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6화(246/302)
246화. 은호는 지금 자(4)
“…진짜네?”
환수는 긴 목을 내밀며 은호를 이리저리 보았다.
저 꼬맹이들이 말한 대로 뭔가 반짝반짝거렸다.
소문처럼 거부감도 없고, 원래 여기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환수는 꽃과 은호를 번갈아보았다.
뭔가 닮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응? 뭐가 진짜라는 거야?”
은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무슨 말을 나눴을까.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친구가 원했던 꽃이 이거야?”“…어떻게 알았어?”
“들었어.”
‘……누구한테 들었다는 거야?’
환수는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 이상 물어보고 싶진 않았다.
“친구가 왜 이 꽃을 원했는지 알겠는데?”
은호는 꽃을 보며 칭찬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집에 가져가 심고 싶을 정도였다.
“아주 아름다운데?”
은호가 웃자 환수는 잠깐 멈칫거렸다.
보고만 있어도 따뜻한 미소였다.
잠깐 넋을 잃어버렸다.
“친구야. 혹시 괜찮다면 너의 집에 가도 될까?”
“왜…?”
“이 꽃을 심어주고 싶어. 너희에게 특별한 꽃 같았으니까. 매번 보고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은호의 물음에 환수는 경계심보다는 뭉클거림이 더 깊이 느껴졌다.
저 모습이 어떻게 거짓말일까.
은호는 멍하니 있는 환수를 보며 다급히 말을 꺼냈다.
“아, 거절해도 괜찮아. 그냥 내 제안일뿐이니까.”“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어?”“당연하지. 우리 꼬맹이들이 용감하게 해낸 일이니까.”
꼬맹이들을 기특하게 바라보자 꼬맹이들은 저마다 우쭐거린 채 입꼬리를 가득 올렸다.
* * *
“…여기야.”
환수는 ‘백학’이라는 종이었다.
절벽 위에 커다란 둥지로 안내했다.
꼬맹이들과 은호가 아득한 경치에 혀를 내둘렀다.
여길 어떻게 올라갈까.
백학은 저들의 표정을 보며 살짝 머뭇거리다가 뒷말을 이었다.
“여기가 내 집인데, 괜찮겠어?”“…모르겠엄. 여길 올라갈 수 있을깜?”
레비아탐은 기겁했다.
너무도 까마득했다.
“나는 올라갈 수 있어.”
일렉트가 우쭐거렸다.
날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못 나는뎀.”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살짝 내려갔다.
“걱정하지 마, 레비아탐.”
은호는 가방에서 피를 뽑는 기계를 꺼냈다.
손등을 찌르자 환수가 깜짝 놀랐다.
“왜, 왜, 왜 그러는 건데? 안 아파? 그러면 아프다고!”“…살짝 따끔한 정도라서 괜찮은데.”
덩달아 놀란 은호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누가 봐도 상당히 이상해질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이게 아니라면 올라갈 수가 없어서, 그래.”
식물에게 부탁해야 했다.
지금 흑견도, 윈디드도 없어서 저 절벽 위로는 그냥 갈 수가 없었다.
기계로 뽑아낸 피를 뿌렸다.
그대로 목소리를 내려던 그때, 갑자기 어렴풋이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악!”
그 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은호가 백학을 보자 부리를 살짝 벌렸다.
“…아, 아직 아닌데? 아직 예정일이 멀었는데?”
조산이라는 소리였다.
이건 위험했다.
“식물 친구들아. 우리를 저기 위로 데려가 줘.”
은호의 부탁으로 땅에서 자라난 식물들이 은호를 포함한 꼬맹이와 백학마저 같이 데려갔다.
“애들아. 잠깐 여기 있어봐.”
순식간에 꼭대기에 도착한 은호는 꼬맹이들을 멈춰 세웠다.
“…여, 여보. 여보!”
백학은 아내를 부르며 날아갔다.
의식을 잃었고, 피가 보였다.
그대로 생각이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 어, 어떡…….”
“친구야!”
은호가 백학을 붙잡으며 세게 부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생긴 건 새를 닮았지만, 환수였다.
기존의 동물과 번식 방법이 다른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알을 낳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걱정하지 마.”
은호는 연구소로 공간을 열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손이 반사적으로 덜덜 떨렸다.
