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7화(247/302)
247화. 나는 네가 부럽다
윈디드는 주변의 나무들이 작게 보일 만큼 커다란 나무를 향해 걸었다.
저 안에 왕이 있었다.
왕은 빛 그 자체라 왕의 존재만으로 나무들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자라났다.
“왕을 만나러 왔나?”
윈디드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오늘은 그 존재가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왕을 대신해 여러 일을 처리해주는 2인자라고 해도 될 존재였다.
언제봐도 머리 위에서 머리 뒤편으로 굵고 아름답게 뻗은 뿔은 정말이지 감탄이 흘러나왔다.
“맞습니다. 오늘은 계셨네요.”
윈디드가 웃자 환수는 덩달아 눈웃음을 지었다.
“길이 좀 엇갈렸을 뿐, 왕께 자주 찾아뵀어.”“…아. 제가 갈 때마다 없으셔서 많이 바쁘신 줄 알았어요.”“나도 네가 없어서 섭섭하더라.”
능글맞은 대답에 윈디드는 가볍게 웃었다.
“아차, 왕께서는 막 잠들었어.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자제 좀 해줘.”“또, 오래 주무시지 못하셨습니까?”“근래 왕께서 너무 무리하셨다는 거 알고 있지 않나.”
환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걱정이 묻어났다.
“계속 힘으로 재해를 누르시고, 무언가를 보시고, 전달하시고, 몸이 수십 개라고 해도 모자라지. 이러다 뭘 놓치는 게 있을까 걱정이야.”“뭘 놓친다는 말이에요?”“여러 가지 말이야. 내가 모르는, 하지만 왕께서는 아시는 거 있지 않겠나?”
환수의 미소가 길어졌다.
가끔 저렇게 알쏭달쏭한 말을 꺼낼 때가 있었다.
“그럼, 제가 가서 따끔하게 말해놓을게요.”“…너도 못 말리겠네. 그나저나 오늘은 왜 그냥 왔나? 약속을 깬 존재들은?”
“그게, 음…….”
윈디드가 말꼬리를 늘리자 환수는 앞발을 휘저었다.
“조용히 들어가 봐. 왕께서 너무 깊게 잠드시면 다시 나오고. 아니다, 무슨 주책이람. 알아서 잘할 건데.”
환수의 말에 윈디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나무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양쪽으로 선 왕의 수호자들이 가득했다.
길게 이어진 행진 같았다.
그 끝으로 익숙하게 걸어가 나무 앞에 섰다.
조용히 윈디드는 숨을 내쉬며 입구를 막은 문을 살짝 열었다.
빛이 퍼져 나왔다.
“들어와요.”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윈디드는 민망한 얼굴로 들어왔다.
빛이 가득했다.
“…저 때문에 깨셨어요?”“아닙니다. 그대의 몸에 묻어난 자연의 대리자 냄새로 알았습니다.”“냄새를 지웠는데, 어떻게 알았습니까?”
땅에 몇 번을 뒹굴었는지 몰랐다.
향기가 가장 센 꽃들 위에도 뒹굴었고.
윈디드는 놀람을 드러내며 왕을 바라보았다.
“나는 알아야죠.”
왕은 말을 끝내고 윈디드를 보았다.
무슨 하려는지 조용히 기다렸다.
“주무시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찾아봬야 했습니다.”
왕의 입가에 긴 호선이 자리를 잡았다.
꼭 윈디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것만 같았다.
“그분이, 날 보러오겠다고 합니까?”
왕은 설렘을 담아 물었다.
“…맞아요. 꼭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아무래도 그분도, 알아챈 모양입니다.”
조금 전 설렘은 싹 지워지고,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윈디드의 물음에 왕은 앞발을 뻗었다.
보면 볼수록 찬란한 저 빛에 눈이 멀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모든 건 다 알게 됩니다. 이건 그대가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다정한 목소리에 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왕이시여.”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말하려는 그 말까지, 다.”
약속을 깬 자가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 말도.
지금 왕의 상태는 괜찮냐는 말도.
윈디드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먹먹해졌다.
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뭘, 알고 있는 걸까.
왕이 짊어진 거대한 것들이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대여, 그분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쯤 아마 허공을 떠도는 기분일 겁니다.”
막연한 막막함.
자신이야 늘 익숙하고, 언제나 떠맡았던 것이지만, 자연의 대리자는 아니었다.
