이 싫어하는 거 알아. 나도 그 말을 너무나도 들어주고 싶어. 그렇지만, 너희가 사라질 미래를 견딜 수 없어. 그래서야.”
은호는 손을 뻗었다.
흑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 상황이 언제나 인간을 휩쓸어갈 테니까. 특별함은… 좋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맞아, 친구. 특별함은 많은 걸 강제로 하게 하니까.”
윈디드 역시 알고 있었다.
왕의 곁에서 많은 걸 보았다.
왕이 가진 특별함이 왕을 어떻게 억누르는지.
은호도 비슷했다.
지금 얼마나 아득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까.
“우리를 위한다는 인간의 말이 뭔지 알고 있다. 이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말을 반길 수가 없다. …이해해주겠나?”“당연하지. 나는 멍멍이 형님을 이해해.”
은호는 미소로 화답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었다. 다르다는 이유로 흑견이 자신을 이해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걸로 충분했다.
“형.”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태호를 불렀다.
“부탁해요. 내가 왕을 볼 수 있게 도와줘요.”
제발.
은호는 간절히 부탁했다.
태호는 낯선 은호의 표정과 목소리에 이마를 부여잡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왕이 있는 곳은 그 어떤 곳보다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이걸 은호가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해 어떤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거긴 정말 달랐다.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은호를 불렀다.
은호는 한 번도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절차상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곤란해질 걸 알고 있었는지 몰라도 은호의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윈디드는 은호를 돕고 싶었다.
왕도, 은호도 서로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럼, 이뤄줘야지.
“어쩌면 태호의 도움보다 나와 함께 가는 게 더 편할지도 몰라.”
거쳐야 할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삐약아.”
은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왕을 보러 가는 게 쉬웠다면 애초에 윈디드가 먼저 말하지 않았겠는가.
같이 지내는 중간중간 자신의 눈치를 살필 때도 있다는 걸 왜 모를까.
왕의 수호자라는 그 자리도 버거운데 짐까지 안기고 싶지 않았다.
“은호. 네가 바라는 걸 이뤄주고 싶어.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윈디드는 은호의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정말이었다.
저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 어린 건 강한 신뢰였다.
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은호 씨.”
태호 역시 깊은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
위험성은 알고 있었다.
이걸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흑견을 통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뒤는 어려울 거야. 그곳에 내가 설치한 기계들이 가득하니까.”
어렵지만,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해야지.
해내야지.
“아. 다시 말해야겠네. 내가 만들었으니까, 기계를 멈추는 법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태호가 씩 웃었다.
오만함이 어렸다고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형.”
“내가 감당할 수 있어. 그동안 은호 씨가 감내해야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아? 그거랑 비교하면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안 그래?”
은호가 이곳을 위해, 환수를 위해 해낸 게 얼마나 많은가.
그저 아주 조금만 갚는 것뿐이었다.
정부에게 목 좀 내주면 어떨까.
뻗대는 건 가장 잘하는 거였다.
애초에 맨땅에 머리를 들이밀며 이곳까지 왔다.
“가. 왕을 만나러.”
“왕을 만나러 가자, 말썽꾸러기.”
태호와 윈디드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아, 물론, 시기는 좀 조율해야지.”“…그런데 바로는 못 가. 가장 경비가 덜한 시기를 알거든.”
태호와 윈디드가 또 비슷하게 말을 꺼내자 은호가 크게 웃었다.
태호와 윈디드는 서로를 보았다.
혹시 서로 같은 말을 했는가 싶어 물끄러미 보았다.
같은 마음이었다.
눈빛을 보고 통하자 서로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 * *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집에서 공을 차며 놀던 폭시와 레비아탐, 그리고 라비가 그대로 멈췄다.
텔레비전 근처에 웅크려 있던 일렉트의 단춧구멍 같던 눈마저 가늘어졌다.
‘지금, 은호 자는데.’
그대로 날아가 은호가 알려준 대로 화면으로 다가갔다.
화면에 비친 모습을 확인하던 일렉트가 입을 열었다.
“인간이 아니라. 다른 존재야.”“누가 찾아왔더냐?”
라비가 헐레벌떡 뛰려고 하자 폭시가 라비를 잡았다.
“은호가 모르는 인간이 오면 은호를 부르거나, 조용히 하라고 했어.”“그런데 일렉트가 인간이 아니라고 했엄.”“맞느니라. 다른 존재가 오면 은호는 아주 환하게 반겼다!”