“형!”
<…무슨 일인데?>
“지금, 임신한 백학을 봤는데요. 아무래도 조산인 모양이에요.”<조산…? 바로 준비하고 있을게.>
“그쪽으로 데려갈게요. …그쪽으로.”<진정해, 은호 씨.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알아. 새 모습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을 낳는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백학은 아니야. 새끼를 낳아. 알겠지? 진정해.>
태호가 달리는지 발소리가 섞였다.
“알겠어요.”
은호는 그 말을 들은 뒤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절벽 위에도 피를 뿌렸다.
“식물 친구들아.”
은호의 부름에 그곳에 새로운 식물들이 자라나 백학의 아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저쪽으로 옮겨줄래?”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공간 너머로 움직였다.
“친구야. 정신 차려.”
은호는 말을 꺼낸 뒤, 다시금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사실 혼란스러웠다.
‘아차!’
은호는 이마를 때렸다.
바로 뒤를 보았다.
그곳을 향해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애들아. 먼저 연구소로 가 있을래?”“왜 그래야 하더냐?”
라비는 꼬리를 올렸다.
은호가 피운, 동굴 속 꽃을 다시 보고 싶었다.
“아기가… 나올 것 같대!”
은호가 크게 꺼낸 말에 꼬맹이들은 깜짝 놀랐다.
폭시는 앞으로 걸어갔는데, 앞발과 뒷발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마치 삐거덕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 어, 어떡해!”
폭시가 깜짝 놀랐다.
아기가 어떻게 나오는 건지 몰랐다.
“왕임! 왕이 물어다 주는 게 아니었엄?”
레비아탐이 더듬이를 바짝 올렸다.
이건 그야말로 대 충격이었다.
“왕이? 그냥 전기와 함께 나오는 게 아니었어?”
그 충격을 고스란히 일렉트가 받았다.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소리더냐? 아기는 하늘에서 별과 함께 내려오는 거다!”
라비는 계속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애들아, 먼저 가줘. 잠깐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아.”
평소라면 꼬맹이들을 챙기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은호의 부탁에 꼬맹이들은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공간 너머로 향했다.
어딜 봐도 충격이었다.
은호는 꼬맹이들이 들어간 걸 보고는 그쪽 공간을 닫았다.
연구소는 맞지만, 백학과 같이 가려는 곳과 다른 곳이었다.
저쪽은 환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자신이 가려는 쪽은 아윤이 있는 곳과 가까웠다.
“친구야.”
은호는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백학을 불렀다.
“친구야.”
다가가서 백학의 날개 위에 손을 올렸다.
“넌, 이제 아버지야. 알고 있지?”
은호는 백학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지금 모두를 지켜야 하는 건 너야. 정신을 잡아야 해.”“…맞아. 내가 아버지야.”
백학은 은호의 말에 고개를 굳건하게 끄덕였다.
지금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킬까.
반드시 지켜야 했다.
백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간 너머로 움직였다.
* * *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태호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옆을 힐끔 바라보았다.
누가 기다릴 것도 아니고, 수술실 앞에는 의자가 없었다.
이렇게 보내고 늘,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옆을 힐끔 보자 은호 옆에 백학이 존재했다.
그대로 웅크려 앉아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수술실 앞에서 사람과 환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눈을 비비고 봐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 사이에 은호가 있었다.
“…백학은 괜찮대?”
태호가 물었다.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이는 대로 괜찮지 않아요.”
백학이라는 이름과 달리 분홍색 털을 가진 환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몸이 정말 새하얗게 변해 이름에 딱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은호는 교감의 힘을 퍼트려 백학의 날개를 살포시 쥐었다.
그제야 백학이 은호를 보았다.
“괜찮을 거야.”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어. 좋은 아빠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주자고 그렇게 생각했어.”
백학은 멍한 눈으로 겨우 말문을 열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몰랐다.
아직 날개에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에 백학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힘없이 내려간 얼굴이 바닥에 닿았다.
“꽃을 보여주면… 아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멍청한 생각이었어! 내가, 내가 옆에 있어야 했다고!”
머리로 바닥을 찧었다.
그깟 꽃이 뭐라고.
막달이 다 되어가면 위험한 걸 알면서도 그 꽃 하나에 정신이 팔렸다.