숨통이 짓눌리는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이 움직이고, 그 소문이 식물들을 통해, 우리를 통해 희망을 전해줬습니다. 그러니, 그대는 내가 아니라 그분을 지켜야 합니다.”“왕이시여. 저는, 당신의 수호자입니다.”
“레이샤.”
윈디드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왕은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윈디드는 부리를 다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움직이면 이 세계는 죽습니다.”
억눌렀던 재해가 순식간에 터질 테지.
이 땅의 생명을 지워버릴 때까지 재해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자신들도 죽을지 몰랐다.
“…그분이 내게, 아름다운 바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찬란한 태양, 그 자체를 담은 듯한 화려한 가면 밑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에르쿠나를 통해 알았다.
에르쿠나의 눈을 통해 보았다.
맑고 깨끗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대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바다에 피어난 분홍꽃나무를 보자 마음 깊이 묻어난 위로가 느껴졌으니까.
“레이샤. 그분이 죽으면, 나는 죽습니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그분이 마지막입니다. 그분이 죽으면 자연의 대리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확신이 내려졌다.
왕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절대로 틀린 소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이시여. 우리는 자연의 대리자 없이 살아왔습니다.”
윈디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호가 나타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사이에 자연의 대리자가 없이도 자신들은 멸종하지 않았다.
“레이샤. 알고 있잖습니까. 이 모든 건 그저 나의 힘으로 이뤄진 유예입니다.”
윈디드는 두 눈을 감았다.
죄책감에 묻어난 듯 고개를 숙이자 왕이 다가와 윈디드를 안아주었다.
“레이샤.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두 번 다시, 똑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이 멸망했다.
수많은 욕심으로 세계의 균형을 이루던 자연의 대리자들이 죽었다.
자연이 모든 걸 포기하니, 세계가 종말을 향해 가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그분을 부탁합니다. 나의 작은 아이여.”
왕은 윈디드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 * *
쿵!
누군가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에 라비와 폭시는 빼꼼히 바라보았다.
티토에게 줄 선물을 찾던 중에 들리는 묘한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더냐?”
라비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가봐도 되겠더냐?”
“은호가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는데.”“집하고 별로 멀지 않다.”
라비의 말에 폭시는 가볍게 웃었다.
벌써 집하고 멀었으니까.
하지만 자신 역시 이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다.
“가서 보기만 하자.”
“응! 알겠느니라!”
라비가 경쾌하게 대답한 뒤, 앞으로 달렸다.
콰앙!
또 그 소리가 들리자 라비와 폭시는 나무 뒤에서 힐끔 쳐다보았다.
얼굴은 라마 같지만, 몸은 캥거루와 닮은, 근육이 가득 보이는 체격을 가진 환수가 보였다.
쿵!
무언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에 라비와 폭시의 입이 벌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몸에 크리스탈이 박힌 뱀같이 생긴 환수가 있었다.
‘싸우고 있어!’
라비와 폭시는 서로를 보며 기겁했다.
덩치만 본다면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가 이길 것 같지만, 근육이 가득한 환수는 밀리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선명하게 드러난 근육이 성을 내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봐! 너, 다시 말해보라고!”
역정을 내며 지르는 소리를 따라 근육이 가득한 환수의 주먹이 움직였다.
분노에 가득 찬 것만 같았다.
“내가 뭐 어떻다고?”“더러워지니 만지지 말라는 게 그렇게 아니꼬웠니?”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는 상체를 세우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퉷.
얼굴을 맞아 입에 고인 피를 뱉고서는 입꼬리를 올렸다.
“계속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아니면 내가 그렇게 부러웠니?”“네가 지나가고 있길래 쳐다본 게 그렇게 잘못됐어?”“기분 나쁘다고 시선을 줬으면 대충 보고 접었어야지. 너 같으면 땀에 찌든 꼴로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누가 땀에 찌들었다고 그래?”“하긴, 이러니 구석에 박혀 있겠지. 내가 이 주변에서 네 무리를 봤는데, 같은 무리인 줄 못 알아봤네? 너, 무리에서 겉돌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자신을 찔러오는 말에 근육이 가득한 환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몸을 단련한 뒤, 쉬고 있던 차 저 존재를 쳐다봤을 뿐이었다.
몸에 박힌 크리스탈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저런 말을 들을 이유도 없었고, 더더욱 듣고 싶지도 않았다.
지긋지긋한 말이 아닌가.
“……넌 뒤졌다.”
살벌한 말이 계속 이어지자 폭시와 라비의 귀가 내려갔다.
쿵!