레비아탐과 라비의 말에 폭시는 당황해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럼… 열어볼까?”
폭시가 슬쩍 물었다.
“좋다!”
라비가 찬성했고, 일렉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누구인지 볼래.”“은호를 깨우는 건 어떨깜?”
레비아탐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지금 흑견도 윈디드도 나간 상황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은호가 집에 올 때, 좀 지쳐 보였어.”
그런 감정은 처음이지 않을까.
얼마나 지쳤으면 평소에 낮잠을 자지 않은 은호가 잠을 청했다.
피곤해 보였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밤에 잠을 좀 못 잤어.
은호가 침대에 누워서는 웃었다.
근래 계속 잠을 못 잤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날일 때문일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나 봐.”
폭시가 귀를 내리며 말했다.
자신들한테도 말해주면 좋을 텐데.
‘멍멍이 형님하고 삐약이는 알고 있겠지?’
부러웠다.
하지만 은호가 왜 자신들에게 말하지 않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컸으면 좋겠어.
그 깊은 고민을 자신들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는 은호의 배려였다.
숲에서 은호가 아주 큰 상처를 입었던 일도 그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응. 나도 그래보였엄. 그 숲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일이 또 일어난 걸깜?”
레비아탐은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요새 중간에 깨서 은호를 보곤 했다.
괜찮은지, 아닌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된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은호는 깨어있었다.
―깼어? 잠이 안 와? 따뜻한 우유라도 줄까?
은호는 늘 깨어있는 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날은, 정말 무서웠느니라.”
활기차던 라비마저 시무룩했다.
이겨서 기뻤다.
이도현은 나쁜 인간이었으니까.
실컷 힘도 써서 기뻤다.
자신의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함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그 짧은 사이에 시야가 까맣게 변하더니 피 냄새가 났다.
은호의 피 냄새였다.
다른 피 냄새와 달리 향긋해 알 수 있었다.
그게 왜 나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눈물이 났다.
막연하게 몰려오는 공포가 너무도 컸다.
레비아탐과 폭시, 그리고 일렉트가 다가가 라비를 안아주었다.
“…나도 그래.”
일렉트가 꼬리를 축 내리며 말했다.
분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분했다.
띵동.
또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다들 꼬리를 바짝 들었다.
“내가 보고 올게.”
폭시는 문으로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작은 틈으로 보자 그곳에 분홍색 털을 가진 환수가 있었다.
다리가 무척 길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띵동.
다시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폭시는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나쁜 존재는 아니야.”
폭시는 말을 꺼낸 뒤, 자신들 전용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고개를 올리자 새처럼 생긴 환수가 보였다.
목이 저번에 봤던 백조처럼 길었다.
부리가 새카만 색이었고, 몸통은 목과 다리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다.
환수가 고개를 내렸다.
“안녕.”
“안녕.”
폭시는 인사했다.
“있잖아. 여기에 인간이 사는 집 맞아?”“은호를 찾으러 온 거야?”“맞아! 그 이름이었어.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아?”“쉬잇. 은호 지금 자.”“자고 있어…? 언제쯤 깨어날까?”“은호가 요새 잠을 못 자서, 꽤 오래 잘 것 같아.”
“…그래?”
환수는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깨울 수도 없고. 오히려 미안했다.
“자는 와중에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해.”
환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부리 끝으로 날개 안쪽을 뒤지다 반짝반짝 빛나는 걸 물어서는 떨어트렸다.
“…이런 거 안 줘도 되는데.”“미안해서 그래. 그럼, 갈게.”
환수는 아쉬움을 숨긴 채 그대로 돌아섰다.
밀려드는 실망감과 걱정이 너무도 컸기에 폭시는 괜히 초조했다.
그냥 보내도 될까.
‘아니!’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조바심은 은호한테 옮은 걸까.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폭시는 급히 말을 꺼내서는 바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도움이 필요해서 왔대.”“은호는 지금 자고 있는데? 도와줄 수 없는데?”
일렉트가 앞발로 몸통을 매만졌다.
“그럼, 내가 깨우고 오겠느니라!”
“안 돼, 까망아!”
폭시가 다급히 라비를 잡았다.
“맞암. 그건 안 됨.”
“하지만 은호가 깨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라비의 말에 잠깐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은호 대신, 우리가 도와주잠!”
레비아탐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