“얼마…나 무서웠겠어. 나 없이 얼마나 무서웠겠어.”
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곁에 있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있어야 했는데.
은호는 자책하는 백학의 모습에 손을 뻗어 끌어안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말도, 괜찮을 거란 말도, 전부다 백학에게는 버거울 테지.
“은호 씨.”
“네, 형.”
“위험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줘. 반드시 둘 다 구할 거니까.”
자신만만함이 가득한 태호의 말과 표정에서 은호는 안도를 느꼈다.
이 감정을 백학 역시 느껴주길 바라며 그대로 말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백학에게는 이 말마저 닿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질 것만 같았지만, 은호는 감정을 다잡았다.
자신이 먼저 나가떨어지면 어쩌겠는가.
복도에 갑자기 발소리가 들렸다.
꼬맹이들이었다.
냄새를 맡고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그대로 달려 백학에게 달려들었다.
그제야 백학은 고개를 올렸다.
“……너희들.”
“아저씨는, 분명히 좋은 아빠가 될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폭시가 확신을 담아 말을 꺼냈다.
“맞느니라. 우리 아빠도 여기서 낫고 있다!”“응응! 여기 인간들은 다 치료해줨! 내 혀도 고쳐줬엄.”“맞아. 어떤 존재의 아픔도 다 낫게 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꼬맹이들이 한 명씩 건네는 서툰 위로에 백학은 날개를 펼쳤다.
착하고, 따뜻한 아이들이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꼬맹이들이 말이 맞았다.
벌써 약해질 수 없었다.
아빠가 될 테니까.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있을 텐데, 벌써 무너지면 되겠는가.
반드시 이 품에 아내도, 아이도 힘껏 안을 셈이었다.
‘저 아이들이 믿는 인간들을 믿고 기다리자.’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백학은 꼬맹이들을 바라보았다.
“맞아. 나는, 정말로 좋은 아빠가 될 테니까.”
다시 기운을 차린 백학의 모습에 은호는 미소가 감돌았다.
꼬맹이들의 따스함이 백학의 자책과 절망에서 구해준 셈이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 따스함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수술실에서 우렁찬 울음이 울렸다.
백학은 그대로 일어났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짜 태어난 걸까.
괜찮은 걸까.
아내는.
수없는 생각이 맴돌아 수술실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친구야. 잠깐만 기다려줘.”
은호는 백학을 말렸다.
“…정말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
다시금 말을 꺼냈지만, 섣불리 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모든 건 기다린 뒤에야 나올 수 있었으니까.
1분이 1시간 같던 순간, 수술실이 열렸다.
아윤이 밖으로 나왔다.
“공주님이네요. 둘 다 무사해요.”
환한 눈웃음에 백학은 그대로 무너졌다.
은호가 말을 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니까.
참았던 감정을 다 쏟아내며 오열했다.
* * *
“…어떻게, 너무 작아.”
백학은 유리에 매달려 날개를 가득 펼쳤다.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부리가 닿지 않게 최대한 움직여봤다.
솜털도 없는 백학의 새끼가 꼬물꼬물 움직였다.
손아귀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진짜 작아.”
발판 위에 올라간 폭시는 귀를 파닥파닥 움직였다.
“나도 저렇게 작았을깜?”
레비아탐은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힘만 줘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저렇게 안 작았을걸?”
일렉트가 꺼낸 말에 라비는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창문에 매달렸다.
“나도다. 나도 저렇게 안 작았다.”“아니야. 다 작았어.”
은호가 꺼낸 말에 꼬맹이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은호돔?”
레비아탐의 물음에 은호는 키득거렸다.
“당연하지. 나도 작았어. 물론, 저렇게는 아니겠지?”“은호도 엄마랑 아빠가 있더냐?”
라비가 묻자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있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느니라!”
“나도.”
은호의 대답에 라비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눈을 깜박거렸다.
라비를 제외한 폭시와 레비아탐, 그리고 일렉트에 이어 백학까지 은호를 보았다.
갑자기 시선이 쏠리자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안 봐도 돼.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은호를 보며 백학의 눈이 깊어졌다.
“…너를 사랑했을 거야. 이건 진심이야.”
아빠가 됐기에 알 수 있었다.