근육이 가득한 환수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가 피하자 나무가 우지끈 부서졌다.
동시에 폭시와 라비의 귀가 위로 올라갔다.
쓰러진 나무가 다른 나무를 쓰러트리며 자신들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 어.”
“달려, 까망아!”
폭시가 말하자 라비가 당황한 채 힘차게 달렸고, 근육이 가득한 환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움직였다.
달려가 나무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쪼개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라비는 혼란에 빠졌다.
이어 다가오는 환수의 묵직한 주먹을 보자 꼬리가 말려 들어갔다.
무어라 말하는데, 험악하게 굳어진 표정이 먼저 보였다.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두 환수의 싸움에 누가 잘못됐는지 몰랐다.
그저 갑자기 튀어나오는 저 존재의 모습에 겁이 덜컥 났다.
폭시가 뒤에 있었다.
라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저 존재의 주먹은 이내 폭시를 향한다는 걸 알았다.
‘…폭시를 공격하는 거야?’
라비의 몸통에 있는 별이 휘날리듯 움직였다.
이전에 만약에 가족이 공격당한다면 힘을 써도 되는지 은호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그건 당연히 써야지. 단, 죽일 만큼은 하면 안 돼. 그 뒤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일단 질러.
그때는 단순히 기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날이 이렇게 올 줄이야.
“…까망아?”
라비의 뒤를 따라가던 폭시가 털을 바짝 올렸다.
라비가 화를 내고 있었다.
갑자기?
“까망아? 까망아!”
몇 번 불러봤지만, 라비는 듣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곧 그게 온다는 게 아니겠는가.
라비의 눈동자에 무수히 많은 별이 어린 그때, 폭시는 귀를 막았다.
‘어떡해, 어떡해. 내려오고 있어!’
폭시가 초조할 때쯤, 환수는 서늘함을 느낀 채 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득한 힘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라비마저 걸음을 멈췄다.
앙증맞은 발톱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환수의 눈이 커졌다.
덩달아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 역시 기겁했다.
“뭐야? 뭐야!”
곧 반대쪽으로 다급히 기어나갔다.
그사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닮은 힘이 그대로 땅으로 강타했다.
콰아앙!
분노가 담겨 있기에 운석을 닮은 힘은 숲 한편을 쓸어버렸다.
씩씩거리던 라비는 이내 꼬리를 바짝 올렸다.
숲 한 편이 지워져 휑했다.
라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폭시.”
“…응.”
“…나, 이럴 생각은 없었다. 정말이다.”“알아. 까망이는… 음. 으음.”“…은호한테 엄청 혼나겠더냐?”“그렇지 않을까…?”
라비는 꼬리를 잡은 채 입꼬리를 내렸다.
생각만 해도 슬퍼 꼬리에 파묻힌 채 훌쩍거렸다.
바스락.
무슨 소리가 들리자 라비는 다급히 고개를 올렸다.
근육이 많은 환수와 똑같은 종인 다른 환수가 보였다.
언제 온 걸까.
“너, 괜찮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대장.”
환수는 자신을 구해준 대장을 멍하니 보았다.
환수의 얼어붙은 표정을 본 대장은 라비와 환수를 쳐다보았다.
“너희. 이게 무슨 짓이니?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 몰라?”“…미안하느니라. 그걸 알고 있는데, 갑자기 손을 뻗길래 무서워서 그랬다. 폭시를 공격하는 줄 알았느니라.”
라비는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
어딜 봐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너.”
대장은 실망한 표정으로 환수를 쳐다보았다.
아직 성체도 아닌 존재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건지.
“실망이다.”
“…대장?”
환수는 놀라며 다급히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았다.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는 온데간데없었다.
“이건 돌아가서 이야기하지.”
환수는 두 발로 라비와 폭시에게 걸어와 몸을 살짝 낮췄다.
“미안해. 내가, 내 무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 사과할게.”
라비를 토닥거리던 폭시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사과하지 않아도 돼.”“원래 그러지 않는데, 요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좀 크게 실수했나 봐.”
대장의 말에 환수는 조용히 미간을 찌푸렸다.
“대장. 나는 아무것도…….”
갑자기 목소리가 멈췄다.
아득한 힘이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눈동자를 굴리자 밤이 찾아온 느낌이 몰려왔다.
까만 존재가 나타났다.
샛노란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아니, 아니.”
그 위로 은호의 허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비가 저지른 일을 보며 머리카락을 쥐었다.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
라비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폭시 뒤에 숨었다.