아이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고마워.”
백학이 아버지의 눈을 했기에 은호는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아차, 이거 받아, 친구야.”
은호가 내민 건 꽃이었다.
백학이 찾아다니던 그 꽃.
“가져다줘야지. 웃게 해주고 싶다고 했잖아?”“…나도 까먹었는데.”
은호는 얼떨떨한 표정을 한 백학의 등을 살짝 밀었다.
“가봐.”
백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움에 당장이라도 울먹일 것만 같았다.
“우리도 갈까?”
은호는 자리를 떠나는 백학을 보며 물었다.
아.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너희들 오늘 너무 고생 많았어. 너희가 저 아이도, 저 가족도 살린 거야.”
이건 정말이었다.
“정말이더냐…?”
라비의 물음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너희의 호의가 저 가족을 살린 거야.”
꼬맹이들이 백학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이 광경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기분이… 이상햄.”
레비아탐은 가슴에 앞발을 올렸다.
두근두근.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나도…….”
폭시의 눈가가 빨개졌다.
기쁜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구했다니.
“다들 정말 잘했어.”
은호는 모두를 끌어안았다.
* * *
모두가 잠든 날, 은호는 술을 꺼냈다.
“…안 먹어. 내가 먹는 거 아니야.”
은호는 으르렁거리는 흑견을 보자마자 키득거렸다.
술과 잔을 들고 마당으로 다가갔다.
“그럼, 왜 꺼내는 것인가?”
흑견은 불만을 털어냈다.
술잔은 세잔이었다.
“하나는 우리 아버지 거고, 하나는 우리 어머니 거고, 하나는 우리 형 거야.”“죽은 자는 먹을 수 없다.”“알아. 제사고 뭐고 그냥 내 마음대로 기리는 거지.”
“갑자기 말인가?”
“그냥, 오늘 보니까 생각이 많이 나더라.”
아버지가 된 백학을 봤기 때문일까.
은호는 마당에 주저앉았다.
“형은 집을 나간 어린 날 따라가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었어.”
은호는 술을 한 잔 따랐다.
“어머니는 형의 사고 소식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은호는 술 한 잔을 더 따랐다.
“암이라고 하는 못된 병이 있는데, 아버지는 두 사람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이 병에 걸렸어. 초기라고 했는데, 뼈로 암이 전이 되면서 아주 고통스럽게 앓다가 돌아가셨어.”
나머지 한 잔에 마저 따랐다.
―…너를 사랑했을 거야. 이건 진심이야.
백학이 건넨 그 위로가 얼마나 크게 와닿았는지 아마 모르겠지.
“날 원망하면서 지냈어. 내가 가족을 망치고, 세 사람을 그렇게 보내버렸으니까.”
“그저 우연이다.”
“계속 날 원망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나한테 벌을 주고 싶었어. 끝없이 나를 몰아갔어. 쉴 새 없이 내 목을 졸랐던 거야.”
흑견은 이어진 은호의 말에 머리를 짓눌렀다.
“그건, 아주 못된 생각이다.”“맞아. 못된 생각이었어.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이었고.”
은호는 키득거렸다.
소중한 나.
이걸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담았던 술을 하나씩 뿌렸다.
무겁게 지고 있던 여러 생각도, 마음도 죄다 뿌렸다.
“여기서 오래오래 살다가, 따라갈게요.”“가긴 어딜 가는가?”
흑견이 다가와 앞발로 은호를 감쌌다.
“인간은 아무 곳에도 못 간다.”
고개를 휙 돌린 채 꺼낸 말에 은호는 키득거렸다.
“멍멍이 형님이 가지 말라고 하네요? 이러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냥 행복하게 살아가야지.
은호는 다시금 3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짠.
셋 다 부딪치고는 하나씩 입에 넣었다.
“지금 왜 마시는 건가?”
흑견이 놀라 잔을 빼앗았다.
“음, 기분이… 좋아서?”
“잠이나 자거라!”
“잠깐만 있을래.”
은호는 바닥을 두드렸고, 흑견은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그곳으로 걸어가 웅크렸다.
은호는 그대로 흑견의 몸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별 중 딱 세 개가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숨을 들이켰고, 그대로 내쉬었다.
우연이겠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천천히 은호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조심히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